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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고전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절대고독의 가운데 우뚝 선 자, 그가 곧 수도자다. 언제나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는 자, 그 꽃향기로써 넘치는 자, 그가 곧 수도자다.”
고독과 고립은 다릅니다. 수도자는 고독할 수는 있어도 고립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고립은 공동체와의 단절을 뜻하기 때문이지요. 절대 고독이란, 의지할 곳 없이 외로워서 흔들리는 그런 상태가 아니라 당당한 인간 실존의 모습입니다. 수도자가 가는 길은 홀로 가는 길이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는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는 오묘한 도리를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절대 고독의 한가운데 우뚝 설 때 비로소 하느님과 함께하게 될 것입니다.
불교의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에 수도자는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것임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숲속의 여기저기를 자유롭게 다니듯이
 지혜로운 수도자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
 
 우리는 친구(道伴)를 얻는 행복을 기린다.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대등한 친구와는 가까이 친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친구를 만나지 못할 때는 허물을 짓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

 

 토머스 머튼 신부는 그의<관상기도(觀想祈禱)>에서 말합니다.
 “비록 공동체 안에 살고 있다 할지라도 수도자는 한 은자(隱者)로서 자기 실존의 내적 황무지를 개척해야 한다.”
 이 한 마디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공동체를 떠나 살 수 없는 수도자이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단독자로서 우뚝 서야만 합니다.
 또한 수도자는 언제나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는 자라고 했습니다. 수도자가 살아가는 것은 순간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일입니다. 하루하루 아무런 향상도 없이 매양 그날이 그날이라면 그는 안일과 타성의 늪에 갇혀 죽어가는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수도자는 날마다 새로운 날을 맞아야 합니다. 날마다 창조의 새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루하루가 좋은 날(日日是好日)이 될 수 있습니다.
 순간마다 거듭거듭 태어나는 이 탄생의 과정이 멎을 때 수도원 안에까지도 늙음과 질병과 죽음이 문을 두드리게 됩니다. 진짜 수도자는(이런 말이 허용될 수 있다면) 주님의 품속이라 할지라도 거기 안주하지 말고 날로 새롭게 형성되어야 합니다. 고여 있는 물은 썩게 마련이지요. 살아서 움직임으로써 무한한 잠재력을 일깨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꽃향기로써 넘치는 자가 또한 수도자라 했습니다. 수도자는 자칫 이기적인 인간이 되기 쉽습니다. 절대 고독의 한 가운데 우뚝 서라는 것은 하나의 과정이지 끝은 아닙니다. 꽃이 제대로 피면 그 향기는 저절로 번지게 마련이지요. 향기 없는 꽃은 조화와 마찬가지로 가짜입니다. 수도자는 그가 쌓은 수덕(修德)으로 이웃을 감쌀 수 있어야 합니다. 지혜는 개인적인 영역이지만 덕은 이웃으로 향하는 손길입니다.
 이웃을 근원적으로 감화할 수 있는 것은 지혜가 아니고 덕이지요. 덕화란 말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랑의 구체적인 작용이 곧 덕입니다. 자기 한 몸 지키고 다스리는 일은 수도자가 아니어도 할 수 있습니다. 수도자의 이상은 완덕(完德)에 있습니다. 완덕의 길은 끝없는 자기희생의 길이기도 합니다.
 이기적인 수도자는 진정한 수도자일 수 없습니다. 수도자는 그가 일상에 쌓은 덕의 향기로써 넘쳐야 합니다. 불교 수도자의 발원문(發願文)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내 이름을 듣는 이 삼도고(三途苦, 지옥. 아귀. 축생의 괴로움)를 면하고, 내 모습을 보는 이 해탈하여지이다.’
 말로만 외워서 될 일이 아니고 끝없는 수덕을 통해서 이런 발원은 성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속의 집에서 나오는 것을 흔히 출가라고 하는데, 그 세속의 집이란 단순한 주거(住居)가 아니라 온갖 집착과 욕망과 갈등의 집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출가는 소극적인 도피가 아니고 적극적인 추구입니다. 따라서 출가 수도자의 삶도 적극적인 추구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수도자는 현재를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롱펠로의 <인생찬가>에 다음 구절이 나옵니다.

 

 아무리 즐거워도 미래를 믿지 말고
 죽은 과거로 하여금 그 시체를 매장케 하라
 행동하라, 행동하라, 살아 있는 이 현재에
 마음속엔 사랑을 품고 머리 위엔 하느님을 모시고....

 

 대장경 중에서 <일야현자경(一夜賢者經)>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따라가지 말고
 미래를 기대하지 말라
 한번 지나가버린 것은 버려진 것
 또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현재의 일을
 이모저모로 자세히 살펴
 흔들리거나 움직임 없이
 그것을 잘 알고 익히라.

 

 오늘 할 일을 부지런히 행하라
 누가 내일의 죽음을 알 수 있으랴
 진실로 저 염라왕의 무리들과
 싸움이 없는 날 없거늘
 밤낮으로 게으름을 모르고
 이같이 부지런히 정진하는 사람
 그를 일러 참으로 일야현자(一夜賢者)
 고요한 분 성자라 한다.

 

 지나가버린 것을 슬퍼하지 않고
 오지 않은 것을 동경하지 않으며
 현재에 충실히 살고 있을 때
 그 안색은 생기에 넘쳐 맑아진다.
 오지 않은 것을 탐내어 구하고
 지나간 과거사를 슬퍼할 때
 어리석은 사람은 그 때문에
 꺾인 갈대처럼 시든다.

 

 이 모두 현재에 충실하여 마음껏 존재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동서고금을 가릴 것 없이 인류사상 사람답게 살다가 간 선각자들은 하나같이 현재를 마음껏 살다가 간 사람들입니다.<계속>

 

 
갈무리 생각

 

‘이기적인 수도자는 진정한 수도자가 아니다.’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이 덕이다.’ ‘수도자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 자이다.’ ‘침묵은 내면의 통로를 열어준다.’라는 말씀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육조 혜능스님도 ‘침묵하라. 그리하면 입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리라.’라는 말씀을 남겼다.

 

난세에 영웅 난다는 금언이 있다. 나는 이 금언을 ‘난세에 참 종교 난다.’로 바꾸어 부르고 싶다. 코로나바이러스 창궐로 국가적인 재난 상황이므로 더 그렇다. 왕조시대 전염병 역사는 참혹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역병이 돌면 마을을 불 지르고 병자들은 깊은 산중에 버려졌다. 그러나 더불어 사는 삶을 공동체의 지고지순한 가치로 여기는 현대사회에선  1급전염병 환자를 국가가 책임지고 돌본다. 작금의 코로나바이러스 형국도 마찬가지다.
천주교와 불교 단체가 방역당국에 협조하여 미사나 법회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은 기쁘고 한 가닥 위안을 준다. 종교가 자기신도 속에서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이기적인 집단일 뿐이다. 사랑과 자비라는 기독교와 불교의 핵심사상에도 벗어난 일이다. 불교최대종단인 조계종에서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한 달 뒤로 미루었다고 하니 흐뭇하다. 부처님이 지금 오신다고 해도 그런 결정을 내리셨을 것이다. 부처님 시대에 살았던 유마거사는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라고 했다.
나는 이런 재앙 속에서도 위대한 우리 민초들 때문에 가슴이 먹먹할 지경이다. 미국, 일본 등 이른바 선진국 국민들의 사재기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우리는 어떤가? 사재기를 부끄러워한다. 염치없는 짓이라고 꺼린다. 슈퍼마다 생필품이 그대로 진열돼 있다. 절대 부족한 마스크가 잠시 불편했고 애를 태웠을 뿐, 콩 한쪽도 나눠먹는 국민성이 발현되고 있다. 전국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대구로 달려갔고, 전남, 광주에서는 맛깔스런 달빛(달구벌-빛고을 준말) 무료도시락을 날마다 경북으로 공급했다. 대구의 환자들을 광주로 불러 치료했다. 퇴원한 대구 가족환자는 광주에서 살고 싶다며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국난 때마다 들풀처럼 산지사방에서 일어났던 의병들의 부활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집단예배로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현실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일부 교회 목사들이 ‘주일예배를 하지 않으면 교회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항변한다는 TV뉴스를 접하고 나니 몹시 우울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종교가 무엇인지 그 존재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공동선(共同善)을 외면한 종교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부침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가 한때 인도에서 소멸한 까닭은 이슬람왕조의 오랜 탄압도 큰 이유였지만 수행자들이 공동체 정신을 멀리한 탓도 작지 않았던 것이다.

 

법정스님께서는 타종교인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었다. 타종교를 거울삼아서 불교의 본질을 깨닫고자 하는 의지에서였다. 스님의 친구 중에는 가톨릭원주교구 장익 주교님이 계셨고, 김수환 추기경님과는 길상사와 명동성당을 오가며 강론과 법문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퀘이커 교도인 함석헌 선생과 강원룡 목사와는 반독재투쟁 전선에 함께 나섰다. 이해인 수녀님은 불일암을 직접 오르셨다. 이처럼 스님은 다른 종교인들과 대화하고 탁마하셨다. 이 글도 대구관구 수도회에서 전교수녀를 위해 일방적으로 하신 법문이 아니라, 기독교와 불교의 공통분모적인 가르침을 찾아보고 종교의 본질과 수도자의 참모습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신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