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여인과 함께
천장사(天藏寺)의 겨울 저녁.
문둥이 거지 여인이 밥을 얻으러 왔다.
미친 바람은 제 갈 곳을 모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천지사방으로 흩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두 눈만 빠꼼한 여인, 온몸 전체는 피고름 범벅이었다. 여인은 부엌에 가서 동냥 통을 내밀었다. 악취가 사람들의 코를 틀어막았다. 당연히 부엌문이 닫혔다.
“어서 꺼져!”
그러나 거지 여인은 부엌문을 붙잡고 울고 있었다. 생사의 갈림길, 그 거지 여인의 입장에서 보면 삶의 마지막 끈이었다. 생살을 그대로 얼려버릴 것 같은 추위, 게다가 먹을 것마저 없다면, 여인은 끝끝내 한번 잡은 부엌문을 놓지 않았다. 사람들이 부엌문을 흔들었다.
“안 가면 죽여!”
“으으!”
ⓒ장명확
그 소란에 경허 스님은 무서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처절한 몸부림,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여인의 외마디 신음소리를 듣고 경허 스님은 조용히 손짓을 하였다.
그 거지 여인은 처음에는 경허 스님이 부르는 손짓을 감지하지 못하고 여전히 부엌문을 붙잡고 울부짖고 있었다. 아무도 자신에게 손짓을 할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건 미친 사람일 뿐이었다. 세상천지에 자신에게 단 한 번만이라도 따뜻한 몸짓을 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녀 자신이 누구보다도 먼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경허 스님의 그윽한 눈빛과 마주친 여인은 황급히 달려갔다. 달랐던 것이다. 이제까지 사람들의 눈짓이 아니었다. 손짓이 아니었다. 얼굴에는 아무 표정이 없었지만 가슴에 감춰둔 불덩어리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저 사람이라면 틀림없다. 한 덩어리의 밥을 얻어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허 스님은 피고름으로 만신창이가 된 그녀를 자신의 방으로 대리고 갔다. 뜨거운 눈물이 고름으로 얽은 여인의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것은 아무도 건널 수 없는 강이었다. 누구도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그렇지만 경허 스님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묵묵부답..... 그리고 같은 밥상에서, 같은 이부자리에서 살을 맞댔다. 이야기는 필요 없었다.
여인에게는 꿈같은 세월이 흘렀다. 몇몇 대중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는 경허 스님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는 태연하게 거지 여인과 즐거운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육신은 차츰 병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그의 손발에, 작은 염증들이 점점 온몸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후, 사형 태허사와 몇 스님들이 경허 스님을 설득했다. 여인을 떼어버리지 않는다면 강제로라도 내쫓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별이 준비되어 있었다.
“스님, 저세상에 가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거지 여인이 떠나면서 경허 스님에게 한 짧은 말이었다. 거지 여인은 이제 거지가 아니었다. 내일 당장 눈 오는 산허리쯤 어디에서 얼어 죽는다고 해도, 아니면 비 내리는 저잣거리 어디쯤에서 굶주림으로 목숨을 마친다고 해도, 그녀는 더 이상 거지가 아니었다. 육신이 무너진 어떠한 순간에도 자신이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인간임을, 인간임을...... 그녀는 한 인간으로서의 자각을 비로소 하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