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ㆍ예술 > 이학종의 ‘불교명저 산책’

초의차 완성의 배경 촘촘히 드러내

이학종 | urubella@naver.com | 2019-11-06 (수) 09:55

불교신간산책 10
 

<초의스님 전상서-초의에게 삶을 묻다> 박동춘 지음
 
조선 차문화(茶文化)의 실상과 다성(茶聖)으로 일컬어지는 초의(草衣)의 폭넓은 교유의 흔적을 담은 귀한 책이 나왔다. 초의의 다풍(茶風)을 이어받은 차인으로서 제다법(製茶法)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한학자로서 차 연구의 중요한 축을 이루어가고 있는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소장의 <초의스님 전상서-초의에게 삶을 묻다>(이른아침 펴냄)가 최근 출간된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초의와 관련한 편지와 시첩들은 본래 응송(應松, 1893~1990)스님이 수습했던 자료의 일부분이다. 17세에 대흥사로 출가한 응송스님은 초의스님의 방계손(傍系孫)으로, 초의의 수행력과 차에 대한 식견을 흠모하여 이에 관련 자료를 수습하여 연구했다. 실제 그가 초의 관련 자료를 수집할 무렵인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초의 관련 자료에 대해 아는 이가 드물었다. 소수 추사 연구자들이 초의를 거론하는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응송스님은 흩어진 초의 관련 자료를 수집했으니, 시대를 앞선 응송스님의 탁월한 안목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왜란과 호란 두 전쟁을 거치면서 서서히 스러져가던 조선의 차문화는 대흥사의 승려 초의에 이르러 일거에 그 위상과 진면목을 회복했다. 하지만 초의의 차는 깊은 산중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발전하고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다산과 추사, 홍현주와 소치 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 학자와 문인, 예술가들과의 폭넓은 교유가 있었기에 초의차(草衣茶)가 완성될 수 있었다.
이 책은 초의차의 완성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인물들과 초의가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해설한 책이다. 지은이는 최근 발굴된 자료들도 포함하여 이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들도 새로이 밝혀냈다. 한 편 한 편 편지를 읽을 때마다 초의차는 누구의 어떤 격려와 도움에 힘입어 어떤 형태로 완성되었을까. 그 구체적인 실상과 초의의 폭넓은 교유의 흔적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초의에게 전해진 편지들에는 시대를 막론하고 오간 사람 사이의 사연이 담겨 있기에 개인사 연구의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당대 역사의 일면(一面)을 볼 수 있게 해줌으로써 미세사(微細史) 연구에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따라서 편지란 역사적 사실을 연결해주는 퍼즐로, 사료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이 책에 수록된 편지들 속에는 초의와 교유한 다산과 추사를 비롯하여 북학에 가졌던 인물들, 대흥사와 관련이 있는 승려들을 비롯하여, 해남, 전주, 남평 등지의 아전 및 지방관속의 소소한 일상사가 드러난다. 이런 면에서 그들이 초의에게 보낸 편지나 시문은 초의 연구에 필수적인 기초 자료가 된다. 또한 편지 속에 들어있는 당대의 풍속, 사회, 정치, 종교, 문학, 차문화에 대한 연구는 물론 인물사 조명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내 그대에게 한마디를 청하노니 법희의 공양 선열의 음식을 탐욕스러운 사람과도 나누리.”
“한번 얼굴을 돌려보고 하나 같이 기뻐하니, 무슨 정이 더 간절할 수 있는가.”(31쪽)
 
이 글은 평생을 지기(知己)로 지낸 기산 김상희(추사의 동생)의 편지 중 일부로, 기산의 초의차에 대한 애호, 차로 맺어진 초의와의 우정이 잘 나타나 있다.
 
“스님께서 쓰실 정병과 바루를 찾아 둔 지가 이미 오래되었는데 인편이 마땅치 않아 보내지 못했습니다. 다시 어찌해야 할지요.”
 
윗 글은 병중인데도 평생 우정을 나누었던 초의를 생각하는 유산 정학연의 편지글 일부다. 다산의 장남인 유산은 초의와 추사를 연결해준 인물이다. 강진 다산초당에서 처음 만난 정학연과 초의는 평생 돈독한 우정을 나눴다. 특히 한양을 찾은 초의에게 물심양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고 특히 초의가 경화사족(京華士族)들과 폭넓은 교유를 확대했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두 사람의 우정은 조선 후기의 격의 없는 유불교유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교유의 매개는 물론 시와 차, 편지였다. 
 
이처럼 이 책에는 초의에게 보내온 95통의 편지 중 초의의 폭넓은 교류사뿐 아니라 조선후기의 시대상을 더욱 면밀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을 엄선해 수록했다. 편지글에 대한 해석뿐만이 아니라 각각의 편지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지은이의 높은 안목과 놀라운 통찰을 통해 여실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불갑사 도영, 안국암 우활, 도선암 성활 등 승려들이 보낸 편지에는 1840년경 초의와 표충사 원장직과 관련한 분쟁의 여진을 담고 있는데, 승직과 관련하여 대흥사 초의와 불갑사 도영, 안국암 우활, 도선암 성활이 대립적인 입장이었음이 알려준다. 특히 이 자료는 조선후기 승직과 관련하여, 승과가 실제 복원되지는 않았지만 묵시적으로 승직이 수행되었다는 방증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성과는 초의가 사대부들과 교유할 때 차를 선물한 것이 대략 1830년경으로 알려졌지만 이미 1818년 7월 23일에 홍석주가 보낸 편지에서 초의가 홍석주에게 차를 선물한 시기가 1815년경임을 확인해준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 책에 소개될 편지에서는 조선후기 소치 허련(小癡 許鍊)의 본명에 관하여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였다. 조선 말기 문신인 오세창은 「근역서화징」에서 “소치의 본명은 유(維)이고 후일 련(鍊)으로 고쳤다”라고 주장하였는데, 1839년 12월 3일 편지에서 소치는 자신의 이름을 “허유 배수(許維 拜手)”라고 씀으로써 오세창의 주장이 타당함을 입증한다.
 
95통의 편지가 알려주는 것처럼 초의가 맺은 인연의 인드라망은 거미줄처럼 촘촘했다. 이들이 나눈 편지에는 인간적인 고민과 갈등을 토로하고 환희와 이상을 공유하려는 흔적이 역력하다. 이 책은 <현대불교>에 1년 동안 연재된 글을 모아 엮은 것이다. 연재되는 동안 이 글들은 눈 밝은 이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책에는 한국 전통제다의 정맥을 계승하는 귀한 이가 동시에 빼어난 한학자이기도 한 기연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글이 담겨 있다. 읽을수록 귀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독을 권한다.
 

 
*저자 박동춘은?

응송 박영희 스님에게 <다도전게茶道傳偈〉를 받음으로써 조선 후기 초의선사에 의해 정립된 우리 전통 차의 적통인 ‘초의차’의 이론과 제다법을 이어받았다. 저자는 ‘초의차’를 잇는 한편 초의선사뿐 아니라 한국 차 문화와 관련된 자료를 발굴하고 연구하는 일을 병행하면서 동국대 대학원 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성과를 모아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응송 박영희 스님으로부터 무공無空이라는 법호를 받았고, 사단법인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이사장·소장)에서 ‘초의차’를 계승하는 ‘동춘차’를 만들며 한국 다도의 맥을 보존·전수하고 있다.
성균관대학, 동국대학 등에 출강하였고, 현재 한국전통문화대학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제2회 화봉학술문화상을 수상하였고, 제22회 행원학술 특별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초의선사의 차 문화 연구》(일지사), 《맑은 차 적멸을 깨우네》(동아시아), 《우리 시대 동다송》(북성재), 《추사와 초의》(이른아침), 《박동춘의 한국 차문화사》(동아시아), 《조선의 선비 불교를 만나다》(이른아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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