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의 추구만을 강조하고 ‘복지’를 간과하는 번영복음은 복지국가의 걸림돌이 된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복지국가’의 모습을 취한 대한민국에서는 복지사회 건설의 심각한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이처럼 번영복음에 의해 심각하게 오염된 ‘복’의 개념이 풍미하는 곳에서는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이 불편해지곤 한다. 이는 필자의 지나친 반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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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庚子)년 새해가 밝았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을 주고받으며 새해를 시작한다. 이 인사말은 너무나 익숙하여 이 말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필자 역시 지금까지 이 말에 대해 천착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종교와 복지에 관한 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복이라는 용어, 나아가 복과 복지의 관계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한자 표현만 보면 복과 복지는 같은 의미를 지닌다. 실제로 한자 자전을 찾아보면 ‘지(祉)’는 ‘복(福)’을 의미한다. 따라서 문자 그대로 뜻풀이를 하면 복지는 ‘복복(福福)’을 의미한다. ‘족발’이나 ‘역전’의 경우처럼 같은 의미를 지닌 두 글자를 반복한 일종의 동어반복어다. 이처럼 복과 복지의 어원적 의미는 사실상 동일하지만 두 용어가 실제로 사용되는 맥락은 사뭇 다르다.

기복신앙이나 구복신앙에서의 ‘복’과 노인복지나 아동복지에서의 ‘복지’는 모두 행복과 안녕의 의미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지만 추구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 기복과 구복이라는 용어에서 ‘복’은 기원과 간구의 방식을 떠올리게 하는 반면, 노인복지와 아동복지라는 용어에서 ‘복지’는 제도적 차원의 성격을 지닌 ‘사회복지’를 시사한다. 실제로 학계나 사회에서 복지와 사회복지는 혼용되고 있다.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대한민국은 복지국가의 기틀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서로 대립하는 신자유주의와 복지국가가 결합한 독특한 형태의 ‘신자유주의적 복지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종교 공간에서 등장한 번영복음(wealth-health gospel)이다. 번영신학(prosperity theology)으로도 불리는 이 신앙의 뿌리는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신자유주의의 등장 이후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을 끈다.

번영복음은 현세적 차원의 성공을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복을 얻기 위한 구체적 방법과 기술을 제공한다. IMF 사태 이후 번영복음을 국내에 확산시킨 가장 대표적인 텍스트는 미국 최대의 교회인 레이크우드교회의 목사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과 세계 최대의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목사 조용기의 《4차원의 영성》인데 두 책 모두 베스트셀러의 지위에 올랐다.

《긍정의 힘》은 신이 우리를 위해 “차고 넘치는 복”을 예비해 놓았다고 하면서 복의 추구를 강조한다. 그리고 복을 얻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는데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긍정적 사고’를 우선적으로 강조한다. 부정적 사고를 버리고 모든 것을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인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은 마음속에 자신이 원하는 삶의 이미지를 그리고 그것에 대한 믿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특히 말의 선포를 강조하는데 말에는 엄청난 창조의 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입으로 말하는 순간 말의 내용이 생명을 얻는다. 그는 이것을 ‘영적 원리’라고 부르면서 이 원리를 실천하여 자신이 간절히 원했던 공영방송국의 황금 시간대를 얻었음을 자랑한다.

이러한 논리는 “마치 이루어진 듯이 행동하라”는 지침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너희가 청한 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라는 사고에 근거한 것이다. 따라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현재형 대신에 “나는 이미 성공했다”와 같은 과거형 문장으로 선언해야 한다. 요컨대 복 받을 줄 믿고, 이미 복 받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이미 복을 받은 것처럼 행동하면 누구나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대 의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생각과 말의 힘’에 의해 일어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거듭 주장한다.

《4차원의 영성》도 비슷한 논리를 따르고 있다. 이 책은 ‘바라봄의 믿음 법칙’이라고 부르는 원리를 제시한다. 목표를 바라보되 있는 것처럼 바라보고 마음속에 소원을 품은 후, 이미 이루어진 현실로 믿고 기도하라고 한다. 예를 들면 “하나님 아버지여! 이미 고쳐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다 낫게 하여 주옵소서. 이미 치료해 주심을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뒤 “병은 물러가라!”고 명령하면 실제로 치유된다는 것이다. 이는 방금 살펴본 《긍정의 힘》에 나온 논리와 같다.

조용기 목사는 ‘끌어당김의 법칙’도 제시한다. “같은 종류는 같은 것끼리 끌어당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가난한 사람처럼 행동하면 가난을 끌어당기게 됩니다. 그런 상태가 계속되면 여러분은 평생 가난에 찌들리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부자처럼 행동하면 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전 세계적으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시크릿》(2007)이라는 책의 핵심 논리이기도 하다.

이처럼 《긍정의 힘》과 《4차원의 영성》으로 대변되는 번영복음은 ‘복’의 추구를 강조한다. 물론 이때 ‘복’은 육체적 건강이나 물질적 부의 축적을 통한 현세적 성공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다양한 주술적 테크놀로지까지 제시하고 있다. 번영복음의 기저에는 각자가 자신의 욕망과 목표를 성취해야 한다는 각자도생의 논리가 숨어 있는데 이는 물론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 논리와 공명한다. 

‘복’이 아니라 ‘복지’를 추구하는 사회복지는 경쟁에 근거한 각자도생의 논리가 아니라 연대에 기초한 공생과 상생의 길을 지향한다. 즉 4대보험으로 대표되는 사회보험,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부조, 그리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서비스와 같은 제도적 장치를 통한 복지국가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물론 각국의 역사적 경로에 따라 사회민주주의, 보수(조합)주의, 자유주의 유형 등으로 복지체제가 구분되거나, 보편적 복지 대 선별적 복지의 논쟁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어떤 형태의 복지국가이건 개인에게 무한책임을 돌리는 각자도생의 길 대신 사회적 연대와 공조의 길을 추구한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복’의 추구만을 강조하고 ‘복지’를 간과하는 번영복음은 복지국가의 걸림돌이 된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복지국가’의 모습을 취한 대한민국에서는 복지사회 건설의 심각한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이처럼 번영복음에 의해 심각하게 오염된 ‘복’의 개념이 풍미하는 곳에서는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이 불편해지곤 한다. 이는 필자의 지나친 반응일까?

이진구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소장
jilee80@naver.com
주요 저서로 《한국 개신교의 타자인식》, 《한국 근현대사와 종교자유》 등이 있다.

* 한국종교문화연구소 뉴스레터 608호에 실린 글입니다. 저작권은 한국종교문화연구소(http://kirc.or.kr)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