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도다나 왕은 결혼한 아들이 원만하게 가정생활을 해나가는 것을 보고 내심 안도했다. 그렇지만 그의 머릿속에 아시따 칼라데왈라의 예언이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었다.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그는 싯다르타가 세속적인 쾌락에 탐닉하도록 만들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아들에게 제공한 세 채의 호화 별궁을 온갖 향락적인 분위기로 장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숫도다나 왕은 왕실의 사제인 우다인을 불러 싯다르타를 붙잡아 둘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미녀들을 모아 하렘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하렘은 왕실이나 귀족들의 애욕을 충족시키는 여인들이 머물 공간이었다. 하렘이 만들어지자 우다인은 미녀들을 모아 태자를 쾌락의 포로로 만드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는 왕자의 총애를 받는 방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너희들은 모두 애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구사할 줄 알 뿐만 아니라 미모와 우아함까지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각자 나름대로 남자의 총애를 얻은 일에 솜씨가 있을 줄 안다. 너희들의 솜씨라면 모든 욕망을 던져버린 선인이라도 마음을 달아오르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 천상의 아름다운 님프(요정)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신들이라고 해도 충분히 유혹할 수 있을 것이다. 남성을 유혹하는 능숙한 솜씨와 요염한 교태, 완벽한 미모를 활용한다면 같은 여자라도 유혹할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남자의 경우라면 얼마나 쉽게 유혹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 모두는 각자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태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를 애욕의 포로로 만들어야 한다. 남편을 처음으로 맞이하는 신부가 수치심에서 눈을 감아버리는 것과 같은 수줍은 행동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 알겠는가?”
“네 잘 알겠습니다.”

 

우다인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너희들이 모셔야 할 태자가 제아무리 영웅이고 신분이 고귀하다고 해도 난공불락은 아닐 것이다. ‘남자는 세상을 움직이지만 그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여자’라는 말을 명심하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왕자를 유혹해야만 한다. 옛적에 신도 굴복시키지 못한 위대한 선인이 있었는데, 그는 까시 국의 절세미인이었던 한 창녀의 유혹에 넘어가 그녀의 발에 짓밟히는 신세가 되었다. 또한 심오한 고행의 길을 걷고 있던 위대한 선인 비스바미트라는 아름다운 님프 그리타키의 유혹에 넘어가 애욕의 포로가 되는 바람에 십 년간을 숲속에 갇혀 지냈다. 이처럼 많은 선인들이 미녀들의 유혹에 넘어간 것을 볼 때, 바야흐로 청춘의 문턱에 들어서 감수성이 한창 예민한 싯다르타 태자의 경우는 긴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태자를 적극적으로 유혹하여 왕실의 대가 끊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보통의 남자들을 유혹할 수 있겠지만, 심지가 굳은 남자를 정복하는 여자야말로 진정한 여자가 아니겠느냐?”  

 

 

우다인의 설명을 들은 미녀들은 저마다 싯다르타를 정복해보겠다는 욕심을 드러냈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아름다운 눈썹, 요염한 시선, 교태, 미소, 우아한 동작들이 범부를 유혹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과연 태자를 유혹할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왕실의 사제로부터 격려의 말을 듣고, 태자의 심성이 여리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게다가 술과 애욕의 힘까지 빌릴 수 있게 되자 곧 자신감을 되찾았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한 미녀들은 마치 히마바트(히말라야의 신) 숲속을 배회하는 코끼리처럼 왕자가 숲속을 거닐도록 만들고는 무리지어 싯다르타를 수행했다. 미녀들에 둘러싸여 산책하는 그의 모습은 왕실의 정원에서 천계(天界)의 요정 아프사라들에게 둘러싸인 태양과도 같이 빛을 발했다.
미녀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풍만하고 탄력 있는 유방을 싯다르타의 몸에 은근하게 비벼댔다. 다른 미녀는 쓰러지는 척 하면서 싯다르타를 와락 껴안고서는 담장이 덩굴처럼 흐느적거리는 팔로 몸을 감쌌다. 또 다른 미녀는 앵두같이 붉은 입술에다 독한 술 냄새를 풍기는 입으로 싯다르타의 귓속에 “저의 비밀 이야기를 들어보세요.”라고 속삭였다. 몸에 향유를 바른 어떤 미녀는 마치 길 안내를 맡은 사람처럼 싯다르타의 손을 꼭 잡고는 “사랑의 의식을 이 자리에서 행해보세요.”라고 유혹했다. 한 미녀는 술에 취한 척, 푸른 의상이 연신 흘러내리는 고혹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영롱한 소리가 나는 금 장신구를 단 미녀들은 얇은 천으로만 가린 자신들의 육체를 드러내 보이면서 싯다르타의 주위를 배회했다. 간혹 싯다르타의 눈길이 자신을 향할 땐 망고나무 가지를 잡고 몸을 기울여 황금 항아리 같은 젖가슴을 노출시켰다. 연꽃 밭에서 걸어 나오면서 연꽃을 들고 있는 미녀들은 아름다운 연꽃의 여신 파드마처럼 다소곳하게 서서 태자에게 유혹의 추파를 보냈다. 멋진 율동과 함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달콤한 노래를 부르면서 무덤덤한 싯다르타를 자극하는 또 다른 미녀의 시선은 마치 “당신은 내게 유혹당해야만 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밝은 얼굴에다 눈썹을 크게 그린 한 미녀는 용사의 동작으로 싯다르타의 행동을 흉내 냈다. 아름답고 풍만한 가슴에다 바람에 흔들리는 귀걸이를 한 미녀는 “나를 붙잡아보세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태자를 향해서 큰 소리로 웃었다.
싯다르타가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몇몇 미녀들은 그를 화환의 끈으로 묶었고 다른 미녀들은 코끼리 몰이꾼이 사용하는 갈고리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말을 건네며 유혹했다. 다른 미녀는 태자와 말장난을 해보려고 망고 잔가지를 잡고서 격정에 들뜬 목소리로 “이 꽃은 누구의 것이지요?”라고 물었다. 또 다른 미녀는 남자의 걸음걸이와 자세를 흉내 내면서 싯다르타에게 “여자에게 정복당한 태자님은 온 세상을 정복한답니다!”라고 말했다. 푸른 연꽃 냄새를 풍기면서 눈망울을 굴리는 한 미녀는 흥분해서 취한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태자님 여기를 보세요. 이 망고나무는 꿀 냄새나는 꽃들로 덮여 있지만, 그 속에서 노래하는 뻐꾸기는 마치 황금 새장에 갇혀 있는 것 같군요. 태자님, 연인들에게 슬픔을 더해주는 이 아소카 나무를 보셔요. 나무 가지들 사이에서 꿀벌들은 마치 불에 타죽을 때처럼 어지러운 소리를 내는군요. 가느다란 망고 가지가 감싸고 있는 이 틸라카 나무는 황금 향유를 바른 여인의 옆에 하얀 옷을 입고 서 있는 남자처럼 보입니다. 방금 흘러나온 수액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쿠루바카(심홍색의 맨드라미)는 마치 여인들 손톱의 아름다운 색깔에 주눅이 든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네요. 새싹들이 뒤덮고 있는 이 어린 아소카 나무를 보셔요. 마치 우리들의 아름다운 손길에 수줍음을 타는 것 같아요. 제방 위의 신두바라 관목으로 둘러싸인 이 호수를 바라보셔요. 마치 고운 흰 옷을 입은 미녀가 누워 있는 것 같군요. 물위에 떠있는 청둥오리 암컷도 보셔요. 제 수컷 짝을 마치 노예처럼 거느리고 당당한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네요. 저기 음악에 도취한 듯이 열심히 노래하는 뻐꾸기 소리를 들어보셔요. 또 다른 뻐꾸기도 근심걱정 없이 화답하듯이 노래합니다. 세상만사를 걱정하시는 왕자님 같은 현자를 조금도 개의치 않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노래하는 저 새들은 얼마나 보기 좋은가요!”

 

하렘의 미녀들은 애욕에 들떠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싯다르타를 유혹하려고 공격적으로 들이댔다. 그러나 자제력이 탁월한 싯다르타는 전혀 기뻐하지도 웃지도 않았다. 미녀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았지만, 싯다르타는 평소와 다름없는 평온한 심정으로 사색에 잠겼다.

 

“이 여자들은 청춘이 덧없는 것이라는 것을 왜 모르고 있을까? 늙으면 젊은 시절의 미모도 없어지고 마는 것을!”

 

미녀들의 끈질긴 유혹 공세는 여러 달 동안 계속되었으나,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우다인은 싯다르타가 미녀들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지켜보면서 미녀들을 동원한 공작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알았다. 정략이 뛰어난 우다인은 싯다르타와 직접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싯다르타와 단 둘이 있게 되자 우다인이 말했다.

 

“부왕께서는 태자님의 동무가 되어드리라고 저를 임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태자님을 위해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친구의 세 가지 특질이란 불리한 것은 못하게 말리고, 유리한 것을 행하게 적극 권유하고, 불행에 처했을 때는 저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태자님과의 우정을 약속한 이상, 태자님께서 인간의 위대한 목표를 멀리하는 데도 제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제가 태자님께서 우정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될 것입니다.”

 

우다인은 이어 싯다르타에게 거짓으로라도 여자에게 접근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행동이 아니며, 오히려 부끄러움을 없애고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는데 유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정한 태도로써 여자의 뜻에 따라주는 것이야말로 여자의 마음을 휘어잡는 방법이며, 진정으로 이런 자세와 마음을 가질 때 여자의 사랑이 싹트고, 여자들은 그런 남자를 존경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우다인의 우정을 빙자한 장황한 설명을 듣는 싯다르타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는 침묵한 채 오히려 탐탁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우다인의 설득은 계속 이어졌다.

 

“쾌락이 최상의 목적이라고 생각하여 인드라 신마저도 가우타마 선인의 부인 아할야를 유혹했고, 성인 아가스티야도 소마 신의 부인 로히니를 유혹했습니다. 슈루티(바라문교의 기본경전)를 보면 로파무드라도 같은 운명에 처했습니다. 위대한 고행자 브리하스파티는 아우타티야와 마루타의 딸인 마마타를 유혹하여 바라드바라라는 자식을 얻었습니다. 달의 신은 브리하스파티의 처가 헌주(獻酒)하는 동안에 그녀를 유혹하여 부다를 얻었습니다. 또한 옛적에 야무나 강의 제방 위에서 정력을 주체할 수 없었던 파라샤라는 바루나(천계의 사법의 신) 아들의 딸인 칼리라는 처녀를 유혹하여 잠자리를 같이했습니다. 바시슈타 선인은 욕정이 발동한 나머지 천민출신의 여인 악슈말라를 유혹하여 아들 카핑글라다를 얻었습니다. 위대한 선인이자 왕이었던 야야티는 정력이 쇠퇴한 후에도 카이트라르타 숲속에서 천녀 아프사라스와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카우라바 국왕 판두는 왕비 마드리와 잠자리를 하면 자신이 죽게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의 매력과 미모에 반한 나머지 그녀와 사랑을 나눴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름난 영웅들은 쾌락을 추구하는 욕망이 점잖지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쾌락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하물며 속세의 인간들은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그런데 한창 젊은 나이에 힘과 준수한 용모까지 갖추신 태자님은 모든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인생의 즐거움을 경멸하고 있습니다.”

 

신화까지 총동원하여 청산유수처럼 이어지는 입담 좋은 재상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싯다르타가 먹구름 속에서 천둥이 치듯 우렁차고도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당신께서 저에 대한 호의에서 길게 이야기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저는 당신이 어떤 점에서 저를 잘못 알고 있는지를 설명하겠습니다. 저는 세속적인 목적을 경멸하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들이 그런 목적에 집착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변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세속적 목적에서 어떤 기쁨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렘 미녀들의 아름다움이 영원할지라도 그들과 나누는 쾌락에서 얻는 기쁨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제가 당신이 이야기 속에서 열거한 육욕에 굴복한 위대한 사람들의 전철을 밟을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육욕에 굴복한 결과인 파멸도 또한 그들의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파멸이 뒤따르는 본능적인 행동을 하거나 세속적인 목표에 집착하거나 자제력이 없는 사람들은 결코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없습니다.”

 

싯다르타의 조리 있는 반론에 우다인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에 아랑곳없이 싯다르타가 말했다.

 

“당신은 제게 ‘마음이 내키지 않더라도 여자들과 어울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행동은 아무리 다정한 척해도 가식일 따름입니다. 또한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채 겉으로만 여자의 뜻을 받아들여주는 행동도 저는 마땅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에서 우러난 만남이 아니라면, 나는 단호히 거부합니다. 거짓을 믿으면서 욕정에 사로잡힌 인간, 세속적인 목표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집착하거나 눈감아버리는 인간에게 과연 거짓이라는 느낌이 있겠습니까? 욕정의 포로가 된 인간들이 서로를 속인다면, 남녀 간에는 정신적인 유대감이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부디 제가 비천한 쾌락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인도해주어야 합니다.”

 

우다인은 싯다르타의 단호하고 확신에 찬 설명을 듣고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이런 사정을 숫도다나 왕에게 보고했다. 태자의 마음이 모든 육욕의 대상들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우다인으로부터 듣게 된 숫도다나 왕은 그날 밤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싯다르타와 야소다라는 저녁이면 주변의 정원을 산책했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숫도다나가 고용한 악사들의 연주를 들었다. 이따금 무희들이 그들 앞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왕국 내의 귀족이나 부자들이 이런 식의 향락을 즐기는 것은 일종의 관례였다. 저녁이면 오래도록 술을 마시고, 하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악사와 가수, 무희들이 흥을 돋우곤 했다. 그러나 이런 음주나 향락에 익숙하지 않은 싯다르타로서는 판에 박힌 향응에 점점 싫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저녁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싯다르타가 야소다라에게 물었다.

 

“야소다라, 당신은 이곳에 온 이래 늘 들어온 음악이나 춤이 즐겁습니까?”
“별로….”

 

싯다르타가 그런 향응에 지쳐 있음을 알아차린 야소다라가 대답했다. 싯다르타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나는 음악을 좋아해요. 그건 정말 아름답지요. 무언가 아름다운 것에 집착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또 그렇게 해서 해롭지 않은 만족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탐닉은 병을 만듭니다. 만족은 권태로 변하게 마련입니다. 왜 그럴까요? 야소다라, 당신은 저 사람들이 자기네가 하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리라고 생각합니까? 그 일에 지치지 않았을까요?”
“그네들이 자기 일을 즐기고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지치지는 않을 거예요. 공연 중에 술을 마시는데, 아마 그렇게 해서 피로나 권태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사람들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직업을 가질 수는 없잖아요?”
“그 얘기는 곧, 우리가 이런 식으로 그들을 부리지 않으면 그네들이 살아갈 수 없다는 뜻입니까?”
“그렇죠. 만약 까삘라왓투의 모든 사람들이 음주나 연회를 갑자기 그만두게 된다면 그네들은 큰 타격을 받게 될 거예요. 다른 직업이 없으니 결과적으로 그네들의 가족도 고통을 받겠죠. 그것은 또 그네들이 타고난 재능이기도 해요. 저 사람들이 오직 자기네들의 즐거움만 생각하는 부자들에게 혹사당하고, 혹은 착취당하고 있는 거지만, 저는 또한 그런 식으로 자기네 재능을 파는 그 사람들 탓도 있다고 생각해요. 필요한 것은 양쪽 모두의 자제와 조화지요. 예능인들이 부자들로부터 착취당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한 보장과 함께 그네들 자신도 타락한 방법으로 자기 재능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에요.”
“당신은 훌륭한 선생님이군요. 야소다라!” 
“야소다라, 그렇다면 뭔가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 사람들을 이대로 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사흘에 한 번씩만 공연하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럼 그네들이 제대로 급료를 받을 수 없게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지 않아요.” 싯다르타가 대답했다. “완전한 급료를 치를 겁니다. 그들이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자기들이 기울인 노력만큼 자기네 음악을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겁니다.”
“그런 결정이라면 저도 좋아요.” 야소다라가 말했다.

 

이튿날 야소다라는 집사를 불러 공연을 사흘에 한 번씩으로 제한하라고 지시했다. 그것을 알게 된 악사와 무희들은 크게 실망했다. 그들은 젊은 태자 부부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는 일종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직무를 수행할 때 전력을 다했고, 극도의 피로를 이기기 위해 술을 마시곤 했다. 그 날의 공연에 온 힘을 다 쏟아 넣고, 다음 날 새벽이나 공연이 끝나면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늦은 아침까지 취해 곯아떨어지곤 했다. 그러다보니 늘 가엾은 정경을 연출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그들의 판에 박힌 일상이었다.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위해 그들은 오후 내내 누워 있어야 했다.
싯다르타와 야소다라가 그들의 공연 횟수를 제한하자 그들은 충전의 기회를 얻기는커녕 생활의 균형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었다. 공연 횟수 제한을 일종의 압박으로 받아들인 그들은 일상 업무에 피해를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불평도 할 수 없었다. 싯다르타는 힘을 가진 태자의 신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싯다르타가 야소다라에게 물었다.

 

“그네들은 사흘에 한 번씩 여는 공연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휴가를 즐기고 있나요?”
“아뇨. 제가 알기로는 그 사람들은 풀이 죽어 있어요. 자기네들의 일이 별로 인정받고 있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더구나 자기들 급료가 받을 만큼 받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나 봐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행이지요. 자기네가 이용당하고 있는 만큼 그들 역시 착취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 것에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자신을 해치고 있는 거지요. 스스로 자기들의 직업에 대한 태도를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야소다라는 싯다르타가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참에 그를 논쟁으로 끌어들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야 사회적인 역할 문제가 아닌가요? 말하자면, 크샤트리야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나가잖아요.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때로는 자신을 희생하기도 하면서요. 그러니까 그네들은 나라를 다스릴 임무를 보상으로 받는 게 아니겠어요? 왕은 바로 그런 무사들의 지도자구요.”

 

야소다라는 비록 사회의 부유층 사람들의 무절제한 욕망에 영합하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직업 악사나 무희들의 생활을 찬성하지는 않지만, 그것 또한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직업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야소다라를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야소다라, 왜 전쟁이 일어나야 된다고 생각하죠? 전투를 원하는 사람들이 누굽니까? 전쟁이 크샤트리야가 쾌락과 방종의 따분한 일상을 깨뜨리거나, 혹은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여 쾌락의 자원을 늘리는 수단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습니까? 잘 보아야 합니다. 크샤트리야의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전쟁이 일어납니다. 또 절대군주사상을 가진 바라문 사제들이 칼잡이들을 부추겨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지요.”
“당신 또한 그 중의 하나면서 크샤트리야에 반하는 이야기를 하시는군요.”
“나는 자기비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그들 가운데 하나로 태어났기 때문에 크샤트리야의 잘못을 비판해야 되는 게 아닙니까?”

 

그녀는 싯다르타가 자신의 본심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옳은 것과 그른 것, 선과 악에 대해 숙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싯다르타의 크샤트리야에 대한 비판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사회내의 각 계급이 타고난 다양한 전통적 가치를 송두리째 버려야 된다거나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격렬한 혁명이 아닌 점진적인 사회개혁의 옹호자였다. 그녀는 더 이상 논쟁을 계속하려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얼마 후, 그들은 까삘라왓투의 궁궐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양가 부모님들이 전통의식으로 그들을 맞아들였다. 싯다르타가 정무에 참가할 수 있도록 숫도다나 왕은 자신의 궁중에 거처를 정해주었다.   

 

 

까삘라왓투에도 새봄이 찾아왔다. 사끼야 왕국의 왕족들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봄놀이를 나섰다. 그들은 봄꽃 만발한 아름다운 동산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자신들의 위용을 과시했다. 화려한 의상으로 위엄을 뽐냈고, 숫도다나 왕이 파견한 날쌘 기병들과 호위 병사들이 왕족의 위엄을 더해주고 있었다.
싯다르타 태자는 시종 조용히 웃음을 지을 뿐 말이 없었다. 그런데 동문을 나서 굽잇길을 돌아서던 순간 행렬이 갑자기 멈춰 섰다. 놀란 말들이 몸짓에 몇몇은 자칫 수레에서 떨어질 뻔했다. 태자가 ‘끌끌’ 혀를 차는 찬나에게 물었다.

 

“찬나,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
“네, 한 노인네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람에 놀랬나 봅니다. 저 느려터진 걸음 좀 봐요. 어휴 볼품없는 꼴이라니!”

 

하얀 머리카락에 거무죽죽한 얼굴의 노인이 길 한가운데 서 있었다. 지팡이에 의지한 노인은 굽은 허리를 펴지 못한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근육은 바싹 말라 가죽과 뼈만 앙상하고, 지적지적 눈물과 콧물까지 범벅이 되어 있었다. 왕족의 상춘길을 일부러 방해했다고 생각한 행렬 책임자가 노인에게 소리쳤다.

 

“이놈의 늙은이, 당장 꺼지지 못해!”

 

노인은 합죽한 입을 오물거리며 겁에 질린 표정으로 부랴부랴 걸음을 옮겼다. 비실거리는 걸음으로 엎어졌다 일어서기를 몇 차례나 반복하고서야 노인은 겨우 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길이 열리자 찬나는 말의 등짝을 사정없이 휘갈기고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거침없이 내달렸다. 길게 숨을 돌리며 사끼야 왕족들의 행렬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노인의 시선이 어느 순간 싯다르타 태자와 마주쳤다. 초점을 잃어버린 잿빛 눈동자가 퀭했다. 태자는 생각에 잠겼다.
‘늙는다는 것, 참 서글픈 일이다. 생기를 잃어버리고 비틀거리는 모습을 다들 조롱하고 싫어하는구나. 그러나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도 늙음을 피할 수 없다. 나도 저렇게 늙는 것을 피할 수 없으리라. 나 또한 초라하게 늙어 사람들의 조롱과 혐오를 피할 수 없으리라. 그런 내가 저 노인을 비웃고 업신여길 수 있을까? 봄날처럼 짧은 젊음을 과시하고 자랑할 수 있을까?’
술과 음악, 그리고 만발한 봄꽃들에 취해 새봄을 만끽하는 왕족들 틈에서 싯다르타 태자는 즐거울 수 없었다. 아니 즐겁지가 않았다. 기쁨을 누리기엔 다가올 미래의 모습이 너무도 두려웠고, 먼 훗날의 일이라며 망각하기엔 오늘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봄꽃이 아닌, 여인들의 눈동자와 향기에 취해 다들 흥청거릴 때, 태자는 조용히 무리에서 벗어나 홀로 숲을 거닐었다.
태자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성으로 돌아오는 일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싯다르타는 놀이를 떠나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어느 날, 친족들의 성화를 이기지 못해 다시 나들이를 나서던 참이었다. 남쪽 성문 길가에 거적때기를 둘러쓴 채 섬뜩한 귀신 몰골을 한 사람이 누워있었다. 엉겨 붙은 머리칼에 벌건 종기가 온몸에 불거지고, 종기에서 더러운 피고름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머리털이 곤두섰다. 그는 고통에 신음하며 자기가 토해 놓은 더러운 오물 위를 뒹굴고 있었다. 사람들은 코를 잡고 멀찍이 물러설 뿐 누구 하나 가까이 가지 않았다. 태자가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뭐라도 붙들려는 듯 허공을 더듬는 병자의 손끝에 스친 태자는 솟구치는 연민으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저 사람인들 저 아픔을 상상이나 했을까. 저 사람 역시 지난날엔 젊고 건강했으리라. 찬란한 미래를 꿈꾸고,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으며, 넘치는 의욕으로 하루를 살았을지도 모른다. 허나, 보라. 밤손님처럼 들이닥친 병마에 저리 쉽게 쓰러지지 않는가. 저 사람에게 아직도 내일의 꿈이 남아 있을까? 어제는 둘도 없는 친구였지만 오늘은 모르는 사람처럼 멀리 피해가겠지. 자기는 결코 저리되지 않을 것처럼 이 맛살을 찌푸리겠지. 나 역시 저렇게 병드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중병에 걸릴 수 있으리라. 어쩌면 중병에 걸린 나에게 누구 하나 다가오지 않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리라. 그런 내가 어찌 저 사람의 신음소리를 흘려버리고 기녀들의 노랫소리를 따라 흥얼거릴 수 있단 말인가.’
친족들의 바람과 달리 나들이를 다녀올 때마다 싯다르타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졌다. 숫도다나 왕은 아시따 칼라데왈라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은 아닐까 싶어 점점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 양모 고따미는 근심에 잠겨 음식조차 제대로 삼키지 못했다. 수더분한 성정을 가진 야소다라 역시 더 이상 몸치장도 하지 않았다.
그날도 찬나의 손에 이끌려 동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태자 일행이 서문을 나설 무렵 한 무리의 장례행렬이 나타났다. 머리를 풀어헤친 그들은 망자의 옷자락을 붙들고 하늘이 무너져라 울부짖고 있었다. 아무리 소리쳐도 사랑하는 그 사람을 이제는 다시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부귀와 권세를 누리며 평온한 삶을 살던 이들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 누구도 그들을 도울 수 없었다.
‘슬픈 일이다. 피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허나 누가 죽음을 피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은 모두 저렇게 내 곁에서 떠나가리라. 나 역시 애타는 울음을 뒤로 하고 홀로 죽음의 강을 건너야 하리라. 내일도 오늘처럼 살아 있으리라고 과연 장담할 수 있을까?’
세상은 살펴볼수록 고통으로 아우성이었다.

 

“찬나야, 이제 그만 돌아가자.”

 

태자는 동산으로 향하던 말머리를 돌려 궁전으로 향했다. 태자는 조마조마한 눈길로 바라보는 아버지에게 미루고 또 미루었던 말을 꺼냈다.

 

“아버지, 저는 수행자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원치 않던 순간이 오고 말았다. 불안이 현실로 닥치자 숫도다나 왕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차라리 내가 출가하겠다. 아비를 버리는 불효에 가문의 대까지 끊겠다는 말이냐?”

 

숫도다나 왕의 질책에는 결혼을 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손자 소식이 들리지 않는 데 대한 서운함과 원망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버지, 저는 수행자로서 자유로운 삶, 청정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싯다르타, 제발 마음을 돌려 이 나라, 이 가문을 생각해다오. 네 소원은 무엇이든 다 들어주겠다. 출가하겠다는 말만은 하지 말거라.” 
“저의 네 가지 소원을 들어주실 수 있다면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아버지. 영원히 젊음을 누리며 늙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아버지, 영원히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아버지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아버지,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이별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이런 고통을 두 번 다시 겪지 않게 해주실 수 있다면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태자야,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 이 세상에 늙고 병들어 죽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행여 누가 듣고 웃을까 염려스럽구나.”
“아버지, 그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없는 것이라면 저는 반드시 출가하게 될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