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을 지나 올라가는 길도 이제까지 올라온 길과 마찬가지로 경사가 급합니다. 뒤돌아보면서 살아온 길이 나름대로 급하였고, 가야할 길 역시 이제까지 걸어 온 길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겁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다운 수행을 하지 않았으니, 그렇게 쌓인 업장이 녹아 없어지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가야할 길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같은 방향으로 곧게 뻗은 길이기를 바라며, 몇 분을 오르니 흘낏 법당이 보였습니다.

 

종무소 옆 안내판에 ‘용덕사는 신라 문성왕 때 염거선사가 창건하였고, 신라 후기 도선국사에 의해 증창된 것으로 전해진다’고 쓰였습니다. 우리나라 선사상에 큰 역할을 한 염거선사와 풍수지리설을 밑바탕으로 고려 개국은 물론이고 불교가 국교로 유지될 수 있도록 큰 영향을 준 도선국사가 연관된 사찰임을 보면, 용덕사가 큰 사찰이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1999년 이후 일주문 ․ 요사채 ․ 종각 ․ 대웅전 ․ 삼성각 등을 조성하였다는 내용이 씌어있어, 현재의 용덕사가 예전의 화려했던 모습이 아니라 불법을 지켜내려는 주지스님과 불자들의 큰 공덕으로 이루어진 사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종각은 한 칸짜리 모임지붕집으로, 특이하게 종각 안에 네 개의 기둥을 세워 평방과 창방으로 결구하고, 그 위에 대들보를 놓아 범종을 걸었습니다.

 

 

 

바깥쪽 기둥 초석은 팔각형으로 안쪽 기둥은 원형으로 두 가지 형태의 초석이 하나의 암석에 초반과 주좌를 붙은 몸으로 다듬어 받쳤는데, 기계로 곱게 갈아낸 탓에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이 같은 아쉬움은 정방형으로 갈아낸 화강암 판석 위에 그 돌 판과 재질과 색깔이 똑같은 주춧돌을 놓았을 뿐만 아니라, 새김이라고는 기둥이 놓일 자리(주좌)만 파낸 단조로움 때문입니다. 지금 증창 불사로 이루어지는 전각과 종각 등 많은 불교건축이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문화재가 될 수 있기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쉬움은 순식간에 바뀌었는데, 자랑스럽게 펼친 단청장의 솜씨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종각 단청

 

단청은 겉으로는 한옥의 주된 건축소재인 목재가 입는 자연 재해를 방지하고, 속으로는 삿된 기운을 막을 뿐 아니라 불국토의 장엄을 나타내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종각도 그 목적이 충분히 이루어지도록 곳곳마다 세심한 정성을 쏟았음이 보였습니다.

 

부연과 서까래 마구리에 피어난 연꽃, 평방과 창방 양쪽 끝의 머리초, 머리초 사이에 펼쳐진 비단문양 등이 황홀하게 펼쳐졌습니다.
줄지어 피어난 연꽃 하나하나에는 중생들의 소원이 담겨있으며, 모든 것이 모아져 이루어진 머리초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끊어짐 없이 반복되며 얽혀있는 비단문양은 길상이, 창방 아래며 기둥 옆면에 붙은 낙양에 덩굴진 당초문은 불심이 길이길이 이어져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화려한 문양을 이루어낸 오방색이 서로 얽히고 어우러진 것에서는 서로 도와 서로에게 이로움을 준다는 전통적인 오행사상을 볼 수 있고, 색색의 선이 끊어짐 없이 이어진 것에는 생기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타낸 것이라 생각됩니다.

 

 

범종소리를 싫어하시는 불자가 있을까요? 작은 귀로 은은하게 들어와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박혀있는 크고 작은 번뇌를 내려놓게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고, 지혜는 자라나고 신심은 깊어져 부처님의 가르침에 정진하게 합니다. 투명한 범종 소리는 남섬부주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더 멀리 퍼져나가 도산지옥과 화탕지옥을 무너트리고, 아귀도 배불러지고, 수라도 조복되고, 축생은 지혜가 생길 겁니다.
그래서 지옥에서 업장을 치루는 중생들의 영혼을 편케 하는 자비의 종소리를 뿜어내는 종각을 장엄함은 당연하다는 생각입니다. 방금 본 일주문에 단청문양 외에 사천왕을 그렸듯, 종각에도 여러 곳곳에 불교와 관련한 많은 별지화(別枝畵)를 그려 종각의 위엄을 높였습니다.

 

 

 

정면의 기둥에는 지장보살을 그렸습니다. 지장보살은 미래불인 미륵부처님이 출현하기까지 육도의 중생들을 교화·구제하시는 보살입니다. 범종소리와 함께 천상·인간·아수라·아귀·축생·지옥을 다니시며 자비를 베푼다는 의미일 겁니다. 

 

 

 

지장보살이 미래에 성불할 것을 나타내려는 듯 네모진 얼굴에 반달눈썹과 붉은색의 작은 입, 길게 늘어진 귓불, 목에는 삼도를 그렸습니다. 머리엔 두건을 들렀고, 무늬가 없는 검소한 차림의 치마와 가사를 걸치셨습니다. 복련의 연꽃 위에 서서 지옥문을 깨뜨리는 석장을 들고 계신데, 지팡이 윗부분 큰 장식에 걸린 여섯 개의 고리는 육도를 자유롭게 드나드시는 권한을 나타낸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비천

 

중생이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사바세계에 사찰을 짓지만, 사찰은 불국토입니다. 사찰을 크고 위엄 넘치는 건축물로 조성하고 화려하게 장엄하는 것은 그러한 연유입니다.  ‘사찰이 커야하고, 무한정 화려하여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위압감을 주는 큰 법당이 아니라 작아도 엄숙함이 배어있어야  장엄이지, 눈을 크게 뜨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게 하는 화려함은 진정한 장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법문을 펴시는 곳은 보살을 비롯한 많은 대중들이 모이는 정토인 까닭에 항상 아름다운 음악이 연주되고, 꽃비가 흩날리며, 아름다운 새들이 날아다닙니다.

 

 

 

한옥 지붕은 종도리에서 처마까지 내려오는 서까래를 걸어 빗면을 만드는데, 모임지붕집은 빗면이 삼각형을 이루어져 둥근 서까래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둥근 재목을 부챗살처럼 깎아서 도리에 걸게 되는데, 그 결과로 부채를 편 형태의 아름다운 천장이 만들어집니다. 용덕사 종각은 이렇게 선자서까래로 생겨난 평평한 네 개의 빗천장에 비천을 그렸습니다.
비천은 부처님에 대한 공양과 정토장엄을 위하여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꽃을 뿌려주는 천녀(天女)입니다. 비천이 입은 천의는 팔뚝에 넓고 긴 띠를 걸치고 있는데, 바람결에 흐르고 있는 이 띠가 허공을 날게 합니다. 천녀의 머리 뒤에서 동그랗게 휘날리는 모양으로 시작되어 양팔에 휘감겨 흐른 띠의 흐름과 같이 천의 자락도 흩날리는데, 천녀는 허공을 가볍게 날아가며 공후와 피리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천녀의 임무는 불국토 장엄과 공양을 넘어서는 큰 가르침을 주기도 합니다.
유마거사의 마음에 병이 났을 때, 병문안을 온 많은 보살과 성문들에게 천녀가 아름다운 꽃비를 내렸습니다. 부처님의 제자 중 지혜제일이라 불리는 사리불이 몸에 붙은 꽃을 떼어내려 하자, 천녀는 ‘꽃이 아무런 분별을 하지 않듯 부처님의 가르침은 분별하지 않는 것이며,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악귀의 힘이 침입한다’고 말합니다.
사리불과 천녀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관한 여러 문답을 끝냈을 때, 유마거사는 ‘천녀가 많은 부처님을 섬기면서 많은 생(生)을 받았으며 무생법인(無生法忍 모든 것은 태어난 바가 없다는 무생법의 깨달음)을 얻고 불퇴전에 올라있는 분입니다. 여기 천녀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오직 중생들의 근기를 성숙시키기 위한 것’임을 말합니다. 

 

 

‘범종소리에 육도 중생의 번뇌가 씻어진다’는 생각에 그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종각을 볼 때마다 범종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며 천녀의 아름다운 연주가 울려 나옴을 생각하시면, 범종소리를 더 아름답게 들으실 수 있고 부처님에 대한 공경심과 환희심도 더 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각 바깥에 세운 네 개의 기둥에는 저녁예불 게송이 주련으로 걸려있습니다.

 

문종성번뇌단 지혜장보리생 이지옥출삼계 원성불도중생
(聞種聲煩惱斷 智慧長菩提生 離地獄出三界 願成佛度衆生)
종소리에 번뇌는 끊어지고, 지혜는 늘어나며, 보리심이 생겨나서
지옥을 떠나고 삼계를 벗어나, 부처 이루어 중생을 제도하게 하소서.
-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