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연재 > 이학종의 ‘불전으로 읽는 붓다 일대기

<이학종의 ‘불전으로 읽는’ 붓다 일대기>⑪

이학종 | urubella@naver.com | 2019-11-29 (금) 14:15

비상비비상처정까지 도달했지만…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는 각기 다른 처소에서 수행했지만 같은 명상 기법을 따르고 있었다. 싯다르타도 이런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싯다르타는 웃다까 라마뿟따가 이룬 경지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특히 알라라 깔라마가 성취한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직접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웃다까 라마뿟따의 수행처는 알라라 깔라마의 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라자가하 인근에 위치해 있었다.
라자가하는 빤다와, 깃자꾸따, 웨바라, 이시기리, 웨뿔라 등 다섯 개의 산으로 둘러싸인 산성도시였다. 빔비사라 왕의 선대 왕들이 이곳에서 대국을 형성했으므로 이 도시의 이름은 ‘왕의 도시’라는 의미의 라자가하가 되었다. 라자가하에는 9만 호에 이르는 가옥이 들어서 있었다. 신흥강국의 수도답게 라자가하는 늘 진보적이고 자유로우며 혁신적인 사상가들로 북적였다. 그들은 바라문들의 정전인 <베다>의 전통과 사상에 의문과 이의를 제기하면서 새로운 사상과 신념을 내세우고 있었다. 수행체험과 자유로운 사상으로 무장한 이들은 사라마나, 즉 사문이라고 불렸다. 이들을 존중하고 환대하는 마가다 국의 젊은 왕 빔비사라 덕분에 라자가하는 사문들의 도시가 되었다. 사문들 가운데 뿌라나 까싸빠, 빠꾸다 깟짜나, 아지따 께사깜발리, 막칼리 고살라, 산자야 벨라타뿟따, 니간타 나라뿟따, 웃다까 라마뿟따가 많은 대중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라자가하에 도착해 있던 싯다르타는 라자가하 교외의 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라마뿟따 촌에 이르렀다. 예전에 이곳에는 라마라 불리는 요가의 대가가 살고 있었고, 그 뒤를 세습하여 아들인 웃다까 라마뿟따가 많은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그는 라자가하 인근에서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 명상의 대가로 존경받고 있었다. 명성에 걸맞게 그의 초막에는 무려 7백 명이 넘는 제자들이 모여 수련 중이었다. 싯다르타가 웃다까 라마뿟따를 만나 예를 차린 후 말했다.
 
“존자여, 라마뿟따여. 저는 당신의 가르침과 계율에 따라 청정한 삶을 살고자 원합니다.” 
 
제자로 받아줄 것을 청하는 싯다르타에 웃다까 라마뿟따가 흔쾌히 수락하며 말했다.
 
“고따마여, 좋습니다. 그대가 이곳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겠소. 나는 집중된 명상수행으로 거친 생각을 단절하여 순수의식에 도달하는 수행을 가르치고 있소. 나의 가르침은 슬기로운 자라면 오래지 않아서 스승과 동일한 세계를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할 수 있는 그러한 가르침이오.”
 
웃다까 라마뿟따는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싯다르타를 제자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 내심 기뻤다. 그는 정성껏 자신이 닦아온 명상 기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싯다르타는 그리 오래지 않아서 웃다까 라마뿟따가 가르치는 수행법이 알라라 깔라마의 가르침에서 한 단계 넘어선 것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같은 것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알라라 깔라마가 무(無)의 경지(무소유처)를 성취하고 더 이상의 수행을 중단했음에 비해 웃다까 라마뿟따는 스스로 ‘의식도 비의식도 아닌 경지(비상비비상처)’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이 경지는 결국 알라라 깔라마가 시초의 두 단계를 넘어서기 위해 채택했던 것과 같은 원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즉, 알라라 깔라마가 허공과 의식을 초월하여 무소유처에 이르기 위해 사용한 방법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다만, 알라라 깔라마가 무소유처를 최종의 절대적 경지로 인정했음에 반해, 웃다까 라마뿟따는 한 발 더 나아가 그것이 실체적인 것인가를 밝히기 위해 무소유처 자체를 분석했다. 그런데 거기서 어떠한 실체도 발견할 수 없었으므로 웃다까 라마뿟따는 그것을 넘어 명상의 궁극적 경지는 어떤 형태의 의식도 아니요, 동시에 비의식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웃다까 라마뿟따는 이 경지, 즉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모든 일상적인 지식을 초월한 절대적인 경지로 간주했다.
다만 호흡법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알라라 깔라마는 숨을 들이쉬고 멈추고 내쉬는 비율을 엇비슷하게 조율하고 있는 반면, 웃다까 라마뿟따는 숨을 멈추는 꿈바까(Kumbhaka, 멈춤. 호흡을 정지하는 행위)의 비율을 취하고 있었다. 즉 호흡의 단계를 숨을 마심, 숨을 참음, 숨을 내쉼의 세 단계로 나눌 때, 알라라 깔라마의 명상법은 비율을 균등하게 한 반면, 웃다까 라마뿟따의 명상기법에서는 숨을 멈추는 시간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웃다까 라마뿟따 선인의 지도를 받으며 싯다르타는 생각했다.
‘웃다까 라마뿟따의 수행법도 알라라 깔라마와 마찬가지로 궁극적인 경지가 아니다. 그 역시 염오(厭惡)로 인도하지 못하고, 탐욕의 빛바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이 법 역시 일시적으로 높은 황홀경을 누리게 할 수는 있으나 평상시까지 대자유가 이어지지 않는다. 한순간 마음을 풀면 다시 욕망과 불안과 고통에 속박될 뿐이니 이것 역시 내가 찾는 완전한 의지처가 아니다.’
싯다르타는 웃다까 라마뿟따의 명상법도 괴로움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벗어날 뿐이라는 한계에 실망하고 다시 그의 수행처를 떠나기로 했다. 웃다까 라마뿟따는 자신과 같은 경지에 오른 싯다르타에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며 자신의 후계자가 되어 함께 제자들을 지도하자고 제안했지만 완전한 의지처를 구하고자 하는 제자의 뜻을 만류할 수 없었다. 그 역시 싯다르타가 나중에 궁극의 길을 찾게 되면 자신을 제도해줄 것을 당부하며 기꺼이 싯다르타를 배웅했다.
싯다르타가 라마뿟따촌을 떠날 때 그곳에서 수행하던 뛰어난 다섯 수행자들이 싯다르타를 따라 나섰다. 그들은 싯다르타의 수행력을 지켜보면서 그의 비범함에 감탄했던 수행자들이었다. 그들은 이후의 수행을 싯다르타와 함께 하기로 결의했던 것이다.
 
우루벨라로 향하다
 
웃다까 라마뿟따와 작별을 한 싯다르타는 고행자들의 수행처로 널리 알려진 우루벨라 마을(고행촌)에 도착해 한동안 마을 주변을 떠돌았다. 사람들은 이곳을 신성한 땅으로 불렀다. 2만여 명의 수행자들이 이곳에 모여 수행하고 있었으니, 신성한 땅이라고 불릴 만 했다. 우루벨라는 신흥 강국이었던 마가다 국의 영토였다. 이곳에는 가지각색의 종교적 교의를 가르치고 수행하는 방랑수행자들이 많았다. 싯다르타는 이곳에서 새로운 수행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갖가지 수행법 가운데 가장 인기가 있고 대중의 인정을 받는 것은 고행이었다. 육체적 고행, 즉 극단적인 형태의 자기 억제를 감내하는 수행자는 많은 이들로부터 각별한 존경을 받았다. 싯다르타는 생각했다.
‘그동안 나는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의 지도 아래에서 명상기법을 익혔다. 그러나 아직까지 내가 경험한 해방감이란 명상 중에 있을 때나 그 후 잠깐 동안에 그치고 말았다. 명상에서 깨어나면 곧바로 갖가지 욕망이 다시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어떻게 해야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저들이 닦는 극단적인 금욕수행에 무언가 있을 지도 모른다. 좋은 음식으로 육체를 살찌우고 감각적 쾌락을 충족시키면서 어떻게 정신을 제어할 수 있겠느냐는 저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 어떻게 물에 젖은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방자한 감각에 길들여진 육체는 마치 젖은 나무토막과 같다. 나는 모든 욕망의 근원인 이 육체를 마른 나뭇가지처럼 만들고 말리라.’
우루벨라를 배회하는 동안 싯다르타는 네란자라 강가에 펼쳐진 넓은 평원의 끝자락에 자리한 작은 산을 지나게 되었다. 싯다르타는 강가의 나무 그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기슭 여기저기에 고행자들의 오두막들이 옹종망종 들어서 있었다. 몇 시간 뒤 고행자들은 각기 고행을 닦고 있던 오두막에서 강으로 내려와 몸을 씻고 시원한 곳에 모여 앉아 있었다.
‘기분 좋은 숲이다. 맑은 물이 햇살에 반짝이며 흐르는 강이 있고 가까이에 탁발할 수 있는 마을이 있다. 주변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고 과일나무가 무성하며 마을사람들은 단아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이곳이야말로 정진하고자 하는 수행자에게는 최고의 장소인 것 같다. 이제부터 나는 이곳에서 힘든 고행을 하리라. 최상의 고행과 난행을 직접 경험해보리라. 먼저 욕망의 근원인 이 육체부터 제압해보리라.’
한동안 상념에 빠져 있던 싯다르타는 몇몇 고행자들이 목욕을 하기 위해 모여 있는 강가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들은 웃다까 라마뿟따의 처소에서 함께 수행하다가 싯다르타를 따라 우루벨라로 온 그 수행자들이었다. 이들은 마을 주변을 한동안 배회했던 싯다르타보다 조금 먼저 이곳을 수행처로 정해 고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사문들이여, 수행하기에 아주 좋은 자리를 잡았군요. 이곳은 수행을 위한 모든 조건이 잘 갖춰져 있는 장소로 보입니다.”
 
그들의 대화에 끼기 위해 싯다르타가 말을 걸었다. 그들 가운데 한 고행자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우리가 하고 있는 고행 수행에 딱 맞는 수행처입니다. 강에서 가까워 늘 물이 넉넉합니다. 들판에는 후한 농가가 있어 탁발도 그리 어렵지 않아요.”
 
한 고행자가 말했다. 그는 웃다까 라마뿟따의 처소에서 싯다르타와 몇 차례 스쳐지나간 적이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 가까이 대하기는 처음이었다. 싯다르타가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사끼야 족 출신으로 싯다르타라고 합니다. 인간고를 벗어날 길을 찾고 있습니다. 무상과 생사고뇌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릴 방법을 찾기 위해 출가했습니다. 어딘가 그 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 온 것도 그 길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아, 그런가요? 그것은 우리가 이 고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오. 괜찮다면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정진해 보지 않겠소?”
 
한 고행자가 동의를 구하려는 듯 다른 동료들을 둘러보며 싯다르타를 향해 말했다. 그들은 모두 찬성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싯다르타는 기뻤다. 사실 고행은 생각뿐이었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그로서는 고행의 동료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입니다. 나를 고행의 동료로 받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싯다르타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싯다르타와 함께 이곳에서 고행을 닦을 동료들은 웃다까 라마뿟따의 수행처에서부터 함께 한 다섯 고행자, 꼰단냐, 밧디야, 왑빠, 마하나마, 그리고 아싸지였다.
 
6년 고행
 
늦은 아침 탁발을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차례로 돌아가며 탁발을 나가는 것이 함께 사는 고행자들의 관례였다. 무엇이 되었건 한 사람이 얻어온 음식을 동료들이 함께 나눠 먹었다. 그들에게는 많은 음식이 필요하지 않았다. 육체적 고행을 닦는 그들로서는 소량의 음식이면 충분했다. 혼자 얻어온 것으로 여섯 사람이 나눠먹고도 남았다.
탁발음식은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하루 한 끼에 불과하거나 며칠에 한 번 먹기도 했다. 싯다르타는 동료 수행자들로부터 탁발하는 법, 수행하는 법을 배웠다. 또한 앞으로 닦아나갈 고행의 기본적인 원리에 대해서도 배웠다. 얼마 후 그는 산자락 한 구석 외진 곳으로 들어가 주변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았다. 본젹적으로 고행을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먼저 모든 욕망의 근원인 이 육체를 제어하고 조복(調伏)받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이미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에게서 명상을 통해 감각을 제어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러나 그것은 욕망의 뿌리를 완전하게 뽑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고행, 어디서부터, 무엇부터 시작할까. 머리? 그렇다 머리는 모든 행위의 본거지이니까 머리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어떻게 이 머리를 제압할 수 있을까? 눈알을 빼내거나 귀, 코를 가시로 찌르지 않고 머리를 괴롭힐 방법이 있을까?’

잠시 고민을 하던 싯다르타는 아랫니와 윗니를 맞닿게 모으고 혀로 입천장을 마음을 억제하며 눌러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점점 세기를 더해 겨드랑이에서 땀이 흐를 때까지 지속시켰다. 그는 똑같은 방식으로 계속해서 고통을 늘려나갔다. 점차 턱과 목, 그리고 귀가 욱신욱신 쑤셔왔다. 그러나 거기서 생겨나는 고통이 마음을 압도하지는 못했다.
싯다르타는 압박 부위를 목 아래로 옮겼다. 호흡을 억제하고, 입과 코를 통한 호흡량을 줄여나가는 훈련을 계속했다. 입과 코의 호흡을 막자 귀로 숨이 들락날락거렸다. 그렇게 하기를 계속하자 나중에는 귓속에서 격렬한 돌풍이 이는 듯했다. 대장간의 풀무에서 나오는 듯한 거센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귀의 호흡을 막자 누군가 날카로운 칼끝으로 정수리를 후벼 짓이기는 것 같은 통증이 머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또한 질긴 가죽끈으로 머리를 휘감는 듯한 고통이 다가왔다. 그 숨을 하복부로 옮겨가니 배를 가르는 듯한 고통이 따라왔다. 이 호흡마저 막자 이번에는 마치 힘 센 장사들이 힘 약한 사람의 팔을 잡아 잿불 속으로 집어넣어 불에 온 몸이 타는 듯한 괴로움이 밀려왔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참아내기 힘든 고통이었다. 그래도 싯다르타는 고행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고행의 강도는 점점 도를 더해갈 뿐이었다. 고통의 크기도 고행의 강도에 비례해 커졌다. 그러나 욕망의 근원을 뿌리째 뽑아버리겠다는 싯다르타의 열정은 그토록 격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식을 줄 몰랐다.
싯다르타의 고행을 지켜본 사람들이 ‘사람이 죽었다’고 착각할 정도로,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행을 거듭했지만 마음의 평안은 얻어지지 않았다. 싯다르타는 다음 단계로 음식을 줄여나가는 수행, 즉 절식(絶食)에 의한 고행, 감식(減食)에 의한 고행을 감행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하루에 먹는 음식의 양은 모두 합쳐봐야 겨우 한 줌에 지나지 않았다. 몸은 극도로 야위어 그가 앉았던 자리에는 마치 낙타의 발자국 같은 흔적이 남았다. 척추는 염주 가닥처럼 등줄기를 따라 드러났다. 갈비뼈는 썩은 이엉 사이로 드러난 폐가의 서까래처럼 튀어나왔다. 움푹 들어간 눈두덩이 속에서 빛나는 눈빛은 마치 깊은 우물 속에서 반짝이는 물처럼 보였다. 머리 가죽은 설익은 조롱박처럼 말라비틀어졌다. 벗겨진 살가죽은 햇볕과 바람에 드러나 헝겊처럼 말라붙었다. 마치 띤두까 나무의 그루터기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먼지와 더러움이 쌓여서 나무 조각들이 떨어지듯이 그의 몸에도 먼지와 때가 쌓여서 떨어졌다. 뱃가죽에 손을 대면 등뼈가 만져졌다. 극도로 야위자 위가 척추에 매달린 것처럼 느껴졌다. 팔다리를 만지면 털이 바스러져 떨어졌다. 멀리 지평선에 있던 목동이 다가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처음 보는 몰골에 소스라치게 놀라 미친 사람처럼 숲과 덤불을 헤치고 줄행랑을 쳤다. 그는 나무껍질로 만든 옷이나 누더기 옷, 거친 삼으로 만든 옷을 입고 다녔다. 추운 건기에도 공터에서 잠을 청했다. 못이 박힌 요에 누웠고, 심지어 자신의 오줌과 똥을 먹기도 했다.
실로 죽음의 문턱을 하루에도 수차례 넘나드는 처절한 고행이었다. 혹독한 고행을 염려한 다섯 도반들이 공양을 권해 보았지만 싯다르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오직 육체에 심한 고통을 가해 육체를 영혼에서 분리시키는 수행을 통해 감각적 쾌락을 조복 받을 수 있는 수행이 고행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태도는 신중했다. 앞으로 갈 때나 뒤로 갈 때에도 항상 마음을 집중하였다. 한 방울의 물속에 있는 생물일지라도 다치지 않기를 자비심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기원했다. 
 바라문들은 그런 싯다르타를 보고 검둥이라고 비웃었다. 철없는 어린 목동들이 다가와 침을 뱉고 오줌을 싸고 흙을 뿌리는 일도 있었다. 게다가 귀에다 나뭇가지를 쑤셔 넣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이미 마음의 평정을 얻었으므로 그들을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았다. 수행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해를 받으면 부득이 수행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싯다르타는 보통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일으키는 울창한 숲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욕망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 들어가면 머리털이 곤두선다는 그런 숲이었다. 서리가 내리는 건기에는 노천에서, 낮에는 숲속에서 지냈고, 뜨거운 계절에는 노천에서, 밤에는 숲속에서 지냈다. 밤에는 춥고 낮에는 타는 듯 더운, 두려움을 일으키는 숲에서 홀로, 모닥불도 없이 지냈다.  
싯다르타는 죽음 직전까지 자신의 몸과 마음을 고통으로 밀어붙였다. 애욕과 혐오, 기갈, 갈망과 애착, 혼침과 수면, 공포, 의혹, 위선과 오만을 조복받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고행을 감행했다. 이제까지 보고 듣지 못했을 정도로 상상을 뛰어넘는 싯다르타의 고행에 동료 고행자들조차 아연실색했다. 동시에 그들은 싯다르타가 하루 빨리 궁극의 목표를 실현하기를 고대하면서 지대한 관심을 갖고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다. 다섯 고행자들은 단 몇 발자국도 뗄 수 없을 만큼 쇠약해진 싯다르타에게 마실 물을 날라다 주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그들은 싯다르타의 몸에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주거나 몸을 씻어주기도 하며 고행을 도왔다.
싯다르타는 고행을 계속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깨달음을 향한 그의 열정은 더해 갔지만 육체는 극도로 쇠약해져만 갔다. 그러나 끝없이 이어지는 고행으로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된 육신은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무려 6년 동안을 싯다르타는 극도의 고행을 지속했다. 그러나 욕망의 근원을 조복 받는 목표는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시시각각 조바심이 밀려왔다. ‘이 길도 아닌 것인가?’ 하는 회의가 밀려왔다. 그랬다. 고행 역시 그가 찾던 궁극적인 해탈의 길은 아니었다. 다만 극심한 고행 중에도 싯다르타의 의식 속에서는 한 줄기 지혜의 안목이 생겨났다.
‘나는 이런 극심한 고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초월하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知)와 견(見)의 특별함을, 즉 탁월한 지혜와 통찰력을 얻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해온 극심한 고행 또한 궁극의 길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 현악기의 줄을 너무 팽팽하게 당기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줄을 너무 팽팽히 당기면 끊어지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너무 느슨하게 해서도 안 된다. 너무 느슨하면 연주는 불가능해질 것이니…. 아, 깨달음을 얻을 다른 길이 없을까? 그 길은 정녕 없는 것인가!’
 
“사람이 죽었다!”
 
소를 몰고 가던 소년 목동이 기진맥진해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싯다르타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사실 싯다르타의 널브러진 모습은 영락없는 한 구의 시신과 다르지 않았다. 사실 싯다르타는 깨달음은커녕 오히려 수행의 길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판명된 고행과 단식을 중단하기로 결심한 후 목욕을 하기위해 네란자라 강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채 강가에 이르지 못한 채 도중에 그만 혼절하여 쓰러졌던 것이다. 소년은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가족에게 한 고행자가 죽어 쓰러져 있다고 알렸다. 목동의 집은 신심이 깊고, 헌신적으로 고행자를 돕는 가정이었다. 싯다르타가 쓰러져 있는 곳까지 달려온 목동의 가족들은 먼저 쓰러진 수행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자세히 살폈다. 아직 목숨이 미세하게 붙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이들은 서둘러 집에서 가져온 따뜻한 우유를 싯다르타의 입에 부어 넣으며 그의 팔다리를 주물렀다. 목동 가족의 정성어린 보살핌 속에서 싯다르타는 조금씩 기운을 회복했다. 그들은 날마다 계속해서 싯다르타에게 다른 음식과 우유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큰 기대와 경외의 눈으로 싯다르타를 지켜보던 다섯 고행자들은 그가 더 이상의 고행을 포기하고 목동 가족이 제공하는 우유와 음식을 받아먹는 것에 크게 실망했다. 비록 자신들은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싯다르타만큼은 원하는 경지에 도달하기를 바랐던 그들의 마음은 이내 배신감으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큰 실망을 이기지 못한 그들은 급기야 우루벨라를 떠났다.
 
“싯다르타는 고행을 포기했다. 그는 다시 사치스럽게 사는 길로 접어들었다. 정진을 포기하고 윤택한 삶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그에게 큰 기대를 했으나 그는 이제 타락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우리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물러 타락해가는 그의 모습을 도저히 지켜볼 수가 없어 이곳을 떠난다. 다른 수행처, 바라나시로 가야겠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그들의 태도에 크게 개의하지 않았다. 고행이 생로병사 등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수행법이라는 것을 안 이상 그것에 어떤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
‘혹독하게 고행하는 바라문이나 방랑수행자들 가운데 나만큼 치열하게 고행수행을 실행에 옮긴 수행자는 아직 없었다. 또 미래의 어떠한 사문이나 바라문이 어떠한 격심한 고통을 받게 되더라도 내가 겪은 고통만큼 극심한 경험은 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지난 6년 동안 실행해온 고행은 실로 최고의 수준이며 앞으로도 그 이상의 고통을 체험하는 수행자는 없다. 실로 나의 고행은 나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떠나간 다섯 도반들의 수행을 크게 능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면서도 나는 궁극적 목표인 해탈의 희미한 그림자조차도 보지 못했다. 초월적인 지혜는커녕 어떤 통찰력도 얻지 못했다. 이것은 바른 길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졌다. 몸을 괴롭히는 것으로, 또 쇠약한 육체로는 해탈이 불가능하다. 균형 잃은 마음, 목마름과 굶주림으로 지쳐버린 육체, 흐릿하고 몽롱한 정신. 이런 부실한 몸과 정신 상태로 어떻게 인간의 월등한 경지를 성취하겠는가. 그나마 비교적 탁월한 것은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 같은 은둔자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들이 이뤄낸 경지의 그림자마저 추호의 미련도 없이 놓아버렸다. 나는 이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깨달음에 이르는 다른 길(道)이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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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다행 2020-01-12 00:31:08
답변 삭제  
그래, 깨달음은 고요한 선정에 드는것과는 무관하다.
잠시 고통을 잊고 평정심을 누릴수는 있으나, 선정에서 벗어나면 욕망이 그대로 달려 드니 말이다.
© 미디어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