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없이 내리던 장대비가 그치자 맑은 하늘이 드러났다. 거센 폭우에 자취를 감췄던 작은 생명체들이 스멀스멀 은신처에서 기어 나와 제자리를 찾아갈 무렵, 붓다는 예순 명의 제자 아라한들을 한 자리에 모이도록 했다. 제자들을 바라보는 붓다의 표정에는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붓다가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구들이여, 나는 천상계나 인간계에 속하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대들 역시 천상계와 인간계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비구들은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자비심으로 많은 사람들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신과 인간의 유익함과 행복을 위해 길을 떠나야 한다. 두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가지 말고 혼자서 가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뛰어나고 중간도 뛰어나고 마지막도 뛰어난 법, 조리와 표현이 잘 갖추어진 이 법을 널리 전하라. 원만하고 완전하며 청정한 삶을 널리 알려라. 세상에는 때가 덜 묻은 눈 밝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법을 듣지 못하면 깨닫지 못한다. 그들을 교화하라. 그들은 법을 듣지 못하면 퇴보하겠지만 들으면 분명히 진리를 깨달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나 또한 법을 전하러 우루벨라의 세나니가마로 갈 것이다.”

 

깨달음과 열반을 성취하고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난 궁극의 목적, 해탈을 이루었으니, 이제부터는 대자비심으로 중생들을 위해 법을 펼치라는 명령, 전도명령이었다. 전도명령을 내린 붓다는 곧 이어 제자들에게 전법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말했다.

 

“비구들이여, 법을 펼 때는 남에게 존경 받겠다는 생각을 내어서는 안 된다. 남에게 봉사할 줄 모르고 법에 의해 먹고 살려는 자는 법을 먹는 아귀(餓鬼, 굶주린 귀신)와 다를 바 없다. 또 그대들이 전하는 법을 듣고 사람들은 기뻐할 것이다. 그럴 때 자칫 교만에 빠지기 쉽다.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마치 자기 능력처럼 착각한다면 그는 벌써 법을 먹는 아귀가 된 것이다.”
 
붓다의 당부를 들은 비구들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의 설법을 듣고 출가를 희망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머리를 깎은 후 가사를 입게 하라. 신발을 벗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는 합장하고 이렇게 말하게 하라. ‘저 아무개는 거룩한 붓다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진리(법)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상가에 귀의합니다.'

 

붓다에 이어 두 번째 아라한이 된 안나 꼰단냐가 자신의 고향 도나왓뚜(Donavattu)로 향하는 것을 필두로 해서 60명의 비구들은 진리를 전하기 위해 각기 인연 있는 도시와 마을로 흩어졌다.

 

 

전도명령에서 선언한대로 붓다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찾아갔던 네란자라 강기슭에 위치한 마을 우루벨라로 향했다. 남쪽으로 가던 도중, 깝빠시까(Kappasika) 숲 속의 어느 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화려하게 옷을 차려 입은 남녀의 무리들이 무엇인가를 찾아 숲 속을 헤매고 있었다. 이들은 밧다왁기Bhaddavaggī) 왕자들이었다. 코살라 국의 왕과 이복형제들인 30명의 왕자들이 각각 부인을 데리고 그 숲으로 놀러온 것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은 부인이 없어 대신 기생을 데리고 왔는데, 그들이 먹고 마시며 노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서 그 기생이 밧다왁기 왕자들의 재물을 모두 훔쳐 달아났다. 왕자들은 도망간 기생을 찾으려고 숲 속을 헤매다가 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붓다를 발견했다. 그들은 다가와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다짜고짜 물었다.

 

“한 여자가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이들의 눈동자는 잠시도 가만있지를 못하고 좌우로 흔들렸다. 붓다가 물었다.

 

“젊은이들이여, 여자는 왜 찾는가?”
“그 여자는 도둑입니다.”
“차근차근 얘기해 줄 수 있겠는가?”
“저희는 모처럼 아내와 함께 이 숲으로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다만 저 친구가 아내가 없어 기녀를 대신 데려왔는데, 노는 데 정신이 팔린 사이 그 기녀가 귀한 보석을 몽땅 훔쳐서 달아났지 뭡니까. 그 도둑을 빨리 잡아야 합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붓다가 말했다. 

 

“젊은이들이여, 그 여자를 찾는 일과 자기 자신을 찾는 일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그야 물론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하겠습니다만….”
“그렇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거기 앉으라. 내가 그대들에게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잠시 웅성거리던 젊은이들이 하나 둘 붓다 주위로 몰려들었다. 보석을 찾는 일이 급했지만 이상하게도 수려한 외양을 가진 처음 대하는 수행자에게 몸과 마음이 끌렸던 것이다.
붓다는 이들을 향해 덕과 재물을 베푸는 나눔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 것인지, 도덕을 어기지 않는 청정한 삶이 얼마나 당당하고 고귀한 것인지, 그런 삶에 얼마나 좋은 과보가 따르는 지를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누리는 행복과 즐거움이 얼마나 허망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인지, 또한 사람의 몸을 받고 태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나아가 참된 진리를 만나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 지를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초조하여 마구 흔들리던 그들의 눈동자가 붓다의 법문이 진행되면서 점차 초점을 되찾기 시작했다. 어느 덧 그들은 세속적인 욕망에 염오를 느끼며,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고 설법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붓다는 이 젊은이들에게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사성제)를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모든 고뇌의 뿌리인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뽑아버리도록 권했다. 보석을 잃어버리고 헤매던 젊은이들은 더 없이 행복한 삶을 발견한 기쁨에 낯빛이 환해졌다. 붓다의 법문 끝에 30명의 왕자들 가운데 어떤 왕자는 수다원, 어떤 왕자는 사다함, 어떤 왕자는 아나함이 되었다. 법문을 듣고 성자의 흐름에 든 왕자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출가할 마음을 일으켰다. 서른 명의 왕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붓다의 두 발에 예배했다.

 

“거룩하신 분이시여, 저희들은 세존께 출가하기를 원합니다. 부디 허락해주십시오.”
“오라, 그대들이여! 가르침은 잘 설해졌다. 이곳에서 청정한 행을 닦고 괴로움을 소멸하라. 그리하여 마침내 궁극의 목표를 성취하라.”

 

붓다의 이 말이 그들의 수계가 되었다. 성자의 흐름에 든 30명의 비구가 새로이 탄생한 것이다.

 

 

마가다 국으로 돌아온 붓다는 가장 먼저 그의 제자가 된 다섯 고행자들과 함께 수행했던 곳, 우루벨라로 향했다. 이전 우루벨라에서 머물던 시절, 그는 이미 까싸빠 3형제로 불리는 타래머리 수행자와 그를 따르는 수많은 제자들에 대해 여러 차례에 걸쳐 들은 적이 있었고, 그들의 수행처를 살펴본 일도 있었다. 특히 3형제 중 제일 큰 형인 우루벨라 까싸빠는 염력에 정통한 요가수행자로 이적을 행한다는 소문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그의 이적행위에 현혹된 젊은이들이 제자가 되기 위해 그의 휘하에 모여들었다. 수행의 경지를 불가사의한 위력의 수준과 동일시하는 바라문들로서는 그가 이룬 경지와 신비한 능력에 놀라움과 함께 일종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제자들의 충성과 바라문 가장들의 존경을 한껏 누리고 있었다. 재가의 바라문들은 물론 그의 출가 제자들까지도 자진해서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헌납의식을 다투어 떠맡으려 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불의 신 아그니(Agni)에게 바치는 제물의 규모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신에게 올리는 헌납의식임에도 불구하고 제물의 내용은 우루벨라 까싸빠에게 올리는 것으로 동일하게 여겨졌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루벨라 까싸빠는 엄청난 규모의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대단한 세력과 특권을 소유한 실력자가 될 수 있었다. 그의 신통력이 세속적 부와 쾌락을 누리게 하는 방편이었던 것이다.
우루벨라에 도착한 붓다는 곧바로 우루벨라 까싸빠가 머물고 있는 수행처를 찾아갔다. 우루벨라 까싸빠에게는 오백 명의 제자가 있었다. 소라처럼 상투를 튼 머리모양으로 인해 결발행자로 불린 그들은 바라문의 전통에 따라 <베다>를 암송하며,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고 있었다. 우루벨라 까싸빠와 대면한 붓다가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루벨라 까싸빠여, 당신의 처소에서 쉬어갈 수 있겠습니까?”

 

바라문의 권위를 자부하는 우루벨라 까싸빠는 곁눈질로 붓다를 바라보았다. 두려울 것이 없었던 그에게 알 수 없는 꺼림칙함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는 흔쾌히 수락하지 않고 잠시 뜸을 들인 후 말했다.

 

“이곳에는 이미 수많은 수행자들이 머물고 있소. 그러므로 그대가 쉴 처소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에 물러날 붓다가 아니었다. 제자들에게 전법을 명령하고, 자신이 첫 전법지로 이곳을 정해 찾아온 까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붓다는 당시 마가다 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왕족과 백성들에게 큰 존경을 받고 있는 바라문이 우루벨라 까싸빠라는 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를 교화해 제자로 삼는데 성공한다면 당시 신흥강국이었던 마가다 국 교화에 결정적인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전법의 일대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교두보를 앞에 둔 붓다의 표정은 미동도 흔들리지 않았다. 붓다는 싸늘하게 거절하는 우루벨라 까싸빠에게 여유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우루벨라 까싸빠여, 내가 머물 처소가 없다면, 사당에서라도 하룻밤 자고 갈 수 있게 허락해주시겠습니까?”
“뭐, 원한다면 그렇게 하시오. 내게 지장이 될 건 없지만, 사당 안에는 사나운 독사(毒蛇)가 살고 있소. 그대를 해치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룻밤 쉴 수 있게 허락만 해주시면 됩니다.”

 

우루벨라 까싸빠로서도 더 이상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그는 이미 고따마 붓다가 깨달음을 얻어 수십 명의 제자들을 두었으며, 점차 세력을 늘려갈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있었다. 마가다 국 최고의 종교지도자로 엄청난 명성과 부를 쌓았음에도 그는 본능적 질투와 교만 때문에 의도적으로 붓다의 출현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처소를 찾아온 고따마 붓다가 달갑지는 않았다. 만약 고따마가 자기와 동일하거나 능가하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면, 여태껏 제자들의 신뢰감을 유지시켜준 자신의 수법이 그에 의해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뇌리에 고따마 붓다를 아예 제거해 후환을 없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그런 참에 붓다가 맹독을 지닌 독사가 살고 있는 사당에서 머물 수 있도록 청하고 있으니 되레 잘된 셈이었다.

 

“알겠소. 이곳의 사당은 아주 넓소. 그대가 그곳을 원하니 뜻대로 하시오.”

 

사당에는 그들이 섬기는 세 개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붓다는 풀을 깔아 자리를 만든 다음 가부좌를 틀고 선정에 들었다. 한편 우루벨라 까싸빠는 몇몇 제자들에게 내일 아침 사당에 가면 독사에 물려 죽은 사람이 있을 것이니, 시신 치울 들것을 미리 준비해두라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 밤중이 되자 사당 안에 치명적인 독을 품은 독사 한 마리가 나타났다. 경배를 하지도 않고 자신의 처소를 차지하고 있는 낯선 사람에게 화가 난 듯 독사는 독기를 내뿜으며 붓다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사나운 독사의 기세를 잠재우기라도 하는 듯 붓다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이런 정도의 기운으로도 기겁을 해 기절을 하거나 줄행랑을 쳤을 것이었다. 그러나 붓다는 가장 편안하고 고요한 자세로 독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깊은 삼매에 들어 있었다. 독사는 당장이라도 한 입에 삼켜버릴 듯한 기세로 머리를 곧추세우고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며 붓다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나 깨달은 이, 붓다는 더 없이 침착하고 고요했다. 두려워하는 기색도 전혀 없었다. 공포를 일으키는 모든 열망과 갈애를 벗어난 그로서는 당황할 일이 없었다. 붓다는 마른 풀이 깔린 바닥에 앉아 평안하게 잠에 들었다. 너무도 태연한 붓다의 모습에 독사도 주눅이 들었는지, 붓다를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 움막 한 구석에 똬리를 튼 채 평온하게 밤을 새웠다.

 

“오늘 밤, 사람 하나 또 죽어나가는구나! 안 됐군, 안 됐어.”
“그는 사끼야 국의 왕자 출신이라지? 출신이 고귀하면 뭐하나. 오늘 밤 처참하게 죽어나갈 텐데. 쯧쯧.”

 

우루벨라 까싸빠의 제자들이 수군거리며 멀찍이서 사당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곧 싸늘한 시체가 될 사끼야 족 젊은 수행자가 안됐다는 듯이 저마다 한 마디씩을 내던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시신을 옮길 들것이나 준비하자며 이들은 자리를 떴다.      
이튿날 아침, 우루벨라 까싸빠와 그의 제자들이 사당으로 몰려들었다. 그 중에는 시신을 운반할 들것을 든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이 순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붓다가 사당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사람들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제까지 사당에서 밤을 지샌 후 살아나온 이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우루벨라 까싸빠 앞으로 다가간 붓다가 한 손에 들고 있던 발우를 내보였다.

 

“우루벨라 까싸빠여, 이것이 당신이 말하던 그 독사입니까?”

 

발우 안에는 독사가 똬리를 튼 채 얌전히 앉아 있었다. 우루벨라 까싸빠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나운 독사를 굴복시키다니! 과연 듣던 대로 사문 고따마의 신통력은 대단하구나. 하지만 아직 나와 같은 수준까지 도달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우루벨라 까싸빠의 뒤에 서 있던 많은 제자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여태껏 자기들이 보아온 어떤 이적보다도 위대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루벨라 까싸빠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붓다에게 물었다.

 

“고따마여, 이 독사를 길들이기 위해 그대는 어떤 이적을 행했는가?”
“우루벨라 까싸빠여, 나는 이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이적이라고 한다면, 이미 나 자신을 길들이는 기적을 성취했을 뿐입니다. 자기 자신을 길들인 자는 독사나 사자, 코끼리와 같은 맹수들을, 나아가 가장 사악한 인간조차도 큰 어려움 없이 길들일 수 있습니다.”

 

붓다의 당당하면서도 자신에 찬 대답에 우루벨라 까싸빠는 제자들의 면전에서 오만한 콧대가 꺾이고 말았다. 우루벨라 까싸빠의 이마에 진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밀려오는 수치심으로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겨웠다. 그는 붓다가 한 말의 숨은 뜻을 간파했던 것이다.
‘생각이 없는 미물, 독사조차도 고따마 붓다를 해코지하지 않는데, 큰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라는 내가 뱀보다 못한 짓을 저질렀다니! 부끄럽구나.’
그런데 신이한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날 이후 붓다가 그들의 처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숲에 머물러 있을 때, 우루벨라 까싸빠의 제자들은 칠흑처럼 어두운 밤에 붓다가 머물고 있는 곳에서 휘황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밤마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우루벨라 까싸빠의 제자들은 이때부터 붓다를 ‘위대한 사문’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건기에 접어들면서 이들에게 가장 큰 제사 행사인 앗타까(Aṭṭhaka, 팔일제) 일이 다가왔다. 앗타까는 물과 불에 의해 몸과 마음을 정화한다며 팔일 간 열리는 축제로, 잠부디빠에서는 가장 추운 계절이라고 할 수 있는 건기에 거행되는 일종의 고행축제였다. 앗타까에 참가하는 결발행자들은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며 차가운 물속에 들어가 자맥질을 했고 물 밖으로 나와서는 더운 물로 추위를 견뎠다. 앗타까는 음력으로 매월 1월 마지막 4일과 2월 처음 4일 동안 열렸다. 네란자라 강에서 앗타까가 열릴 때에는 마가다 국과 인접한 앙가(Ańga) 국, 두 나라에서 많은 신자들이 우루벨라로 찾아왔다.
그러나 우루벨라 까싸빠는 성대한 축제와 제단에 바쳐질 진귀한 공양물에 대한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 매일 아침 탁발을 하러 자신의 처소를 찾아오는 붓다가 영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우루벨라 까싸빠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문이 사람들 앞에서 신통력을 보이면 내 위신이 떨어질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운집하는 앗타까의 마지막 날 만큼은 제발 이곳에 오지 말아야 할 텐데….’
제사를 지내는 날 아침 붓다는 우루벨라 까싸빠의 처소를 찾아오지 않았다. 우루벨라 까싸빠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다음날 아침이 되자 붓다가 발우를 들고 어김없이 나타났다. 우루벨라 까싸빠는 짐짓 반색을 하며 붓다를 맞았다.

 

“고따마여, 어제는 공양물도 많았는데 어째서 오지 않았소?”

 

그러자 붓다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루벨라 까싸빠여, 당신은 내가 오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날 이후, 우루벨라 까싸빠와 그의 제자들은 붓다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날이 저물고 어둠이 찾아와도 비는 그칠 줄 몰랐다. 강물이 넘쳐 언덕 위에 자리한 우루벨라 까싸빠의 처소까지 넘실거렸다. 우루벨라 까싸빠는 강기슭에 머물고 있는 붓다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판단한 그는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횃불을 밝혀 붓다가 머무는 곳으로 찾아갔다. 강기슭의 숲은 이미 거센 물결이 삼켜버린 뒤였다. ‘큰일 났구나!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우루벨라 까싸빠가 소리쳤다.

 

“고따마여, 어디 계시오? 위대한 사문이여, 어디에 계십니까?”
“우루벨라 까싸빠여, 저는 여기에 있습니다.”

 

강물을 헤치며 마치 육지를 걷듯 물 위를 가볍게 걸으며 다가오는 붓다를 발견한 우루벨라 까싸빠와 그의 제자들은 순간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더 놀라운 것은 붓다의 가사가 전혀 젖어 있지 않은 것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우루벨라 까싸빠는 붓다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렸다.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온 붓다가 말했다.

 

“우루벨라 까싸빠여, 당신은 지난 며칠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가운데 앗타까를 거행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물과 불로서 몸과 마음을 정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강물 속에서 목욕하는 것으로 청정해지지 않습니다. 오직 진실과 고귀한 원리(담마)로써 청정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거룩한 가르침입니다.”
“…”

 

우루벨라 까싸빠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창백해졌다.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알고 있는 젊은 수행자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붓다가 말을 이어갔다. 우루벨라 까싸빠는 물론, 그와 함께 온 결발제자들도 침묵한 채 젊은 수행자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강물에서 목욕하여 청정해진다면 강물 속 물고기들이나 물소들도 모두 해탈했을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 죄를 짓고 강물에서 목욕하는 것으로 죄가 씻겨 나간다면 이 세상에서는 범죄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목욕으로 청정해지지 않습니다. 세례로 죄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어둠의 반대가 빛이고 무지의 반대가 앎인 것과 같은 식으로, 목욕이 악의 반대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물에 의한 청정은 없습니다.”

 

붓다는 이어 결발행자들 앞에서 즉시 5백 개의 화로를 만들어 내는 놀라운 이적을 행했다. 차가운 강물에 들어가 자맥질하고 나온 수행자들이 물 밖에 나와서 몸을 데울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 붓다는 또 사방으로 물을 물러나게 하여 땅 바닥이 드러난 곳에서 경행(행선)하는 신통을 보여 주기도 했다. 우루벨라 까싸빠와 제자들은 말문이 닫힌 채 그저 두 눈만 휘둥그레 뜨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그들을 둘러본 붓다가 말했다.

 

“우루벨라 까싸빠여, 그대는 거룩한 님이 아닐 뿐만 아니라 거룩한 길에도 들어서지 못했습니다. 그대가 거룩한 님이 되게 하던가 그대를 거룩한 길에 들어서게 하는 그러한 길이 그대에게는 없습니다.” (Vin.I.32)

 

그러자 우루벨라 까싸빠는 붓다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솔직하게 자신의 입장을 털어놓았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 듯 알고 있는 위대한 이 앞에서 감히 거짓행동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부끄럽지만 세존 앞에서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거룩한 님이 아닙니다. 거룩한 길에 이르지도 못했습니다. 고따마 붓다여,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거룩한 님이십니다.”

 

이렇게 까싸빠 3형제 중 가장 큰 형인 우루벨라 까싸빠는 자신의 교만과 권위를 홀연히 버리고 붓다 앞에서 합장한 채 말을 이어갔다. 그는 시나브로 붓다를 ‘세존’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당신을 따르도록 허락하소서.”

 

잠시 침묵하던 붓다가 말했다.

 

“우루벨라 까싸빠여, 당신은 오백 명이나 되는 바라문들의 지도자입니다. 나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는 뜻을 먼저 당신의 제자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각자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당신이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공손한 자세로 붓다를 안내하며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우루벨라 까싸빠는 자신의 500 제자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한 자리에 모이게 하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나는 거룩한 님, 아라한이 아닙니다. 나의 가르침 역시 아라한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진정한 아라한은 오직 한 분, 여기 계신 세존, 붓다뿐이십니다. 진정한 아라한의 길 역시 세존의 가르침뿐입니다. 저는 오늘부터 이분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여러분의 길을 가십시오.”

 

그러자 제자들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들도 스승님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우루벨라 까싸빠와 그의 오백 제자들은 땋았던 타래머리를 자르고 붓다에게 제자로 받아줄 것을 간청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당신께 출가하여 비구가 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오십시오. 비구들이여. 나의 가르침을 따라 청정한 수행을 함으로써 모든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나도록 하십시오.”

밤낮없이 타오르던 사당의 불은 꺼졌다. 갖가지 제사 도구들은 성스러운 네란자라 강에 버려졌다. 여러 생에 거쳐 지은 죄업을 모두 강물에 씻어버리기라도 하는 듯이 5백 명의 바라문들이 머리를 깎고 붓다의 제자, 비구로 새롭게 탄생했다.
하류에서 많은 제자들과 함께 있던 우루벨라 까싸빠의 동생 나디 까싸빠는 강물에서 뭉텅뭉텅 잘라진 머리카락과 형님이 가장 아끼던 제사 도구들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삼형제 중 둘째인 나디 까싸빠는 허겁지겁 우루벨라로 달려가 큰형님인 우루벨라 까싸빠를 찾았다. 그는 다시 한 번 크게 놀랐다. 기상과 위엄이 넘치던 형님이 바라문의 권위와 수행자의 자존심을 상징하던 머리카락을 자른 채 한 젊은 사문의 발아래 엎드려 예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형님, 대체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우루벨라 까싸빠는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자세하게 동생에게 들려주었다. 눈을 감고 한참이나 생각에 잠겼던 둘째 동생이 입을 열었다.

 

“형님, 제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우루벨라 까싸빠가 잘라 말했다.

 

“아우님도 나와 같이 세존의 제자가 되는 것이 좋겠네.”

 

큰형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존경했던 나디 까싸빠는 형님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그의 제자 300명과 함께 미련 없이 머리카락을 자른 후 사문이 되었다. 가야에 머물던 셋째 동생 가야 까싸빠 역시 형들이 붓다의 제자로 출가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제자 200명과 함께 우루벨라로 찾아와 붓다에게 예배하고 제자가 되었다.
불에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공덕을 쌓고 물로 죄업을 씻으려던 까싸파 삼형제, 우루벨라 까싸빠, 나디 까싸빠, 가야 까싸빠와 그들의 제자 일천 명은 이렇게 해서 보시로 공덕을 쌓고 팔정도로 죄업을 씻는 열반의 강에 몸을 담갔다.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다가 붓다를 만나 비로소 정법에 귀의하게 된 일천 명의 새로운 제자들에게 붓다는 연민과 환영의 마음으로 말했다.

 

“꾸사의 풀잎으로 악취 나는 생선을 묶으면 그 잎에는 생선 썩은 냄새가 배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을 사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냄새가 없는 발리사 나뭇잎으로 향을 싸서 묶으면 그 잎에 좋은 향내가 배는 것처럼 현자와 사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업이 무르익는 것이 마치 과일이 저절로 익는 것과 같음을 알아서 지혜로운 자는 부정한 자를 따르지 말고 착하고 정직한 자를 따라야 한다.”

 

비로소 거룩한 길로 인도하는 참 스승을 만난 기쁨에, 일천 비구들의 얼굴은 환하게 피어올랐다. 이때가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지 2년이 지날 무렵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