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은 가까운 데 있다

 

 

 

 

나의 스승은 세 분이 있다. 불가의 스승은 법정스님이시고, 인생의 스승은 나의 아버지이시다. 그리고 문학의 스승은 동국대학교 전 총장 홍기삼 문학박사이시다. 앞의 두 분은 <법정스님 인생응원가>에서 얘기했으니 오늘은 고우(古雨) 홍기삼 선생님에 대한 추억을 꺼내보리.

 

나는 대학시절에 고우 선생님께 문학정신과 문장수업을 받은 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장수업은 누구에게나 받을 수 있지만 문학정신은 그렇지 않다. 문장수업은 지식의 울타리 안에 있지만 문학정신은 심혼(心魂)의 울타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고우 선생님은 내 어두운 심혼에 불을 당겨준 분이다. ‘작가는 무엇인가’라는 패(牌)를 가슴에 걸어준 분이다. 작가란 정의, 양심, 당당한 태도, 열린 자존심 등을 벗 삼아 살아야 된다고 누누이 강조하신 분이 바로 고우 선생님이셨던 것이다.

 

졸업 후의 일화이다. 선생님 가풍을 흠모하는 대학제자들이 학번별로 1명씩 ‘목요회’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만들었다. 매주 목요일이 되면 장충동이나 퇴계로 식당에서 만나 담소하면서 저녁식사를 했다. 물론 술을 곁들이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매번 한 명씩 선생님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D일보 신춘문예에서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된 한 제자는 선생님께 모진 꾸지람을 듣고는 모임에서 탈퇴해버렸다. 모 협회의 간부가 되어 문단정치를 한다는 것이 선생님의 지적이었다. 문학을 하지 않고 문단정치를 하게 되면 작가는 필연코 타락한다는 것이 선생님의 지론이었다. 내 글을 아주 좋아하는 선배인데 안타까운 일이었다.

 

나는 문단정치를 할 만큼의 능력도 소양도 없지만 40대 이후에는 이른바 문인들이 만든  단체의 문턱을 밟아본 적이 없다. 물론 회비를 낸 적도 없다. 나는 독자와 직거래(?)를 할 뿐이다. 단체의 힘을 거부하는 셈이다. 몇 십 명의 작가가 추천하는 작품이라는 광고성 기사를 보면 속이 메스꺼워진다. 산중생활을 20여 년째 하면서 도회지인 광주로 나가 작가들끼리 사교를 해본 적도 없다. 작가란 사유하는 존재이지 사교하는 존재가 아니란 것을 고우 선생님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던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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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을 잘못 두었다가 엉뚱한 길로 빠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을 살아가려면 정신적인 스승과 생활환경 및 사귀는 친구가 두루 갖추어져야 합니다. 인생의 행로에는 눈 밝은 경험자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앞서 길을 가면서 터득한 지혜가 뒤따라가는 우리에게 큰 등불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의지할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정신적인 지주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의지할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에서는 말로 가르치지만 참다운 스승은 말로써 가르치지 않습니다. 일상적인 행동으로 몸소 그렇게 보여줍니다. 일상적인 삶으로써 열어 보입니다. 제자는 스승 곁에서 항상 새롭게 배우면서 깨닫습니다.
스승은 제자가 스스로 알아차리도록 도울 뿐입니다. 스승은 입 벌려 가르치지 않습니다. 좋은 스승은 제자 내부의 본질이 꽃 피어나도록 도울 뿐입니다. 따라서 제자는 먼저 스승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 없이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전적인 신뢰와 헌신에 의해서 스승의 인격이 제자에게 메아리칩니다. 마치 굶주린 사람이 먹을 것을 찾듯이 그처럼 절실하게 찾을 때, 반드시 스승을 만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스승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와 같은 스승이 절이나 교회에 있을 것이라고 속단하지 마십시오. 절이나 교회는 어떤 의미에서 직업적인 틀에 박힌 사람들이 많습니다. 절이나 교회에는 진정한 스승이 귀합니다. 그곳에는 가짜가 많습니다. 절에 다닐 때 정신 바짝 차리고 다니십시오.

 

살아 있는 참 스승은 결코 먼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지하철 안에서도 만날 수 있고, 시끄러운 시장바닥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다니는 직장에서, 혹은 가정에서 살아 있는 참 스승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스승들은 우연히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만큼 탐구하고 열망하면서 간절히 찾았기 때문에 메아리로서 응답한 것입니다.

 

 

제자욕심이 많은 고우 선생님은 제자의 취업이나 등단, 건강 등을 세심히 챙기셨다. 많은 일화가 있지만 한두 개만 밝히자면 다음과 같다. 대학시절에 소설을 습작하면서 내 건강은 아주 나빠졌다. 술을 마시면 끼니를 거를 때가 많았고, 한번 책상 앞에 앉으면 밤낮이 바뀔 때가 다반사였던 것이다. 결국 나는 피로의 누적으로 간 기능이 몹시 약화되었다. 간경화를 의심할 정도로 얼굴빛은 사색으로 변했고, 몸은 젓가락처럼 바짝바짝 말라갔다. 고우 선생님께서는 그런 나를 보고는 걱정이 되어 간 기능을 향상시키는 독일제 약을 구해 보내주셨다. 몇 달간 약을 복용한 뒤 나는 이전처럼 소설습작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매년 가을이 오면 신춘문예를 통과의례처럼 준비했는데, 신문사에 투고하기 전날 반드시 선생님 댁으로 찾아가서 경과를 말씀드리곤 했다. 그때마다 선생님 사모님은 나를 위해 특별히 전복죽을 끓여주셨다. 그 기억과 고마움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직도 명절이 되면 선생님 댁에 고흥 청정바다에서 나는 전복을 보낸다. 내 나이도 70문턱에 이르렀으니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마음만은 변치 않을 것 같다.

 

두 달 전에도 선생님께 글을 쓰면서 가끔 숨이 막힌다고 말씀드렸더니 혈행(血行)을 돕는 귀한 약을 구해서 우송해주셨다. 선생님께서도 한때 그런 증상이 있었을 때 효험을 보았다며 내 산방으로 내려 보내주셨던 것이다. 지금도 아침저녁으로 복용하면서 선생님의 마음을 떠올리곤 한다. 나와 띠동갑이신 선생님도 어느 새 팔순이 되셨다. 팔순 생신기념 가족여행을 제주도로 떠나신다는 소식이 내 산방까지 들려왔다. 그래서 지난 12월 25일에 나는 효담 후배와 작전을 짰다. 선생님께 여비를 보태드려야겠는데 방법이 마땅찮아서였다. 그냥 무턱대고 송금하겠다면 받지 않으실 것이 너무도 뻔했다. 그래서 효담 후배에게 용인 선생님 댁에 가서 봉투를 몰래 놓고 오라는 작전을 짰다. 작전명은 8025작전이었다. 팔순이 되신 선생님을 위한 25일 작전이라는 뜻이었다. 8025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신 선생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내주셨다.
<일정한 수입 없이 오직 고료로 생활하는 전업작가의 거금을 받아 팔순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것이 사실일세. 내가 복이 많아 이런 호사를 누린다 생각하면서. 제주 어시장에 갔다가 갈치를 좀 사서 보냈네. 월요일 오후에 배달된다고 하네, 자네가 먹지 않으면 어찌하나 걱정을 하면서 보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