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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사람 김성채의 '문화탐방' 32

수원사람 김성채 객원기자 | ansanks@hanmail.net | 2019-11-05 (화) 09:54

대웅전
 
대웅전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인 팔작지붕 집으로 세워졌는데, 공포는 이익공으로 짜였고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칠한 금단청과 어울려 매우 화려합니다. 정면 현판 좌우에는 빼어낸 대들보 머리에 조각한 용머리가 대웅전이 반야용선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대웅전
 
 
공포 사이에 생겨난 포벽 칸칸마다 나한을 그렸습니다. 포벽은 공포 짜임의 하단을 구성하는 주두와 소첨차며 대첨차 등으로 인하여 창방 위에 생겨난 삼각형 모양의 공간인데, 정좌하신 부처님이나 나한님을 그리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입니다.  
 
부처님을 모시는 대웅전의 모든 포벽에 나한을 그린 것이 특이하다 할 수 있는데, 세상에 머물면서 불법 수호와 중생 제도를 부촉 받으신 것과 나한님의 인간적이고 해학적인 면을 좋아하시는 주지스님께서 화사(畫師)에게 ‘칸칸마다에 나한님을 그려 주십시오.’라는 부탁을 드리지 않았을까 지레 짐작합니다.
 

포벽 칸칸에 그려진 나한
 
 
측면과 후면 벽에는 출생부터 열반하실 때까지의 석가모니부처님 일대기인 팔상성도가 그려졌습니다. 부처님 생애 중 전환점이 여덟 건의 큰 사건이지만 대웅전 옆면과 뒷면 벽을 기둥이 나누면서 생겨난 면이 일곱 면인 까닭에 ‘설산에서 수도하는 그림(雪山修道相)’이 빠졌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하나를 제켜놓아야 한다면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요? 그렇게 하나를 덜어내고, 또 하나를 덜어내야 하고를 계속한다면 최후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요?
 

대웅전 벽화(녹원전법상)
 
 
대웅전 안에 부처님을 모시기 위해 꾸민 집을 닫집이라 부릅니다. 안양사 대웅전 닫집은 보궁형으로 여러 층으로 짠 공포와 구름 위를 나는 봉황과 학, 부처님과 불법을 수호하는 황룡과 청룡의 기세는 화려함과 넘쳐나는 힘을 보여줍니다.
 

대웅전 닫집
 
 
안양사 대웅전도 당연히 그러하듯 석가모니부처님을 주존불로, 좌우 협시보살로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셨습니다. 부처님은 항마촉지인으로 연화좌에 정좌하셨고,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은 연화 위 사자 등에, 자비를 상징하는 보현보살은 흰 코끼리 등에 앉으셨습니다.
 

석가모니 삼존불과 후불탱화
 
 
부처님 뒤쪽에는 먹탱화 기법으로 그린 “영산회상도”가 걸렸습니다. 모든 색깔을 빨아들여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어진 바탕에 금빛 선으로 석가모니부처님과 10대 보살, 제자, 범천과 용왕, 사천왕 등을 찬란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유난히 다른 색이라고는 머리를 파랗게 깎은 지장보살과 시봉 아난존자 그리고 스님 한 명뿐이어서 눈에 띄게 보였습니다.
 
검은 색은 인간이 가진 본능과 욕망을 억제하고 통제하는 감정을 갖게 하고 엄숙함을 주는데, 탱화 중심인 부처님의 광배에서 퍼져나는 금빛이 신성한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신중탱화
 
 
중단의 “신중탱”과 하단의 “지장탱” 역시 먹탱화로 그려졌는데, 등장인물의 개성을 제각각 풀어낸 금어(金魚)의 솜씨가 놀랍고, 부처님을 향한 신장들의 마음을 낱낱이 담아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미단
 
수미단은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일컫는 수미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불교의 세계관은 수미산이 중심이 되며, 그 바깥은 산과 바다가 세상을 이루고 있다면서 그곳을 환상적인 모습으로 구현해 낸 것이 수미단입니다.
경전에서는 “부처님이 계신 곳은 광대한 법의 맛을 기쁘고 즐겁게 지닐 수 있고, 중생들은 모든 이익을 지을 수 있으며, 티끌 같은 번뇌를 없애는 등 한량없는 공덕으로 장엄하고 뛰어난 보배 연꽃으로 세워진 곳”이라 설명되어 있습니다.
 

연꽃이 기득하고 물새와 거북이 노니는 수미단
 
 
안양사 수미단에는 활짝 핀 연꽃, 물새와 거북이, 경전 공부를 하는 동자, 동자가 연잎에서 누워있거나 잉어와 학을 타고 노니는 모습 등 각양각색의 문양이 목재에 입체적으로 조각되었습니다. 맨 밑단 자락에도 잉어와 용이 연이어 새겨졌는데, 이 또한 상징하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대웅전 안 장식된 닫집과 후불탱화, 연화대좌와 수미단 등을 훌륭히 꾸밈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세계를 아름답게 장엄하고자 함입니다.
 

연못에서 한가로운 동자의 생활을 담아낸 수미단
 
 
그러나 모두 아시는 것처럼
부처님의 “보살들이 불국토를 장엄하느냐?”는 물음에
 
수보리존자는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불토(佛土)를 장엄한다는 것은 곧 장엄이 아니라 이름을 장엄이라고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공부가 낮은 탓에 수보리 존자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도량찬 첫 구절 “도량청정무하예(道場淸靜無瑕穢 도량은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원래부터 티끌이 없고, 더러움이 없는 것)”로 헤아리면 꾸미지 않아도 보여야 할 “도량에 펼쳐진 진실한 장엄”은 못보고, 꾸며놓은 거짓 장엄만 보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안양사 미륵부처님이 내려다보시는 세상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보였고, 마음씨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사람도 다르게 보였습니다. 우리가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 마음을 닦는 것이 대웅전을 진실하게 장엄된 불국토로 만드는 것이고, 또 청정한 대웅전을 훨씬 더 아름답게 볼 수 있을 겁니다.
 
옛 안양사는 없어졌을지라도, 모든 중생들을 편안하게 하고자 했던 천 년 전의 마음은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있습니다. 바야흐로 단풍이 아름다운 삼성산에 자리한 안양사를 방문하시어 천 년 전의 마음도 새겨보시고, 무명번뇌를 벗어난 청정한 마음으로 대웅전(불국토)을 장엄해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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