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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자는 또 언제 어디서나 자주적인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가 선 자리마다 하늘나라, 즉 법계(法界)가 될 수 있습니다.
 현재를 최대한으로 살고 자주적인 인간이 되어야 할 수도자에게 게으름과 안일은 큰 적입니다. 게으름과 안일은 갈 데 없는 악덕입니다. 악덕은 습관과 함께 시작됩니다. 나쁜 습관은 녹과 같습니다. 그것은 흔히 강철을 녹슬게 합니다.
 서산대사 휴정(休靜)의<선가귀감(禪家龜鑑)>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출가하여 수도자가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편하고 한가함을 구해서가 아니며,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고 한 것도 아니며, 명예나 재산을 구해서도 아니다. 오로지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며, 번뇌의 속박을 끊으려는 것이고,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이으려는 것이며, 끝없는 이웃을 구제하기 위해서이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절대자유, 즉 해탈(解脫)을 자신과 세상에 구현하려는 것입니다. 수도자는 자기로부터 시작하라고 했지, 자기에게 그치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자기를 출발점으로 삼되 목표삼지는 말라는 뜻입니다. 자기를 바로 알되 자기에게 사로잡히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다음은 수도자의 사적인 생활태도에 대해서 말할까 합니다.

 

 1. 침묵에 대해서

 

 어느 해 겨울 안거 기간(3개월)을 침묵으로 지낸 일이 있습니다. 말을 안 하니 소화상태는 좀 안 좋았지만 내 속뜰은 그렇게 잔잔하고 정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평소에 얼마나 불필요한 말을 많이 했던가를 새삼스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큰 절에서 이따금 스님들이 올라와 자기네들끼리 하는 말을 곁에서 듣고 있노라면, 저건 쓸 말이고 저건 쓰잘데기 없는 말이라는 걸 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쓸 말보다는 쓸데없는 말이 훨씬 많았습니다. 우리들의 일상이 그렇듯이....
 다시 토머스 머튼 신부의 <관상기도>에서 몇 구절 인용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렬히 찾고 있지만 침묵 속에 머무는 자만이 그것을 발견한다. 말이 많은  사람은 그가 비록 경탄할 만한 것을 말한다 할지라도 내부는 비어 있다.’

 

 ‘침묵으로 성인들은 성장했고, 침묵으로 하느님의 능력이 그들 안에 머물렀고, 침묵으로 인해 하느님의 신비가 그들에게 알려졌다.’

 

 ‘무엇보다도 침묵을 사랑하라. 침묵은 입으로 표현할 수 없는 열매를 너희에게 가져올 것이다.’

 

 트라피스트가 아니라도 수도자는 침묵을 사랑해야 합니다. 침묵은 내면의 통로를 열어줍니다. 말이 없어야 어리석음이 지혜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진리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숫타니파타>에서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입안에 도끼를 가지고 나온다. 어리석은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함으로써 그 도끼로 자신을 찍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입을 가리켜 ‘재앙의 문’이라고도 하지요. 사실 기구(祈求)에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지극한 기구 중에는 속엣말을 하는 사람과 들을 대상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도자는 말을 하려고 할 때 먼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려는 이 말이 내 자신에게도 이롭고 듣는 쪽에도 이롭고, 이 말을 전해들을 제삼자에게도 이로운 말인가를,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면 입을 열고, 무의미하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하고 싶은 말도 꾹 참아야 합니다. 참으면 덕이 됩니다.
 그 누구를 막론하고 말이 많은 사람은 머리가 비어 있음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2. 소유에 대해서

 

 수도자는 될 수 있는 한 물건을 적게 가져야 합니다. 가난(淸貧)은 수도자만이 누릴 수 있는 조촐한 복(淨福)입니다. 세상 사람들한테도 고루 배당되지 않은 물건을 수도자가 차지하고 있음은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움입니다. 필요한 물건도 갖지 않으려고 해야 할 텐데, 수도생활에 요긴하게 쓰이지도 않을 불필요한 물건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건 탐욕입니다. 탐욕은 우리들의 맑고 투명한 눈을 멀게 합니다. 수도자의 분수에 넘치는 옷이나 치장도 허세가 아니면 탐욕입니다.
 수도자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 자입니다.

 

 3. 소임에 대해서

 

 크고 작은 공동체는 개인에게 주어진 소임으로 인해 유기체의 조화를 이룹니다. 그리고 수도자는 자기가 맡은 소임으로 인해 수도자로써 쌓아야 할 복과 덕을 가꿀 수 있습니다. 일과 이치는 하나이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소임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이 그 밖의 수도생활에 충실할 수는 결코 없는 법입니다. 무슨 일에나 그 일 자체가 되어 순수하게 몰입하고 지속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에서 이치를 터득하고 이치를 일로써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일거리가 없다는 것은 삶의 소재가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일을 할 때에는 즐거움을 가지고 선뜻 나서서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는 일에 능률도 오르고 일 자체가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일이 즐거우면 인생은 낙원이고, 일이 마지못해 하는 의무일 때 인생은 지옥이란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닙니다.
 소임을 통해서 우리는 수도생활을 심화시켜야 합니다. 삶의 질을 높여가는 것이 곧 수도생활이며, 현재를 최대한으로 사는 일입니다. 무슨 일이나 수도자는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 해치워야 합니다. 미루면 현재에 구멍이 뚫리고 맙니다.
 토머스 머튼 신부의 <칠층산(七層山)>을 읽고 가장 감명 깊었던 구절은, 트라피스트가 되려는 지원자에게 당부한 원장 신부의 다음과 같은 말입니다.
 “당신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공동체를 더 좋게 할 수도 있고 더 나쁘게 할 수도 있소. 즐겁게 살되 아무렇게나 살지는 마시오.”
 우리들이 깊이 명심해야 할 말씀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여러 수녀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 시절인연에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십시오.<끝>

 

 

‘이기적인 수도자는 진정한 수도자가 아니다.’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이 덕이다.’ ‘수도자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 자이다.’ ‘침묵은 내면의 통로를 열어준다.’라는 말씀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육조 혜능스님도 ‘침묵하라. 그리하면 입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리라.’라는 말씀을 남겼다.

 

난세에 영웅 난다는 금언이 있다. 나는 이 금언을 ‘난세에 참 종교 난다.’로 바꾸어 부르고 싶다. 코로나바이러스 창궐로 국가적인 재난 상황이므로 더 그렇다. 왕조시대 전염병 역사는 참혹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역병이 돌면 마을을 불 지르고 병자들은 깊은 산중에 버려졌다. 그러나 더불어 사는 삶을 공동체의 지고지순한 가치로 여기는 현대사회에선 1급전염병 환자를 국가가 책임지고 돌본다. 작금의 코로나바이러스 형국도 마찬가지다.
천주교와 불교 단체가 방역당국에 협조하여 미사나 법회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은 기쁘고 한 가닥 위안을 준다. 종교가 자기신도 속에서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이기적인 집단일 뿐이다. 사랑과 자비라는 기독교와 불교의 핵심사상에도 벗어난 일이다. 불교최대종단인 조계종에서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한 달 뒤로 미루었다고 하니 흐뭇하다. 부처님이 지금 오신다고 해도 그런 결정을 내리셨을 것이다. 부처님 시대에 살았던 유마거사는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라고 했다.
나는 이런 재앙 속에서도 위대한 우리 민초들 때문에 가슴이 먹먹할 지경이다. 미국, 일본 등 이른바 선진국 국민들의 사재기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우리는 어떤가? 사재기를 부끄러워한다. 염치없는 짓이라고 꺼린다. 슈퍼마다 생필품이 그대로 진열돼 있다. 절대 부족한 마스크가 잠시 불편했고 애를 태웠을 뿐, 콩 한쪽도 나눠먹는 국민성이 발현되고 있다. 전국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대구로 달려갔고, 전남, 광주에서는 맛깔스런 달빛(달구벌-빛고을 준말) 무료도시락을 날마다 경북으로 공급했다. 대구의 환자들을 광주로 불러 치료했다. 퇴원한 대구 가족환자는 광주에서 살고 싶다며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국난 때마다 들풀처럼 산지사방에서 일어났던 의병들의 부활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집단예배로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현실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일부 교회 목사들이 ‘주일예배를 하지 않으면 교회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항변한다는 TV뉴스를 접하고 나니 몹시 우울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종교가 무엇인지 그 존재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공동선(共同善)을 외면한 종교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부침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가 한때 인도에서 소멸한 까닭은 이슬람왕조의 오랜 탄압도 큰 이유였지만 수행자들이 공동체 정신을 멀리한 탓도 작지 않았던 것이다.

 

법정스님께서는 타종교인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었다. 타종교를 거울삼아서 불교의 본질을 깨닫고자 하는 의지에서였다. 스님의 친구 중에는 가톨릭원주교구 장익 주교님이 계셨고, 김수환 추기경님과는 길상사와 명동성당을 오가며 강론과 법문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퀘이커 교도인 함석헌 선생과 강원룡 목사와는 반독재투쟁 전선에 함께 나섰다. 이해인 수녀님은 불일암을 직접 오르셨다. 이처럼 스님은 다른 종교인들과 대화하고 탁마하셨다. 이 글도 대구관구 수도회에서 전교수녀를 위해 일방적으로 하신 법문이 아니라, 기독교와 불교의 공통분모적인 가르침을 찾아보고 종교의 본질과 수도자의 참모습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신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