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몇 번씩 서울을 오가며 지나치는 곳이 안양시입니다. 지나치면서 도시이름 “안양”(편안할 安, 기를 養)에 대해 막연히 좋다는 생각만 할 뿐이지, “서방정토 극락세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안양시사(安養市史)에 의하면 조선말까지 과천현과 시흥군에 속하다가 1949년에 이르러 “안양면”이라는 지명을 갖게 되는데, “안양”이라 이름 지은 연유로는 관내에 고려 태조 왕건이 창건한 절 『안양사 安養寺』가 있었음을 들었습니다.
이를 알자마자 고려 건국(918년)부터 이제까지 지나온 세월을 보고픈 가려움증이 생겼고, 이를 시원하게 긁어줄 안양사를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안양사 인근은 불법을 깨닫게 하는 영험한 능력을 지녔는지 신라 문무왕(재위 626년~681년) 때 원효대사가 삼막사, 의상대사가 연주암, 윤필거사가 염불암을 각각 창건해 수도한 사유로 “삼성산(三聖山)”이라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통일신라 흥덕왕 때 중초사(中初寺)가 건립(827년)되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사유로 폐사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효공왕 때(900년)에 금주(시흥)와 과주(과천)등의 지역을 정벌하기 위해 삼성산을 지나던 왕건이 산 정상에서 피어오르는 오색구름을 보았고, 폐사 터에서 수도하는 능정스님과 뜻이 통하여 ‘중생이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안양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통일 신라는 귀족들의 권력 투쟁으로 국가기강이 풀어지면서 여기저기서 민란이 끊임없이 일어났고, 세력을 확장하려는 궁예와 견훤의 전쟁도 40여 년간 이어졌으니, 힘없는 백성들이 기아와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음은 불을 보듯 훤합니다. 
이런 때에 부처님의 가피력 신봉자인 왕건은 전란에 지친 백성들을 위해 부처님의 위신력이 가득한 정토에서 편안하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안양사를 지었을 것입니다.   

 

 

고려왕조는 태조 왕건이 남긴 열 개의 유훈(훈요십조) 중 불교와 관련된 내용 3개 조를 끝내 지켜낼 정도로 불교를 숭상한 호국불교 국가였으나, 새로운 왕조를 편 조선의 억불숭유 정책에 따르는 법난은 안양사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태종 때, 수원부사는 안양사에 과천현감과 금천현감을 불러 술판을 벌리고 소주를 얼마나 마셨는지, 금천현감이 죽는 일까지 발생하여 파직되었고(태종 17년)
세종 때에는 정갑손(우참찬)이‘태종께서 사찰을 혁파하였고, 전하도 따라 본받아 남김없이 혁파하고 계신데도 안양사 터에 큰 절이 다시 창건되고 있습니다’라 기록되었지만(세종 30년)
문종 때에는 ‘안양사·용문사 두 절은 다 황폐된 지 오래 되어서 풀로 지은 집이라 볼 수 없습니다’라 기록되었습니다.(문종 즉위년)

 

 

 

이로써 안양사는 세종 때 폐사되었을 것이 분명해서, 지금의 안양사는 예전에 지어진 안양사가 아닌 것을 알게 합니다. 

 

안양사 창건보다 1400년이나 훨씬 앞선 때 부처님은 이미 옛 안양사의 미래와 새로 창건될 안양사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색즉시공”이고, “공즉시색”이라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생각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의 성주괴공을 어찌해도 막을 수 없는 것이지만, 이름 속에 들어있는 ‘중생이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이어서 또 다시 안양사를 짓게 하였습니다. 몇 백 년이 흘렀어도 중생들을 편안케 하려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이어서, 부처님의 마음이 살아있는 정토 “안양”을 찾는 것은 또 하나의 성지순례라 생각합니다.

 

 

한강으로 흘러가는 안양천 상류 줄기와 나란히 놓인 안양사가는 길은 (예전에 “안양유원지”로 불렸던 유명한 곳이어서) 행락객의 통행은 물론, 관악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애용하는 길입니다.
사람들이 즐거움을 가질 수 있는 곳을 찾는 이유는 그 곳에서 ‘기(氣)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는 엉뚱한 생각에 잠겨서 걷다가 처음 보게 된 불교문화는 “석수동 마애종”(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2호)입니다.

 

수직으로 내려진 넓은 암벽에 스님이 종각에서 범종을 치는 장면을 부조로 새겨놓았습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후, 방방곡곡 산과 들의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상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마애종은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종은 두 개의 기둥과 대들보로 결구된 가구에 쇠사슬로 걸렸는데, 쇠사슬 아래에는 입을 벌리고 두 개의 뿔과 수염을 늘어뜨린 용뉴가, 그 옆에는 대나무의 마디를 갖춘 음통을 새겼습니다.  
종은 상대 ․ 중대 ․ 하대가 분명하게 나뉘었고, 유곽과 유두, 연화문 당좌 그리고 내려가면서 은근하게 조금씩 벌어지던 몸통이 끝부분에서 살짝 오므라진 형상을 보건대 우리나라 범종의 모습을 온전히 갖추었습니다.
왼쪽에는 가사를 걸친 스님이 종을 치기위해 당목을 뒤로 제친 모습이 새겨졌는데, 넉넉한 품으로 주름져 내려진 가사는 발등을 덮었습니다.
종과 스님은 적절한 비율의 크기로 구도되었고, 종의 장식은 단순하지만 섬세하게, 스님의 자세는 조금도 과장됨이 없게 묘사함으로써, 암벽의 크기와 어울리는 짜임새를 갖추어 안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애종을 본 때가 마침 햇빛이 강한 때여서 옅은 노란색깔의 암반이 빛을 반사하고, 얕은 파임의 부조인 까닭에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아서 윤곽이 불명확하였습니다. 또 훼손을 막도록 지어진 전각의 창살 때문에 자세히 볼 수 없어서 더욱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아침 또는 저녁나절에 본다면 또 다른 새김을 볼 수도 있을 것이고, 느낌도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범종은 불교 예식에서 때를 알리고 대중을 모으기 위해 소리를 내지만, 부처님의 말씀을 들려주어 우주에서 살아가는 모든 중생들의 제도는 물론 지하에 있는 중생도 고통을 벗어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의미를 지닌 불전사물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종을 치는 스님은 중생들이 번뇌망상과 삼계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보리심이 생겨나 깨달음을 이루기 바라는 종송을 아침 저녁으로 종을 치면서 염불합니다.
마애종은 종송에 담긴 염원이 이 땅에서 세세생생(世世生生)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스님과 석수장인이 있는 정성을 다하여 새겼을 것입니다.    
마애종이 신라 중초사 시절에 새겨졌는지, 옛 안양사가 창건되는 시절에 새겨졌는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언제인가부터 지금까지 “중생들이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어오고 있으며, 다음 세대의 불자들에게도 환희심을 가지게 할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