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정스님의 향기로운 공감언어와 법문

법정스님 공감법어95

정찬주 | | 2020-04-08 (수) 07:16


일러스트 정윤경
 
 
마중물 생각
 
산중의 물소리 바람소리야말로 자연이 부르는 ‘인생찬가’가 아닐까.
헛된 시비분별로 지친 영혼을 맑히고 투명하게 씻어주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은 뻐꾸기 소리를 엄마의 ‘영원한 모음(母音)’이라고 하셨고
<어린 왕자>의 목소리는 ‘영원한 영혼의 모음’이라고도 말씀하셨다.
 
나는 꾀꼬리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사랑의 기쁨’이라고 느끼곤 한다.
두 마리가 숲속에서 ‘호호(好好) 호이오(好而娛)’ 노래하는 듯해서다.
 
스님의 말씀과 침묵
 
#이른 아침 한때, 동이 트기 바로 전 숲속에서는 온갖 종류의 새들이 목청껏 노래하고 있다. 찌르레기를 시작으로 쏙독새, 휘파람새, 꾀꼬리, 밀화부리, 뻐꾸기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새들이 일제히 목청을 돋우어 새 아침의 합창을 하고 있다. 그 많은 새들이 한꺼번에 쏟아 놓은 소리들인데도 결코 시끄럽거나 역겹게 들리지 않는다. 자연의 소리는 그 자체가 완벽한 하나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런 새들의 합창을 듣고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새만도 못한 게으름뱅이 거나 귀머거리일 것이다.
 
#밝고 명랑한 꾀꼬리 소리는 귀로 들리고 무슨 한이 밴 것 같은 뻐꾸기 소리는 가슴으로 들린다. 밤에 우는 소쩍새 목청은 차디찬 금관악기 소리라면 멀리서 들려오는 뻐꾸기 목청은 푸근한 달무리가 감도는 목관악기 소리다. 꾀꼬리 목청은 여럿이서 들을 때 더욱 즐겁고 뻐꾸기는 혼자서 벽에라도 기대고 들을 때가 좋다. 꾀꼬리 소리는 가까이서 들을수록 좋고 뻐꾸기 소리는 아득하게 멀리서 들리는 소리가 더 어울린다.
 
#
꽃은 서로의 향기로 대화를 나눈다.
인간은 말이나 숨결로써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꽃이 훨씬 우아한 방법으로 서로를 느낀다.
어느 해 가을, 개울가에 다른 꽃은 다 지고 없는데
용담이 한 그루 홀로 남아 있었다.
나는 그 꽃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여
입 다물고 있는 용담의 꽃봉오리에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청을 했다.
“내 방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데 한 번 보여주지 않을래?”
다음날 무심코 개울가에 나갔다가
그 용담을 보니 놀랍게도 꽃잎을 활짝 열고 그 안을 보여주었다.
어떤 대상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그 대상을 사랑해야 한다.
이쪽에서 따뜻한 마음을 열어 보여야 저쪽 마음도 열린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서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갈무리 생각
 
한밤중에 깨어나 은하수가 흐르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자음과 모음으로 이룬 소리가 아니므로 표현할 길은 없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는 누구나 들을 수 있다는 금언이 있다.
 
‘별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남한테 전하려면
그것에 필요한 말이 우리 안에서 먼저 자라나야 한다.’  
 
임제 선사는 인생을 찬탄하여 말했다.
“언제 어디서나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그러면 그가 서 있는 자리마다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리라.” 
 
또, 조주선사는 사계절 좋은 시간을 찬탄했다.
 
봄에는 꽃들이 피고 가을에는 달빛이 밝다.
여름에는 산들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흰 눈이 내린다.
쓸데없는 생각만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우리 세상의 좋은 시절이라네.
 
내 산방의 달을 휴대폰으로 촬영해서 시언 아우에게 보내주자, 귤 농사를 짓는 농부시인 시언 아우가 성산포 달을 답례로 보내온 적이 있다. 그때 아우가 하는 말, 성산포 달빛은 소금기가 배어 간간하단다. 서로 서 있는 자리가 다르더라도 달은 하나일 뿐인데 달빛의 맛은 다른가 보다. 내 산방 뜨락에 쌓이는 달빛은 도대체 무슨 맛일까. 투명한 외로움, 고요하고 적적한 맛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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