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탄생에 비명처럼 ‘라훌라’를 외쳤던 싯다르타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두 종류의 생각이 그의 뇌리에 떠올랐다. 하나는 자식이 태어남으로써 늘 그가 꿈꿔왔던 수행자의 삶에 새로운 장애가 생겨났다는 생각이었다. 다른 하나는 아버지 숫도다나 왕이 늘 강요해왔던 장자로서 가계를 이어나가야 하고 태자로서 국가 통치의 역할을 계승해야 한다는 두 가지 의무 가운데 가계를 이을 의무는 해결되었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가계를 이어나갈 의무를 이제 막 태어난 아들에게 넘길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 자체가 흔쾌하지는 않았지만 수행자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싯다르타에게 안도감 같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라훌라의 탄생 등으로 한동안 잠재상태에 있던 싯다르타의 영혼의 불씨는 샨딜리아를 만남으로써 다시 불꽃을 피워 올렸다. 체험이야말로 그에게 가장 위대한 스승이었다.
야소다라와의 결혼은 그의 바람대로 성취되었다. 그로 인한 만족이란 일시적인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 만족감이 점차 깊은 사랑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때때로 자신과 야소다라의 감정이 일치하고 있음을 느꼈다. 라훌라가 태어난 후 야소다라의 고통을 마음속 깊이 함께 나누는 시간이 많아졌다.
싯다르타는 생모 마야데비의 죽음이 자신의 출생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그의 나이 열 살 때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출산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피부로 실감한 것은 야소다라가 극심한 산통을 겪고 있을 때였다. 그 전에는 결혼생활의 즐거움에 젖어 그런 위험을 잊고 있었다. 만약 야소다라에게 불행한 일이 생긴다면 장엄한 사랑도, 그에 따르는 모든 만족도 함께 끝나버린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는 라훌라를 처음 본 순간 일어났던 연민의 정을 되새겨 보았다.
라훌라가 보살핌 속에서 자라며 점차 이목구비가 또렷해지자 싯다르타의 어린 아들에 대한 사랑도 점점 더해갔다. 번쩍 라훌라를 들어 올려 품에 안을 때마다 더욱 깊어지는 사랑과 애착이 가슴속 깊이 느껴졌다.
그러나 사랑 또한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죽음 등과 같은 여건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변하거나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사랑이었다. 그는 이미 출산과정에서 보았던 야소다라의 심각한 고통으로 그에 대한 사랑이 크게 위협당한 적이 있었음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다. 마치 거품처럼 쉽사리 사라지는 것이다. 생의 수수께끼를 풀 길은 없을까?’ 이런 의문들은 또다시 그를 깊은 고민으로 이끌었다.
‘무상과 괴로움을 초월하여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길은 없는 것인가? 바라문 사제들은 희생의식의 보상으로 천국의 삶을 약속한다. 아지따 께사깜발리나 막칼리 고살라 같은 고행자들은 인간에게 자연의 진행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야즈냐발캬와 같은 수행자는 인간은 모두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해탈할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불멸의 경지를 획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과연 죽음을 초월한 무사(無死)의 경지가 있을 수 있을까? 만약 저들이 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신이 창조한 것이라면, 세상을 고통과 불행으로 가득 채워놓고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만든 신은 악의 화신에 지나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믿듯이 전능하고 자비로운 신이라면, 그는 분명히 탈출구를 만들어 두었을 것이다. 어딘가에 해탈에 이르는 길이 열려 있을 것이다. 그 문은 아마도 인간의 깊은 무지와 편견, 신화와 미신, 의식과 관습에 가려져 있을 것이다.’
싯다르타는 야소다라와 라훌라를 향한 자신의 사랑과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생각했다. 거기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보였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 또한 작은 부족의 통치자로 남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난 그럴 수가 없다!’ 그는 괴로웠다.
‘아버지는 사끼야 왕국의 왕이었지만 백성들을 구제할 수 없다. 여기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자신의 아내, 나의 어머니의 불행조차 막을 수 없었던 아버지가 어떻게 모든 백성을 구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과연 야소다라와 라훌라를 도울 수 있을까? 나 역시 그들의 고통과 불행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죽음 앞에 무방비로 던져진 존재의 근본적인 불행을 내가 나서서 해결할 수밖에는 없다. 그 길을 찾아낸다면 내 아버지와 어머니, 야소다라와 라훌라,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고해에 빠진 인간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고 동시에 나 자신을 구할 것이다. 아, 나는 그 길을 찾고 싶다. 아니 찾아야 한다.’
야소다라는 싯다르타가 이전보다 훨씬 더 심각한 번민에 쌓여 있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과 라훌라에 대한 싯다르타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라훌라가 태어나면서 겪었던 충격이 망령처럼 따라붙어 싯다르타는 두 번 다시 그와 같은 고통에 말려들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야소다라를 향한 싯다르타의 사랑은 시들 줄을 몰랐다. 싯다르타는 그녀와 더욱 가까워졌고 또한 아기를 깊이 염려했다.
한편 숫도다나 왕은 부쩍 깊은 고뇌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는 싯다르타가 숲 속의 수행자가 되기 위해 태자의 지위를 버리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아시따 칼라데왈라의 불길한 예언은 싯다르타의 사춘기 내내, 결혼한 뒤에도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라훌라가 태어나면서 한동안 상황이 변한 것처럼 보였다. 싯다르타와 야소다라가 더욱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싯다르타가 더 이상 출가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야소다라와 라훌라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라훌라가 숫도다나 왕의 사랑을 독차지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손자를 어르고 함께 있기 위해서 그는 공무조차 뒤로 미루곤 했다. 손자와 며느리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었다. 
야소다라와 라훌라가 숫도다나의 사랑과 보호 속에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싯다르타에게는 아주 다행스러운 상황이었다. 언젠가 집을 떠나고 난 다음에 그들이 받게 될 충격에 대한 두려움이 그의 출가를 가로막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그런 두려움이 점차 엷어지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 숫도다나가 야소다라와 라훌라를 잘 보살펴 줄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설사 생사의 사슬을 풀어버릴 길을 찾을 수 없더라도 다시 돌아와 아버지와 부족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일을 계속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일어났다. 더구나 바라는 대로 인생의 모든 고통을 해결할 길을 발견한다면, 가까운 가족은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행복을 나누어 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야소다라와 라훌라의 장래를 크게 근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상황은 서서히 그의 정신적 활력의 출구를 열어주고 있었다.
고뇌에 빠진 남편을 면밀히 지켜보던 야소다라는 곧 싯다르타의 의중을 짐작하게 되었다. 싯다르타 역시 애써 자신의 출가에 대한 관심과 고민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사실 야소다라는 한동안 싯다르타가 가정생활과 출가의 기로에서 머뭇거리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그의 결심을 바꾸거나 결정을 유보하도록 설득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싯다르타의 마음이 점점 출가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언젠가부터 그 문제에 관해 언급하는 것을 피했다.
그러던 중 숫도다나 왕의 정신적 지주이자 싯다르타의 스승이었던 아시따 칼라데왈라가 여든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마침 까삘라왓투 외곽에 공무차 나가 있는 숫도다나 왕을 대신해서 싯다르타가 태자의 자격으로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아시따 칼라데왈라의 시체는 분홍색 천으로 단단하게 싸여 목곽에 담겨졌고, 화장을 위해 로히니 강변으로 옮겨졌다. 시체는 히말라야에서 흘러내린 성스러운 강물에 잠깐 동안 담가졌다가 다시 강둑에 놓였다. 몇 발짝 떨어진 곳에는 화장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잔가지를 위에 덮은 석자 남짓한 장작더미에 기름이 부어지자, 아시따 칼라데왈라의 시체가 올려졌다. 여러 바라문 사제들이 <베다> 구절을 외우는 동안 한 사제가 횃불을 들고 장작더미를 돌았다. 천천히 세 바퀴를 돌고 난 사제는 장작더미에 불을 붙였다.
싯다르타는 조객들과 함께 시체를 휘말아 삼키는 불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스승의 죽음이 슬펐고, 죽음을 둘러싸고 있는 알 수 없는 의혹에 우울해졌다. 아시따 칼라데왈라는 까삘라왓투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그의 죽음도 평범한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스승의 장례를 치르면서 싯다르타는 다시금 인간고(人間苦)에 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이럴 때 불멸의 영혼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죽음에 이르러 육체를 버리고 떠나는 것인가? 화장하는 연기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는 것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직까지 내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현자인 아시따 칼라데왈라도 저럴진대, 다른 사람들은 말해 무엇 하랴! 거기서 벗어나는 길이 없는 것일까?’
어지럽게 일어나는 온갖 생각들로 인해 그는 장례의식이 끝날 때까지 거기 남아 있을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야소다라에게 이러한 인생의 고뇌를 해결할 길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음을 이해시켜야겠다고 거듭 결심했다. 야소다라는 장례식에서 돌아온 싯다르타의 얼굴이 평소와는 달리 상기되어 있음을 알아챘다. 실제로 스승의 죽음과 화장 절차를 지켜본 싯다르타는 좀처럼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했다.
싯다르타는 야소다라와 은밀히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천진한 라훌라는 아버지의 복잡한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와 즐겁게 놀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라훌라의 쾌활한 움직임을 외면하려고 애썼다. 새삼스럽게 라훌라를 처음 보았던 순간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고, 더 이상 그런 감정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라훌라나 야소다라에도 좋은 일이 아닐 것이었다. 또한 솟구치는 삶의 의혹을 해결하는 일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야소다라는 싯다르타의 마음이 몹시 편치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녀는 시녀들에게 눈짓으로 라훌라를 데려가게 지시한 후 싯다르타의 손을 잡고 발코니로 나갔다. 싯다르타가 야소다라의 어깨에 팔을 얹어 가만히 끌어당겼다.
서쪽 지평선으로 해가 저물고 있었다. 온갖 것들을 생생하게 깨우며 떠오른 태양이 검붉은 노을을 분출하며 조금씩 스러지고 있었다. 주위를 붉게 물들이고 석양빛에 싯다르타와 야소다라의 얼굴빛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반면 아침햇빛으로 찬란하게 물들던 동녘은 점점 더 우울한 어둠에 싸여가고 있었다. ‘저것이 내 인생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야소다라가 생각했다.

 

“야소다라…, 부디 당신의 허락을…”

 

싯다르타의 부드러운 음성을 들었을 때, 야소다라가 느꼈던 모든 불안은 어느새 확실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천둥이었다. 야소다라는 한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낯빛은 창백해졌고 눈동자는 이내 초점을 잃었다. 야소다라의 표정을 살핀 싯다르타는 나머지 말을 마저 다할 수 없었다. 순간 야소다라의 흐느낌을 들었던 것이다. 눈물을 머금는 아내를 바라보는 그의 가슴이 무너져 내려앉는 듯했다. ‘아, 야소다라가 크게 상심하고 있다.’ 싯다르타는 내심 당황했다. 한동안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아, 지금 떠날 수는 없는 것인가!’
꽤 시간이 지난 후 야소다라가 흐느낌을 멈추고 가만히 속삭였을 때, 싯다르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네, 알아요.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는 당신을 기다리겠어요.”

 

싯다르타는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할 수 없게 된 야소다라가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싯다르타는 야소다라가 슬픔을 누르고 냉정을 되찾을 때까지 포옹을 풀지 않았다.
항상 그들 주위를 맴돌던 시녀들이 평소와 다른 싯다르타와 야소다라의 행동을 발견하고는 무엇인가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되었다. 그녀들의 수군거림이 고따미에게 전해지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따미를 통해 숫도다나 왕이 달라진 분위기를 알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며칠 후 고따미는 야소다라를 불러 싯다르타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싯다르타가 곧 숲으로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사실이냐?”

 

야소다라는 시어머니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체념한 듯 대답했다. 

 

“네, 그는 머지않아 궁을 떠나게 될 거예요.”
“뭐라고? 그게 정말이야. 그런데 어떻게 너는 그렇게 당연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태연히 말할 수 있는 거냐? 말려야 될 게 아니니? 넌 아직 젊고 남편이 필요한 시기다. 거기에다 라훌라는 아직 어린아이가 아니냐? 라훌라에게도 아직 아버지가 곁에 있어주어야 해.”

 

태평한 며느리에게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따미가 말했다. 그러나 야소다라는 싯다르타의 결심이 하루 이틀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싯다르타가 숲으로 떠날 결정을 내린 것은 실로 여러 해에 걸친 심사숙고의 결과였다. 그동안 그는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진실과 거짓, 인생의 무상에 대해 끝없이 생각하고 묻고 또 물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출가를 결심하기에 이른 것이다. 
물은 역류하지 않는다. 무엇으로든 물길이 가로막히면 물줄기는 반드시 빠져나갈 길을 찾는다. 싯다르타는 이미 인간이라는 존재 앞에 놓인 수없이 많은 장애 사이로 난 틈새를 발견하고 있었다. 그에게 제왕의 권위나 영화는 이미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야소다라는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그가 몰두하고 있는 인간고 해결의 길을 찾도록 놓아두는 것이리라. 만약 기대했던 길을 찾지 못하고 돌아오더라도, 그가 시도도 해보지 않았다고 자신을 자책하는 일은 없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가 무언가를 찾아낸다면 모두가 그의 덕을 볼 것이다.’
야소다라는 초조하게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고따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고따미가 책망하듯 물었다.

 

“야소다라, 싯다르타의 행위에 대한 책임이 네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니?”
“네, 어머님. 제 책임이 크지요. 하지만, 싯다르타의 행복에 대한 책임도 역시 제게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생각으로 위안을 삼아요.”

 

고따미는 야소다라와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 쓸모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야소다라가 그 나이의 다른 여자들과 딴판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야소다라는 자존심이 강했고 지성적이었다. 고따미는 결국 아버지가 직접 나서서 아들을 설득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숫도다나 왕은 아들이 출가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자마자 한 걸음에 싯다르타의 처소로 달려갔다. 고따미가 그 뒤를 따랐다. 싯다르타와 야소다라는 시녀들과 함께 뛰노는 라훌라를 바라보며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숫도다나 왕이 방에 들어서자 두 부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녀가 라훌라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싯다르타는 아버지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짐작을 하고 있었다. 숫도다나 왕이 자리에 앉은 후 다른 사람들도 뒤따라 자리에 앉았다.

 

“출가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 사실이냐?”

 

싯다르타를 바라보며 숫도다나 왕이 근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핏기를 잃은 그의 얼굴이 몹시 우울하게 느껴졌다. 싯다르타의 굳게 다문 입술조차 그에게는 미소를 짓는 것으로 보였다. 숫도다나와 고따미는 둘 가운데 누군가가 대답하기를 기다리며 야소다라와 싯다르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야소다라는 싯다르타를 바라보며 ‘당신이 대답을 해드려야 하지 않나요?’라고 눈짓으로 말했다. 무겁게 침묵이 흘렀다.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자 숫도다나 왕이 노기 띤 얼굴을 한 채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전통적으로 크샤트리야는 중년이 지나 출가하는 것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싯다르타, 너는 이제 겨우 스물아홉 살이 아니냐? 그따위 출가생활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다. 게다가 당장 네가 전념해야 할 다른 책임이 있지 않느냐?”

 

싯다르타는 이 순간 아버지를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아버지, 그것은 바라문 사제들이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악습일 뿐입니다. 그들은 수천 내려온 명상의 본뜻을 저버리고 종교적 의례로 외향화된 기도나 제사로 일관하면서 4기라는 해괴한 제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떻게 인간을 젊다, 중년이다, 늙었다고 정할 수 있습니까? 어려서 죽은 사람에게 중년이란 없습니다. 젊어서 죽는 사람은 노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무상과 인간고를 해결하는 일을 왜 노년으로 미뤄야 합니까? 어떻게 그때까지 살 거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아버지께서는 바라문 사제들의 이야기를 따지지 않고 따르고 계십니다. 그네들은 보다 많은 제물을 걷기 위해 사람들이 가능한 한 오랫동안 가정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아버지는 지금 자신들의 사회적인 지위를 잠식하고 있는 크샤트리야를 세속에 가둬두기 위해 바라문 사제들이 쳐놓은 그물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아들아, 너는 지극히 이기적이구나. 너는 너에게 부과된 크샤트리야의 의무와 책임에 겁을 먹고 숲으로 들어가 은둔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너는 개인적인 고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너의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을 버리려 하는 것이 아니냐?”

 

그 순간 야소다라는 싯다르타의 표정에서 분노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챘다. 싯다르타가 어떤 말을 했을 때 벌어질 상황이 두려웠다. 무언가 나서 분위기를 바꿔야 하겠다는 생각을 내는 순간 싯다르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아버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저의 출가가 제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고심하고 있는 문제는 바로 아버지의 고뇌며,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고뇌입니다. 저는 스스로 태어남과 늙음과 병듦과 죽음 그리고 슬픔과 번뇌에 묶여 있으니 그것들의 재난을 알고 안온한 열반을 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해탈의 길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제 자신뿐만 아니라 고뇌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 될 것입니다.”

 

숫도다나 왕은 말문이 막혔다. 싯다르타의 성정은 어떤 결정에 이르렀을 때 이미 찬반의 모든 면을 신중히 숙고한 다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는 이미 내려진 결정을 끝내 고집할 것이다. 야소다라 역시 싯다르타의 결심을 수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야소다라와 결혼하고자 했을 때, 아버지인 자신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숫도다나 왕은 싯다르타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고행자가 되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돕겠다는 것이냐? 너는 출가수행자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돕기는커녕 사회의 짐이 될 뿐이다. 그런 사람들은 숲에서 빈둥거리다가 거기서 찾을 수 없는 것을 구하려고 마을에 내려온다. 아무것도 베풀지 못하면서 가난한 마을 사람들로부터 무엇이든 얻기를 기대한다. 그 따위 자비행이 어디에 있다는 말이냐?”

 

싯다르타는 아버지의 이런 비판이 일면 옳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숲 속의 은둔자들은 이따금 무언가 필요한 것이 생기면 거리로 나왔다. 신심이 깊은 주민들이 한두 번 그들이 원하는 것을 내주다가 결국 넌더리가 나고 그들을 외면하는 경우도 있었다.

 

“제가 생각하는 출가는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제가 인간고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다면 그것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 저를 도와주었거나 도움을 거절한 사람 모두에게 똑같이 이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저는 결코 세상의 짐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숲 속에 은거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 또한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
“…”
“…. 그래 언제 어디로 갈 예정이냐?” 분노와 슬픔을 애써 눌러 참으려 숫도다나 왕이 참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언제 어디로 갈 지는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야소다라를 쳐다보며 싯다르타가 대답했다. 그러나 야소다라는 싯다르타를 마주 볼 수 없었다. 숫도다나 왕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그는 빈혈환자처럼 비틀거리며 가까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숫도다나 왕은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꺼이꺼이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