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소다라
싯다르타는 까삘라를 통해서 까삘라왓투의 북서쪽은 물론 남부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상적 변화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까삘라는 바라문교뿐만 아니라 다른 윤리‧철학적 견해에 대해 관용을 보이지 않는 나라닷따와 달랐다. 나라닷따에 비해 까삘라는 문제를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유연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까삘라는 바라문들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로부터 그들을 끌어내릴 개혁의 책임을 크샤트리야 계급에서 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의 이런 입장은 웃달라까 아루니가 주창했던 철학에 기초했다. 웃달라까 아루니는 바라문으로 태어났지만 바라문들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북부에서 교육을 받았다. 따라서 그의 견해는 독단이 심하지 않고 보다 합리적이었다. 그는 열렬한 지혜의 옹호자였다.
웃달라까 아루니에 있어서 존재(생존)는 생명의 근본적인 근거였다. 그는 무(無)가 존재에 선행한다는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초 존재의 본성에 대한 사유에서 웃달라까 아루니는 그것 스스로 지각력이 있으며, 욕구와 소망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존하는 세계는 그러한 최초 존재와 자체의 고유한 창조적 욕망으로부터의 진화라고 보았다. 이런 면에서 그의 철학은 사성계급 제도가 세계를 구성하는 원초적 질료 자체거나 그 일부라고 보는 나라야나의 사상과 달랐다. 웃달라까 아루니는 바라문들이 최고의 사회적 지위를 누릴 수 있는 근거인 카스트 제도에서 어떠한 정당성도 발견할 수 없었다.
크샤트리야 출신인 까삘라는 여러 면에서 웃달라까 아루니의 사상을 지지했다. 그럼에도 그는 세계를 전개시킨 최초의 존재가 유일하다는 웃달라까 아루니의 전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또한 그는 창조력이 물질적 존재의 일부분이라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그는 점차 두각을 나타내고 있던 상캬 학파의 ‘원초적 질료(prakrti)의 진화는 또 다른 요소인 정신적 실재(purusa)의 영향에 기인한다’는 견해에 호감을 보였다. 이 견해는 물질과 정신, 두 요소가 독립적으로 작용하지 못하며 마치 앉은뱅이를 업고 가는 장님처럼 상호 의지한다는 것이었다.
싯다르타에게는 이 모두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들 가운데 어떤 사상은 바라문 사제들이 영속시키려 했던 낡은 전통을 약화시키는 효과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견해들이 어려움에 처한 싯다르타의 현실 문제를 푸는 데는 기여하지 못했다.
‘아, 답답하구나! 현존하는 모든 것이 일원론적 실체로부터 진화한 것이라거나, 그것이 웃달라까 아루니가 믿는 대로 그 자체의 힘을 통해서 지속되거나, 또는 까삘라가 인정하는 대로 외부적인 작인의 영향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라면, 이 세계에서 우리가 만나는 선과 악, 부와 빈곤, 행복과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것을 무엇일까? 까삘라 같으면 선과 행복은 원초적 질료 가운데서 잘 뜨고(부력이 강하고) 밝은 요소(sattva)가 우세할 때 일어나고, 악과 괴로움은 원초적 질료의 유독적이고 자극적인 면(rajas)이 우세한 결과이며, 무관심이나 인간 경험의 중간적 양상은 원초적 질료의 불명료 또는 비활동(tamas)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는 ‘어떤 것이 다른 것들보다 우세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웃달라까 아루니나 까삘라는 모두 그와 같은 견해의 정당성을 밝히고 증명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 싯다르타의 생각이었다. 싯다르타는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했다.
‘나는 사끼야 왕국의 왕 숫도다나의 아들로 태어났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지금의 내 안목과 지식으로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왕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게 어떤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내 스스로의 의지와 힘으로 내가 원하는 바를 성취해야 한다.’
싯다르타는 까삘라왓투에서 열리는 음악제에서 야소다라를 만나게 되기까지 한동안 그러한 생각에 열중하고 있었다. 까삘라왓투의 유복한 주민들에게 음악은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그들은 음악 속에서 잠자리에 들고 음악소리와 함께 일어났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식사시간, 심지어는 여행을 하면서도 여흥을 위해 악사들을 대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축제, 행진, 결혼 심지어는 장례식에조차 음악은 거의 빠지는 일이 없었다. 공공장소에서의 음악경연은 악사들에게 각자의 재능과 잠재력을 과시할 기회와 무대를 제공했다.
몇 달 전에 열렸던 운동경기에 참가하지 않았던 싯다르타도 이번 음악제에는 참석하기로 했다. 야소다라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그 역시 음악은 즐기는 편이었다. 비록 그는 부자들에게 이용당하는 악사들의 생활 양태가 흔쾌하지는 않았지만. 평소처럼 음악제에 참석했다.
“아무튼! 지난 운동경기에 참가하지 않은 이유는 뭐죠?” 음악제에 참석한 야소다라가 싯다르타에게 물었다.
“까삘라와 나는 운동경기를 잊고 있었어요. 그날 아침 우리는 강 건너 마을에 갔었습니다. 백성들의 생각이나 믿음, 행동, 그리고 그들의 바람이 무언지 알고 싶어서죠.” 싯다르타가 대답했다.
음악제가 시작되면서 싯다르타와 야소다라는 나란히 앉아 음악을 감상했다. 그러나 싯다르타나 야소다라 둘 다 음악경연에 온전히 주의를 기울일 수 없었다. 싯다르타는 야소다라가 가까이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포근함을 느꼈다. 야소다라 또한 싯다르타와의 따스한 접촉이 마냥 설레고 기쁠 뿐이었다.
음악 경연이 끝났을 때, 싯다르타는 야소다라를 집까지 바래다주기로 했다. 싯다르타는 야소다라가 전에 보았던 것처럼 수다스럽고 활달하기만 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그녀는 조용하고 수줍어하면서도 신중했다. 둘은 말없이 걸었다. 오랜 침묵을 깬 것은 싯다르타였다.
“야소다라, 부모님들이 당신의 배우자로 선택해둔 남자가 있습니까?”
“아직 제게 그런 얘기를 하신 적은 없어요.” 야소다라가 흘깃 싯다르타를 바라보며 답했다. 싯다르타는 한동안 침묵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무엇인가 중요한 제안을 할 것 같은 분위기가 흘렀다.
“부모님들이 아직 배우자감을 정하지 않았다면 나와 결혼해줄 수 있겠습니까?”
순간 야소다라가 싯다르타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싯다르타의 눈빛은 흔들렸다. 혹시라도 야소다라가 거절을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곧바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야소다라의 까만 눈동자에서 뿜어 나오는 애정 어린 호의를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싯다르타는 자신을 향하여 가만히 내미는 야소다라의 손을 꼭 쥐었다.
숫도다나의 허락을 받다
숫도다나 왕에게 바쁜 하루가 밝았다. 이 날은 석 달마다 한 번씩 각 고을의 촌장들이 왕을 알현하기 위해 까삘라왓투로 모이는 날이었다. 왕뿐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바빴다. 촌장들은 각기 그들의 고을에서 왕 몫으로 밀, 쌀, 기타의 생산물들을 가져왔다. 그때마다 숫도다나 왕은 촌장들과 까삘라왓투에서 초청한 가족을 위한 잔치를 베풀었다. 악사들이 손님들을 흥겹게 하고 사방이 온통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한 바탕 잔치가 끝나면 왕궁의 식구들은 모두가 지칠 수밖에 없었다.
손님들이 모두 떠나고 난 후 숫도다나 왕이 발코니로 돌아와 멀리 저녁노을에 물든 로히니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온 가족이 피곤한 하루였음을 잘 알았지만, 그래도 오늘 저녁에 중요한 결정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검정, 회색, 은빛으로 아름다운 산맥의 윤곽을 그리며 떠오르는 달빛이 그윽한 밤이었다. 싯다르타는 발코니로 올라갔다. 입구에서 발걸음을 멈춘 싯다르타는 아버지에게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 지 고심을 거듭했다. 인기척을 느낀 숫도다나가 등 뒤에 서 있는 싯다르타를 보고는 부드러운 목청으로 물었다.
“아들아. 피곤하지 않느냐? 철마다 있는 이 행사가 나를 지치게 하지만 그래도 오늘 일은 만족스럽게 치러졌구나.”
“저는 괜찮습니다. 아버지.” 싯다르타가 대답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버지께서 저를 결혼시키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미 어머니와 의논했지만 아버지께 제가 선택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숫도다나 왕은 며칠 전 고따미로부터 싯다르타와 야소다라가 서로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그게 누구냐?”
“야소다라입니다.”
“야소다라에 대해 잘 알고 있느냐?”
“그렇습니다.”
“그녀가 사끼야 왕국의 왕비로서 적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숫도다나 왕의 음성에 흥분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 저는 왕비가 아니라 제 아내를 찾고 있습니다.” 싯다르타가 즉시 답했다. “그러나 야소다라는 분명히 어떤 일이든 훌륭하게 해낼 것이라고 믿습니다.”
싯다르타는 두 손을 모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은은하게 비치는 달빛을 응시했다. 숫도다나 왕 무거운 침묵을 이어갔다. 아들이 자신의 마음속 진동까지 알아차릴까 염려스러웠다. 그는 기둥처럼 서 있는 싯다르타를 뒤로 하고 발코니를 나갔다.
숫도다나 왕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경호병이 열어주는 문을 통하여 평화로운 밤공기를 마시며 궁전 정원을 산책했다. 은은한 달밤의 적막도 그의 뛰는 가슴을 안정시키지 못했다. 한동안 궁정을 오가던 숫도다나 왕이 다시 궁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는 흠칫 놀랐다. 그때까지 고목처럼 서 있는 싯다르타를 발견한 까닭이다. 숫도다나 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침실로 들어갔다. 고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청소를 감독하고 회계원들과 함께 고을의 촌장들이 가져온 물건들이 잘 기록되고 보관되는 지를 점검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숫도다나 왕은 침대에 몸을 누였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밤이 이슥해서야 고따미가 침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왕궁의 여주인으로서, 그리고 왕실 재산의 출납관으로서 하루 일과에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숫도다나 왕은 고따미가 모든 일을 마치고 침실로 들어올 때까지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여태 자지 않고 계시네요. 무슨 걱정이라고 있어요?”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면서 고따미가 물었다.
“응, 계속 깨어 있어야 될 거야. 그렇지 않고는 뭐가 어떻게 돼 가는지 알 수가 없을 것 같아.” 풀죽은 목소리로 숫도다나 왕이 말했다.
고따미는 왕이 무엇인가 깊이 고심하고 있음을 눈치 챘다. 그러나 밤늦은 시간에 무슨 고민인지를 묻거나 의논을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것 같아 말을 아꼈다.
숫도다나 왕도 마음이 어지러웠지만 사실 몸은 몹시 피로해 있었기 때문에 이내 깊은 잠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오래 잠들지 못했다. 어느 정도 피로가 사라지자 안정되지 않은 마음이 다시 그를 깨웠다. 채 두어 시간이나 눈을 붙였을까. 고따미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일어나 발코니로 향했다. 순간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미 여러 시간 전에 스쳐 지나왔던 그 자리에 싯다르타가 마치 동상처럼 똑같은 자세로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숫도다나 왕의 마음은 분노로 들끓기 시작했다. ‘저 모습은 아버지의 의사를 무시하는 방자한 태도가 아닌가!’ 처음으로 아들로부터 공개적인 반발을 당한 숫도다나 왕은 화를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분노가 폭발하려는 그 순간 그의 뇌리에 번개처럼 아시따 칼라데왈라의 예언이 떠올랐다. 그는 취한 사람처럼 비틀댔다. 한숨을 길게 몰아쉬고 잠시 진동하는 가슴을 가라앉혔다.
“싯다르타. 어쩌자고 그렇게 서 있느냐?” 숫도다나가 애써 마음을 다스리며 물었다.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기다릴 작정이었느냐?”
“아버지의 결정을 알 때까집니다.”
“내가 반대한다면 어떨 생각이냐?”
“아버지께 제 결심이 적절한 것이라는 것을 확신시킬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이미 며느리 감으로 정해 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 여자가 저에게 적합한 사람이라고 제 스스로 확신할 때까지 아버지 또한 기다리셔야 할 겁니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나오는 싯다르타의 대답에 숫도다나 왕은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생각한 것보다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 분 동안 발코니를 오가며 현재의 문제와 관련된 모든 사실들을 마음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고따미는 야소다라와 그녀의 가족에 대해 한 마디도 반대하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또 그들과 가까이 지내는 사이다.’ 그는 야소다라가 마치 이교도 같다는 점에서 싯다르타와 매우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이 결코 비극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귀족부인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이웃 나라의 신하 이야기를 여행자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또한 정치에 간섭하는 왕비들도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야소다라를 며느리로 맏이하는 것이 반드시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야소다라와 그의 가족들은 정치적 야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의 가정은 평화롭고 행복하다. 야소다라는 쾌활하지만 또한 예의바르지 않은가.’ 생각이 여기에 미친 숫도다나가 싯다르타에게 다가가 다소 기운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좋다. 싯다르타! 이제 그만 잠자리에 들어 편히 자거라. 네가 원하는 대로 해도 좋다. 나는 다만 네 선택이 바른 것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 순간 싯다르타는 아버지에게 맞섰던 자신의 오만을 참회했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었던 현실도 인정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그럼 돌아가겠습니다. 아버지.”
숫도다나는 더 이상 생각해야 할 것이 없었다. 그는 침실로 돌아가자마자 깊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야소다라 부모의 허락을 받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야소다라의 부모도 그들의 딸이 싯다르타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숫도다나 왕의 누이동생이기도 한 아미따 부인은 무척 기뻤다. 반면 남편 숩빠붓다는 다소 회의적이었다. 숩빠붓다는 보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매우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 덕에 야소다라는 그 또래의 다른 까삘라왓투 소녀들보다 훨씬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는 싯다르타의 전통적 가치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 동감했다. 그러나 동시에 싯다르타가 온전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다. 숩빠붓다가 싯다르타와의 관계를 인정하는 데 극도로 신중을 기한 것은 야소다라의 미래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미따 부인은 딸이 장차 사끼야 왕국의 왕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의기양양했다. 또한 싯다르타는 온 나라 처녀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미남 청년이기도 했다. 아미따 부인은 사실 싯다르타와 야소다라의 관계를 알기 전부터 싯다르타 찬미자였다. 언젠가 그의 부친과 함께 행사에 참석한 싯다르타를 보고 나서 한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저렇게 멋진 아들을 둔 부모는 얼마나 행복할까. 저런 청년을 남편으로 가질 여자는 정말 행복한 사람일거야.”
아미따 부인으로서는 꿈같은 일이 현실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데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당연히 딸을 지원해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한편 싯다르타는 두 가지를 성취했다고 생각했다. 첫째, 결혼할 여자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좋아하기 때문에 청혼을 받아들였음을 확인한 것이다. 둘째는 심각한 불화 없이 아버지의 동의를 받아낸 것이다. 이것들은 싯다르타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에게 야소다라의 부모들이 그가 태자이기 때문에 야소다라와의 결혼을 허락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남아있었지만,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것에 뿌듯했다. 싯다르타는 야소다라의 집을 방문해 자신의 염려를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싯다르타가 야소다라의 집에 도착해 야소다라를 마주하고 자리에 앉았다.
“야소다라, 아버지께서 우리들의 결혼을 허락하셨습니다.”
야소다라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에서 반짝반짝 생기가 돌았다.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녀가 말했다.
“아버님의 승낙을 받기 위해 다투지는 않았나요?”
“조금요. 하지만 심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신 부모님들은 우리 결혼에 반대하지 않을까요?”
“어머니는 무언가 짐작하고 계실 거예요. 어머니는 당신을 아주 좋아하시지만 아버지께서 어떻게 생각하실 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집안일에는 대개 어머니 생각이 결정적인 걸요.”
잠깐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가지 않았다. 야소다라의 어머니가 거실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싯다르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미따에게 인사하자 그녀는 인사를 받자마자 바로 싯다르타의 옆자리에 앉았다. 싯다르타가 자신의 오라버니 숫도다나의 아들로 조카뻘이었지만 왕위를 이을 태자였기에 아미따는 경어를 사용했다.
“태자님!” 아미따 부인이 겸연쩍게 말했다. “자리에 앉으세요. 야소다라의 아버지는 오늘 아침 친척집에 가셨어요. 곧 돌아오실 거예요. 여기서 저녁 드시지 않겠어요?”
“아뇨. 감사합니다.” 싯다르타가 말했다. “그냥 야소다라만 잠깐 만나려고 했습니다. 곧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요? 다음에 올 때는 이렇게 서두르지 마세요. 숩빠붓다도 당신을 만나면 좋아할 거예요. 그분께 사끼야 왕국의 태자가 다녀갔다고 얘기할게요.”
싯다르타는 가만히 미소를 머금었다. 아미따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싯다르타에게 작별인사를 하고는 거실을 나섰다.
“우리 어머니는 저러셔요.” 이해를 구하듯이 야소다라가 말했다. “이야기하기를 무척 좋아하시지요. 하지만 이해심이 깊은 분이시랍니다.”
싯다르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야소다라와 함께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그는 음악제에서 돌아오는 길에 처음으로 손을 잡았던 것과 같은 감정을 느꼈다. 집 밖에 나서자 싯다르타가 정중히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우리는 곧 함께 있게 될 겁니다.”
그는 그녀를 거기 세워둔 채 떠났다. 문간을 나서면서 싯다르타가 뒤돌아다보았다. 야소다라는 그를 바라보며 그대로 서 있었다. 그는 손을 흔들어 보이는 야소다라에게 손을 들어 답하고는 말을 달렸다.
싯다르타가 떠나고 나자 야소다라의 어머니는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 묻기 시작했다.
“싯다르타가 구혼해왔니?”
“네, 그랬어요.” 야소다라가 대답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니?”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너 그 사람 좋아하는 게 아니니?”
“네, 좋아하고 있어요.”
아미따 부인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좋아하고 있다면서, 네 손을 잡고 구혼하는데도 아무 말도 안 했단 말이야?”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제 손을 주었잖아요.”
야소다라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미따 부인은 기뻤지만 아직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숫도다나 왕이 널 받아들일 것 같니?”
“그걸 알려주려고 왔던 거예요.”
“승낙했다던? 아니면…” 참을 수 없게 된 아미따 부인이 재촉하듯 물었다.
“싯다르타가 아버지를 설득해냈대요. 이제 남은 일은 우리 아버지의 승낙을 받는 일일 것 같아요.”
아미따 부인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 결혼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로라도 적극 지원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이 결혼을 찬성해 주도록 설득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저녁때쯤 집으로 돌아온 남편 숩빠붓다는 부인의 얼굴이 평상시와는 달리 기쁨으로 넘쳐나는 것을 발견했다. 잠깐 휴식을 취한 숩빠붓다는 저녁식사를 위해 가족과 한 자리에게 앉았다.
“오늘 귀한 손님이 다녀갔어요.” 아미따 부인이 말문을 열었다.
숩빠붓다는 궁금한 눈빛을 보였다. 평소 때 같았으면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꽤나 수다스러웠을 야소다라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이상했다. 숩빠붓다는 자신이 집을 비운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그래, 내가 없는 동안에 왕실에서 손님이 왔었던 거야?”
싯다르타의 방문을 예감한 숩빠붓다의 예리한 질문에 접시에 담은 음식을 헤집고 있던 야소다라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매우 진보적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싯다르타를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야소다라는 아버지의 질문에도 답을 하지 못하고 접시만 만지고 있었다. 그러자 숩빠붓다가 아내 아미따에게 물었다.
“싯다르타가 야소다라와의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소?”
“그렇게 생각됐어요.” 아미따 부인이 대답했다.
“나로서는 싯다르타를 한 가족으로 생각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소. 숫도다나 왕은 싯다르타가 정사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지. 그는 그 나이, 그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너무 책임감이 없는 사람으로 보인단 말이야.”
야소다라는 점점 불안해졌다. 그러나 그 불안한 마음을 감추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요즘 그 나이 또래 젊은이들 모두가 한 가지 아니겠어요? 잠깐이면 지나가 버릴 한때의 모습일 뿐이에요. 결혼하고 나면 의무나 책임에 전념하게 될 것예요. 그렇지 않을까요?” 숩빠붓다를 달래듯 아미따 부인이 말했다.
“싯다르타가 정말 야소다라에게 구혼이라도 한 거요? 아니면 겨우 그가 한 번 들른 걸 가지고 상상해낸 말이요?” 숩빠붓다가 재차 물었다.
“물론이죠. 그가 야소다라에게 청혼했어요.”
숩빠붓다는 다시 야소다라를 향해 물었다.
“야소다라, 그래서 뭐라고 했니?”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고개를 숙인 채 야소다라가 대답했다.
“하지만 숫도다나 왕은 또 어떻고? 그가 싯다르타의 뜻을 따를까?”
“싯다르타가 온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에요. 아버지 숫도다나 왕과 결혼문제를 상의했고 허락을 받았대요.”
“음, 그래? 숫도다나 왕이 결혼 승낙을 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구나. 그는 싯다르타를 완전히 자기 수중에 두려고 해 왔잖아. 싯다르타가 까삘라왓투 밖으로 공부하러 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던 사람이야.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무진 애를 쓴 거지. 야소다라는 숫도다나 왕이 원하는 그런 아이가 아닐 텐데. 아무튼. 야소다라. 네 마음은 어떤 거냐?”
야소다라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나 숩빠붓다는 이미 야소다라의 마음에 싯다르타가 깊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다만 딸의 장래가 걱정될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싯다르타를 믿을 수가 없었다. 아미따 부인은 여자의 직감으로 남편이 야소다라의 결혼을 허락하는 것에 대해 매우 혼란스러워하고 있음을 알아채고 서둘러 자리를 마무리했다.
“시간이 오래 됐어요. 오늘은 그만 쉬는 게 좋겠어요. 많이 피곤해 보이는군요. 다음에 좀 더 이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기로 해요. 여보.”
아미따 부인의 말에 숩빠붓다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로 들어갔다. 야소다라의 음식은 접시에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대신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다가 한 두 줄기씩 볼을 타고 떨어졌다.
“야소다라. 아버지에게 좀 더 생각할 시간을 드리자. 그러나 틀림없이 잘 될 거야.”
아미따 부인이 딸의 등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달랬다. 야소다라의 검은 머리카락에서 봄꽃 냄새가 풍겼다.
한편, 숩빠붓다와 아미따 부부는 관습에 따라 야소다라가 남편감을 선택할 수 있도록 모든 이웃나라 청년들에게 초청장을 보내 선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물론 야소다라는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젊은이들 가운데서 싯다르타를 선택했다. 그렇지만 숩빠붓다는 딸의 선택이 그리 만족스럽지만은 않았다. 그는 딸과 싯다르타가 원만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싯다르타가 외곬으로 성자와 선인들을 만나는 것을 즐겨하고 고독을 즐기며 자주 명상에 잠기는 성정의 소유자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러나 숩빠붓다로서는 딸 야소다라가 저렇게 완강하게 싯다르타에게 마음을 뺏기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숩빠붓다는 딸의 선택을 존중해 싯다르타를 사위로 삼기로 했다.
문제는 탈락한 경쟁자들의 실망과 분노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어떤 시험을 통한 공정한 경쟁으로 신랑감이 정해지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일방적인 야소다라의 선택에 의해 신랑감이 결정되었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은 흥분했다. 탈락한 청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숩빠붓다에게 궁술시합을 열어 사윗감을 선택해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들의 요구가 생각보다 강력한 것에 놀란 숩빠붓다는 난감한 지경에 빠졌다. 그는 고민 끝에 할 수 없이 궁술시합을 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이런 시합에는 참석할 마음이 없었다. 어차피 야소다라가 선택한 사람은 자신인데, 다시 경쟁에 나서는 것이 전혀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마부 찬나는 싯다르타에게 내키지 않더라도 시합에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
“태자님, 궁술시합에 참석해야 합니다. 만약 시합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부왕과 가문은 물론 야소다라에게도 치욕을 안겨주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찬나, 그런가? 반드시 그래야 한다면 어쩔 수가 없지. 참가하도록 하겠네.”
야소다라의 신랑감이 되기 위해 많은 청년들이 궁술시합에 나선 가운데, 싯다르타는 단연 월등한 실력으로 1등을 차지했다. 그 누구도 싯다르타의 말 타는 솜씨와 궁술 실력을 따라올 수 없었다.
결혼
숫도다나 왕은 온갖 정성을 다해 싯다르타의 결혼을 준비했다. 겨울, 여름, 우기의 각각 다른 계절 동안 지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까삘라왓투 외곽의 세 별궁들을 싯다르타와 야소다라가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새롭게 단장했다. 그들에게 안락한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했다. 거기에는 행복한 결혼생활이 싯다르타의 태도에 변화를 가져다주기를 바라는 아비의 간절한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
결혼식 날, 싯다르타가 바라문교의 전통을 존중하지 않는 것을 아는 숫도다나 왕은 까삘라왓투의 대관식장에서 간단하게 결혼식을 치르도록 했다. 그 대신 결혼식이 끝난 후 까삘라왓투의 북쪽 산기슭에 자리 잡은 멋진 집, 여름별궁에 사람들을 초청해 화려한 파티를 열었다. 여름별궁의 정원에는 연못이 있었고, 색다른 식물들이 아름답게 자라고 있었다. 양쪽에는 과일나무 동산이 있고, 뒤쪽에 널찍하게 마련된 과수원은 짚은 숲과 이어져 있었다. 특히 여름동안 급류로부터 끌어온 물로 작동하는 분수와 인공폭포가 더위를 쫓아주었고, 거기에서 흩어져 나오는 물보라가 청량하고 쾌적한 분위기를 한껏 돋우고 있었다.
양가의 부모를 비롯해 가까운 친척, 친구들이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늦은 오후 여름별궁의 파티장소에 속속 모여들었다. 갖가지 음식과 과일, 마실 거리들이 푸짐하게 쌓였다. 이날을 위해 미리 선발된 악사와 무희들이 공연을 벌였고, 어린 소녀들이 매혹적인 목소리로 합창을 했다. 새 부부를 영접하기 위해 온 인근 마을의 지주들과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도 즐거운 시간이 마련됐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파티는 마무리 되었다.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왔던 손님들이 하나 둘씩 떠나가기 시작했다. 싯다르타와 야소다라는 문간에 서서 손님들을 배웅했다. 마지막으로 양가의 부모들이 떠나려 하자 야소다라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발을 잡은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두 눈에 눈물이 고인 숩빠붓다는 딸의 어깨를 잡아 정중하게 일으켜 세우고,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이어 야소다라는 딸과 헤어져야 하는 아쉬움과 태자와의 결혼이 주는 기쁨이 뒤섞인 눈물로 온 얼굴을 다 적신 어머니에게 다가가 공손히 절을 하고는 깊은 포옹을 나눴다. 다음으로 숫도다나 왕과 고따미 왕비가 며느리가 된 야소다라의 절을 받았다. 이어 싯다르타가 아버지 앞으로 걸어가 엎드려 절을 올리고 일어서자 숫도다나 왕이 아들을 껴안아 주었다. 아버지와 포옹을 한 채 싯다르타가 나직하게 말했다.
“아버지, 제가 한 일이 옳은 것이기를 바랍니다. 아버지를 거스른 게 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숫도다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아들을 꼭 껴안아 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싯다르타는 이어 어머니와, 장인, 장모에게 차례로 예를 올렸다. 그의 어린 동생 난다는 이 모든 것을 신기한 듯 지켜보고 있었다. 난다를 발견한 싯다르타가 다가가 동생을 안아 올리고는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작별인사가 모두 끝나고 부모들과 가까운 친척들이 까삘라왓투로 돌아가는 마차에 오르기 시작했다. 시종들은 집안에 남겨두고 싯다르타는 야소다라와 함께 현관 밖까지 걸어 나갔다.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싯다르타와 야소다라에게 ‘이제 부모님에게서 독립을 하게 되었다’는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싯다르타는 야소다라에게 다가가 어깨에 팔을 두르고 가만히 안았다. 야소다라는 살며시 몸을 기울여 이제 남편이 된 싯다르타의 품에 안겼다. 싯다르타의 포근한 가슴에 고개를 묻는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는 더없는 안도감이 피어났다. 거기에 더 이상의 외로움은 남아 있지 않았다.
싯다르타와 야소다라가 여름별궁에 머무는 동안 많은 친구들이 그들을 찾아왔다. 친구들 중에서 가장 가까웠던 까삘라의 방문이 가장 잦았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이전처럼 까삘라와 자유롭게 까삘라왓투 외곽까지 여행할 수 없게 되었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친구들과의 우정에 앞서 영원한 반려자가 된 야소다라의 남편으로서 의무가 지워졌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이다.
야소다라는 싯다르타가 그의 동료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사실 야소다라는 까삘라가 싯다르타에게 모종의 지적 자극을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친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야소다라는 싯다르타가 친구들과 만나지 못하는 공백을 메울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