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단풍이 한창일 때, ‘굳이 멀리까지 가야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집에서 가까운 산을 찾다가 우연이 눈에 띈 절이 용인 용덕사입니다.
단풍 숲을 보고자 하면서 찾아낸 산이 제법 높은 해발 400m에 이르고, 이런 산으로 둘러싸인 용덕사도 볼 수 있다는 잇속을 챙기고자한 때문입니다.

 

용덕사에 주차장이 있음을 파악하였지만 서툰 솜씨로 샛길을 오르기도 싫고, 부처님을 뵙자고 가는 길에 편함만을 찾는 것도 싫어서 지방도 옆에 세워놓고 걸어 올랐습니다.

 

오르는 길은 아스팔트로 포장되었고 차 한 대가 충분히 다닐 정도로 넓지만 경사가 상당히 급합니다. 때문에 이런 길에서 내려오는 차와 만나 쩔쩔맨 경험이 있으신 분은 걸어서 올라가시면, 길가에 늘어선 키 큰 소나무의 품위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차만큼 빠르고 편히 오를 수 없어도, 걷는 것으로 얻게 된 가을 색깔을 마음껏 가질 여유가 생겨나는 것에 만족하였습니다.
가파른 길을 오르는 것을 고행이라 할 수 없지만, 몸과 마음을 편케 하고 욕망에 집착하는 것으로는 도(道)에 이를 수 없다고 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잠깐 사이에 일주문에 도착하였습니다.

 

 

 

 일주문은 부처님 나라에 들어가는 문입니다. 부처님 나라는 사람이 살아가는 진리는 물론 우주를 꿰뚫은 부처님의 깨달음과 가르침이 가득한 곳입니다.
그런 부처님의 나라를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음에 허우적거리던 중생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들어가서는 안 되겠기에, 쌓이고 쌓인 탐진치와 번뇌를 털어내고 들어서라는 문입니다. 따라서 일주문을 드나들 때에는 참회하는 마음과 불법을 깨치겠다는 지극한 마음을 담아 참배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절이 산 깊은 곳에 세워졌다보니 일주문 바로 옆에 아스팔트로 포장도로가 놓였고, 주차장도 일주문을 한참 지나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차량에서 내려 일주문에서 참배하지 않고 “휙”하니 지나치는 차량을 볼라치면 “저런 행동은 부처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일주문과 천왕문, 금강문을 산문(山門)이라 하는데, 일주문은 산을 들어서는 첫 번째 문이 됩니다. 따라서 첫 번째 문인 일주문에 산 이름을 쓰는 것은 당신이 도달한 곳은 무슨 산이며 또 산에 들어서는 출입문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무례하게 들어서지 말고 ‘진정을 다해 예(禮)를 취하라’하는 무언의 건축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두 개의 굵은 원기둥 위에 맞배지붕을 올린 일주문은 다포의 포작으로 화려하게 꾸몄고, 좌우 측면을 보호할 수 있도록 설치한 둥근 형태의 풍판에는 불법승 삼보를 상징하는 세 개의 원을 금색으로 그려 놓았습니다.
기둥에 붙이는 벽선은 기둥에 붙어서 올라가지 않고, 곡선으로 휘어져 창방 뺄목을 받쳤습니다. 앞쪽과 뒤쪽으로 돌출한 창방 뺄목의 앞뒤 네 곳에는 용두를 장식하였는데, 용의 수염을 굵은 철사로 말아 올려서 용수철이라는 말을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수미산 아래 이곳, 남섬부주는 성욕 ․ 식욕 ․ 수면욕 등의 욕망을 가진 생물들이 살아가는 욕계입니다. 욕계는 가장 낮은 위치에 지옥이 있고, 위로 올라가면서 아귀 ․ 축생 ․ 아수라 ․ 인간이 있으며, 인간 위로는 천인(天人)이 살아가는 사왕천(四王天) ․ 도리천 ․ 야마천 ․ 도솔천 ․ 화락천 ․ 타화자재천이 층층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불교의 우주관입니다.
그리고 사왕천에 살고 있는 네 명의 왕(四天王)이 바로 위 도리천의 왕인 제석천의 명을 받아 동서남북에 자리하여, 불법 수호와 사부대중의 보호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제석천과 사천왕의 모습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문을 펴시는 곳에 제자들과 여러 보살에 뒤이어 참석하고 있음이 경전에 쓰여 있는데, 이것으로 제석천과 사천왕이 부처님과 불자들을 보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천왕에게 이렇게 큰 임무가 부여된 것은 도리천에서 행하신 부처님의 법문을 듣다가 생겨난 의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네 명의 사천왕은 ‘지장보살이 대원(大願)을 세웠음에도 제도하는 일이 왜 끝나지 않는가? ’하는 궁금함을 부처님께 사룁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남섬부주에서 살아가는 중생을 위해 지장보살이 백천 방편으로 교화하건만, 이 모든 중생들이 먼저 지은 업보로 또 다시 악도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사람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키어서 이 모든 중생이 또 다른 중생을 미혹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부촉을 하시고, 사천왕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는 중생들이 겪는 가엾음에 눈물을 흘려 비탄해 합니다.

 

불법과 사찰을 수호하고 불자들을 보호함으로써 청정한 도량을 이루게 해주십사하는 기원을 담아 사찰 입구에 전각을 짓는데, 그 전각이 바로 천왕문입니다.
천왕문에 들어서면 눈을 부릅떠 잔뜩 화난 표정으로 악귀를 깔고 앉은 사천왕의 형상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근처에 얼씬거리는 잡귀들에게 두려움을 주어 사찰 주위에 얼씬 못하게 하고, 마음 약한 불자들에게 붙어있는 나쁜 기운을 떼어주기 위함입니다. 사천왕상은 나무나 흙으로 조성한 위에 단청을 입하는 때문에 표정과 취한 자세는 무섭고 위압적이어도, 복장과 갑옷에 입힌 다양한 색상이 조화를 이루어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천왕문은 일주문을 지난 다음에 만나는 문인데, 용덕사는 천왕문을 따로 두는 대신에 사천왕을 일주문 기둥에 단청으로 그려놓았습니다.
붉은 팥색으로 칠해진 굵은 기둥에 그려진 사천왕은 이제까지 보아왔던 법당 후불탱화에서의 느꼈던 것보다 단정한 힘이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신중탱화가 걸려있는 방향이 정면이 아닌 측면인 탓에 어두웠기 때문에 제대로 못 보았을 수도 있고, 신중탱화에 등장하는 신중들이 너무 많았던 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출연진이 많으면 중심에서 벗어난 자리에는 눈이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늘 위에 살고 있다는 듯 모두 상서로운 구름을 탔으며, 천의는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습니다. 복장은 장대한 몸에 어깨며 배, 허벅지와 종아리까지 덮는 갑옷이 신장으로서의 강건함과 위엄을 보여줍니다. 지국천왕만 유일하게 복갑 위에 귀면을 덧대어 멋을 냈습니다.
-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