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자가하의 거리에서 붓다의 진리를 전파하고 진리를 배우는 비구들의 수가 나날이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붓다가 발우와 가사를 들고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조용히 대나무 동산에서 나와 홀로 북쪽으로 향해 걸어갔다. 라자가하를 벗어나 날란다로 향하는 큰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간 붓다는 길가의 한 커다란 니그로다 나무를 바라보더니, 그곳 그늘 아래로 가 자리를 펴고 앉았다. 평소 눈에 띠는 행동이나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붓다의 이날 행보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붓다는 수많은 사람들과 짐을 실은 수레가 오가는 길목에서, 보란 듯이 눈부신 빛을 발하며 선정에 들어있었다. 한낮을 달구던 태양이 차츰 서쪽으로 기울고 대지가 석양으로 물들 무렵이었다. 한 나그네가 다가와 니그로다 나무 아래 앉아 있는 붓다의 두 발아래 예배하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이시여. 당신은 저의 스승이십니다.”

 

이 나그네는 마가다 국 마하띳따(Mahatittha) 마을에 사는 부유한 바라문 까삘라(Kapila)와 그의 아내 수마나데위(Sumanaddevi)의 아들 삡빨리(Pippali)였다. 여덟 살 때부터 네 가지 베다를 비롯하여 다양한 학문에 통달하였던 삡빨리는 일찍이 출가에 뜻을 둔 청년이었다. 하지만 외동아들 하나만 바라보는 부모님을 두고 차마 집을 떠날 수가 없는 처지였다. 그가 성장했을 때 그의 부모들은 아들이 혼인하기를 원했으나 출가를 염두에 두었던 그는 결혼에도 뜻이 없었다. 부모의 강력한 권유를 피하기 위해 그는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여인의 조각을 만들어 이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면 혼인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의 부모는 사방으로 수소문을 한 끝에 싸갈라(Sāgala) 시에서 삡빨리가 만든 여인 조각과 거의 똑같이 생긴 여인 밧다까삘라니(Bhaddā Kāpilāni)를 찾아냈다. 밧다까삘라니는 꼬시아 족 장자의 딸이었는데, 그녀 역시 삡빨리와 마찬가지로 어릴 적부터 출가에 뜻을 두고 있었다. 삡빨리는 스무 살 되던 해, 약속대로 여인조각과 똑같이 생긴 밧다까삘라니와 결혼을 권하는 부모님의 성화에 떠밀려 결혼을 하기로 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제가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는 출가를 할 생각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 두 사람은 식이 끝난 후 서로가 마음속에 지닌 출가의 뜻을 확인했다. 두 사람은 혼인을 해 부부가 되었지만 앞으로 한 이불 속에서 잠자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첫날밤부터 둘 사이에 꽃으로 줄을 만들어 놓고 잠에 들었다. 그들은 그렇게 여러 해 동안 다정한 부부로 살았지만, 한 번도 둘 사이의 꽃 줄이 헝클어지는 일은 없었다.
어느 날 삡빨리는 들로 나아가 농부들이 밭갈이 하는 장면을 지켜보다가 흙 속에서 기어 나오는 벌레들을 새들이 잽싸게 날아와 쪼아 먹는 장면을 보고, 살아있는 존재들은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더욱 출가의 마음을 내었다. 같은 시간 밧다까삘라니 역시 까마귀가 작은 벌레를 잡아먹는 장면과 이 순간 흙 밖으로 튀어나온 곡식의 씨앗이 말라죽는 것을 목격하고는 동물은 물론 식물까지도 결국 생명을 잃게 된다는 것을 사실을 깨닫고 출가의 마음을 더욱 굳건히 했다. 두 사람은 이렇게 출가의 마음을 다지며 세속에 살지만 수행자의 삶을 살아갔다. 
세월이 흘러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자, 그들은 세속에서의 생활을 마치 불난 초가집 태우듯이 신속하게 정리했다. 약속이나 한 듯 서로의 머리를 깎아 준 두 사람은 궁궐처럼 커다란 집과 엄청나게 많은 재산을 하인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흙으로 빚은 발우 하나만 들고서 조용히 집을 나섰다. 소유하고 있던 방대한 토지는 고르게 나누어 주었으며, 하인의 신분까지 해방시켜 준 자애로운 주인을 하인들이 몸으로 막아서며 울부짖었지만 두 사람의 얼굴에는 한 점 아쉬운 기색이 없었다. 집에서 나와 한 참을 걷던 두 사람이 갈림길에 접어든 순간 걸음을 멈추고 마주 보았다.

 

“밧다까삘라니여, 우리는 이제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함께 길을 걷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먼저 길을 고르십시오.” 삡빨리가 말했다.
“마땅히 그리 해야 할 때입니다. 당신은 남자이니 오른쪽 길을 가십시오. 저는 여자이니 왼쪽 길로 가겠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삡빨리는 멀어지는 아내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부부의 연을 맺었을 정도로 지중한 인연인 그녀가 부디 훌륭한 스승을 만나 궁극의 목표에 도달할 것을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그는 그런 뒤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완전한 지혜를 가진 성자를 꼭 만날 것이다. 청정한 삶을 반드시 성취하고야 말 것이다.’
삡빨리는 발길을 돌렸다. 그가 향한 쪽은 라자가하로 가는 길이었다. 날란다를 지나 한참을 더 갔을 때였다. 저만치 길가의 나무 아래에 한 수행자가 광채를 내며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무는 햇살에 온몸이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고, 얼굴에는 평온함이 가득했다.
‘저분이시다! 저분이 나의 스승이시다.’
오랜 세월 마음속에 그리던 성자를 삡빨리는 한 눈에 알아보았다. 그는 조심스레 다가가 연꽃 같이 고결한 모습을 한 성자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렸다. 한 마디 대화도 나누지 않았지만 그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몸과 마음을 한껏 낮추어 오체투지를 한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이시여, 당신의 저의 스승이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이시여, 당신은 저의 스승이십니다. 이제부터 저는 당신의 제자입니다.”

 

이때 붓다는 지그시 두 눈을 뜨고 빙그레 미소 지으며 반가운 손짓을 하셨다.

 

“가까이 오라. 그대를 기다렸다.”

 

삡빨리는 가슴 깊은 곳에서 솟는 환희를 주체할 수 없었다. 그는 거듭 절하며 말했다.

 

“저는 까삘라와 수마나데위의 아들, 까싸빠 종족 출신인 삡빨리입니다. 당신은 저의 스승이십니다. 저는 당신의 제자입니다. 당신은 진정 저의 스승이십니다. 저는 영원한 당신의 제자입니다.”

 

붓다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는 척하거나 본 척하는 거짓된 스승이 그대처럼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예배를 받는다면 그의 머리는 일곱 조각으로 깨어질 것이다. 나는 모르면서 아는 척하거나 보지 못했으면서 본 척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아라, 그대의 예배를 받고도 터럭 하나조차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대로 알고 사실대로 보았기에 알고 본다고 말하는 나는 그대의 예배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렇다. 나는 그대의 스승이고, 그대는 나의 제자다. 내가 유산을 주리라.”

 

붓다는 삡빨리를 까싸빠라고 불렀다. 종족의 성을 따 이름을 정한 것이었다. 붓다는 까싸빠에게 훌륭한 가문 태생이 가지기 쉬운 자존심과 교만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도록 일렀다. 아름다운 얼굴과 몸에 대한 자신감과 기쁨을 떨쳐버리기 위해 낱낱의 부위를 하나하나 관찰해 그 실상을 파악하도록 가르쳤다. 붓다는 일주일 동안 식사와 잠자리를 함께 하며 오직 까싸빠를 위해 법을 설했다.

 

“까싸빠, 그대는 신분의 우월함을 버리고 선배와 후배와 동료들 사이에서 항상 신중함을 보여야 한다. 까싸빠, 그대는 식견의 우월함을 떨쳐버리고 어떤 법을 듣건 귀를 기울이고 마음에 새기며 깊이 사유해야 한다. 까싸빠, 그대는 탁월한 재능을 지닌데 대한 자만심을 버리고 항상 게으르지 말며 즐거운 마음으로 부지런히 수행해야 한다.”

 

비구가 된지 팔 일째 되는 날, 까싸빠는 모든 번뇌와 집착에서 벗어나 아라한이 되었다. 마하까싸빠의 탄생이었다. 이 모두 붓다의 까싸빠에 대한 정성어린 가르침에 힘입은 것이었다.
두 아라한은 함께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 동산으로 향했다. 스승과 제자는 따가운 햇살을 피하고 잠시 휴식도 취할 겸 숲으로 들어갔다. 까싸빠는 재빨리 가사를 벗어 네 겹으로 접은 다음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에 깔았다.

 

“세존이시여, 이곳에 앉으십시오.”

 

미소를 지어보인 붓다가 까싸빠가 만들어놓은 자리에 앉았다. 붓다는 가사의 끝자락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대의 가사가 참 부드럽구나.”

 

까싸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합장하고 말했다.

 

“이 가사를 세존께 바치고 싶습니다. 받아주십시오.”

 

“그대는 어찌하려고?”
“스승께서 입고 계신 가사를 제게 주십시오.”

 

붓다는 웃음을 보이며 당신의 가사를 벗어 까싸빠에게 건넸다. 그 가사는 묘지에 버려진 헝겊을 기워 만든 분소의였다. 까싸빠의 출가는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후 3년째의 일이었다. 이후 까싸빠는 우루벨라 까싸빠, 나디 까싸빠, 가야 까싸빠 등 까싸빠 3형제와 구별하기 위해 마하까싸빠로 불렸다.
마하까싸빠는 언제나 의식주에 대한 탐착을 누르고 간소한 생활규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수행자로 큰 존경을 받았다. 그의 철저한 수행은 수많은 비구들로부터 경외하는 마음을 일으킬 정도로 엄격했다. 그는 그를 따르는 비구들에게 두타의 행을 하도록 늘 견지하도록 이끌었다. 많은 사람들이 따르거나, 재가자의 공양 요청이 잇따르거나, 공경을 받는 것을 경계하라며 이렇게 가르쳤다. 

 

군중의 환대를 받아 유행하지 말라.
혼란스러워 삼매에 들기 어렵다. 
여러 사람들의 호의는 괴로움이라고 보고
군중이 모인 것에 기뻐하지 말라.

 

재가의 가정에 자주 드나들지 말라.
혼란스러워 삼매에 들기 어렵다.
탐욕을 일으켜 맛에 탐닉한다면,
행복을 가져오는 의취를 버리는 것이다.

 

가정에서의 예배와 공양이 있지만,
그것을 진흙수렁이라고 알아야 한다.
날카로운 화살은 뽑기 어렵고
공경 받는 것은 악인이 버리기 어렵다.

 

 

붓다가 웰루와나(대나무 숲) 동산에 머물던 어느 날 아침, 라자가하에 사는 독실한 재가자 마하셋티 까란따 장자가 동산을 방문했다. 당시 웰루와나 동산에는 방사가 없었으므로 비구들은 빈터나 나무 아래, 동굴 숲, 혹은 짚 덤불 위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는 그런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았고 수행자를 만나면 저절로 머리를 숙였다. 그 순간 그의 뇌리에 이 수행자들에게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방사를 제공한다면 수행에 큰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그는 동산 여기저기에서 수행하는 비구들에게 물었다.

 

“제가 만약 이곳에 방사를 지어드린다면 어떻겠습니까?”
“마하셋티 까란따여, 세존께서는 아직 그러한 일을 허락하신 일이 없습니다.” 비구들이 말했다.
“그렇다면 허락 여부를 한번 여쭈어 봐주시겠습니까?” 마하셋티 까란따가 제안했다.

 

비구들이 붓다에게 마하셋티 까란따의 제안을 전하니 붓다는 마하셋티 까란따를 불러 그의 근기에 맞는 법문을 설한 뒤, 일정한 제한구역 내에서 다섯 종류의 방사를 짓도록 허락했다. 마하셋티 까란따는 크게 기뻐하며 즉시 비구들이 머물 방사를 짓기 시작했다. 마하셋티 까란따는 또 방사가 모여 있는 곳 인근에 아름다운 연못을 만들어 방사와 함께 기증하기로 했다.
오래지 않아 60채의 방사와 연못이 만들어 졌다. 모든 공사가 마무리되었을 때 마하셋티 까란따가 붓다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여러 채의 방사와 연못을 완공했습니다. 내일이 준공을 하는 날이니 부디 저의 초대에 응해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웰루와나 수도원, 즉 죽림정사가 성립되었다. 붓다의 상가가 성립한 이후 최초의 승원이 완성된 것이다. 이후 붓다는 이곳에서 오래 머물며 설법했다. 죽림정사가 지어진 것은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뒤 3년째의 일이었다.

 

 

이 시기에 코살라 국 사왓티 시에 사는 거부 수닷따가 라자가하를 방문했다. 그는 ‘아나타삔디까’, 즉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의 부양자’라는 별칭으로도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는 라자가하의 부자 상인인 처남 집에 머물고자 대문을 두드렸다. 여러 차례 문을 두드렸지만 반응이 없다가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문이 열렸다. 방문할 때마다 즉시 두 팔을 벌리며 달려 나오던 처남이었기에 무언가 급한 일이 있는 듯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여느 때처럼 마중을 나오지도 않고, 무슨 일이 바쁜지 찾아온 얼굴조차 비치지 않았다. 전에 없던 처남의 태도에 수닷따는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 섭섭하기도 했다. 그런데 처남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온 집안사람들이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게 아닌가. 부엌에서는 음식 준비로 분주했고, 하인들은 구석구석 청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그는 사람들 틈에 끼여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처남을 발견하였다. 다가가 보니 그는 손수 전단나무로 짠 평상을 펴고 색동방석을 깔고 있었다.

 

“아니 얼마나 거창한 잔치가 있기에 이렇게 법석을 떠십니까?”
“오, 자네 왔는가?”

 

처남은 매제의 얼굴을 보고도 말로만 반기고 있었다. 멀리서 온 사람을 반기키는커녕 너는 뒷전이라는 표정이었다. 어쩔 수 없이 사왓티에서 온 이 상인, 아나타삔디까는 방석만 들었다 놓았다 하며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처남은 한참만에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털고 돌아섰다.

 

“누가 결혼을 합니까? 아니면 마가다 국의 대왕이라도 초대하신 것입니까?”
“결혼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국왕을 초대한 것도 아닐세.”
“그럼 이렇게 큰 잔치를 준비하는 까닭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내일 붓다와 붓다의 제자들을 공양에 초대했거든.”
“붓다라고요?”
“그래, 붓다. 깨달으신 분!”
“정말, 붓다가 계신가요?”
“허허, 이 사람. 우리가 초대한 분이 붓다시라니까.”

 

완전한 지혜를 깨달으신 분, 번뇌에 물들지 않고 온갖 고뇌를 해결해주시는 성자가 세상에 출현하셨다니! 처남으로부터 붓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붓다께서는 성 밖에 있는 공동묘지 근처의 수행처 ‘차가운 숲’ 시따와나에 머물고 계신다네.”
“지금 찾아뵐 수 있습니까?”
“이 사람, 급한 성미하고는. 날이 저물어 오늘은 늦었네. 내일 공양시간에 우리 집에 오시면 뵙든지, 정 기다리기 힘들면 날이 밝거든 일찌감치 찾아뵙도록 하게나.”

 

달그락 거리는 그릇 소리와 분주한 발걸음도 잦아들고 마당에 마당에는 별빛이 내려앉았다. 눈을 감고 누웠지만 이 사왓티의 상인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붓다가 그의 가슴을 벅차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내가 세상에 출현한 붓다를 뵙게 되다니….’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밤새 여러 차례 방문을 열어 바깥을 바라보았다. 멀리 동쪽 하늘 끝으로 희끗한 기운이 감돌았다. 동이 트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여전히 어둠이 짙게 드리운 새벽녘, 아나타삔디까는 처남의 집을 나섰다.
성문 밖은 아직도 칠흑처럼 어두웠다. 간간이 새어나오던 민가의 불빛마저 끊기자 길은 고사하고 코앞에 무엇이 있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숲에 들어서자 등골이 오싹해지고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발밑에서는 마른 뼈다귀가 나뒹굴고 사방에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시따와나 숲은 야차들이 출몰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밀려드는 두려움에 후들거리는 다리를 옮기지 못하고 있을 때 머리 위에서 날짐승 소리가 들려왔다. 온몸이 섬뜩해졌다. ‘그냥 돌아갈까?’ 하는 마음도 일어났지만 그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안 된다. 내가 붓다를 뵙기 위해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붓다를 만나기 위해 내딛는 이 한 걸음은 보배보다 더 귀하다. 결코 물러나지 않으리라.’ 그는 다시 용기를 내어 발길을 내딛었다. 한 걸음 내딛자 누군가 횃불이라도 비춘 듯 길이 환하게 열렸다. 몇 번이나 머뭇거리며 스스로를 다그치는 사이 시나브로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여명과 함께 맑은 새소리가 숲을 깨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새벽이슬을 밟으며 누군가 저만치서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왓티에서 온 이 상인은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볼 뿐, 한마디 인사말도 건넬 수 없었다. 합장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붓다가 아침 햇살처럼 눈부신 모습으로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수닷따.”

 

처음 보는 사람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을까? 밝게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성자의 모습에 상인은 짐짓 정신을 차렸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합장 예배했다.

 

“저는 사왓티의 상인 수닷따입니다.”
“수닷따, 나는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당신은 적절한 시간에 때맞추어 이곳에 왔습니다.”

 

수닷따는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그는 붓다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불렀다는 것이 무척이나 놀라웠다. 그가 붓다의 발아래 엎드려 절하고 말했다.

 

“세존께서는 평안하십니까? 혹시 세존과 제자들을 위해 제가 도울 일이 있겠습니까?”

 

붓다는 수닷따의 말과 몸짓에서 전혀 다른 생각이 끼지 않은 순수한 선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수닷따! 나는 충분히 편안합니다. 감각적 즐거움을 버리고 존재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은 마음속에 어떤 갈등도 불만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잘 자고 잘 깨어나며, 해야 할 일에 전념하고, 늘 평안하게 지냅니다.”

 

붓다는 수닷따가 무언가 도울 수 있을까 물었을 때, 단순히 물질적인 도움을 생각한 것으로 알고 이렇게 대답했다. 붓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수닷따, 누군가 나와 제자들을 도울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도덕적으로 청렴하게 사는 것입니다. 내가 가르친 팔정도를 실천하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돕는 것이 됩니다. 출가하지 않고 세속에서 가정생활을 계속하는 사람이라도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면서도 얻을 수 있는 네 가지의 행복이 있습니다.”

 

수닷따는 마음속으로 흥분하고 있었다. 그는 고따마 붓다가 사람들로 하여금 가정생활을 버리고 출가하도록 부추기고, 오직 출가수행자들에게만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전혀 다른 인상을 받았다. 그가 붓다에게 물었다.

 

“세존이시여, 재가자가 가정생활을 하면서 성취할 수 있는 네 가지 형태의 행복이란 어떤 것입니까?”
“수닷따, 자신의 노력으로 애써 땀 흘리고, 도덕적인 수단으로 부를 소유하게 된 사람은 자신의 재물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내 자신의 노력과 정당한 수단으로 이것을 획득했다.’ 이 생각으로 그는 커다란 행복과 만족감을 느낍니다. 그가 그렇게 도덕적으로 무결하며 올바른 수단으로 부를 축적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그것을 누리고, 또한 덕스러운 활동에 참가할 때 체험하는 행복이 그 두 번째 것입니다. 부를 바르게 누림으로써 갖는 행복입니다. 세 번째는 빚지지 않는 것으로부터 오는 행복감입니다. ‘누구에게도 빚진 게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빚 없는 행복을 즐깁니다. 마지막으로 재가자는 정갈하고 남들의 비난을 받지 않는 자신의 생활에 대해 ‘몸과 말과 생각으로 벌이는 내 행위에 흠이 없다’고 생각함으로써 커다란 만족과 행복이 옵니다. 이렇게 그는 비난받지 않는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수닷따는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소문으로만 듣던 깨달은 이, 붓다의 가르침과 세상에 대한 안목과 시각이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또한 바로 이러한 붓다의 가르침이 수많은 가족에게 커다란 불행을 안겨준 까닭이라는 것을 알았다. 붓다를 스승으로 모시고 수행에 전념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버렸고, 많은 여인들이 남편을 잃고, 많은 부모들은 그들의 아들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붓다는 세속에서 가정생활을 지속하면서도 인간은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다고 가르침으로써 사람들의 불안감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이것은 실로 중도의 가르침이었다. 행복이 오직 수행생활에만 한정되거나, 출가수행자만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아닌가. 수닷따가 물었다.

 

“세존이시여, 당신의 가르침은 실로 훌륭합니다. 당신의 가르침은 실로 장대한 것입니다. 오늘로부터 저를 붓다께 귀의한 재가의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세존이시여, 부디 코살라 국의 사왓티도 방문하시어 신심 있는 사왓티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의 가르침을 받게 해주십시오.”

 

붓다는 침묵으로 수닷따의 청을 수락했다. 붓다가 자신의 사왓티 방문요청을 거절하지 않은 것으로 안 수닷따는 기쁜 마음에 절을 올리고 물러나 처남의 집으로 돌아갔다.
해가 높이 뜨고 조용하고 온화한 수행자들이 공양을 받기 위해 줄을 지어 처남의 집으로 찾아왔다. 온 집 안 사람들은 예의를 다해 성스러운 이들을 맞이하고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공손히 올렸다. 붓다와 제자들은 두 손으로 발우를 들어 음식을 받고 말없이 앉아 음식을 먹었다. 공양이 끝나고 붓다는 집안사람들에게 법문을 했다. 법문이 끝나자 수닷따가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 예배한 후 붓다에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다시 사왓티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존께서 사왓티에 오시어 머물기에 알맞은 장소를 물색할 비구를 저와 동행하게 해주십시오.”

 

수닷다의 요청을 듣고 좌중을 돌아본 붓다가 말씀하셨다.

 

“사리뿟따여, 이 일을 그대가 맡아주겠는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닷따는 라자가하에서 해야 될 일을 마치고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사왓티로 돌아갔다. 그는 이미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더 이상 벌어들일 필요는 없었다. 그는 도중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간청했다.

 

“벗들이여, 깨달은 이, 붓다께서 이 길로 오실 것이다. 그대들의 뜰을 깨끗이 치우고, 그 분과 제자들에게 공양할 음식을 준비하자!”

 

사왓티에 도착한 그는 사리뿟따와 함께 온 지역을 돌며 붓다와 제자들이 머물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오랜 물색 끝에 그는 제따 왕자가 소유하고 있는 쾌적한 동산을 발견했다. 사리뿟따 존자도 이곳이 붓다와 그 제자들이 머물만한 적당한 장소라는 데 동의했다. 마음속으로 장소를 확정한 수닷따는 제따 왕자를 찾아가 말했다.

 

“왕자님의 동산을 저에게 파십시오.”
“수닷따여, 나는 동산을 팔 생각이 없습니다.”

 

돈이 아쉽지 않는 왕자는 큰 나무들이 즐비하고 맑은 샘과 연못이 시원한 자신의 동산을 팔 이유가 없었다. 왕자가 고개를 돌리자 수닷따는 다급해졌다.

 

“왕자님, 제발 그 동산을 제게 파십시오. 간청 드립니다.”
“팔 생각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값은 원하는 대로 쳐 드리겠습니다. 제발 그 동산을 파십시오.”

 

제따 왕자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코살라 국 최고의 거상이 겨우 동산 하나를 갖지 못해 안달을 부리는 모습이 우습기도 했다. 태자는 장난삼아 한 마디를 더 던졌다.

 

“돈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그 동산을 황금으로 덮기라도 한다면 모를까…”
“그럼, 거래가 성사된 겁니다.”

 

수닷따의 예기치 않은 반응에 걸음을 멈춘 제따 왕자가 반문했다.

 

“거래가 성사되다니요?”
“동산을 황금으로 덮으면 팔겠다고 방금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태자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난 당신에게 동산을 팔 생각이 없으니 썩 물러가시오.”

 

그러나 사왓티의 최고 장사꾼인 수닷따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곧 재판을 신청했고 제따 왕자의 동산을 둘러싼 분쟁은 코살라 국 최고법정의 판결을 기다리게 되었다. 코살라 국의 원로와 현인들이 모여 오랜 상의를 한 끝에 결론이 내려졌다. 말에는 신의가 있어야 하며, 누구든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하므로 태자가 농담이라고 해도 내뱉은 말은 지켜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수닷따는 환호하며 자신의 집에 보관해두었던 황금을 가져다 동산에 깔기 시작했다.
졸지에 원하지 않은 거래를 하게 된 제따 왕자는 몹시 불편한 심기로 수닷따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차들이 종일 황금을 날랐지만 동산은 반의반도 덮이지 않았다. 기우는 석양빛에 쭈그려 앉아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수닷따에게 제따 왕자가 다가섰다.

 

“장자여, 후회가 된다면 지금이라도 말하시오.”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선 수닷따의 얼굴에는 한 점 그늘도 없었다.

 

“저는 후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창고의 금을 꺼내올까 생각한 것입니다.”

 

제따 왕자는 도무지 수닷따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재물을 낭비하면서까지 내 동산을 사려는 까닭이 도대체 무엇이요?”
“붓다와 그 제자들을 위해 정사(精舍)를 세우고자 합니다.”

 

수닷따는 자신이 고민한 것은 머지않아 붓다께서 사왓티에 도착하게 될 텐데, 붓다와 제자들이 사왓티에 도착하기 전에 마땅한 거처가 마련하지 못할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고 말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제따 왕자가 물었다.

 

“수닷따여, 붓다와 붓다의 제자들에게 이렇게까지 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까?”
“왕자님, 저는 이익을 추구하는 장사꾼입니다. 저는 붓다를 만나 어느 거래에서보다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 지금 제가 들이는 밑천은 앞으로 얻을 이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동산에 정사가 건립되면 매일같이 붓다를 뵙고 진리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수닷따의 눈동자는 확신과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다. 자신의 전부를 던질 만큼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제따 왕자는 수닷따의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인부들에게 더 많은 황금을 가져오라고 지시하는 수닷따 장자를 말리면서 제따 왕자가 말했다.

 

“그, 그만 하시오. 이 땅을 드리겠소.”

 

이 문제를 너무 장삿속으로만 생각했다는 가책을 느껴졌던 것이다. 그는 다시 수닷따에게 자신 소유의 땅이 붓다와 그 제자들을 위한 것이라면 거저 내어주겠다고 강조해 말했다. 수닷따는 너무 기뻤다.

 

“왕자님, 그러나 저는 이 동산을 거저 받고 싶지 않습니다. 애초 요구한 액수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수닷따! 그렇다면 제가 말했던 반값으로 그 동산을 가지십시오. 나머지 반은 붓다와 그분의 제자들에 대한 제 선물로 하겠습니다.”

수닷따는 더없이 행복했다. 제따 왕자의 놀라운 관대함으로 수닷따가 붓다와 제자들이 머물 장소를 보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자신의 재산을 기꺼이 나누어 주려는 또 다른 사람, 제따 왕자를 발견한 것도 큰 기쁨이었다. 이것이 바로 붓다께서 말씀하신 재가자가 누릴 수 있는 행복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수닷따는 서둘러 상가 대중을 위한 주거시설을 만들었다. 주택과 회랑, 대문, 대기실, 부엌, 창고, 변소를 짓고 길을 고르며 욕실을 만들었다. 연못을 만들고 그곳에 여러 빛깔의 아름다운 연꽃을 심었다. 정사 주위에는 달콤한 열매와 그늘을 제공할 망고나무도 심었다. 또한 큰 길 가까이에는 시원한 물이 솟는 샘을 여러 개 파서 비구들은 물론 오가는 사람들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배려했다. 제따 왕자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그는 그곳의 이름을 ‘제따 동산(祇園)’이라고 정하고, 아름다운 동산의 입구에 표지를 달았다.
얼마 후, 수닷따와 제따 왕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환영 속에 붓다와 제자들이 코살라 왕국의 수도 사왓티에 도착했다. 당시 꼬살라 국의 왕은 마가다 국의 왕 빔비사라의 매부인 빠세나디였다. 빠세나디 왕과 말리까 왕비는 붓다를 만난 적은 없었지만 붓다가 사왓티에 도착해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빠세나디의 왕비 말리까 부인은 오빠인 마다가 국의 왕 빔비사라를 방문했을 때, 붓다는 마침 다른 곳에 머물고 있었다. 따라서 붓다를 친견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라자가하에 남아 있던 제자들을 통하여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이미 마음속으로부터 개종을 했던 터였다. 사실 빠세나디 왕은 붓다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반면 말리까 부인은 늘 붓다와 제가들의 칭찬을 노래 삼아 부르고 있었다.

 

 

붓다의 제자 가운데 ‘평화롭게 사는 데 제일(無爭第一)’이자 ‘보시 받는 가치가 있는 데 제일(托鉢第一)’로 불리는 쑤부띠가 있었다. 그는 아나타삔디까, 즉 수닷따 장자의 동생으로 수닷따가 기원정사를 지어 승단에 기증하는 날, 붓다의 설법을 듣고 확고한 마음을 내어 출가했다.
쑤부띠는 비구계를 받고 논의의 주제와 명상주제를 깊이 사색하고 숲속에서 수행자의 삶을 살았다. 특히 쑤부띠는 자애명상을 닦고 통찰을 계발하여 거룩한 경지를 얻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하면서 가르침의 안내자인 스승을 따라서 제한을 두지 않고 법을 펼쳤다. 탁발을 하면서 집집마다 집 앞에서 자애의 명상에 들었다가 일어나 탁발음식을 “이와 같은 보시에 많은 공덕이 있기를!”라고 기원하면서 받았다. 그래서 그에게 제공되는 보시는 최상의 공덕을 낳았고, ‘보시 받을 가치가 있는 이 가운데 제일’이 되었다. 따라서 붓다도 ‘나의 제자 수행승 가운데 쑤부띠는 평화롭게 사는 님 가운데 제일’이라고 칭찬했다.
쑤부띠가 스스로 초월의 길을 완성한 경지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그는 스승의 법을 세상에 알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축복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지방을 유행하면서 점차로 마가다 국의 수도 라자가하에 도착했다. 마가다 국의 빔비사라 왕은 붓다 상가의 대장로가 라자가하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예경하고, “존자여, 이곳에서 편히 지내십시오.”라고 말하고, “머무를 처소를 지어드리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사에 바빴던 빔비사라 왕은 그만 쑤부띠 존자에게 한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따라서 쑤부띠는 부득이 야외에서 지내야 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그날부터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았다.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 계속되자 곧 가뭄이 시작됐다. 사람들은 가뭄이 가져다 준 막대한 피해에 괴로워하다가 왕을 찾아가 하소연을 했다. 왕은 왜 하늘에서 비를 내리지 않는가를 조사했지만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빔비사라 왕은 쑤부띠 장로가 머물 처소가 없어 야외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 천신들이 대장로가 비 맞을 것을 염려하여 비를 내리지 않는구나! 내가 큰 실수를 저질렀어.’ 빔비사라 왕은 자신의 경솔함을 자책하면서 서둘러 쑤부띠 존자에게 초암을 지어 올렸다.
쑤부띠 장로는 초암으로 들어가 풀로 엮은 방석을 깔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러자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금씩 비를 내릴 뿐, 하늘은 충분한 비를 내려주지 않았다. 그러자 쑤부띠 장로는 세상의 가뭄에 대한 공포를 제거해주기 위해 자신의 안팎에 위난이 없는 것을 하늘에 시를 지어 읊는 것으로 전했다.

 

나의 초암은 지붕이 이어졌고,
바람이 들이치지 않으니, 쾌적하다.
하늘이여, 비를 내리려거든 내리소서.
나의 마음은 잘 집중되어 해탈되었고,
용맹정진하니,
하늘이여, 비를 내리려거든 내리소서.

 

쑤부띠 존자의 게송이 끝나자 거짓말처럼 하늘에서 많은 양의 비가 쏟아져 내렸고, 곧 가뭄이 해갈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