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가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소년들이 시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끓이고 있었다. 그는 몸을 구부려 끓는 솥 안을 들여다보며 탄식하였다.
"잘 놀던 물고기들이 죄 없이 삶아지는 괴로움을 받는구나."
이에 한 소년이 그를 조롱하였다.
"스님께서 이 고깃국을 잡숫고 싶은 게로군요."
"준다면야 나는 잘 먹지."
"그럼, 이 솥을 모두 스님께 드릴 터이니 다 드십시오."
그러자 그는 구리 그릇을 번쩍 들어 올려 단숨에 마셔버렸다. 이 광경을 본 소년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부처님께서는 살생을 금하였거늘 스님의 신분으로 고깃국을 자셨으니 어찌 참다운 스님이라 하겠습니까?"
그제야 그는 웃었다.
"물고기를 죽인 건 내가 아니지만 그것을 살리는 일은 내 하기에 달렸지."
그리고 그는 재빨리 바지를 벗고 냇물을 등지고 앉아 설사를 하였다. 그러자 오물 대신 물고기들이 쏟아져 나와 발랄하게 헤엄치며 놀고 있었다. 그는 자유롭게 노니는 물고기들을 보면서 말했다.
"귀여운 물고기들아. 멀리 큰 강과 바다로 나가 다시는 삶아지는 괴로움을 받지 말거라!"
소년들은 아무 말 못 하고 그물을 거두어 집으로 돌아갔다.

 

 

 2.
그가 전북 부안군 산내면 변산의 월명암에 머물 때였다. 시자가 마침 재가 들어온 것이 있어 속가로 가면서 먼저 공양물을 준비, 탁상에 놓고 아뢰었다.
"스님, 공양물이 여기 있으니 때가 되거든 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자는 마을로 총총 떠났다.
때마침 다른 스님들은 모두 외부로 탁발을 나가고 없었다. 그만 홀로 남아 문지방에 손을 얹고서 「능엄경」을 읽고 있었다.
이윽고 시자가 속가에서 하룻밤 묵고 절에 돌아와 보니 그는 전날 그대로 앉아 있었다. 바람에 문이 흔들려 손가락을 찧어 피자 흐르는데도 태연스레 경을 열람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탁상의 공양물은 여전히 차려놓은 그대로였다.
"너는 왜 제사에 참여하지 않고 벌써 왔느냐?"
그는 그 사이 하루가 지난 것도 모르고 있었다.

 

3.
그의 어머니에 대한 효성은 익히 알려져 있는 이야기다.
그가 일출암에 살 때 어머니를 인근의 왜막촌에 모셔와 머물게 하였다. 그런데 어머니가 모기 때문에 고통을 겪게 되었다. 이를 안쓰럽게 여겨 산신령에게 부탁, 그 지역의 모기를 남김없이 다른 곳으로 쫓아버리게 하였다. 그래서 왜막촌 일대는 지금도 모기가 사람을 괴롭히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만경 북쪽의 유앙산에 길지를 가려 장사 지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시로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표현했다. 참으로 우리의 가슴을 치는 만고불변의 진실한 문장이 아닐 수 없다.

 

  태 안의 열 달 은혜는 무엇으로 갚사오며
  무릎 아래 삼 년 양육은 잊을 수 없나이다.
  만세 위에 다시 만세를 더해도
  자식의 마음 오히려 미흡한데 백 년 안에서 백 년을
  못 채우니 어머님 수명 어이 그리 짧으신가.
  표주박 차고 길에서 행걸하는 외로운 이 중이사
  이미 그렇거니와 비낀 비녀로 안방에서
  혼인 못한 저 누이동생이 가엾지 않나이까.
  상단을 마치고 하단도 파하여 스님네들 뿔뿔이
  제 방으로 가면 앞산은 첩첩하고 뒷산은
  중중한데 영혼은 어디로 가시렵니까.
  아아! 슬프고 슬프옵나이다.

 

그런데 그 묘역의 풀을 깎고 술과 음식을 차려 제사 지내면 그 사람의 그 해 농사가 풍년드는 까닭에 가까운 곳은 물론 먼 고을 사람까지 앞다투어 묘소를 돌봤다.

 

4.
그가 봉서사에 있을 때였다. 만년에 그는 시의 고매한 유학자 봉곡 김동준과 내왕하면·학문의 깊이를 의론하였다.
하루는 봉곡이 그에게 <주자강목>을 빌려주고 사람을 하나 딸려 보냈다. 그는 그 책을 바랑에 짊어지고 길을 가면서 한 권씩 꺼내어 대강대강 훑어본 뒤 한 권 한 권 땅에 떨어뜨리고 한 권의 발문만을 갖고 절로 돌아갔다.
뒷날 봉곡은 그에게 물었다.
"책을 빌려 가서 버리는 것은 무엇 때문이오?"
"고기를 잡은 뒤에는 통발을 잊는 법이지."
이 대답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는 명언으로 전하고 있다.
그가 바로 캄캄했던 조선 불교의 등불, 진묵(震黙) 스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