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문 싯다르타가 택한 남행길은 곧 스승을 찾아 나선 경로였다. 출가 전에 그는 찾아가 볼 스승들에 대해 어느 정도 정보를 갖고 있었다. 또한 그는 새로이 만날 스승이 과연 진정한 스승으로 삼을만한 수행자인가를 정할 일정한 기준을 세워놓고 있었다.
싯다르타가 스승의 첫 번째 기준으로 삼은 것은 ‘계행’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기준은 함께, 오랫동안 살면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었다. 두 번째 기준은 ‘청정’한가 하는 것이었다. 이 역시 오랫동안 대화를 해보고, 주의 깊게 살펴야 알 수 있는 기준이었다. 세 번째 기준은 ‘평정심’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특히 오랫동안 재난을 만났을 때 나타나는 태도를 주의 깊게 살펴야 알 수 있는 기준이었다. 마지막 네 번째 기준은 ‘지혜’가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지혜가 있는지의 여부 또한 오랫동안 같이 논의함으로써 파악할 수 있는 기준이었다.
마음속으로 스승의 네 가지 기준을 정해놓은 싯다르타는 스승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스승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나면 이 4가지의 기준으로 점검하며 가르침을 받을지의 여부를 판단했다. 또 스승에게 은혜를 입었더라도 스승에게 배울 것을 다 배워 마치고 여전히 부족함이 남아 있으면, 설사 스승이 만류한다고 해도 지체 없이 그 곳을 떠났다.
출가를 단행하기 전 싯다르타는 생각이 깊고 체험에 큰 관심을 두었던 친구 샨딜리아로부터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에 대해 심도 깊게 들어본 적이 있었다. 우파니샤드는 바라문들의 사상을 기록한  문헌으로 <베다> 전통의 마지막 단계를 다룬 사상이었다. 그 중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은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싯다르타의 관심을 끈 것은 야즈냐발캬의 사상이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단순히 야즈냐발캬의 사상에 주목하지 않았다. 싯다르타는 야즈냐발캬의 사상을 실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샨딜리아는 싯다르타에게 요가의 비법을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그는 또 싯다르타에게 지적 유희의 범주에서 벗어나 직접 수행을 통해 자신의 경지를 개척한 두 스승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두 스승이 바로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였다.
이 두 선인은 철학논쟁에 끼어들지 않고 오직 명상에 전념하고 은거하면서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당대의 이름난 선지자들이었다. 싯다르타는 무상과 고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발견해낸 것이 어떤 것들인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싯다르타는 먼저 알라라 깔라마 선인을 찾아가기로 하고, 그의 은둔처가 있는 웨살리까지의 먼 여행길에 올랐다.
웨살리는 릿차위 족의 수도였다. 웨살리에서 알라라 깔라마의 명성은 대단한 것이었다. 도시 인근 께사뿟따 마을에 자리 잡은 알라라 깔라마의 암자에 도착한 싯다르타는 그의 수도원을 찬찬히 돌아봤다. 수도원은 조용하고 깨끗했다. 수도원 한 가운데에는 큰 제단도 마련되어 있었다.
알라라 깔라마는 16살에 출가하여 무려 104년 동안 수행에 매진해 온 명상의 달인이었다. 그는 깊은 선정에 들면 500대의 수레가 천둥보다 더 큰 소음을 일으키며 지나간다고 하더라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만큼 확고한 부동심(不動心)의 경지를 지니고 있었다. 당연히 그가 머무는 수행처 주변의 나무 그늘에는 300명이 넘는 제자들이 모여들어 명상수련을 하며 그의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스승의 명성을 입증이나 하듯 그 제자들은 수행 모습은 매우 단아하고 평화로웠다.
알라라 깔라마의 처소에 당도한 싯다르타가 정중하게 예를 올리고 말했다.

 

“스승이시여, 저는 당신의 가르침과 계율에 따라 수행을 하고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당신께 가르침을 받고자 하니 부디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한 눈에 범상치 않은 젊은이라는 것을 직감한 알라라 깔라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싯다르타를 환대했다. 백발이 성성한데도 그의 표정과 움직임은 부드러웠다. 형형한 눈동자에는 진지함이 가득했다. 한동안 젊은이를 살펴본 알라라 깔라마가 말했다.

 

“그대는 어디에서 오셨는가?”
“저는 사끼야 왕국의 수도 까삘라왓투에서 온 싯다르타입니다.”
“그대는 아직 젊은데, 무슨 이유로 수행의 길에 들어섰는가? 혹시 가족이 없는가? 무엇이 그대로 하여금 출가의 길로 나서게 했는가?‘
“저는 사끼야 왕국의 왕 숫도다나의 아들이며, 아내와 아들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태자의 지위 덕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이란 시간이 다하면 고뇌와 좌절로 변하고 마는 것들뿐입니다. 저는 이런 불행과 고뇌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노(老) 수행자 알라라 깔라마는 이미 사끼야 왕국의 왕 숫도다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는 숫도다나 왕의 아들이 이토록 젊은 나이에 출가자의 길에 들어선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이 젊은이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열정과 결의로 충만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 그런가? 싯다르타. 그대를 기꺼이 나의 제자로 받아들이겠다. 훌륭하구나. 싯다르타. 위풍당당한 코끼리가 밧줄을 끊듯이, 애정의 얽매임을 모두 끊고 왕위도 버리고 출가한 일은 아주 잘한 일이다. 늙은 왕이 왕위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숲으로 가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지만, 감각적 즐거움에 빠져들기 마련인 젊은 나이에 왕궁에서의 호사스러운 삶을 뿌리치고 떠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대는 참으로 경이롭구나. 그대는 분명히 지혜의 배를 타고 고해를 건너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주장하는 지식과 체득한 경험, 그리고 앞으로 설명하게 될 옛 스승들의 원리는 이미 나의 실제 수행으로 입증된 것들이다. 무지한 자들은 신을 찾으면서 도리어 괴로움을 당하지만, 나의 가르침을 받게 되면 그런 잘못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마음의 집중력을 통해 일체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내 가르침을 이해하고 체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대의 노력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알겠습니다. 스승님!”

 

싯다르타의 대답을 우렁찼다. 스승의 확신에 찬 설명을 들으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가 찾고자 하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일어났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목소리에는 저절로 힘이 실려 있었다. 싯다르타는 알라라 깔라마 선인이 가르치는 교의가 사변에 근거한 것이거나 단지 신앙으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는 가르침이 아니라는 점이 우선 마음에 들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는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 이런저런 주장들을 들어왔을 뿐이다. 그에게 알라라 깔라마 선인의 지도는 말이 아닌 몸으로 명상체험을 경험할 첫 번째의 기회였다. 그의 정력과 열정은 한창 절정에 도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제부터 시작될 명상수행에 대해 그가 거는 기대는 지대했다.
드디어 알라라 깔라마 선인의 가르침이 시작되었다. 그때까지 뚜렷한 후계자가 없었던 알라라 깔라마 선인은 싯다르타의 뛰어난 자질과 용모에 기뻐하며 그에게 지식호흡법(깊은 호흡을 자동적으로 하게 하는 강력한 기법)과 자신이 갈고 닦아온 명상지식을 정성껏 전수하기 시작했다.

 

“싯다르타, 내가 실행하는 명상의 목적은 우선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다. 외부 세계의 감각대상들은 집착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며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따라서 우리는 마음 밖에서 일어나는 일과 외적인 사물에 의해 마음이 어지럽혀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쉽사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작 단계에서 그대는 다섯 가지 족쇄를 풀어버려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이 육체를 실재라고 보는 견해, 의혹, 의례와 관습에 대한 집착, 관능적 욕망, 마지막으로 악의이다. 이 다섯 가지의 족쇄를 끊어내야 한다. 그것들은 곧 그대를 묶고 있는 다섯 가지 사슬이기 때문이다. 어떤가. 이 족쇄를 풀어버릴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스승님. 저는 그것들을 기꺼이 제거하고야 말 것입니다.”

 

싯다르타는 그것이 바로 그로 하여금 출가의 길을 선택하게 한 이유였기 때문에 확신을 갖고 대답했다.

 

“싯다르타. 그대가 다섯 가지 사슬을 제거할 수 있다면 첫 단계 명상을 시작할 준비가 된 것이다. 태초에 생명은 그 형태를 알 수 없는 혼돈이었다. 그 곳에서 내가 생기고 나로부터 어리석은 마음이 일어나 애착이 되었다. 애착에서 육체가 생기고, 탐욕과 질투 등 온갖 번뇌가 일어나고, 그 번뇌가 유전되어 생로병사와 슬픔과 괴로움을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명상을 통해 먼저 감각적인 자극과 마음의 산란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성향을 멀리함으로써 다른 종류의 행복감이 일어나게 된다. 사색과 탐구를 계속하는 동안 세속적인 일들을 버림으로써 생기는 희열을 증진하도록 하라. 이것이 명상의 첫 단계이니라.”

 

싯다르타는 한적한 장소를 찾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아 큰 어려움 없이 다섯 가지 족쇄를 풀어버릴 수 있었다. 그의 마음은 모든 관능적 사고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집중되었다. 감각적 욕망을 여읨으로써 그는 일찍이 경험한 적이 없는 유별난 희열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는 이 환희로움을 이전에 경험한 쾌락들과 세심하게 비교해 보았다. 그것은 과연 전혀 다른 종류의 기쁨이었다. 이전에 느꼈던 쾌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쾌감이었다. 그는 마침내 감각적 쾌락을 버림으로써 일어난 환희를 성취했고, 그 환희를 만끽했다.
싯다르타는 자신이 이루어낸 첫 체험을 알라라 깔라마를 찾아가 보고했다. 체험에 대한 점검과 함께 어떻게 다음 단계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였다.

 

“장하다. 싯다르타. 그대는 감각적 쾌락을 멀리함으로써 일어난 환희를 체험했다. 또한 그것에 대해서 사색하고 숙고했으며, 그것을 이전의 감각적 쾌감과 구별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것이 보다 높은 차원의 느낌이라는 것을 체험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사량(思量)과 분별(分別)을 계속한다면 그것을 가장 우월한 것으로 확신하게 되어 새로운 감각에 집착하게 된다. 따라서 그대는 이제 그러한 사량과 분별을 제거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다시 또 다른 유형의 기쁨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싯다르타는 다시 자신의 처소로 돌아와 이전에 경험한 첫 번째 단계(제1선)에 이르기 위해 마음을 집중했다. 그의 마음은 새로운 감각 사이를 헤매지 않고 어떤 분별심도 없는 한갓된 상태에 머물렀다. 곧이어 그는 집중으로부터 나온 기쁨과 행복감에 싸였다. 싯다르타는 그 상태를 견고하게 안정시킬 수 있을 때까지 똑같은 방법의 집중훈련을 계속했다.
‘환희심은 더 이상의 진전에 방해가 된다고 스승 알라라 깔라마 선인은 말했다. 그렇다. 거기에 몰두하게 되면 그 밖의 것들에 주의를 기울일 수 없게 된다. 제대로 된 집중은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데 필수적이다. 따라서 그 환희심 또한 제거해야 할 대상에 불과하다.’
싯다르타는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을 거듭해 곧 환희심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럼으로써 새롭게 일어난 평온감과 순수한 집중으로 이루어진 명상의 세 번째 단계(제3선)에 이르렀다. 그렇게 그는 전신을 가득 채운 평온, 행복감과 함께 무아경에 도달할 수 있었다.
싯다르타는 다시 육체적인 평온함을 제거함으로써 명상의 네 번째 단계(제4선)에 이르렀다. 그는 고통도 쾌감도 없는, 기쁨도 슬픔도 사라진, 그리하여 온전한 집중과 평정으로 충만한 경지에 이르렀고 그것을 선명하게 체험했다. 그의 마음은 마치 옹기장이의 손에 잘 이겨져 원하는 대로 다룰 수 있게 된 흙덩이처럼 티 없이 순수하고 맑으며, 밝고 유연한 상태가 되었다. 완벽하게 자신의 마음을 제어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싯다르타로부터 수행의 진전에 대해 보고를 받은 알라라 깔라마는 이렇게 빨리 명상의 기법을 터득해낸 제자의 노력과 능력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싯다르타처럼 빠른 속도로 수행에 성장을 이룬 제자는 만난 적이 없었다. 드디어 그는 싯다르타에게 보다 높은 경지의 명상을 전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싯다르타, 지금까지 그대가 익힌 것은 감각적 쾌락의 세계를 벗어나는 수행법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대의 마음은 형상의 영역, 즉 색계(色界)에 머물러 있다. 극도로 신중을 기하지 않는 한, 그대가 이룬 경지는 언제라도 퇴보할 수 있다. 따라서 그대의 마음은 이 형상의 세계를 벗어나 무형의 세계, 즉 무색계(無色界)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무색계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경지이며, 인간이 획득할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다.”
“그렇습니까? 스승님, 제가 어떻게 하면 형상의 세계를 벗어나 무형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싯다르타가 물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것들이 한없이 뿌듯하고 기뻤다. 동시에 그의 마음속에는 더 높은 단계를 향한 단호한 결의와 타는 열정이 솟구치고 있었다. 열정이야말로 수행을 뒷받침하는 최고의 자산이었다.

 

“잘 듣거라. 싯다르타. 모든 형상에는 한계가 있다. 형상이 없는 무형은, 따라서 무한하다. 색계의 모든 경험으로부터 벗어나 무한 혹은 무형과 유사한 것은 오직 허공 한 가지밖에는 없다. 이제 그대가 행할 명상의 대상은 허공이다. 허공에 대해 명상할 때, 그대는 스스로 허공의 끝에 도달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 다만 이 명상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이전에 닦았던 명상의 첫 네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알라라 깔라마 선인으로부터 다음 단계에 대한 지침을 받은 싯다르타는 곧바로 자신의 명상 처소로 돌아왔다. 그가 초선에서 제4선에 도달하는 과정을 재연해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어 그는 한없이 확장시킬 수 있도록 유연해진 마음을 허공으로 향하게 했다. 싯다르타의 집중력은 강력하고 예리했다. 그의 마음은 드넓은 허공의 끝을 향해 거침없이 뻗어나갔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허공의 끝에는 이를 수 없었다. 명상에서 깨어난 그는 어리둥절해졌다.
‘도무지 끝을 찾을 수 없다. 허공에 끝이 있는가?’ 그는 자신에게 반문해보았다. ‘만약 끝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체험해야 대상이다. 내 집중력은 강하고 예리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허공의 끝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제 어찌해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순탄한 진전에 의기양양했던 싯다르타도 시나브로 풀이 죽었다. 고심을 거듭했지만 도무지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 며칠을 고민하던 그는 다시 알라라 깔라마 선인을 찾아가 자신이 경험한 단계와 답답한 심정을 전했다.
알라라 깔라마 선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싯다르타, 그대는 허공도 다른 형상과 마찬가지로 한계가 있으며 거기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대가 집중하고 있는 허공은 단지 공간의식에 불과하다. 그러니 허공은 무한한 것이라고 규정하라.”
“스승님, 제가 심각한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까?”

 

알라라 깔라마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그렇지.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대가 허공이 무한하다는 것, 즉 인식할 수 있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하지만 한계가 없다는 것에 대해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대가 어리둥절해진 것은 허공도 다른 형상과 마찬가지로 한계가 있으며, 거기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가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끝을 발견할 수 없었다면, 허공은 무한한 것(무한 허공)이라고 규정해야 한다. 허공의 끝에 도달하기 위해 그대가 집중하고 있던 허공은 허공 자체가 아니라, 바로 공간의식이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돌아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라. 무한 허공의 경지(공무변처)에 이르고 나서 그대는 다음 단계로 오를 수가 있을 것이다. 거기서 그대는 무한 허공이 단순히 의식으로 전환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그대는 다시 의식의 끝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라.”

 

싯다르타는 알라라 깔라마가 가르친 대로 처음부터 다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실행에 들어갔다. 허공에 주의를 집중하고 그 끝에 이르도록 시도했다. 시도를 거듭한 끝에 그는 무한 허공이 다만 의식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다시 주의를 의식 쪽으로 돌리고 그 끝을 찾았다. 그는 이내 무한한 의식 자체는 일정한 형태를 가진 본질적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어서 그는 무한 의식의 경지(식무변처)를 넘어선 다음 경지는 단지 무(無, 무소유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다시 스승을 찾았다. 스승의 지도대로 명상을 하면서 체험했던 일련의 과정을 자세하게 고했다. 제자의 이야기를 듣던 알라라 깔라마 선인은 감격어린 눈으로 비범한 제자를 바라보았다. 스승의 시선은 감동과 기쁨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더 이상의 가르침도 없이 스스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던 젊은 제자의 탁월한 능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스승은 기쁨에 넘친 목소리로 알라라가 말했다.

 

“장하다. 싯다르타! 그대는 내가 이룬 경지를 그대로 체험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제 내가 그대에게 가르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대는 이제 나와 동등해진 것이다. 싯다르타. 이곳에서 나와 함께 우리가 성취한 최상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사람들을 가르치지 않겠는가?”

 

스승의 제안에 싯다르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머무르는 오두막에 들어가 침상에 누웠다. 싯다르타는 여기에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것이 명상의 최종 목적이라면 그 경지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란 말인가? 그 경지에 이르는 동안 고통(둑카, dukkha)을 느끼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어떤 행복(쑤카, sukkha)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다. 비록 집중된 상태에서 물질계를 꿈같이 바라볼 수 있었지만 그것은 단지 명상하는 동안만 유지되는 것이었다. 정작 중요한 감각적인 세계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면, 이와 같은 경지를 얻은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깨어나면 다시 감각의 세계에 말려드는 것이라면 그것은 내가 원하던 성취의 단계는 아니다. 수승한 지혜와 원만한 깨달음은 더더욱 아니다.’
싯다르타는 숙고를 거듭했다.
‘알라라 깔라마 선인은 자신의 수행법을 통해 마침내 절대정신인 뿌루사(Purusha, 영혼, 마음)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영원하며 외적 사상(外的事象)에 좌우되지 않는다고 간주되는 참된 자아(自我)는 집중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또다시 감각적 세계에 좌우되고 만다. 집중에서 빠져나오면 여전히 욕망과 갈망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경지, 이것은 내가 얻고자 했던 영구적인 닙바나(Nibbana, 열반)와는 거리가 멀다.’
싯다르타는 알라라 깔라마 선인의 처소를 다시 찾았다. 예를 올린 싯다르타가 자리에 앉자 알라라 깔라마가 물었다.

 

“어떻게 할 건가? 싯다르타. 나와 함께 여기에 머물겠느냐?”
“아닙니다. 스승님. 스승님의 호의를 거절하는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저는 스승님으로부터 큰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제가 경험하지 못한 위대한 세계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가 찾는 궁극적인 답은 아닙니다. 그렇더라도 저를 제자로 받아주시고, 기꺼이 가르쳐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이 앞으로 제가 찾는 길을 찾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제 제가 떠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싯다르타, 그대는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제자였다. 그대를 보내는 것이 참으로 섭섭하다. 하지만 내게는 더 이상 가르칠 게 없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그대가 찾는 최고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면 그 때는 그대가 나를 가르쳐 주기 바란다. 싯다르타. 나는 진심으로 아무런 장애 없이 그대가 세운 목표에 이르기를 바란다.”
“스승님, 고맙습니다. 부디 평안하시고 오래 건강하십시오.”

 

싯다르타는 거듭 감사를 표하면서 알라라 깔라마 선인의 수도원을 떠났다.

 

 

세 벌의 옷과 발우, 그리고 면도칼, 바늘, 띠, 물을 거르는 헝겊 등 수행자에게 허락된 여덟 가지 물건을 소지한 싯다르타는 다시 남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는 강가(Ganges) 강을 건너 새로운 문물과 사상의 도시이자 마가다 국의 수도이기도 한 라자가하(Rajagaha, 왕사성)에 도착했다. 도시를 에워싼 다섯 개의 산 가운데 하나인 빤다와 동굴에서 하루를 머문 뒤, 그 다음날 아침 수행자들 틈에 끼어 탁발을 하고 깃자꾸따(Gijjhakuta, 영축) 산으로 올라갔다.
라자가하는 다섯 개의 산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아늑한 도시였다. 적절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으로 기근이 발생하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라자가하는 또 넘쳐나는 사람들과 물품으로 항상 활기가 넘치는 도시였으며, 최대 신흥강국으로 부상한 마가다 국의 중심지였다. 전륜성왕의 땅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평화롭고 풍요로운 마가다 국의 왕은 빔비사라였다.
어느 날, 빔비사라왕은 라자가하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누각에 앉아 라자가하의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곳저곳을 살피며 거리를 내려다보던 왕의 눈길이 한 수행자에게서 멈추었다. 북적거리는 인파 사이를 뚫고 라자가하의 거리를 돌며 탁발하고 있는 이 수행자는 아직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더할 나위 없이 단정하고도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자이기에 저렇듯 고고하면서도 부드러운 기품이 흘러넘치는 것일까. 빔비사라 왕은 곁에 있던 신하에게 명령했다.

 

“저기 가는 저 수행자를 보거라. 저 수행자는 아직까지 보았던 여느 떠돌이 탁발승과는 무엇인가가 다르다. 참으로 아름답고, 장대하며, 청정하며,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풍을 갖추고 있구나. 시선은 앞을 향하면서도 조심스럽게 길 위를 주시하고 있다. 저 사람은 분명 고귀한 집안의 출신일 것이다. 가서 저 수행자가 어디로 가는지 알아보고 오너라.”

 

신하가 몇몇 시종들을 데리고 서둘러 뒤따라가 보니 젊은 수행자는 탁발을 마친 후 깃자꾸따 산으로 들어가 한 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신하는 뒤따라갔던 시종들 중 일부는 남아 그를 감시하도록 지시하고, 자신으로 성으로 돌아와 빔비사라 왕에게 보고했다.

 

“대왕이시여, 그 수행자는 깃자꾸따 산의 앞쪽에 있는 동굴 속에 마치 사자처럼 앉아 있습니다.”

 

빔비사라 왕은 즉시 마차에 올라 깃자꾸따 산자락으로 향했다. 왕이 근처에 도착했을 때, 싯다르타는 탁발해온 음식을 먹는 중이었다. 왕은 식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멀찍이 떨어져 기다렸다가 싯다르타가 식사를 마치자 다가가 말을 건넸다.

 

“수행자여, 나는 마가다 국의 왕입니다. 내가 보기에 그대는 아직 매우 젊습니다. 용모도 매우 수려한 것이 왕족 출신처럼 보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생활은 그대와 같은 젊은 장부가 갈 길이 아닙니다. 그대가 이렇게 떠돌이 수행자의 길을 걷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재산을, 아니면 가족을 잃었습니까? 이제 그만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십시오. 내 그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겠습니다. 그대는 마가다국을 통치하는 내 업무를 도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나는 그대가 가정생활의 모든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제공할 것입니다.”

 

싯다르타는 정중히 머리를 들어 마가다국의 왕이라고 자칭하는 젊은이를 쳐다보았다. 화려하고 고급한 차림새만으로도 그의 힘과 지위를 알 수 있었다. 싯다르타는 부드럽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왕이시여. 제가 이 길을 택한 것은 재산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만, 인간이 지위나 돈으로 살 수 없는 기쁨이 얼마나 무상하고 또 만족할 수 없는 것인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집안에 죽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재산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으며, 우리의 삶이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왜 그토록 영원하지 못한 만족을 추구해야 됩니까? 이미 저는 재물과 그것이 가져다 줄 감각적 쾌락과 인연을 끊었습니다. 저는 사끼야 왕국 숫도다나 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이제는 수행자가 된 싯다르타입니다. 저는 지고(至高)의 선(善), 불멸의 길, 영원한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순간 빔비사라 왕은 어리둥절해졌다. 우선 그는 이 남루한 옷을 걸친 방랑수행자가 사끼야 왕국의 왕 숫도다나의 아들이라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매력적인 제안을 완곡하게 예의를 갖춰 거절하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빔비사라 왕은 또한 자신이 정복하고자 했던 사끼야 왕국의 왕자가 눈앞에 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고 흥미로웠다. 정복하고자 꿈꾸었던 사끼야 족의 미래 통치자와 마주하고 있다니! 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현실이었다. 그는 한동안 싯다르타를 바라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원한다면 코끼리 무리를 선두로 하는 훌륭한 군대도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부디 나의 제안을 받아주기 바랍니다.”

 

빔비사라 왕에게 싯다르타가 자신과 함께 마가다 국을 이끌어준다면 마가다 국을 잠부디빠의 제1 강국으로 발전시킬 수 있겠다는 확신이 밀려왔다. ‘싯다르타와 함께 힘을 모은다면 코살라국을 제치고 제1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 싯다르타가 풍기는 이 상서로운 기운은 그가 바로 국력을 키워갈 적임자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게다가 싯다르타의 나라 사끼야국은 코살라국의 속국이 아닌가.’ 빔비사라 왕은 코살라국의 종속국인 사끼야 족의 나라와 동맹을 맺는다면 코살라 국을 위협할 더 없이 좋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왕이시여. 제가 갈 길은 오직 지고(至高)의 선(善), 불멸의 길, 영원한 행복을 찾는 것일 뿐입니다.”

 

싯다르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빔비사라 왕의 제안을 거절했다. 설사 마가다국의 왕위를 준다는 제안이더라도 이미 세속적인 욕망이 지니는 한계를 꿰뚫어본 그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것이었다. 싯다르타의 확고한 의지를 알아차린 왕은 더 이상의 제안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렇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훌륭한 스승이 될 것입니다. 당신이 찾고자 하는 길을 발견하고 목표를 이루거든 부디 이곳 라자가하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나는 당신을 스승으로 모시고,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없이 빔비사라 왕을 쳐다보는 싯다르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왕은 싯다르타와 눈인사를 나누고 시종과 함께 궁으로 돌아갔다. 이때 싯다르타의 나이는 29세, 빔비사라 왕은 24세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