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석
마애종을 지나 10여분을 걸었을 즈음이면 안양사 입구를 알려주는 표지석이 나타납니다.
다이아몬드 형태의 표지석 가운데에는 “안양사”, 그 좌우에는 “불광보조 국토청정 중생제고 실개소멸”(佛光普照 國土淸淨 衆生諸苦 悉皆消滅 부처님의 광명 널리 비추시니 국토가 맑아지고, 거룩한 그 광명이 중생의 모든 고통을 한순간에 소멸시키네)이 새겨졌습니다.
흥망성쇠를 겪어 온 터전에 다시 세워진 안양사와 부처님의 위신력이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염원하며, 가장 단단한 보석이라는 다이아몬드(금강석)에 새겨져 있습니다. 어쩌면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한국불교태고종 사찰임을 알리기 위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주문과 사천왕문이 세워지지 않았지만, ‘문이 세워지지 않았네’라 생각하는 순간에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지나쳤다는 생각입니다. “마음의 문을 연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처럼, 문이 꼭 보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을 뵙겠다는 생각을 떠올린 곳이 일주문, 사천왕문으로 그곳에서 이미 속세는 갈려졌습니다.
유자(儒者)들의 기원
금강석 표지석에서 굽어져 돌아가면 종무소와 넓은 마당이 보이고, 그 옆에 명부전이 있습니다. “명부”는 사람이 죽어서 가는 저승세계로, 죽은 사람은 이곳을 다스리는 열 명의 대왕에게 과거 살아있는 동안의 업장을 심판받게 됩니다.
명부전과 멋진 와송. 안양사 주변에는 키 큰 소나무들이 즐비합니다.
명부전 전각 문 앞은 이승이며, 열 번의 심판을 받고 나면(한 번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저승세계로 가게 되므로, 명부전은 이승과 저승이 갈라지는 전각입니다.
이런 까닭에 후손들은 명부전에서 벌어지는 망자에 대한 심판이 끝나기 전에 시왕에게 공양하고 참회하는 의식을 치르며, 그 공덕으로 망자가 받을 고통이 줄어들고 또 좋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중생을 구제할 때까지 성불을 미루고 계신 대원본존 지장보살.
명부전은 법당에 주존으로 지장보살을 모시는 까닭에 “지장전”이라는 전각 이름을 갖는 것처럼, 안양사 명부전도 상단에는 지장보살을 모셨고 좌우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그 좌우에 각각 다섯 명의 시왕이 안치되었고, 각각의 사이에는 시봉하는 동자, 판관과 녹사, 명부를 지키는 인왕 등 많은 존상이 나열했습니다. 모두 굵은 통나무로 조각되었는데, 같아 보여도 보면 볼수록 시왕마다의 모습과 단청이 다른 것을 찾아낼 수 있어서 보는 재미가 깊어집니다.
명부전에 봉안된 시왕과 권속.
망자가 죽은 지 35일째 되는 날에 업장을 심판하는 염라대왕의 원유관 위에는 사람의 운명이 기록된 책이 올려있습니다.
안양사 극락전에 봉안된 지장보살상의 특징은 전륜법인의 수인을 하셨을 뿐, 지옥문을 열수 있는 석장이나 어둠을 밝히는 여의보주를 들고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중생들이 성불한 후 마지막으로 성불하겠다’는 크나큰 서원을 세우셨는데, 작디작은 지물로 대원본존이신 지장보살을 나타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왕실에서 선조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왕릉 옆에 원찰을 짓고, 궁궐 안에 내원당을 지은 것은 길러주신 은공을 잊지 않겠다는 효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조선왕조가 억불숭유 정책을 강하게 지키려 했지만, 크고 작은 사찰이 곳곳에 남아있는 것은 돌아가신 부모를 극락세계로 보내드리고 싶어 하는 마음은 왕족과 유자(儒者)라고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심검당과 대웅전.
명부전 앞 와송도 멋들었지만 안양사 주변은 키가 큰 소나무가 가득합니다. 소나무 사이로 난 짧은 길이 신검당으로 이어집니다. 전각이름이 “신검당”이니 강원으로 이용되려니 생각하였고, 닫히지 않았기에 서슴지 않고 들어가 십일면관음보살상에 절을 올렸습니다.
십일면관음보살.
여러 방편으로 중생을 구제하여 주시는 관음보살은 본래의 얼굴과 10기의 얼굴이 조각된 보관을 쓰고 계십니다.
십일면관음보살은 열한 가지의 얼굴 모습을 나타내어 중생들을 구제하시는 보살로, 자비희사의 한량없는 마음(사무량심)으로 어리석은 중생 ․ 착한 중생 ․ 악한 중생 등에 차별 둠이 없이 우리들의 고통을 듣고 보살피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런 뜻으로 연꽃을 들고 계신데, 연꽃은 우리 중생들이 본래부터 갖고 있는 불성(佛性)을 뜻합니다.
지혜의 칼을 찾는 집, 심검당에 십일면관음보살상을 모신 뜻은 본래부터 갖고 있는 불성을 찾아 고(苦)의 싹을 잘라내고 해탈을 이루라는 뜻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삼천대천세계에 보시한 복
부처님을 공경하며 여러 절을 다니면서 많은 종(鍾)을 보았는데, 이제까지 보았던 종 중에서 ‘안양사의 종이 가장 청정한 종이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에 새겨진 명문은 단출하게
“찰진심념가수지 대해중수가음진 허공가량풍가계 무능진설불공덕
(刹塵心念可數知 大海中水可飮盡 虛空可量風可繫 無能盡說佛功德)”
세계에 가득한 먼지를 셀 수 있고, 모든 바닷물을 마실 수 있으며,
허공에 지나치는 바람을 잡을 수 있다고 해도
부처님의 큰 공덕을 다 설할 수 없다네.
그리고 “불기2529년 을축 10월 10일”뿐입니다.
안양사 범종에 새겨진 명문.
사찰 불전사물 중에 종이 빠질 수 없습니다. 종소리는 부처님 말씀으로 비유되고, 중생들은 종소리를 듣는 순간 번뇌를 벗어날 뿐 아니라 지옥에 있는 중생들까지도 구제한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범종을 짓는 공덕은 전생의 업이 소멸되어 지옥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른다’하여, 종신(鐘身)에는 범종불사에 참여한 수많은 불자들의 이름이 명문으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굳이 이름을 새겨놓지 않아도 종소리는 조석예불 때마다 삼천대천세계에 울려나갈 것이고, 부처님께서는 지혜로 그 사람을 아시고 또 보실 것이어서, 보시의 공덕을 이룰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모양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으로 보시(불응주색보시)하라’는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