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봉산 유원지 입구에서 깎아질러 세운 듯한 양쪽 산벽 사이로 난 계곡길을 따라 약 1시간 정도 걸어가면 망월사에 이르게 된다. 중간중간에 있는 기암괴석, 옥같이 맑은 물, 눈비가 내리지 않아 일부 마른 계곡이 있기는 하지만 졸졸졸 흘러내리는 그 물소리만 들어도 이곳은 분명 속세가 아니다.

산새도 날러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긴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 온 뿐.
산그늘 길게 느리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생은 오직 갈사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박두진의 명시 '도봉(道峰)'이 없어도 도봉산은 명산이다. 그러나 언제 봐도 가슴 먹먹한 산이다. 전례 없는 눈 없는 겨울. 도봉산엔 예상대로 사람이 없었다.
 도봉. 도봉산. 망월사 전철역 이름엔 줄줄이 온통 도봉산 일색이다. 반갑기는 하지만 도봉산 근처에 도심의 냄새가 물씬한 전철역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어쩐지 거북스럽다.

 

 

 그러나 천하의 명산인 도봉에 오면 울고 싶어진다. 박두진이 읊은 도봉의 정취를 산 중턱까지 자리 잡은 술집들이 모두 앗아가버렸기 때문이다. 어쨌든 원도봉산 유원지 입구에서 깎아질러 세운 듯한 양쪽 산벽 사이로 난 계곡길을 따라 약 1시간 정도 걸어가면 망월사에 이르게 된다. 
 산을 찾는 마음, 절을 찾아가는 마음, 그것이 공부(?)를 찾아가는 수도자의 마음이 아닐까. 왜 굳이 평탄한 저잣거리를 두고 이런 험준한 곳에 거처를 마련하였을까, 그것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고 해도 지금같이 번잡하지 않았던 그 시대에.
 그러나 이런 산중에 오면 산을 찾았던 그 마음들을 조금은 혜량할 수 있다. 저 바위 때문에, 저 비틀어진 나무 하나 때문에, 산맥을 넘어가는 저 구름 하나 때문에‥‥‥.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413번지.
 동녘으로는 불암산, 수락산이 우뚝 눈앞에 멈추어 서고, 수백수천의 풍상을 아로새긴 노송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천년 고찰 망월사. 오른쪽으로는 서울의 상계동이고, 왼쪽으로 굽어보이는 곳은 의정부다.
 서울의 명산대찰이 거의 그러하듯 이곳 또한 조선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은원의 관계를 지니고 있다. 의정부라는 관변적인 지명 또한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 후, 나름대로 나라의 기틀이 잡혀가자 태조는 계비 강 씨의 소생인 방석을 왕세자로 봉하게 되었다. 이에 방원을 비롯한 왕자들의 불만은 대단했다. 한편 방석의 편에도 정도전이라는 당대 거물의 지지세력이 있어 그 위세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정도전이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우는데 누구보다도 공이 많았던 방원의 세력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방원은 자신이 왕이 되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정도전을 죽이고 방석을 왕세자 자리에서 몰아냈다.
 급기야 방석을 끔찍이도 아끼던 이성계는 왕위를 장자인 정종에게 맡기고 함흥의 옛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라고, 정작 방석만 몰아내면 자신에게 왕위가 떨어질 줄 알았던 방원은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병약했던 형 정종이 죽고 임의로 왕위를 차지한 방원은 문안사를 보내어 상왕인 이성계를 간곡히 청했다. 자신이 왕이라는 요식행위를 치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함흥으로 간 문안사는 이성계의 화살에 모두 죽고 말았다. 후에 함흥차사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된 것이었다.

 

 

 세월은 어떠한 순간에도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는 묘약. 하늘 끝까지 솟았던 이성계의 분노도 자꾸만 희어지는 머리칼은 어쩔 수 없었다. 젊었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던 불교에 태종 2년 12월, 이성계는 함흥을 떠나 지금의 의정부까지 돌아왔다. 아마도 자신이 마련한 도읍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태종이 버티고 있는 서울로 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운명적인 만남, 부자지간이라고는 하지만 한사람은 왕이요, 또 한사람은 그 왕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어쩔 수 없이 넘겨준 늙은이‥‥더구나 두 사람은 권력 획득을 위해 온 나라에 피바람을 불러왔던 장본인들‥‥‥.
 "인연은 인연이다." "황공하옵니다."
 태종은 태조 이성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곳에는 좋은 산 좋은 절이 많지."
 "한양으로 오시지요." "이곳까지만…."
 어쩌면 이성계는 자신의 늙은 목숨이 두려웠는지 모른다. 아무리 자신이 낳고 기른 아들이라고 하지만 정권 유지를 위해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인물이라는 것을 이성계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나 대내적으로나 정통적인 왕위 계승이라는 명분을 얻고 나면… 그다음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전하께오서는 그 옛날 이곳에서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으셨습니까?"
 이성계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산에 올라 서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러시면 이곳에 궁궐을 마련해드리겠습니다. "
 그러나 이성계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탄식하였다.
 "사람 인연이나 땅 인연이나 그렇게 마음대로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야."
 태종은 기뻐했다. 아버지인 태조가 서울로 오지 않는다는 확고한 생각을 확인한 까닭이었다. 자신이 마치 아버지를 함흥으로 내쫓은 것으로 알고 있는 일반 백성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되돌려놓기 위해 그는 애쓰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아버지가 서울로 온다면 모든 백관 대신들의 동향이 자신보다 아버지에게 쏠릴 것은 뻔한 이치, 적당한 거리에 어느 정도의 거처만 마련해서 대접한다면 명분과 실리를 완전무결하게 취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국으로부터 아직 정식 책봉을 받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아버지와의 관계를 하루빨리 정리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태종은 흐뭇하게 웃었다. 부왕인 태조를 맞으려고 교외장막을 설치했다. 태종은 권력 위해 형제 권속들까지 무자비하게 처단한 인물이었지만 그를 떠받드는 권신들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하륜(河崙)이었다.
 "전하, 상왕마마께오서 노여움이 풀렸다고는 하나 무슨 변이 있을지 모르니 기둥을 큰 나무로 쓰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아무리 늙었다고는 아버지인 상왕 이성계는 절세의 명궁, 방원은 하륜의 청을 즉시에 받아들였다. 그래서 큰 아름드리 기둥을 여러 개 세웠다. 드디어 태조와 태종이 정식으로 만나게 되었다. 태종은 어느새 면복 차림이었다. 태조는 이를 보고 화가 치밀어 화살을 당겼다. 태종이 황황히 기둥 뒤에 숨으니 화살은 다행히 기둥에 꽂혔다. 태조는 이 모양을 보고 화가 풀렸던지 옥쇄를 땅에 내던졌다.
 "옜다. 네가 욕심내는 것이 이것이니 가져가거라!"
 태종이 이를 받고 잔치를 열려고 할 때였다. 또 하륜이 귓속말로 태종에게 아뢰었다.
 "전하, 상왕마마께서는 섣불리 거동하시는 분이 아니옵니다. 오늘 이렇게 쉽게 국보를 하사하시는 걸 보면. 아무래도 친히 잔을 올리시지 말고 중관을 해서 올리시는 것이 가한 줄로 아뢰옵니다"
 태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또한 태종이 잘 알고 있었다. 태종은 하륜의 말을 따라 중관을 통해서 진작케 하니, 태조는 잔을 받아 마신 후 소매 속에서 철의주를 꺼내 보이며 태종이 가까이 오면 즉시에 내려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이곳에서 달을 낚겠다."
그런 후 태조는 지금의 양주군 진접면 내각리의 대궐터에서 풍양궁을 짓고 살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태조가 죽기까지 각 대신들은 지금의 의정부까지 와서 정무를 의논하고 결재를 받아 갔으므로 이곳을 의정부라고 부르게 되었다.
 태조는 이곳 의정부에 머무는 동안 틈만 나면 절을 찾았다.
 망월사는 물론이고 회룡사, 천축사 등등‥‥ 그리고는 서울을 바라보며 눈물지었다고 한다.

 

 

 

 망월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한 사찰이다. 그러니까 망월사는 태조 이성계와 태종 방원의 이런 유치한 뒷모습을 발아래 잠잠히 굽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망월사란 대웅전 동쪽에 마치 토끼 모양을 한 바위가 있고, 남쪽에는 달 모양을 한 월봉이 있어 토끼가 월봉을 바라보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고, 또는 선덕여왕의 명을 받아 해호(海浩) 선사가 국태민안과 삼국통일을 염원하는 도량으로 흙을 빚기  시작하여 신라의 서울인 월성(月城:경주)을 바라보면서 신라 왕실의 융성을 기원하였다고 해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망월이라는 이름이 어찌 그런 세속적인 의미만 있으랴. 망월사 경내에 있는 월조대(月釣臺)가 그러하듯 달을 낚는 선지임이 분명하다.
 "월조대란 달을 낚는다는 뜻이겠지요?"
경내에서 만난 종무 스님인 원산 스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그는 빙긋이 웃으면서 말을 받는다.
 "꼭 그런 뜻만은 아니겠지요."그리고는 말문을 닫는다. 글자 그대로 세속적으로만 해석하는 필자의 속 깊지 못함을 경책함이다. 그래서 망월사란 이름이 가지는 속내 의미를 곰곰 되새기게 되었다.
 깨끗하게 정비된 모습이 여간 보기 좋은 것이 아니다. 아래로 위로 산자락 안에 포옥 안긴 건물들 사이에서 있는 잘 자란 수목들, 정말 달을 낚기로는 이곳보다 좋은 곳이 없을 것 같은 경관.
 어쨌거나 세속적으로 망월사는 도봉에서는 가장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그것을 뒷받침하듯 망월 10경이 아직도 전해져 내려온다.

 

 진달래 활짝 피어 봄이 왔는데 도리 천 감로수가 바로 예일세.
 들국화 붉은 단풍 어제이건만.
 오늘은 온 세상 흰 눈이로다.
 서산에 지는 해 불바다인데 동대에 올라서니 어느새 만월이구나.
 짙은 안개 휘감은 섬 위로 타고 구름 걷히길 기다리노라면
 멀리서 돛단배가 나를 부르리.
 골골마다 선녀가 놀고 간 듯 바위마다 부처이니 나도 부처인가.

 

 서울 근교의 어느 절보다 깨끗한 절, 꼭 가정집 같았던 사찰에 신물이 나있었던 터라 이곳에 상주하고 있는 스님들의 일상을 훔쳐보고 싶은 욕심으로 이곳저곳을 서성거리다가 만난 스님이 원산 스님이었다. 비교적 젊은 스님인 원산 스님은 차근차근 망월사의 이곳저곳을 소개해주었다. 물론 조악하기는 하지만 언젠가 만들었다는 망월사지도 어렵게 구해주었다. 취재를 위해 들른 여러 사찰 중에 가장 융숭한 대접을 받은 셈이다. 티검부리 하나 없는 경내의 정갈함이 바로 이런 스님들로 비롯된 것임을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
 가지런히 놓인 신발들, 열린 방문으로 들여다본 방안도 소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옷 한가지와 책 몇 권, 올라오면서 일어났던 피로가 일시에 저만치로 몰려갔다.
 망월사, 이곳에는 예부터 수많은 운수납자가 거쳐 갔다. 고려시대의 나옹, 혜거, 영소대사, 조선시대의 천봉, 영월, 도암, 그리고 근대 도인으로 추앙받는 만공, 한암, 오성월 등 헤아릴 수 없는 선인(禪人)들이 이곳에서 달을 낚았던 것이다.

 

 그러나 흐뭇하게 망월사를 내려오는 길에 뜻밖의 봉변을 당했다. 30년 불자라고 밝힌 세·사람의 거사가 필자를 불러 세웠던 것이다.
 "절에 무슨 일로 다녀오시오?"
 "절을 만나러요."
 "절을 만나요?"
 반농담으로 받아주자 홍씨라는 거사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 산에 절은 없어요. 어디 가나 절다운 정취는 없어요. 불자 중에 누가 산을 부수고 새로 건물 짓길 원한다고…스님네들이 공부하기가 좁아서 조그맣게 선실을 짓는 것은 좋아요. 그런데 이곳저곳 불사를 한다고 절을 죽이고 있어요. 그것도 천년이 넘은 사찰들을…."
 백번 맞는 말이다.
 60을 바라본다는 그들 세 사람은 자기들의 이야기를 꼭 써달라고 몇 번을 당부하였다.
 "건물 세울 돈이 있으면 사회에 환원을 하라고 하세요. 요즈음엔 부처님이 한자리에 있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신다니까요. 새로운 건물...... 목사나 중이나 꼭 한가지지요. 옳은 목사님이나 스님들이 있기는 하지만 증축 불사하는 꼴을 보면 공부하는 스님들은 없는 것 같아요."
 그들은 지리산 화엄사, 쌍계사로 떠난다고 했다. 또다시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요즈음 절을 찾았다가 내려가는 마음은 늘 그렇다. 가슴속에 있는 온갖 속진을 털어버리기는커녕 오히려 올 때마다 더 다른 많은 생각들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과연 누대로 이어진 저 많은 문화유산을 차츰차츰 절다운 향기를 잃어가는 수많은 대소사찰의 흉측한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감회가 정녕 필자 혼자만의 심사는 아닐진저.
 하산길은 바람이 거셌다. 봄이 오고 있다. 그러나 생각은 한 가지였다. 정말로 망월사에서 달을 보고 달을 낚는 선인들이 많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