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가 마음속으로 정해놓은 출가일은 우기가 시작되는 아살하 달(음력 6월) 보름날이었다. 사람들의 의혹에 찬 시선을 피해 가능한 한 멀리 가기 위해서는 달빛이 있는 보름밤이 가장 적합할 것이었다. 집안사람들이 깊은 잠에 떨어진 시간에 집을 나서면 불필요한 소동도 막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야소다라는 싯다르타가 그날 밤 떠나려 한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 싯다르타가 아끼는 마부 찬나를 불러 당부했다.

 

“찬나, 오늘 밤 태자께서 먼 길을 떠날 것이다. 말을 대기시켜 두어라. 그리고 그 분께서 널 필요로 할 때까지 함께 있도록 해라. 그 분께서 돌아가라고 말하거든, 바로 내게로 와서 가는 길에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들려줘야 할 것이야.”
“예, 부인.”

 

찬나 역시 숲속의 수행생활을 위해 출가하려는 주인의 계획을 짐작하고 있었다. 야소다라는 싯다르타가 떠나기 전에 일어날 셈으로 일찍 침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고 눈물만이 하염없이 흘러내릴 뿐이었다. 그녀는 침대에 드러누워 기진해질 때까지 흐느끼다 잠에 빠져 들었다. 야소다라에게 작별을 고하기 위해 방에 들어선 싯다르타는 그녀가 라훌라와 함께 깊이 잠들어 있음을 발견했다.
‘깨워야 할까? 아니면 이대로…’ 싯다르타가 망설였다. ‘아내는 내가 오늘 밤 떠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내가 그녀를 깨운다면 떠나기가 어렵게 될 지도 모른다. 더구나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실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내가 작별인사 없이 떠나버린다면 야소다라는 중요한 순간에 잠에 빠져버렸던 자신을 힐난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달아나듯 떠난다면 그녀가 나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아 고민스럽다. 하지만 야소다라는 내가 왜 깨우지 않고 떠났는지 이해할 것이다. 어찌되었건 나는 떠난다. 한동안이나마 야소다라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아들 라훌라와 부모님들에게 해로운 일이 되겠지. 그러나 먼 안목으로 보면 모든 사람들이 나와 함께 이롭게 될 것이다. 내가 반드시 그리 만들 것이다.’
싯다르타는 침대 머리맡에 그대로 서서 곤히 잠든 아내와 아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시간이 멈춰진 듯했다. 그러나 그는 곧 등을 돌려 야소다라의 방을 빠져 나왔다. 찬나는 이미 두 마리의 말에 안장을 얹어 놓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위층의 몇몇 방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지만 집안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말들도 출가 결행으로 인해 분출될, 싯다르타를 사랑하는 이들의 슬픔을 알고 있는 듯 바스락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싯다르타는 찬나에게 동문(東門)으로 빠져나갈 것을 알렸다. 찬나는 기수를 동쪽으로 돌렸다. 열린 동문을 나서자마자 싯다르타는 말에 올라 길을 달렸다. 야소다라가 미리 준비해 준 가사와 바리때를 담은 꾸러미를 챙겨 묶은 찬나가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동남쪽으로 향해 달렸다. 싯다르타는 출가의 길, 즉 수행자로서 새롭게 탄생하는 첫 길을 자신이 태어난 룸비니를 거쳐서 가고자 했다. 그것이 그가 동문을 통해 성을 나선 이유이기도 했다. 한참을 달려 룸비니에 도착한 싯다르타는 어머니가 자신을 낳은 동산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찾기 위한 원력으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어머니, 오늘 저는 수행자가 되기 위해 출가를 합니다. 이곳에서 제가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를 낳고 산후 통증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저와 어머님처럼 세상 모든 생명들은 태어나고 죽습니다. 나고 죽는 그 사이에도 수많은 고통들을 감내하며 살아갑니다. 더러 행복한 순간도 있지만, 그것은 세상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장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머니, 저는 오늘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어머님께서 저를 낳아주신 이곳에서 새로운 탄생,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출발을 하고자 합니다. 부디 제가 생사문제를 해결하고, 고통을 해결하고 영원한 행복의 길을 찾을 때까지, 그리하여 모든 중생들이 함께 행복한 길을 가도록 할 때까지 저를 지켜봐 주세요. 어머니….’ 

 

“자, 가자.”

 

비감한 표정을 한 채 한참을 룸비니에 머물렀던 싯다르타가 다시 고삐를 당겼다. 싯다르타와 찬나 두 사람은 까삘라왓투 외곽지역에 도달할 때까지 침묵 속에 말을 몰았다. 싯다르타는 어린 시절과 젊은 날의 갖가지 추억이 묻힌 곳, 자신을 키웠고, 아내와 어린 아들, 부모, 친척, 그리고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고향땅을 되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여러 차례 느꼈다.
또한 싯다르타의 머릿속에는 기억에도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 줄곧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사실 그는 출가 전에도 꿈속에서나마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싶어 일찍 잠자리에 들곤 했었다. 태어난 지 이레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모 손에 자랐으니 어머니는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이모가 양어머니가 되어 어떤 친모보다도 더 깊은 사랑을 주었지만 친모에 대한 그리움은, 현재의 어머니가 친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싯다르타는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 까삘라왓투의 영상이 또렷하게 펼쳐지는 것을 없앨 수는 없었다.
먼동이 틀 무렵, 두 사람은 사끼야 왕국의 경계를 넘어 아누삐아(Anupiya) 마을의 ‘숭고한 강’이라는 뜻을 가진 아노마(Anomā) 강가에 이르렀다. 밤새 동남쪽으로 무려 170리 길을 달려온 것이다. 아누삐야는 말라 국의 땅이었다. 싯다르타는 생각했다.
‘출가는 숭고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곳 숭고한 강가에서 출가사문이 될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을 떠났다. 출가를 위해 그들에게 아픔과 슬픔을 안겨주는 일을 감수했다. 이제부터는 온 삶을 바쳐 해탈을 향한 길로 들어설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싯다르타는 아노마 강을 건너고서야 비로소 출가를 위한 땅에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동안 애지중지 간직해왔던 아름다운 머리채와 수염을 잘라냈다. 잘려나가는 머리카락과 수염을 바라보며 싯다르타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툭, 툭 땅 위로 떨어지는 머리카락처럼 그가 가졌던 모든 것들을 포기하는 순간이었다. 싯다르타는 이 포기를 반드시 위대한 결실로 마무리할 것을 마음속 깊이 다짐했다. 그는 이어 야소다라가 준비한 수행자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입고 있었던 옷가지들은 한 데 묶어서 찬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이 옷가지를 까삘라왓투로 가져가 부친에게 돌려주라고 당부했다. 마부 찬나가 눈물을 흘리며 옛 주인에게 고별의 인사를 올렸다.

“찬나, 울지 마라. 그동안 나를 위한 너의 헌신적인 봉사는 네가 이곳까지 따라온 것으로 충분하게 증명되었다. 주인을 위한 너의 성실한 자세와 따뜻한 마음씨에 대하여 나는 크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너의 갸륵한 마음씨에 대하여 상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지만, 지금 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세상에 기대가 없는 친절은 없는 법이다. 또한 동기 없는 이타(利他)도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해진 이치에 벗어나는 하나의 예외가 있으니, 그 사람이 바로 너, 찬나라고 생각한다. 자 이제 이 말을 데리고 까삘라왓투의 왕궁으로 돌아가거라.”
“태자님, 이곳은 사나운 짐승과 독충이 우글거리는 숲입니다. 매우 위험한 곳입니다. 그런데 어찌 저만 혼자 가라고 하십니까?” 찬나가 흐느끼며 말했다.
“찬나, 나는 결코 낙원을 갈망하지 않는다. 나는 늙음과 죽음에 대한 종지부를 찍기 위해 숲속으로 온 것이다. 찬나, 내가 해탈을 결심한 이유는 인간은 언젠가 헤어져야 할 숙명적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깨달음을 이루면 더 이상 우리의 운명을 갈라놓는 슬픈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찬나, 그러니 서러워하지 마라. 오히려 비탄의 뿌리에 얽혀 감각적 열정을 탐닉하는 자들을 서러워하라. 나의 아버지는 내가 아직 젊기 때문에 숲속에 들어갈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인생이란 때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찬나가 싯다르타 발아래 엎드려 다시 청했다.

 

“태자님, 부디 저를 데리고 가십시오. 짐승과 뱀이 득실거리고 도적떼들이 출몰하는 이곳에 태자님을 혼자 버려둘 수 없습니다.”

 

싯다르타는 울고 있는 찬나의 등을 다독여주면서 말했다.

 

“찬나, 울지 마라. 사람이란 누구나 태어나면서 각자 다른 길을 가게 되어 있다. 비록 애정 때문에 지금 가족과 이별하지 않는다 해도 언젠가 닥쳐올 죽음은 냉정히 그 사이를 갈라놓는 법이다. 그날이 오면 어떤 작별의 인사도 할 수 없게 된다. 큰 기대를 품고 참기 힘든 고통을 견디며 나를 낳은 어머니를 생각해보라. ‘나는 어머니에게 무엇이며, 어머니는 나에게 또 무엇인가?’ 라고 자문해보라. 마치 새들이 잠시 나뭇가지에 머물다 다른 곳으로 날아가듯이, 우리의 만남도 그와 같은 것이다. 저 하늘의 구름을 보라. 그 속에서 나는 생명의 결합과 슬픈 이별을 동시에 본다. 이 세상은 구름처럼 모였다 흩어지고 언제까지 영속되기를 바라는 집착들은 우리의 찬란한 기대와 희망을 참담하게 만들어 놓을 뿐이다.”

 

싯다르타는 그동안 헌신해왔던 찬나의 도움을 거듭 치하하고 그를 설득해 까삘라왓투로 돌려보냈다. 오후 일찍 까삘라왓투로 돌아온 찬나는 자신을 그토록 아껴주던 주인과 헤어진 슬픔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는 겨우 마구간에 말들을 몰아넣었다. 주변에 널려 있는 것 모두가 자상한 옛 주인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었다.
싯다르타의 가족들은 오후 늦게 말들과 말안장에 묶인 싯다르타의 옷 꾸러미를 발견했다.

 

 

찬나와 헤어진 싯다르타는 얼마 후 숲으로 사냥을 하러 온 한 사냥꾼과 옷을 바꿔 입었다. 야소다라가 지어준 수행복은 너무나 고급스러워서 수행하는 데는 외려 거추장스러웠다. 게다가 사냥꾼은 자신의 헤진 옷과 싯다르타가 걸친 수행복을 바꿔 입기를 원하는 눈치였다.
수행자가 된 싯다르타는 아침햇살을 받으며 아누삐야의 한 망고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적당한 나무를 골라, 그 아래 다리를 포개고 앉았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였다. 싯다르타는 태자시절부터 눈여겨보았던, 특히 샨딜리아의 명상 모습을 떠올리며 독자적인 수행에 들어갔다. 눈을 지그시 내리뜨고 시선을 코끝에 둔 채 마음속으로는 호흡을 조절했다.
싯다르타의 각오는 단호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결의가 얼굴에 가득했다. 숲에는 온갖 새들이 지저귀고 나뭇잎은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렸다. 숲에서 나는 여러 가지 소리들은 고요한 숲과 조화를 이루며 그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한낮을 지나며 심한 갈증과 공복을 느꼈으나 싯다르타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춥고 어두운 밤이 되어도 한결 같았지만 간혹 가족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때론 어느 한 생각이 오랫동안 맴돌기도 했다.
밤이 깊어지자 짐승의 울음소리가 두렵게 다가왔다. 습기 찬 밤공기가 몸속으로 스며들었지만 싯다르타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숲속 나무와 풀, 그리고 나는 새들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알아차릴 뿐, 분별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숨소리마저 사라지는 사마디(삼매)의 상태가 끊겼다,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사마디가 끊어질 때에는 불현듯 망상이 밀려와 뇌리를 헤집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눕지 않으니 편안했던 시절이 문득문득 그리워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싯다르타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며 스스로를 경책했다.
특히 왕궁을 빠져나와 맞이하는 첫 밤은 그에게 수행자의 삶이, 수행의 길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일종의 스승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기뻤다. 그토록 오래 간절하게 바랐던 출가수행자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했다. 따라서 이런 정도의 난관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싯다르타는 오직 호흡에만 몰두했다. 가끔씩 냇가에 내려가 물을 마실 뿐, 아무것도 먹지 않기를 꼬박 일주일 동안이나 계속했다.
온종일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나무 아래 앉아있는 싯다르타의 온몸이 빗물에 흠뻑 젖었다. 굶은 뱃속에는 찬 밤기운까지 엄습해 와 온몸이 심하게 떨렸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이 숲에도 여러 부류의 수행자들이 머물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부인을 데려와 자연 속에 가정을 꾸미고 수행하는 방랑자도 있었고, 불을 끔찍하게 보살피며 엄격하게 탐구를 하는 브라만도 있었다. 심지어 빚을 진 자나 파산자, 도망자들이 수행자들 사이에 끼여 있기도 했다.
싯다르타가 처음 만난 수행자는 두 여인이었다. 육체적 제약과 사회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삶의 고통을 통찰하는 그들의 눈동자는 고결하게 빛났다. 죽음에 맞서는 그녀들의 용기는 전장에 나서는 용사조차 부끄럽게 만들 정도로 단단했다. 망고나무 숲에 깃든 그들의 진지한 모습은 싯다르타에게 새롭게 접하는 세계에 대한 희망을 북돋게 해주었다. 그들이 들려준 성자의 이야기는 싯다르타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수행의 지침이 될 만큼 명확한 지혜를 가진 수행자는 아직 아니었다. 도리어 싯다르타의 총명함과 박학다식함에 놀라며 자신들의 오랜 고민과 노력을 부끄러워했다.  
싯다르타는 그러나 어떤 깨달음을 얻을지도 막막했고, 지난 일주일 동안 했던 수행이 올바른 것인지의 판단도 섣불리 내릴 수 없었다. 싯다르타는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수행자의 삶을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옳을 것인지, 일거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랜 숙고 끝에 싯다르타는 수행이란 서둘러서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마땅히 스승을 찾아 수행 지도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스승을 찾기로 결심을 굳힌 그는 출가 직후 처음 들어갔던 숲에서 걸어 나왔다.
이제 고작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도 싯다르타의 희고 부드럽던 얼굴은 놀랍게 야위어 있었다. 핏기가 사라지고 창백한 기운이 넘쳤다. 그러나 걸음걸이에는 수행자의 품격이 넘쳐흘렀다. 수행자들의 틈에 끼여 수행하는 모습을 지켜본 아누삐야 주민들은 그가 탁발에 나섰을 때, 예사 수행자가 아닐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몇 집을 차례로 걸식한 싯다르타는 성을 빠져 나와 빤다와 산기슭으로 가서 앉아 뒤섞인 음식을 먹었다. 그러나 곧 구역질이 나며 삼켰던 음식을 모두 토해내고 말았다. 역겨운 냄새가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자신을 향해 이렇게 질책했다.
‘싯다르타여, 너는 궁에서 기름진 쌀밥에 맛난 반찬을 먹을 때 걸식자의 음식을 보고 나도 언제 저렇게 먹을 수 있을까 부러워하지 않았던가!’
자신을 책망한 싯다르타는 남은 음식을 다 먹었다. 싯다르타는 조용한 자리로 옮겨 앉은 뒤 생각에 잠겼다. ‘이제 어떻게 할까?’ 그는 문득 출가 전 가까이 지낸 친구 샨딜리아에게 요가의 비법을 배운 후 두 사람의 위대한 선인에 대해 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들의 이름은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였다. 그들은 여느 선인들과 달리 철학 논쟁에 끼어들지 않았으며, 오직 선정삼매를 얻기 위해 수행에 전념하는 당대 최고로 손꼽히는 명상 지도자들이었다.
‘가장 먼저 그들을 찾아가서 수행을 배우리라.’고 마음먹은 싯다르타는 강의 흐름을 따라 남쪽 웨살리로 향했다. 알라라 깔라마는 왓지 국의 수도 웨살리에 머물고 있었고, 웃다까 라마뿟따는 마가다 국의 수도 라자가하 인근에 살고 있었다. 사실 싯다르타가 까빨라왓투에서 나와 남쪽 방향으로 이동한 것은 이 샨딜리아에게 들었던 이 두 스승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싯다르타는 낡고 더럽기 짝이 없는 한 벌의 옷을 걸친 채, 강렬한 뙤약볕을 견디며 아노마 라마촌에서 간다크 강과 강가(갠지스) 강 주류의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꾸시나라를 향해 걸어갔다. 길은 험하고 거칠어서 끼니때가 되어도 먹을 것이 없었고, 밤이 되어도 편히 쉴 곳이 없었다. 그는 길가 나뭇등걸에 기대 앉아 피범벅이 된 갈라진 발을 문질렀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기에 아픔이 더했다. 싯다르타는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아내면서 다시 길을 재촉했다.
왓지의 땅에 들어선 싯다르타는 위데하 족의 도시 마띨라 근처 아누야 숲에 사는 고행외도의 스승 박가와를 방문했다. 사람들은 박가와를 아슈람(수행자가 사는 초막)의 지도자라 불렀다.
싯다르타가 들어선 숲에는 박가와를 추종하는 많은 고행자들이 머물며 수행하고 있었다. 숲은 그들의 움직임으로 분주했다. 예배를 드리는 곳은 중얼거리며 주문을 외우는 이들의 소리로 가득했고, 어떤 이는 목욕의식을 행하고 있었으며, 어떤 이는 희생제를 위해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들은 고행수행자였다. 나뭇가지나 풀을 먹는 사람, 쇠똥을 먹는 사람, 풀이나 나무껍질로 몸을 걸친 사람, 땅바닥에 눕는 사람, 벌거벗은 채 가시 위에서 자는 사람, 개미집에 웅크리고 앉은 사람 등 차림새와 수행법이 각양각색이었다. 싯다르타는 박가와를 찾아가 인사하고 고행을 수행법으로 하는 이유와 목적을 물었다. 박가와는 범상치 않아 보이는 젊은 수행자의 의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고행의 목적은 이 세상에서 안락을 얻고 죽어서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네. 이곳에서 행하는 고행의 종류는 무수하게 많지. 요리하지 않은 음식, 즉 물로 자라나는 식물의 뿌리나 과실 따위를 먹거나 또는 새처럼 이삭을 먹고, 또 사슴처럼 풀을 먹기도 하며, 개미집에 들어 있는 뱀처럼 아무것도 먹지 않기도 한다네. 또 봉두난발을 하고 머리를 끊임없이 적시며 아그니(불)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네. 이렇게 극한고행을 체험하면서 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지. 그러므로 고따마여, 고행은 큰 공덕이 되어 미래에 천국에 태어나는 영광을 얻게 된다네.”

 

박가와의 설명을 들은 싯다르타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박가와에게 물었다.

 

“선인이시여, 그럼 천국의 복이 다하면 어찌 됩니까? 스스로를 학대한 대가로 천국에 간다는 것 또한 믿을 수 없지만 더욱이 그런 목적으로 고행을 한다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

 

두 사람의 문답은 해가 저물도록 계속되었다. 그러나 박가와의 어떤 대답도 싯다르타의 의문과 궁금증을 해소시키지는 못했다. 그렇게 이곳에서 몇 밤을 더 머문 후 싯다르타는 이렇게 판단했다.
‘고행하는 목적이 천국이라니! 그렇다면 그것이 브라만의 제례주의나 생천(生天)사상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짐승을 죽여 제단에 올리고 신의 구원을 받으려는 것이나 스스로 학대하여 고행의 결과로 천국에 가려는 것이나 결국 자기 구원에 혈안이 된, 저열한 무리들의 무지한 행위일 뿐이다. 이들의 고행은 혹독한 것으로 그 인내심이야 감탄할 만하지만 결국 남이 하기 힘든 고행을 통해서 도력을 인정받고 세상 사람의 존경을 받으려는 것 아니겠는가?’
싯다르타는 나지막이 탄식하며 말했다.

 

“이곳의 수행은 내가 찾던 길이 아니다. 마치 장사하는 사람들이 보물을 구하려고 험한 바다로 나가고 군왕들이 나라를 넓히려고 군사를 일으켜 서로 싸우듯, 이곳 고행자들 역시 천국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어리석은 희생과 고통을 감수하는구나!”

 

싯다르타는 박가와에게 작별을 알렸다. 인사가 끝나자 그는 지체 없이 남쪽을 향해 떠났다. 그런데 바로 이때 숫도다나 왕이 보낸 사끼야 왕국의 궁중제관과 수행원 두 사람이 싯다르타에게로 다가왔다. 그들은 숫도다나 왕의 전갈을 전하며 싯다르타가 까삘라왓투로 돌아갈 것을 설득했다. 눈길조차 주지 않고 길을 가는 싯다르타를 향해 예를 올린 그들은 눈물로써 사끼야 왕국으로의 귀성을 거듭 호소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것은 싯다르타의 금강석처럼 단호한 의지였다.

 

“내가 출가한 것은 내 한 몸의 안락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환란에 처한 동포들, 나아가 모든 생명들을 구원하려는 서원으로 이 길을 나선 것입니다. 숙명처럼 던져진 이 엄청난 고통의 수렁에서 일체중생이 벗어나는 방법을 나는 반드시 찾아낼 것입니다. 돌아가십시오. 나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당신들께서는 훗날 나의 성취를 훗날 보게 될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