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올해 남북관계를 위해 한국 정부가 뭘 했는지 되묻곤 한다. 하노이 노딜의 충격이 워낙 커서 웬만한 한국의 역할로 북미관계를 회복시킬 것 같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난 해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의 감동이 매우 컸던 탓도 있다. 지난 해 감동에 연유한 기대치는 매우 높고 하노이 노딜로 시작된 좌절 역시 매우 깊어 길을 잃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하노이 노딜에서 6.30까지
 
그러나 상반기를 돌아보면 하노이 노딜의 충격에서 회복하여 다시금 북미협상을 궤도에 올리기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한국 정부는 4월 11일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대북 메시지를 보냈다. 남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겠으니 이에 응하라는 간접 메시지였다.
이어 상반기 내내 한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데 역점을 뒀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5월 16일 결실을 맺어 트럼프 대통령의 6월말 방한이 확정되었다. 이후 문대통령은 6월 12일의 오슬로 연설과 14일의 스웨덴 의회 연설을 통해 평화를 역설했다. 동 연설에서 북한 측에게 실무회담을 받으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동시에 6월 26일에는 뉴스통신사 합동서면인터뷰를 통해 미국 측에게 영변 해체를 초기 조치로 수용하라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북-미 양측 모두에게 쓴 소리를 보낸 이후 6.30 회동을 위한 장을 본격적으로 마련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트가 판문점 회동의 열쇠가 되었지만 동시에 그 판을 마련한 것은 한국 정부의 중재역이었다. 그것이 중재자이든 촉진자이든 용어는 중요치 않다. 상반기 한국 정부는 하노이 노딜을 극복하고 북-미가 자리를 같이 하는 장을 만드는 데 올인 했고 그것은 잠시나마 결실을 맺었다.
 
일본의 훼방과 한미군사연습
 
한반도의 지정학은 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노이 노딜에도 불구하고 6.30 남북미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어김없이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 직전인 6월 21일 시진핑 주석을 평양으로 초대하여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북한의 중국에 대한 배려, 중국의 한반도 관여라는 이해관계가 일치한 결과였다.
이어 벌어진 한일 대전은 남북미, 북중 회동의 와중에 벌어진 뜻하지 않은 대결 국면으로 이어졌다. G20 오사카 정상회담의 성과가 6.30 남북미 판문점 회동으로 흐려진 탓인지, 그리고 그것이 문대통령이 성과를 낚아챘다고 생각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베는 7월 느닷없이 한일 무역 대전을 시작했다.

이에 맞선 한국의 GSOMIA 종료 결정은 한일갈등해소에 미국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문대통령은 남북관계보다는 한일갈등문제를 우선시하게 되는 함정에 빠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금강산, 개성 문제에 대한 해법이 담길 것이라고 예상되었던 8.15 연설은 사실상 GSOMIA에 집중되었고, 남북관계에 대한 실질적 조치는 언급되지 않았다. 북한은 다음날 허탈한 심정을 담아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GSOMIA 종료로 미국과의 갈등을 한일관계에 끌어들이게 된 한국 정부가 금강산 관광 문제로 미국과의 제재 논쟁을 밀고 가기엔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으로서는 느닷없이 남북관계가 후순위가 되어버린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동시에 한국 정부는 군사연습과 관련된 선택의 상황에 직면했다. 훈련 없는 군대가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라는 미 인도-태평양 사령부의 강력한 반론과 전작권 반환을 위한 일정상 한미 군사연습이 불가피하다는 한국 군부의 요구가 맞아 떨어져 8월 군사연습이 강행되었다. 문대통령은 전작권 반환을 위한 일상적 군사연습이자 지휘소 연습이라는 군의 주장에 따라 8월 군사연습 강행론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6.30당일 52분간의 정상회동 중 트럼프 대통령에게 30분의 시간을 할애해 한미군사연습의 중단을 요구한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8월 한미군사연습의 강행은 대화를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한 8월 군사연습 중단 논의가 없던 일로 되고 한미군사연습이 강행되자 그 배후에는 한국 정부가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두 가지 사건이 겹친 이후 북한은 한국 정부에 대한 기대를 버렸고 한국 정부에 대한 북한의 비판은 하반기 내내 높아만 갔다. 10월의 스톡홀름 회담 이후 북한은 미국에 대한 기대도 내려놓기 시작한 듯 하고, 현재는 다가오는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새로운 길’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를 두고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인상이다.
 
2020년 전망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세가지이다. 우리에게 가장 바람직한 첫 번째 시나리오는 북한이 협상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이 북한에 보여주어야 하는 몇 가지 셈법 전환을 전제한다. 하나는 북한과의 거래에서 불가역적인 조치를 제시하는 것이다. 북한이 이미 불가역적으로 폐기한 풍계리 등와 같은 불가역적 조치에 대해 미국은 종전선언 같은 가역적인 것이 아니라 평화협정과 같은 제도적이고 따라서 불가역적인 것을 주어야 한다. 동시에 그것은 북한과 미국의 동시 행동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해 미국이 한국을 통한 보상을 준다는 것은 신뢰구축조치의 기본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북미관계를 푸는 열쇠는 이 같은 등가 교환 방식에 의한 신뢰구축에 있다. 미국이 이 방법으로 들어오지 않는 한 협상의 길은 열릴 것 같지 않다.

두 번째 가능성은 북한이 과거의 패턴 즉 벼랑 끝 전술로 가는 것이다. 내년 7월-8월은 도쿄올림픽 시즌이다. 이 시기를 전후해 북한이 다양한 방식의 미사일 실험이나 군사 조치에 나설 경우 결국 일본이 올림픽 휴전을 위해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동시에 다가오는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그 시점이 북한과의 협상에 나설 가장 좋은 시기라는 것이다. 이미 나도는 내년 8월 협상 타결설의 실체가 이 두 번째 시나리오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미래가 될 지도 모르나 매우 위험한 상황을 겪어야 할 것이고 한반도는 심지어 국지적 분쟁을 경험하거나 사실상의 분쟁지역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세 번째 가능성은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을 포기하고 싱가폴 합의를 무효화하면서 북-중-러 3국 연대를 통한 생존권과 발전권을 주장하고 나서는 경우이다. 북한이 중국, 러시아와의 경제 관계를 중심으로 그럭저럭 살아가기(muddling through)라는 길을 선택하는 경우이다. 북한경제가 어렵더라도 중국과 러시아와의 협력이 보장된다면 소국경제가 생존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 경우 한국은 평화라는 대가는 유지하겠지만 통일이라는 미래는 사실상 포기하는 길을 가야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2020년 신년사에서 어떤 연설을 할 것인가에 따라 위 3가지 중 어떤 미래가 펼쳐질 것인지가 결정될 것이다. 우리로서는 미국과 북한이 협상탁에 다시 들어서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도쿄 올림픽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 지금 당장이라도 ‘올림픽 휴전 선언’을 통해 3월과 8월의 한미합동군사연습의 유예를 선언하고 협상의 장을 마련하는 길로 가야 한다. 6.30 회동을 만든 끈기라면 다시 협상의 길을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평화의 길이 유일한 선택이라면 좌고우면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