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ㆍ문화재 > 강소연 교수의 석가모니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불교미술> 여행

강소연 교수의 석가모니 발자취를 따라가는〈불교미술〉여행13

강소연 | | 2019-11-28 (목) 05:57

꽃만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꽃을 피운다. 과연 이번 생生에 우리도 ‘깨달음의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도판01)(좌) (도판02)(우)

(도판03)
(도판01) 붓다와 ‘깨달음’의 연꽃. (도판02) 보살(Bodhisattva), 간다라 후기, 프랑스 기메 박물관 소장. (도판03) 붓다 성도상, 2-3세기, 간다라, 편암, 파키스탄 페샤와르 박물관 소장.
 
 
<다메크 스투파>를 통해보는 ‘깨달음’의 조형 원리〔2〕
 
 1. ‘초전법륜’의 핵심 내용: ‘사성제’란 무엇인가?
 
  석가모니 붓다는 보드가야에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신 후, 그 내용(다르마, 法)을 설說하기 위해 이곳 사르나트(녹야원)로 오신다. 그리고 사르나트에 거주하는 다섯 비구에게 첫 설법을 하시는데, 이것을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한다.〔초전법륜: ‘처음으로 가르침(법)의 수레바퀴를 굴리시다’라는 뜻. 산스크리트 dharmacakra-pravartana,  팔리어 dhamma-cakka-pavattana〕 이는 석가모니 붓다의 삶의 여정 상,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불교라는 종교의 시발점이 되는 역사적 순간이다. 그렇다면, 깨달음의 내용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 사성제(4성제四聖諦)이다.(앞의 <연재12> 글에서 상세히 기술한 바 있으나, 여기서는 보다 간단히 정리한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4성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넷은 어떤 것인가?
괴로움이라는 진리(苦諦), 괴로움의 일어남이라는 진리(集諦),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진리(滅諦),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진리(道諦)이다.
 
어떤 것이 괴로움이라는 진리인가?
태어나는 것도, 늙는 것도, 병드는 것도, 죽는 것도 괴로움이다. 근심하고 탄식하고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 그리고 슬픔과 절망도 괴로움이다. 싫어하는 대상과 만나는 것, 좋아하는 대상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간단히 말해, 다섯 가지 덩어리(또는 무더기)인 오온(5蘊 또는 5趣蘊) 자체가 괴로움이다.
 
어떤 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라는 진리인가?
그것은 바로 갈애이니, 이는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느낌과 탐욕을 끊임없이 일으켜 항상 집착하는 것이다. 즉,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가 그것이다.
 
어떤 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진리인가?
그것은 바로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 버림, 놓아버림, 벗어남, 집착 없음이다.
 
어떤 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진리인가?
이러한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수행의 성스러운 진리가 있으니, 그것은 8정도(正道)이다. 바른 견해(正見) · 바른 사유(正思惟) · 바른게 말(正語) · 바른 행위(正業) · 바른 생계(正命) · 바른 정진(正精進) · 바른 알아차림(正念) · 바른 삼매(正定)이다. 이것을 4성제라고 한다.”
         -「초전법륜경」『앙굿다라 니까야』
 
  우리가 행복할 수 없는 이유
  이상, 초전법륜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존재는 ‘고苦’이다〔고성제〕. 왜 존재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가. 그 원인은 ‘갈애’이다〔집성제〕. 무명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갈애는 존재가 끊임없이 윤회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갈애를 원인으로 생기게 된 ‘존재’는 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가? 그 이유는 갈애의 속성이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갈애의 성향 자체가 ‘불만족’을 자성自性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존재의 양상은 ‘불만족’이다. 갈애(또는 욕망)는 기본적으로 불만족이라는 속성을 유지해야 하므로, 채우래야 채울 수 없는 대상을 계속해서 찾는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대상’이 문제가 아니라, ‘나’라는 ‘갈애’가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같은 갈애를 『붓다차리타』에서는 ‘오욕자재천왕五欲自在天王’이라고 표현한다. 석가모니 붓다와 끝까지 싸움을 벌였던 마구니의 정체이다. 중생이 가지는 다섯 가지 대표적 욕망(五欲: 식욕, 성욕, 수면욕, 재물욕, 명예욕)이 스스로 존재(自在)하며, 우리를 옭아매고 있다. 갈애 또는 욕망은, 나의 가정이 파멸되건, 내 몸이 상하건 상관 않고, 스스로의 속성인 불만족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불타오른다. 이와 반대로, (오욕이 자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觀’이 ‘자재自在’하면 오욕이 제압된다. 그래서 반야심경에는 ‘관자재觀自在’보살이 반야의 힘으로 오온五蘊의 작용을 간파하여, 일체의 고통을 타파하는 내용이 나온다.(반야심경 앞부분 참조: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오온이란, 갈애의 덩어리들이다.    
 
  인과(因果)는 과학이다!
  불교는 원인을 간파하는 종교이다. 존재의 원리로서 인과법因果法을 말하는데, 인과因果는 철칙이자 과학이다. 그래서 존재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그 이유를 보았다. 그러면, 이 ‘갈애’를 어떻게 없앨 것인가. 갈애를 없애면 그 과보로서의 존재를 없앨 수 있다〔멸성제〕. 즉, 윤회를 끊을 수 있다. 그 방법은 ‘팔정도八正道’인데, 이는 중도中道를 보는 것이다〔도성제〕. 중도란, ‘연기緣起’하는 실제의 존재의 현상을 통찰해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연기’를 볼 수 있는가? 어떻게 이것과 저것이 만나서 연기되는 모습을, 오온이 전개 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중생의 눈에는 모두 덩어리로 보이는 데 말이다.
 
  석가모니 붓다의 실참 수행법: ‘아나파나 삿띠’ 호흡관찰법 
  팔정도 안에 그 답이 함께 제시되어 있다. 바른 알아차림인 ‘정념正念’과 바른 집중(또는 삼매)인 ‘정정正定’이다. 이 두 가지의 균형을 맞추어 물질을 꿰뚫어보는 힘을 키우면 된다. 정념에 대해서는『대념처경大念處經』에 구체적인 대상과 수행방법이 제세되어 있다. 이는 사염처四念處를 닦는 것으로, 몸(身) · 느낌(受) · 마음(心) · 현상(法)을 매 순간 알아차려서 거기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멸을 끊임없이 통찰하는 수행이다. 정념의 ‘념念’자를 보면 ‘지금(今)의 마음(心)을 보다’라는 뜻으로, 지금의 현상(法)을 보는 것을 가리킨다. 현상은 ‘연기’로 나타난다. 그래서 ‘연기’를 보는 것을 정념이라고 한다. 또 바른 집중(또는 삼매)는 정정이라고 하는데, 이는 사선정으로 구체화된다. 제1선인 초선은 애욕을 떠남으로써 기쁨과 안락이 있는 상태이고, 제2선은 마음이 고요하고 한곳에 집중됨으로써 기쁨과 안락이 있는 상태이다. 제3선은 평온과 알아차리기와 분명한 앎을 지니고 안락에 머무는 상태이고, 제4선은 평온과 알아차리기로 청정해진 상태이다.
  사실, 석가모니 붓다는 출가하자마자 이미 두 명(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미풋타)의 스승님을 만나, 높은 삼매의 경지인 무소유처無所有處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까지 단숨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는 불완전한 경지임을 직감하고 미련 없이 떠나, 6년간 고행 수행을 시도한다. 하지만, 고행 수행도 답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기존의 어느 수행이건 ‘통찰지’인 ‘혜 慧’가 없음을 탄식한다.(이에 관해서는 앞 <연재6>에 상세 기재, 참조) 그렇다면, 석가모니 붓다가 발견한, ‘정념’과 ‘정정’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방법은 무엇일까? 즉, ‘위빠사나’(연기하는 현상을 보는 것)와 ‘사마타’(연기하는 현상을 보기 위해서는 고요한 삼매의 힘이 필수이다)를 동시에 계발하는, 석가모니 붓다만의 신출한 수행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붓다의 호흡관찰법 ‘아나파나 삿띠’이다. 여기서 그 위대한 실참법이 설해진 『출입식경出入息經』이 등장한다.
  이상이 바로 “붓다께서 바라니시의 사르나트(녹야원)에서 위없는 법륜을 굴리시고, 이 세상 그 누구도 이것을 멈추게 할 수 없다”라는 내용의 핵심이다.
 

  2. 깨달음의 조형화: 우주의 연꽃이 열리다!
 
 “그 순간에 범천의 세상에 이르기까지 그 소리는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 만 개의 세계는 흔들렸고 강하게 흔들렸고 요동쳤다. 측량할 수 없는 광휘로운 빛이 나타났으니 그것은 신들의 광채를 능가했다.”
 -「초전법륜경」
 

(도판04)(좌)<다메크 스투파> (도판05)(우)<다메크 스투파>는 연꽃이 피고 거기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형상이다.

(도판06)<다메크 스투파>의 기단부. 8정도를 상징하는 ‘8개의 연꽃잎’이 둘러있다.
 
(도판07)<다메크 스투파>의 기단부 도안(1878년 실측 자료)
 
  초전법륜, 설법의 순간은 세상의 무명無明이 걷히는 순간이다. 참으로 역사적인 순간이다. 무명의 마음에 갇혀 있던 인류가 스스로의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비법이 공개된 이 장소에는, 그것을 기리기 위해 <다메크 스투파>가 세워졌다. <다메크 스투파>라는 조형물 그 자체는 이러한 진리의 내용을 고스란히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과연 ‘세상의 무명이 걷히는 순간’은 ‘어떻게 표현(조형화)되는가’ 구체적인 양상을 분석해보자.   
  위의 인용 문구에서 “측량할 수 없는 광휘로운 빛이 나타났다”고 했는데, 이는 <다메크 스투파>의 상단의 원통 기둥이 솟아오른 모습으로 표현되었다.(도판04) 그런데, 이러한 빛이 나타나기 전에 “세상은 강하게 요동쳤다”라고 한다. 궁극의 차크라인 제7차크라가 열릴 때는 나머지 6개의 차크라도 용해되면서, 최고의 진동수의 파장이 일어난다. 즉, 깨달음의 꽃이 열릴 때는 어마어마한 진동이 있다. 그것은 하단의 연꽃이 만개하는 형상으로 표현되었다. <다메크 스투파>의 거대한 원형의 기단부에는 연꽃잎이 8개가 둘러있다.(도판06,07) 닫혀있던 봉오리가 드디어 열려 연꽃이 피어난 것이다.
 

(도판08)(좌) (도판09)(우) <다메크 스투파>와 주변의 작은 스투파

(도판10) 보로부두르(세계 최대 불교 유적)의 불탑, 9세기, 중앙 자바, 인도네시아
 
(도판10-1) 보로부두르의 감실, 감실 안에 불상을 안치했다.

(도판10-2)(좌) 분출하는 빛의 기둥  (도판11)(우)<수하항마상> 부분,《月印釋譜》 朝鮮時代
 
(도판12)(좌) (도판12-1)(우) 깨달음이 열리면서 백회(제7차크라)에서 광채가 분출한다. <수하항마상> 부분, 해인사 팔상탱, 1892년, 견본채색, 164x130.5cm. 해인사 대적광전 소장.
 
 
  <다메크 스투파>의 형상은 마치 삼라만상 속세의 한 가운데에서 거대한 연꽃이 피어나는 모습이다. 그리고 연꽃이 피자, 동시에 거기에서 청정한 깨달음의 빛이 강렬하게 방출된다. 광휘로운 빛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은, 연꽃의 원형 기단부 위에 원통 기둥이 불뚝 솟아오른 것처럼 나타내었다. 물론 이는 시공을 초월해 뻗어나가는 깨달음의 빛이겠다. 건축 당시에는 현재의 높이 보다 훨씬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주변의 작은 스투파들은 <다메크 스투파>의 본 모습이 어떠했는지 말해준다.(도판08,09) 당시의 기술로 최대한 높이 올릴 수 있는 데 까지 올리기 위해 혼 힘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의 불교 사원의 불탑 표현도 유사한 형식을 띄고 있다.(도판10, 10-1, 10-2) 원형의 기단에서 원기둥의 빛이 위로 뻗치고 있다. 입체적인 조형으로 만들 때는 축조 상의 한계로, 저 우주까지 방출하는 빛을 표현이 제한적이지만, 2차원적인 평면인 회화로 그릴 때는, 비교적 자유롭게 광활한 빛의 방출을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 <팔상탱>의 득도 장면을 보면(도판11, 12, 12-1), 항마와 동시에 깨달음을 얻는 순간, 붓다의 몸과 머리에서는 찬란한 광채가 방출되고, 정수리 백회에서는 빛이 분출하여 하늘로 치솟고 있다. 그리고 그 빛 속에는 무수한 불성들이 번파하고 있다.
 
  ‘법신’과 ‘보신’을 나타내는 핵심 도상: ‘빛의 원圓’과 ‘연꽃’
  이같은 형식은 중생이 무명을 타파하고 궁극의 깨달음과 합일된 상태를 조형화한 것으로, 법신은 ‘원圓’의 형상(여의주, 보주, 일원상 등)으로 둥글게 표현하고, 거기서 법계가 연기하는 모습인 (타수용신他受用身으로서의) 보신은 ‘연꽃’으로 표현한다. ‘원’은 ‘깨달음의 빛’ 그 자체이다. ‘원’의 형상은 항상 여여如如한 ‘본래 바탕’의 표현으로, 불교 미술에서 일관되게 사용된다.
 

  3. 초전법륜상의 형식적 특징: ‘빛’과 ‘연꽃’
 
“사르나트(녹야원)의 가람에는 높이가 약 백 여 척(또는 이백 여 척)되는 정사가 하늘 높이 솟아 있고, 그 주위의 일백 단段이나 되는 감실에는 각각 황금의 불상 부조가 있으며, 안쪽에도 열 지어 등신대等身大의 초전법륜상이 안치되어 있다.”
- 현장, 『대당서역기』(7세기)
 

(도판13) <초전법륜상> 473년, 사암, 굽타, 사르나트 출토, 155x87x27cm, 사르나트고고학 박물관
 
 
  7세기에 이곳을 방문했던 현장법사의 기록을 보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다”라고 표현한 정사는 <다메크 스투파>이고, 그 주변의 단段은 “일 백 단”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지금보다 훨씬 규모가 컸고 백 겹이나 되는 중층의 단사로 꾸며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상해보면 어마어마한 규모이고 그 장엄이 찬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단마다 감실이 있고 그 안에 불상이 있다고 하는데, 감실은 현재 남아있는 감실의 모양으로 추정해 보아(도판06), 연꽃잎의 조형을 만들고 그 한 가운데에 공간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겠다. 그리고 중층의 단의 바깥쪽 말고, 안쪽으로는 ‘초전법륜상’이 줄지어 있었다고 한다. 현지의 사르나트고고학 박물관에는 이러한 초전법륜상에 해당하는 작품이 2점 있다. 그 중 한 점이 굽타미술의 정점을 찍는 그 유명한 사르나트 출토 <초전법륜상>(도판13)이다. 양 손은 가슴에 대고 동그랗게 말아 쥔 설법인의 수인을 하고 있다. 진리의 법륜을 굴리고 계신데, 그 내용은 온 몸으로 표현되고 있다. 머리는 법계와 합일되어 혼연 일체가 되어 있다. 범아일체가 된 모습은 ‘육계’와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표현인 ‘광배’로 묘사하였다. 머리와 몸 주변으로 둘러있는 광배의 표현을 보면, 투명한 광채가 뿜어져 나오다가, (광배 주변으로 가면) 생명이 탄생하는 회오리 문양이 식물처럼, 구름처럼, 동물처럼 비유되어 표현되었다. 삼라만상이 탄생하는 것이다.
 

(도판14) <설법상>, 4세기, 간다라, 편암, 119x97x28cm, 키베르 파크툰크, 파키스탄 라호르 박물관 소장
 
 
  사르나트 출토 <초전법륜상>(도판13)은 붓다의 설법상 중에 가장 완성도가 높은 굽타 시대의 걸작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것과 쌍벽을 이루는 간다라 시대 작품이 있는데(도판14), 이 <석가모니 붓다 설법상>에는 깨달음의 요소를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굽타 시대의 <초전법륜상>에서는 육계와 광배의 표현으로 깨달음의 빛과 작용을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반면, 이 작품에서는 보다 상세하게, 미간 차크라(제6차크라)와 백회차크라(제7차크라)가 열릴 때 나타나는 현상을, 머리 위의 화관 모양의 장식과 하단의 천 잎 연화대로 나타내고 있다. 
 

(도판14-1)(좌) (도판14-2)(우) 솟아오른 육계 위에는 특이한 모양의 화관이 있다. 송과체의 표현으로 보이는 이 화관을 두 명의 천신이 머리 위로 들고 있다. 그 위로는 분출하는 형식을 띈 천개가 묘사되었다.
 
(도판14-3) ‘천 잎의 연화대’ 표현
 
(도판15)(좌) (도판15-1)(우) 금동불, 선정인의 수인, 하단 연화대가 중층의 꽃잎으로 강조되었다.  
 
(도판16) (부처님이 앉는) 연화대, 금동, 명明대, 개인 소장.
 

  4. 빛과 연꽃: 깨달음의 조형 원리에 대한 도상해석
 
“연화장 세계는 향수로 된 바다 가운데 커다란 연못이 피어 있듯 본래 법신불法身佛이 천 잎의 연화대에 앉았는데 천 잎이 각각 한 세계가 되고 그곳에 화현한 일천 석가모니불이 계시며 다시 백억 나라에 모두 부처님이 계신 곳이라 한다.”
-『범망경』
 

(도판16) (도판16-1) <범망경 변상도>, 범망경(또는 범망경노사나불설보살심지계품제십), 송宋대, 일본 교토대학 도서관 소장. 천
 
 
  연꽃봉우리와 송과체松果體
  꽃봉오리는 사람의 몸속에도 있다. 그것은 닫혀있다. 사람도 꽃 봉우리를 터뜨려 꽃을 피울 때가 있다. 세세생생 닫혀있던 이 봉오리가 열려 우주의식과 합일되는 순간을 깨달음 또는 득도라고 부른다. 이 봉오리의 모양새가 마치 솔방울의 모양과 닮았다 하여, 서양학자들을 이것을 송과체松果體(솔방울샘 또는 송과샘, 송과선松果腺, Pineal Gland)라고 부른다.(도판17) 사람 뇌의 정중앙에 위치한 이 송과체(또는 송과선)에 대해 서구에서는 이미 17세기부터 지대한 관심을 보여 왔고 이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진행되었다. 동양에서는, 특히 불교에서는, 이를 ‘연꽃 봉오리’로 부른다.
  17세기의 유럽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데카르트(Descartes)는 그의 첫 저서 ‘Treatise of Man(1637)’와 마지막 저서 ‘The Passions of the Soul(1649)’에서 송과샘에 대해 언급하였고, 이 부위를 “영혼이 위치하고 있는 자리(principal seat of the soul)"라고 간주했다. 이는 해부학 및 심리학, 철학 등의 분야에서 특별한 중요성을 가진 것으로 명시되어왔다. 송과체는 그것의 신비한 작용으로 인해, 형이상학적이며, 초자연적인 이론들과 함께 “불가사의한” 분비샘으로써 간주되기도 했다.
 

(도판17) 송과체(송과선, 송과선 차크라, 뇌하수체 샤카 등)
(도판17-19, 23 출처: 『Inner Worlds, Outer Worlds』BBC 다큐멘터리
https://www.youtube.com/watch?v=aXuTt7c3Jkg)
 
(도판18) “바티칸의 중심부에는 예수나 마리아의 거대한 조각상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겠지만, 거대한 솔방울 모양의 상이 있다.” 
 
(도판19) 정수리에서 최종적인 깨달음이 열리는 모습
 
(도판20) 서양학자들이 송과체라고 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연꽃봉오리로 설정하고, 그것이 열릴 때는 천 잎의 연꽃이 열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도판21좌/ 도판21-1우)<석가모니 붓다상> 마투라, 쿠샨 2세기, 사암, 뉴델리국립박물관 소장. 본존불의 머리에는 소용돌이가 휘돌며 솟구치고 있다. 본존불의 우측(정면에서 보아)에는 머리에 송과체가 열리는 모습이 표현된 존상이 있어 깨달음의 모습을 부연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머리에는 솔방울 모양의 타원체가 솟아있고, 그 주변으로 연꽃잎이 피었다. 그리고 다시 그 주변으로 빛이 방사되고 있다. 
 
(도판22좌/ 도판22-1우) 붓다의 머리 표현. 송과체 또는 연꽃잎이 무수한 중층으로 피어나는 형상이다.
 
(도판23) 일곱 개의 차크라마다 해당하는 색, 원리, 관련 된 인체 부분, 소리 등이 있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옴’이란 것은 제7차크라에 해당하는 파장의 소리이다.
 
(도판24좌/ 도판24-1우) 제7차크라는 머리 중앙 가장 윗 부분에 자리한다. (도판 출처: 『차크라 힐링 핸드북』 샤릴라 샤라먼, 보도J. 베진스키 지음, 최여원 옮김, 슈리 크리슈나다스 아쉬람 출판, p.186)
 
 
  제7차크라와 관련 특징들을 요약하면(『차크라 힐링 핸드북』p.187-191 참조), 색은 보라색·금색·흰색인데, 부처님의 색깔을 ‘자마금색紫磨金色’이라고 하는 표현을 들었을 것이다. 이는 제7차크라의 색인데, 자마금이란 자색(보라빛)이 도는 금색이라는 뜻이다. 지상의 최고 고귀한 색으로 간주된다. 그 상징은 ‘천 잎의 연꽃’이다. 크리스트교에서는 이것을 ‘장미의 창’이라고도 부른다. 고딕 양식의 교회 건축의 핵심으로 쓰이는 둥근 창인데, 중세 시대를 풍미한 이 ‘장미의 창’은 중층의 화판으로 구성되어 매우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장미의 창’ 역시 ‘천 잎의 연꽃’의 또 다른 표현이다. 최고의 신성성을 나타내는 이러한 중층의 꽃잎이 만개한 모습은, 다른 장르의 종교를 초월해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스트라스부르스 대성당의 실내 ‘장미의 창’
 

  광배는 전 세계에 걸쳐 다른 전통의 다양한 종교에서도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신성성의 특징이다. 힌두교와 요가의 전통에서는 이 광배를 제7차크라의 명칭 그대로 ‘사하스라라’라고 부르고 이는 천 장의 연꽃잎을 가리킨다. 불교의 전통에서 이러한 연꽃은 법화경 또는 화엄경 등에서 보듯이, 대표 대승불교 경전에서도 중요한 비유로 등장한다. 여기서 부처·보살의 ‘광배’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부처·보살의 ‘연화대’가 왜 연화대인지도 알 수 있다.(도판14-3, 16) ‘만개한 천 잎의 연꽃’, 이는 깨달음의 에너지와 소통하는 순간 일어나는 장엄한 연출이다. 이것이 열리면, 신성한 빛이 물질을 투과한다.
 
“태초의 신성한 원리와의 합일성을 경험한다. 우리의 개인적인 에너지 장은 우주와 하나가 된다. 우리는 더 이상 인식 대상과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왕관 차크라가 완전하게 일깨워지면 우주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과업은 끝나게 되고, 그것은 자발적으로 에너지를 발산하기 시작한다. 하나의 연꽃이 만개하여, 말하자면, 머리 위에서 순수한 빛의 왕관을 형성한다.
- 샤릴라 샤라먼, 보도J. 베진스키
 

(도판23) 일곱 개의 차크라가 모두 열리는 모습 CG
 
(도판24) 제7차크라가 열리는 모습 CG
 
(도판25좌)(도판26우) (도판23 및 24)처럼 제6차크라 및  제7차크라가 열릴 때는, 외부로부터 우주의 빛을 받아쓰던 존재가, 이제는 빛을 발산하는 존재로 전환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을 부처님 상호의 백호와 육계, 그리고 광배로 표현하고 있다. 백호는 제6차크라(미간 차크라)가 열린 것으로 물질을 투과해서 보는 능력이 생긴다. 
 
(도판27) 심상화를 위한 차크라 도안
 
(도판28)(좌)아즈냐, 빈두, 사하스라라의 자리 (도판29)(우) 제6 아즈냐 차크라
 
(도판30)(좌) 빈두 비사르가(창조의 원천)  (도판31)(우) 제7사하스라라(천 개의 꽃잎)
 
〔각주1〕 *아즈냐 차크라는 '제3의 눈'이라고 부르며 미간에 있고 명상에 의하여 도달할 수 있는 갖가지의 정신집중 상태를 지배한다. 아즈나 차크라(Ajna Chakra)는 제1 차크라에서 제5 차크라가 수직으로 연결되어 운행되고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고차원적인 에너지를 빛으로 전환시켜 온 우주에 번지게 한다. 수련자들은 아즈나 차크라를 통해 신성을 자각하는 두 번째 탄생을 한다. *빈두는 하현달과 흰 방울로 나타내는데 이것은 비슈다 차크라로 떨어지는 불노장생의 넥타암리트이다. 빈두 비사르가는 만물이 나타났다가 다시 되돌아가는 궁극적 원천이다. *사하스라라 차크라(Sahasrara Chakra)는 산스크리트어, 범어로는 영광, 승리, 완성 등을 의미한다. 6개의 차크라들이 잘 운행되고 조절되면 스스로 빛을 발하는데 성인들에게 나타나는 머리 주위의 빛 (후광, 원광)은 이'사하스라라 차크라'의 빛이며 일부의 심령과학자들은 이 차크라의 빛을 오오라(aura)라고 부른다고 설명되어있다. (아즈냐, 빈두, 사하스라라 설명 출처: https://kriyayoga.co.kr/21#footnote_link_21_4 [크리야 요가(Kriya Yoga) 수련소])
 

(도판32) (좌)반가사유상 제78호  (도판33)(우) 반가사유상 제83호
 
 (도판34) 반가사유상 제78호의 보관: 이상의 차크라의 모양과 특히 아즈냐, 빈두, 사하스라라의 차크라의 유형을 보면, 우리나라 반가사유상 보관의 미스터리가 풀린다. 하현달 위의 태양이라고 간주 된 것은 빈두의 형상화이고, 연꽃의 왕관이 만개한 것은 어느 것이나 깨달음의 왕관이 열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호에 계속) 
 
글ㆍ사진: 강소연(불교문화재학 전공ㆍ중앙승가대학 교수)
 
 
<필자 소개>
강소연: 중앙승가대학(불교문화재학) 교수. 문화재청 전문위원, 조계종 국제위원, 문화창달위원회 위원, 전통사찰보존위원회 위원 등. 30년 간 오로지 불교문화재를 연구한 베테랑 학자. (경력)홍익대 겸임교수(10년 근속),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BK연구원, 동국대 불교학과 연구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역임. 조선일보 전임기자, 대만 국립중앙연구원 역사어언연구소 장학연구원, 교토대학 대학원 연구조교 역임. (수상)일본 최고 명예학술상 ‘국화상’ 논문상, 불교소장학자 ‘우수논문상’. (저서)『명화에서 길을 찾다-매혹적인 우리 불화 속 지혜-』(시공아트), 『사찰불화 명작강의』(불광출판사),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서』(부엔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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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진명 2019-11-28 13:2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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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호가 기대됩니다.
차드랑 2019-11-29 02: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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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선생님 저서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서/가 참 좋습니다. 피와 땀으로 쓰신 것이 느껴집니다. 정말 훌륭하게 성장하셨습니다.
강소연저자 2019-12-21 13: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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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차드랑님의 격려는 큰 힘이 됩니다.
더욱 정진하는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합장()
케이디 2019-11-29 09:5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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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방송에서 강소연 교수님의 강의를 시청해 오면서 어쩌면 말씀을 저리도 정갈하게 잘 하실까 하고 생각해 왔었는데 책을 보니 글도 말씀만큼이나 잘 쓰시더군요. 고급진 고려불화만큼이나 책의 내용도 고급지게 좋습니다. 전통문화나 역사에 그치지 않고 그 기법들을 되살려 현대적으로 재창조해 간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좋은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시대를 거슬러 반드시 되살아 날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책 잘보았습니다.
덕성 2019-12-02 19: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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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차크라 열릴 때의 형상이
부처님 특징으로 나타남.
모양이 밑의 도안과 똑같네요.
저게 도대체 뭔가 했네요.
장지연 2019-12-04 10:3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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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바람따라 2019-12-07 10:2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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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공덕과 자비와 지혜를 구족한 불보살들을 장엄한 사찰불화는 무상의 연기를 체득한 불성의 상징이다. 기초 교리와 전문가의 불교미술 매칭은 독자를 배려하는 좋은 미덕이다.
황성연 2020-01-02 13: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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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글 감동입니다.
2020-01-11 18:13:03
답변  
복사가안되네요............
강소연저자 2020-02-21 12:4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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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 복제 금합니다 ()
신중 2020-02-10 13: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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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갓_이미지  쩝니다.
합장올립니다.
이문희 2020-03-01 15: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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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박물관에서 강소연 교수님 강의 들었던 작가입니다. 그떄
사인도 해주셨어요. 토요일 오후에 들었던 소중한 강의.
그림을 보는데, 영화나 드라마를 본 듯 했습니다.
낭락한 목소리에 푹 빠져 들어갔네요. 책도 샀습니다. 감사합니다.
알수없는 문양과 내용들을 교수님 글에서 잘 찾아보고 있습니다. 또 여쭙겠습니다. *******
교수님팬 2020-03-10 1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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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미술이란 것이 이런 거군요!!!
역시 짱입니다요!
이판 2020-03-28 13:3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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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대박
오도행 2020-05-01 20: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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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깨달음의 세계와 이렇게 연결이 되어
불교미술로 표현한 것이네요.
저도 보입니다.
이렇게 설명해주시는 분이
없습니다. 아- 대단하십니다.
97319 2020-05-17 09: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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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교수님, 올리신글 계속  읽고 있는 재가 불자인데, 정말 글 잘쓰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갈수록 듭니다. 표현내용 분명하고 군더더기하나 없는 글, 정말 감탄합니다. 문필력 타고 나신듯. 계속 좋은 연재 부탁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강소연 2020-06-01 11:5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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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고를 읽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더욱 청정한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친절하신 댓글, 감사드립니다.  함께
붓다가 가신 길을 걸어요. 합장()
마성 2021-03-20 18: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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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머리모양이 왜 저런가 했는데,  교수님 글 보니
실제 조각과 연결해서
풀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참선 2022-06-22 12: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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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연꽃이 피는구나.
© 미디어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