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새롭고 심오한 가르침을 펼침으로써 붓다의 영향력은 잠부디빠 전역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붓다의 명성을 들은 꼬삼비의 세 거상이 오백 대의 수레에 공양물을 가득 싣고서 붓다가 머물고 있는 사왓티까지 먼 거리를 마다않고 찾아온 것도 이런 흐름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붓다의 상가에 공양을 올린 후 보름 동안 사왓티에 머물며 붓다의 설법을 들은 그들은 붓다의 제자가 되었다. 그들은 사왓티를 떠나며 붓다에게 간곡하게 청했다.

 

“세존이시여, 저희가 살고 있는 꼬삼비에도 오시기를 원합니다. 꼬삼비에서도 안거에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들이 세존과 비구들의 수행을 돕기 위한 정사를 마련하겠습니다.”
 
세 명의 장자는 고사까, 꾹꾸다, 빠와리까였다. 꼬삼비로 돌아온 세 장자는 붓다와 그 제자들이 머물 정사를 각각 하나씩 건립하였다. 고사까가 세운 정사는 고시따라마이고, 꾹꾸다가 설립한 정사는 ‘꾹꾸다라마’이며, 빠와리까가 망고동산에 세운 정사는 ‘빠와리까암바와나’라고 이름을 지었다.
꼬삼비는 마가다 국의 서쪽에 위치한 왐사 국의 수도였다. 기원전 8세기 베다의 권위를 신봉하던 빠우라와 제국이 대홍수로 몰락하면서 아리야인의 땅으로 불렸던 꾸루, 빤짤라, 맛차, 수라세나는 점차 세력을 잃게 되었고, 강가(갠지스) 강 중류에 새로운 국가들이 흥성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꾸루 족 일파가 이주하여 새롭게 건설한 도시 꼬삼비였다. 꼬삼비는 서쪽으로 수라세나의 마두라와 야무나 강으로 연결되고, 남쪽으로는 아완띠의 웃제니와 육로로 연결되었으며, 동쪽으로 강가 강의 뱃길을 따라 바라나시와 마가다 국 그리고 앙가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한 도시국가였다. 또한 꼬삼비는 꾸루, 빤짤라, 맛차, 수라세나에서 쇠퇴해가던 바라문 문화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었다.
세 장자의 귀의로 꼬삼비에 전법의 터전이 마련됨으로써 붓다의 교단은 바라문교 본토 사람들에게 본격적으로 가르침을 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흥종교에 배타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던 이 지역 사람들의 저항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꼬삼비를 찾은 붓다와 붓다의 제자들은 갖가지 모욕과 멸시를 감수해야만 했다. 붓다의 가르침에 새롭게 귀의하는 이들에게도 남다른 신심과 의지가 요구되는 상황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척박한 토양 속에서도 붓다의 가르침은 싹을 틔웠고, 고결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랏타빨라 역시 눈부신 꽃다발 가운데 한 송이였다.
랏타빨라는 꾸루의 툴라꼿티까 출신이었다. 출가를 허락지 않는 부모님에게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랏타빨라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일주일 동안 땅에 누워 꼼짝하지 않는 시위를 해야만 했다. 그의 부모님은 아들의 죽음이 두려워 결국 출가를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아들이 출가한 후에도 붓다 교단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세월이 흐른 후 아라한이 된 랏타빨라는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교화하고, 온갖 시련을 극복하며 꾸루에 붓다의 가르침을 전했다.

 

붓다의 상가가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 세력가들의 후원과 보호가 필요했다. 꼬삼비 우데나 왕의 호의를 이끌어내는 데 크게 공헌한 사람은 그의 첫째 왕비 사마와띠였다. 사마와띠는 왕궁에 꽃을 나르는 시녀 쿳줏따라가 전해주는 붓다의 말씀만 듣고 귀의했을 정도로 수승한 근기를 가진 우바이였다. 그날 이후 왕비는 붓다의 법을 전해주는 시녀를 스승처럼 섬기며 붓다의 가르침을 매일같이 경청했다. 왕비는 붓다를 직접 뵙고 싶었지만 질투심 강한 우데나 왕이 허락할 리 없었다. 사마와띠는 궁전 담벼락에 구멍을 뚫고 지나가는 붓다를 향해 남몰래 합장 예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런 사실은 알게 된 셋째 왕비 마간디야가 붓다와 사마와띠가 내통하고 있다며 우데나에게 거짓을 전했다. 마간디야는 꾸루의 깜마사담마 출신 미녀였다. 그녀는 왕의 사랑을 두고 경쟁한 사마와띠도 미웠지만 붓다와는 더욱 좋지 않은 인연이 있었다. 붓다가 언젠가 깜마사담마를 방문했을 때, 붓다의 당당한 모습에 반한 바라문 내외가 자기의 딸을 데려와 아내로 삼아달라고 간청한 적이 있었다. 그때 붓다는 눈이 부실만큼 아름다운 딸을 앞에 두고 보리수 아래에서 대각을 이루기 전 악마의 딸들이 자신을 유혹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는 아름다운 여인도 결국 똥오줌으로 가득 찬 가죽주머니에 불과하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던 것이다. 붓다의 법문에 감복한 바라문 부부는 동생에게 딸을 맡기고 그 자리에서 비구와 비구니가 되었다. 바로 그때 그들 부부가 동생에게 양육을 맡겼던 딸이 바로 셋째 왕비 마간디야였다.
‘똥오줌 가득한 가죽주머니’라는 말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던 마간디야는 옛날의 상처를 잊지 않고 앙심을 품고 있었다. 마간디야의 끈질긴 음해에 성질 급한 우데나 왕은 마침내 사마와띠와 궁녀들의 죄를 추궁하고 나섰다. 시기심에 불탄 왕은 화살 끝에 독을 바르고 시위를 팽팽히 당겨 위협했지만 사마와띠와 궁녀들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담장 너머 법문만으로 그녀들은 이미 진리의 길에서 물러나지 않는 경지(수다원과)를 성취하였던 것이다. 평온한 여인들의 모습에 더욱 화가 치민 우데나 왕은 군사들에게 활을 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원한과 증오심을 떨친 그녀들 앞에서 화살은 낙엽처럼 떨어질 뿐이었다. 기이한 현상에 놀란 우데나 왕은 자초지종을 조사한 후 왕비와 궁녀들에게 잘못이 없음을 알고는 용서를 구했다. 이 일을 계기로 우데나 왕은 왕비의 청에 따라 붓다와 비구들을 궁궐로 초대해 공양을 올리고 설법을 듣게 되었다. 이때 붓다는 쿳줏따라를 ‘우바이 가운데 가장 박식한 사람’이라고 칭찬했고, 사마와띠를 ‘우바이 가운데 가장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찬탄했다.

 

 

붓다가 출현했다는 소식은 남쪽 멀리 아완띠까지 전해졌다. 아완띠 국 짠다빳조따 왕은 붓다를 초청하기 위해 깟짜야나(가전연)를 비롯한 일곱 사람으로 구성된 사신단을 사왓티로 파견했다. 깟짜야나는 웃제니 출신으로 국사의 아들이었으며 흑인이었다. 짠다빳조따 왕의 요청을 전달하기 위해 붓다를 찾아온 여덟 사신은 붓다의 설법을 듣는 순간 자신들의 임무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붓다의 설법에 감동한 그들은 모두 출가를 결단하고 비구가 되었다. 그들 가운데 깟짜야나가 수행의 과위를 가장 빨리 성취하였다.
논리적 사유와 언변이 뛰어났던 깟짜야나는 붓다의 간단한 설법을 자세히 분석해 설명하고 논의하는 데 있어 최고의 능력을 발휘했다. 붓다 역시 이 능력을 칭찬하며 그에게 ‘논의 제일’이라는 별칭을 내려주었다. 아라한과를 증득하여 출가의 목적을 완수한 후 깟짜야나는 이윽고 짠다빳조따 왕의 요청을 떠올리고 붓다에게 간청했다.

 

“스승이시여, 아완띠의 왕 짠다빳조따가 세존을 초청하였습니다. 부디 아완띠 국을 방문해주십시오.”

 

잠시 침묵한 붓다가 대답했다.

 

“깟짜야나, 그대가 가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붓다로부터 귀향 허락을 받은 깟짜야나는 고향 웃제니로 돌아와 왕의 동산에 머물렀다. 그의 귀국으로 붓다의 가르침이 아완띠 국에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의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설법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가 환희심을 내고 붓다와 붓다의 가르침, 붓다의 교단에 귀의했다. 깟짜야나는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엄격하게 훈육하고, 정성을 다해 설법했다. ‘혼자서 가도 된다’는 붓다의 절대적인 신뢰에 부응이라도 하는 듯, 그의 빼어난 설법에 감응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수행자로 살고자 한다면 많은 일을 하지 말라. 사람들을 멀리하고, 지나치게 애쓰지 말라. 맛에 탐닉하여 번거로우면 안락을 가져오는 의취(義趣, 열반에 이르게 하는 진리)를 놓친다. 가정에서 예배와 공양을 받지만 그것을 ‘진흙수렁’이라고 알아야 한다. 날카로운 화살은 뽑기 어렵고, 공경 받는 것은 버리기가 어렵다. 죽어야만 하는 자의 악한 업은 타자에 의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 그런 업을 짓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생의 업은 친척과 같기 때문이다. 타인의 말에 의해서 도둑이 되는 것이 아니고, 타인의 말에 의해서 성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 대해 아는 그대로 하늘사람들도 안다.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로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러한 관점에서 그들이 그것을 알면 그들이 싸움이 그치게 된다. 지혜가 있는 자라면 재산을 잃어도 산다. 지혜를 얻지 못하면 재산이 있어도 살지 못한다. 귀로 모든 것을 듣고 눈으로 모든 것을 본다. 슬기로운 자라면 본 것, 들은 것, 모든 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 눈 있는 자는 오히려 눈먼 자와 같고, 귀 있는 자는 오히려 귀먹은 자와 같아야 한다. 지혜가 있는 자는 오히려 바보와 같고 힘센 자는 오히려 허약한 자와 같아야 한다. 생각하건대 의취가 성취되었을 때, 죽음의 침상에 누워야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깟짜야나의 논리적인 설법에 감화되어 제자가 되거나 출가를 원하게 되었다. 그런데 수행자가 되고자 출가한 사람에게 구족계를 주려면 최소 열 명의 비구가 필요했다. 그런데 변방이나 다름없던 아완띠 국에서 열 명의 비구를 모으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출가를 원하는 이들을 다른 상가에 보내자니 가장 가까운 상가라고 해도 멀고 먼 꼬삼비 국에 있었다. 비구들은 붓다가 제정한 계율을 생명처럼 여겼다. 붓다 한 분 외에는 누구도 계율을 제정할 수 없었고, 함부로 고칠 수도 없었다.
깟짜야나는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붓다를 뵙기 위해 사왓티의 기원정사로 떠나는 제자 소나꼬띠깐나에게 아완띠 국의 사정을 말씀드리게 했다. 지역을 특성을 고려해 계율의 적용을 적절히 가감할 수 있도록 요청한 것이었다.
붓다는 아완띠 국의 사정을 고려해 다섯 명의 비구만으로 구족계를 줄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만들었다. 또한 검고 딱딱한 아완띠의 토질을 고려해 보름에 한 번으로 정해진 목욕을 보다 자주 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양이나 염소, 사슴 등의 가죽으로 만든 이불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처럼 엄격한 붓다 교단의 계율 조항이 환경과 사정에 맞춰 수정됨으로써 아완띠에서 새로운 상가가 정착될 수 있었다.

 

 

온몸에 황금빛 털이 가득한 소나꼴리위사라는 비구가 있었다. 라자가하에서 붓다의 게송을 듣고 출가한 그는 짬빠 시의 가장 부유한 장자 우싸바의 아들이었다. 우싸바의 아내가 아들을 잉태할 때부터 우싸바의 재산이 엄청나게 불어났고, 소나꼴리위사가 태어날 때에는 도시 전체가 축제를 벌일 정도로 큰 부를 축적했다. 부호의 아들답게 소나꼴리위사는 출가 전 건기, 하기, 우기의 인도 세 계절에 맞게 지어진 삼시전에서 지냈을 정도로 호화로운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라자가하에서 붓다가 설법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와 함께 참석했다가 감명을 받고 출가를 결행했다.
출가 후 그는 시따바나 숲에서 명상을 하였으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았기 때문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개의하지 않고 불굴의 노력으로 명상을 계속했다. 그런 그는 붓다로부터 ‘열심히 노력하는 님 가운데 제일’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런데 낮밤을 가리지 않고 정진했지만 그에게는 좀처럼 수행의 결과가 체득되지 않았다. ‘배운 대로 실천하자. 뒤로 물러서지 말자. 열심히 노력해 반드시 평안을 얻고 말겠다.’는 다짐을 하고, 피가 맺히도록 노력해도 보람이 없자 마음 한 구석에 회의가 찾아들었다.
‘죽을 힘을 다해 노력했으나 나는 여전히 속세의 미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헛된 행만 거듭하고 있다. 수행의 결과를 증득하기에는 아무래도 자질이 부족한가 보다. 아,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세속 생활에 만족하며 살까? 맛있는 것을 즐기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널리 보시하고 공덕을 쌓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때 그의 마음을 천안으로 살펴 안 붓다가 직접 소나꼴리위사를 찾아갔다.

 

“소나꼴리위사, 그대에게 묻겠다. 그대는 집에서 지낼 때 악기를 잘 연주했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예, 세존이시여.”
“그대가 악기를 연주할 때 현을 너무 팽팽히 조이면 소리가 듣기 좋던가?”
“좋지 않습니다.”
“그럼 지나치게 느슨하면 소리가 듣기 좋던가?”
“그 역시 좋지 않습니다. 스승이시여, 악기를 연주할 때 현의 완급을 적당히 조율하지 않으면 좋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붓다가 말했다.

 

“소나꼴리위사, 진리의 길을 걷는 것도 마찬가지다. 의욕이 지나쳐 너무 급하면 초조한 마음이 생기고, 열심히 하려는 뜻이 없으면 태만으로 흐르는 것이다. 그러니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항상 가운데 길로 걸어가야 한다. 그러면 머지않아 이 속세의 미혹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붓다의 이 가르침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은 소나꼴리위사는 오래지 않아 중도(中道)를 체득하였다. 그는 자신의 얻은 경지를 이렇게 노래했다.

 

지나치게 용맹스런 정진에
세상에서 위없는 스승,
눈을 갖춘 님께서 비파의 비유를 들어
가르침을 나에게 설했다.

 

나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가르침에 기뻐했으니,
최상의 의취를 성취하기 위해
평정을 닦았다.
세 가지 명지를 성취하였으니
깨달은 님의 교법이 나에게 실현되었다

 

세상에서 출리를 지향하고
폭력의 여읨에 전념하여
집착을 부순 자의
마음의 멀리 여읨을 보라.

 

갈애의 부숨을 지향하고,
마음으로 미혹을 여의고
감각영역의 생성을 관찰하니
올바로 마음이 해탈된다.

 

올바로 마음이 해탈되어
적멸에 든 수행승에게
행한 것에 덧붙여야 할 일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다.

 

 

  붓다가 대각을 성취한 지 7년째 되던 해였다. 사왓티의 기원정사에서 머물던 붓다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어떤 일이 닥치든 막힘없이 해결하는 지혜와 위신력을 가진 붓다였지만 이번만은 사정이 달랐다. 바로 신통에 관한 고민이었던 것이다.  붓다는 신통에 대해 매우 신중한 입장이었다. 신통을 함부로 남발할 경우 초래될 부작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신통의 능력을 갖춘 붓다가 그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을 꺼려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붓다는 지금까지 쌍신변(雙神變)의 신통을 두 번 보여준 적이 있었다. 첫 번째는 정각을 성취한 후 대보리수 (Mahãbodhi) 아래에서 천신과 범천의 마음에 일어난 의심을 풀어주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까삘라왓투(Kapilavatthu)를 방문했을 때 모여든 친족, 즉 사끼야 족들의 아만심을 꺾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며칠 전, 삭까(제석천왕)가 동틀 무렵에 붓다를 찾아와 청을 올린 일도 있었다.

 

“세존이시여, 붓다가 세상에 출현함은 다섯 가지 큰일을 위함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첫째는 법을 설하여 사람과 하늘을 교화함이고, 둘째는 부모를 제도함이며, 셋째는 믿지 않는 자를 믿게 함이고, 넷째는 아직 보살의 마음을 일으키지 못한 자에게 보살의 마음을 일으키게 함이며, 다섯째는 보살에게 어느 때에 부처가 될 것을 증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세존의 어머니께서 도리천에 계시며 세존의 법을 듣고자 간절한 마음을 내고 있는데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이를 행하지 않으십니까? 부디 도리천에 오르시어 어머니를 위해 법을 설하소서.”

 

삭까의 말을 들은 후부터 붓다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붓다는 도리천에 오르는 것을 포함하여 사람들에게 이적을 보여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는 물론, 제자들에게 이적을 금하라는 당부를 해온 탓도 있었지만, 당시의 정황은 붓다가 이 문제를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더구나 붓다의 출현에 위협을 느낀 이교도들은 붓다에 대한 극성스러운 시기와 비방을 서슴지 않고 있었다. 이를 방치할 경우 교단 전체에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분출되고 있었다. 혜성처럼 나타나 수많은 수행자와 재가자들로부터 귀의를 받고 있는 붓다에 대해 기성의 종교지도자들이 질투와 두려움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일 터였다.
붓다의 생사와 우주의 본질을 꿰뚫는 가르침과, 수행자들을 교화하는 탁월한 능력에 위협을 느낀 이교도들로서는 그가 펼치는 가르침들이 모두 삿된 것이라고 힐난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붓다가 펼치는 진리의 확장을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이 붓다를 향해 이른바 ‘이적행 대결’을 제안하고 나선 것은 그들로서는 마지막 수단과 같은 것이었다. ‘당신이 정말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다면 이적의 행을 해보여라, 누가 더 대단한 이적을 보이는가, 한 번 대결을 펼쳐보자’는 이교도들의 요구를 무작정 거절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빠세나디 왕조차 이적을 피하면 우매한 사람들은 붓다의 법을 외면하게 될 수도 있다며 이적행을 보일 것을 권하고 있었다.
‘아, 이적을 보일 것인가, 말 것인가. 이적을 보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오랜 기간 동안 고민을 거듭한 붓다는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부모를 제도하기 위해, 믿지 않는 자를 믿도록 하기 위해’ 그토록 삼갔던 이적행을 나타내 보이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이적을 보임으로써 근거 없이 자신과 자신의 상가를 비난하는 자들을 일시에 제압하는 동시에 도리천에 머물고 있는 어머니 마야데비도 교화하는 기회로 삼고자 꺼렸던 방편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적행 대결’의 장소는 사왓티 기원정사 인근에 위치한 암라(Amra, 망고)나무 숲으로 정해졌다. 사왓티는 자이나교를 비롯한 많은 이교도들의 사상이 팽배해 있던 지역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온 이방인 붓다를 욕보이려는 음모를 여러 차례 꾸몄다. 음모는 갈수록 그 수법이 과격하고 교묘해졌다. 한 번은 순다리라는 한 여인을 꾀어내 붓다의 아이를 가졌다고 꾸며댐으로써 붓다의 권위를 한꺼번에 짓밟으려는 시도를 한 일이 있었다. 물론 이 음모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들은 이후에도 수없이 많은 비열한 짓을 자행했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비방이라고는 하지만, 그 소문이 씨앗이 되어 헛소문이 꼬리를 물며 점점 퍼져나갔다. 결국 붓다와 붓다가 이끄는 교단에 대한 악의적인 평판이 흉흉해졌고, 이것은 붓다가 마침내 이적행의 결단을 내리는 배경이기도 했다.

 

“사왓티의 동쪽 암라 숲에서 신통을 보이겠노라.”

 

암라나무 숲은 자그마한 언덕이었다. 이적 대결이 열리는 날, 붓다의 제자를 비롯하여 많은 수행자들, 이교도들, 그리고 군중들이 구름같이 암라나무 숲으로 모여들었다. 좌정한 붓다의 앞에는 망고동산의 지기가 공양올린 망고가 놓여 있었다. 붓다는 가만히 망고를 들어 천천히 망고를 먹은 다음, 망고 씨앗을 땅에 심었다. 그 순간 땅 속의 망고 씨가 싹을 틔우더니 파죽지세로 무섭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군중들은 이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어 붓다는 자신의 몸을 분리해 동시에 천 명의 붓다가 동시에 공중에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千佛化現)의 이적을 보였다. 이어 붓다는 쌍신변의 놀라운 이적을 행했다. 붓다가 보여준 이적들은 그 수준과 스케일 면에서 몇몇 이교도 지도자들의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운집했던 이교도들은 물론이고 군중들도 붓다의 불가사의한 능력에 감복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군중들이 놀라움과 감동에 빠져 있을 즈음, 붓다는 조용히 몸을 감춰 하늘세계[天上]로 올랐다. 붓다가 오른 하늘 세계는 붓다의 생모 마야데비가 있는 도리천이었다.
사별한 생모를 처음 만나는 붓다의 마음은 복잡했다. 기쁘기도 했고 설레기도 했으며 왠지 모를 슬픔도 밀려왔다. 붓다가 삭까 왕의 보좌에 올라앉자 마야데비는 물론 도리천과 야마천, 타화자재천 등 다른 하늘세계의 천신들이 구름처럼 찾아와 예경하고 붓다의 법석에 함께 했다. 이윽고 붓다가 어머니와 하늘세계 사람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셨다.

 

“삼계의 중생이 경험하는 것은 괴로움과 즐거운 두 가지 길입니다. 어머니께서 이때까지 지나신 것도 그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괴로움과 즐거움의 구렁텅이에서 떠나야 합니다. 세상 사람이나 하늘사람이나 지니고 있는 몸은 다 사대[지수화풍]와 사온[수상행식]이 화합하여 거짓신명을 구성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어서 내 것이라고 할 주체가 없는 것이며,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고 죽음의 존재이며 마침내 고통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깊이 이 이치를 보아 깨닫는 이는 바로 삼계의 굳은 감옥을 깨뜨리고 닙바나의 저 언덕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스승이자 자신의 아들이기도 한 붓다의 설법을 들은 마야데비는 이내 속세의 깊은 인연의 고리와 번뇌의 얽힘에서 풀려나와 깨달음을 성취하고, 열반의 언덕에 올라 더 할 일이 없는 경지에 올랐다. 마야데비가 나서 붓다에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법을 듣고 마침내 나고 죽음의 감옥을 벗어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비컨대 불에 달구어진 쇳덩이에 접촉하는 자의 몸이 타는 것과 같이 번뇌의 불에 타는 중생은 다 나고 죽음의 구렁에 빠집니다. 세상 사람들이 번뇌의 흐름에 따라 구르는 것은 마치 빠른 바람 앞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같습니다.”

 

이어 마야데비는 자신의 아들 앞에서 게송으로 깨달음의 기쁨을 노래했다. 

 

나에게 법의 비를 부어주어
타는 목을 적셔주시고
마른 싹을 틔어 냄이여
이 싹을 길러 열매 맺으리.

 

어두운 밤에 해매며 무명의 잠 속에 갇혀
나아갈 길도 찾을 줄 몰랐나니
부처님은 이제 길을 보여 주셨네.

 

세존은 큰 의왕(醫王)이시라
병을 따라 약 베푸시니
사람이 그것 믿고 받아 먹으면
반드시 병 없는 몸이 되리라.

 

끝없는 그 옛적부터 불타던
사람의 번뇌를 없애주시고
가없는 희망을 베풀어 주심은
오직 세존 한 분 뿐 일세.

 

생모의 게송을 경청한 붓다는 다시 모든 하늘 사람들을 위하여 법을 설했다.

 

“세상 사람이 미혹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세 가지 독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하늘이나 인간에 나기도 어렵거든 하물며 나고 죽음을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삼독을 녹여버리고 하늘의 복락을 길이 누리고자 하거든 언제나 남에게 베풀어 주기를 좋아하며, 어떤 욕됨과 어려운 일이라도 참으며, 법을 들어 지혜 닦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몸은 오온의 화합한 거짓의 것임을 알아 그것에 탐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탐착을 여윈 이는 장차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근심 걱정 괴로움을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한 천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붓다에게 예배하고 게송으로 노래했다

 

모든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어
집을 떠나 깨침을 구하심이라
오랜 시간에 고행을 닦아
인간 천상에 복 밭을 이루셨네

 

아아 지극하신 성자시어
모든 악마를 다 이기시고
길이 어두음을 여의시어
세상에 뛰어나는 도 이루셨네.

 

한편 사왓티에서는 붓다의 이적행을 계기로 수많은 이교도들과 청중들이 붓다와 붓다의 상가에 다투어 귀의했다. 이후 이교도들이 붓다와 붓다의 교단을 넘보는 일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붓다와 그 가르침, 그리고 상가의 위상이 크게 격상되었기 때문이었다. 붓다가 하늘 세계에 머문 시간은 3달이었다. 이적행을 보인 후 홀연히 사라진 스승을 찾아 하늘세계까지 좇아온 아니룻다(Aniruddha)의 간청에 의해 붓다는 사왓티 인근의 도시 산카샤를 통해 다시 잠부디빠로 하강했다.
붓다가 도리천으로부터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던 날, 붓다의 제자 중 가장 신통력이 뛰어났던 목갈라나는 스승이 다시 세상에 돌아오는 장소가 산카샤라는 것을 미리 알고, 사리뿟따 등 다른 제자들에게 알려 하늘에서 내려오는 붓다를 마중하도록 했다. 이 일을 기화로 목갈라나와 사리뿟따는 신통력과 지혜력에서 역시 으뜸가는 제자임을 대중들로부터 다시금 입증 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