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회를 마친 숫도다나 왕과 싯다르타가 수행했던 대신들과 함께 왕궁으로 돌아왔다. 도착했을 때, 고따미는 싯다르타에게 까삘라가 공부를 마치고 탁카실라에서 돌아온 사실을 알려주었다. 사실 까삘라는 까삘라왓투로 돌아온 후 여러 차례 싯다르타를 찾아 왕궁을 다녀간 후였다. 싯다르타는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싯다르타는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다. 하룻밤이 이렇게 길다는 것을 실감했다. 먼동이 트자 싯다르타는 데와닷따와 함께 까삘라를 만나러 왕궁을 나섰다. 어린 시절 늘 함께 놀았던 세 친구의 재회는 더없이 기쁜 일이었다.

 

“데와닷따, 까삘라는 온갖 지식의 달인이 되어 돌아왔을 테니, 더 이상 친구라고 부르는 건 온당치 않겠지?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싯다르타가 사촌 데와닷따를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높으신 어른!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나이다. 무엇이든 분부만 하시옵소서.” 까삘라의 대꾸에 세 친구는 모처럼 파안대소했다.
“까삘라! 탁카실라에서 보낸 생활은 즐거웠니?” 데와닷따가 물었다.
“그야말로 훌륭한 경험이었지. 많은 스승들을 만났고, 그분들에게 배우는 것이 유익하고 즐거웠어. 그분들은 매우 체계적이고 또 합리적이었지. 궁극적 실재나 브라흐마에 대한 견해도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한 그분들에겐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분들은 또 실재에 관한 질문에 침묵하려는 자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어. 거기서 공부하려면 몇 가지 가능한 설명에 대해서 미리 생각해두지 않으면 안 돼. 그리고 그런 사고훈련은 영혼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 까삘라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싯다르타, 그동안 뭘 하며 지냈는가?”
“아시따 칼라데왈라에게서 <베다>를 배웠어. 바라드와자에게서는 정치학을, 그리고 웨싸밋따로부터는 무술을 배웠지. 웨싸밋따에게서 배운 것 외에는 모두 바라문교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지. 어떤 것도 궁극적 실재에 관한 학문은 아니지.” 싯다르타가 다소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구나. 그렇다고 실망을 할 필요는 없어. 그들에게서 배운 것들이 언젠가 쓰일 곳이 있을 거야. 소용이 없는 지식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도 있잖아. 거기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까삘라가 말했다. 

 

세 친구는 작별인사를 나눌 때까지 꼬박 하루 동안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싯다르타도 사춘기를 보내고 어느덧 훤칠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숫도다나 왕과 고따미는 장래 사끼야 왕국의 왕이 될 태자로서 싯다르타의 역할을 걱정하고 있었다. 왕위를 이어야할 태자가 국가 통치에 대한 관심보다는 정의와 도덕적 가치에 대한 의문에 더 흥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를 지켜볼수록 숫도다나 왕의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급기야 숫도다나 왕은 싯다르타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최상의 즐거움을 제공하겠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문득 오래 전 아시따 칼라데왈라가 했던 예언이 떠올랐다. 갓 태어난 싯다르타를 보고 장차 모든 이들의 스승이 될 것이라고 예언이었다. 숫도다나 왕은 마침내 아들이 아예 딴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호화롭고 화려한 생활을 제공하기로 작정했다.
싯다르타가 16살이 되던 해, 숫도다나 왕은 아들을 위해 계절마다 쉴 수 있는 궁전들을 지었다. 여름궁전, 우기를 위한 궁전, 겨울궁전 등 3개의 궁전은 오로지 싯다르타가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세속적 즐거움에 빠져 잘 노닐게 하겠다는 목적으로 세운 것이었다. 세 궁전의 규모는 각각 9층, 7층, 5층 높이로 매우 호화로웠다. 궁전 주위에 푸른 연꽃, 붉은 연꽃, 흰 연꽃이 핀 연못을 만들어 언제나 감상할 수 있도록 했고, 싯다르타가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철저하게 감시하도록 조처했다.
싯다르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동원됐다. 이들은 싯다르타를 목욕시키고 붉은 전단향(栴檀香)을 몸에 발라 주었으며, 새로 만든 최고급 비단옷을 입혔다. 이슬에 젖거나 태양에 그을리지 않도록 이동을 할 때는 반드시 일산(日傘)을 씌웠다. 궁 안에는 여자들만 있었고, 궁 밖 동산으로 산책을 나아갈 때면 30여 명의 정예기병이 앞뒤에서 호위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할 것이 없었다. 그러던 중 싯다르타가 온갖 사치를 누리면서 지낸다는 소문이 사끼야 족 사이에게 돌기 시작했다.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오래지 않아 흉흉한 소문으로 변질되어 번져나갔다.

 

“글쎄 싯다르타 태자가 쾌락에 빠져 지내고 있다고 하네. 그런 그가 무엇을 배웠겠는가. 만일 전쟁이 일어나면 그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이야. 이대로라면 우리 사끼야 왕국의 미래는 점점 불안해질 것이 뻔해. 안 그런가?”

 

그러나 정작 싯다르타는 이런 호화스러운 생활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모든 것이 충족된 삶의 조건이 주어진다면 거기에 만족하며 즐기며 지내는 것이 상례이겠지만 싯다르타는 달랐다. 그는 이런 생활에 오히려 싫증을 느끼며 차츰 염오와 환멸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육체적인 쾌락이나 세속적 욕망에 휘둘리기보다는 예민한 감수성과 사려 깊은 성정으로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더욱 천착했다. 
그렇지만 사끼야 족들은 싯다르타가 장차 까삘라왓투의 왕이 되어 나라를 통치해야 하는 태자로서 마땅히 받았어야 할 교육에 열심히 응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싯다르타가 태자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소양을 갖추기 위해 상당 기간 학문과 기예를 배웠으며, 이미 일정한 수준에 올라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싯다르타가 일곱 살 되던 해부터 받기 시작한 후계자 교육은 바라문의 정전인 <베다>를 비롯하여 <베다>의 보조학은 물론 자휘학(字彙學), 어원학(語源學), 사전(史傳), 문법학(文法學), 순세파학(順世派學), 대인상학(大人相學) 등이 망라되어 있었다. 웨싸밋따에게 배우는 무예 실력 역시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었다. 
싯다르타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은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몰랐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커 보였다. 흉흉한 소문은 걷잡을 수 없게 악화되어가고 있었다. 이를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숫도다나 왕이 어느 날 아들을 불러 말했다.

 

“사랑하는 내 아들 싯다르타야. 너의 친족들이 네가 배운 것은 하나도 없이 쾌락에 빠져 지낸다고 말하고 있구나. 시간이 지나면 수그러들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이런 헛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있겠느냐?”
“왕이시여. 저도 그런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여기서 더 배워야 할 필요가 있는 기예란 없습니다. 특히 많은 친족들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불안해한다죠? 그렇다면 까삘라왓투 전체에 북을 쳐서 제 기예를 보일 기회를 마련해주십시오. 오늘부터 칠일 뒤에 저는 제 친족들에게 저의 기술을 보여줄 것입니다.” 싯다르타가 당당한 표정으로 제안했다.
“알겠다. 싯다르타. 그러면 그동안 네가 배운 모든 것들을 잘 보여줘 친족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바란다.” 숫도다나 왕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7일 뒤 열릴 경연을 위해 숫도다나 왕과 싯다르타는 만반의 준비를 시작했다. 싯다르타와 맞설 최고의 궁술사들이 선발됐다. 이들은 전광석화처럼 활을 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아주 작은 목표도 꿰뚫어 맞추는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먼전 쏜 화살을 더 강하고 빠르게 두 번째 화살을 쏘아 맞힐 수 있고, 나아가 소리만 듣고도 표적을 맞추는 실력을 갖춘 최고의 궁술사들이었다.
드디어 경연 날, 싯다르타는 이들과 실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격렬하게 겨루면서 열두 가지나 되는 기술을 친족들에게 숨김없이 보여주었다. 싯다르타와 겨룬 어떤 궁술사들도 도저히 싯다르타를 당해내지 못했다. 경연이 끝난 후로 사끼야 족 사이에서 더 이상 태자에 대한 의심과 비난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오히려 태자 싯다르타의 비길 데 없는 용감함과 완벽한 기예를 직접 목도하고는 비난과 우려가 입에 침이 마르게 반복되는 칭송으로 바뀌어 있었다.
 
운명적 만남

 

그렇다고 숫도다나 왕의 불안한 마음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다. 숫도다나 왕은 내친김에 싯다르타의 마음을 사로잡을 여인을 골라 결혼을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결혼과 가정생활에 대해 이렇다 할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숫도다나 왕이 싯다르타 태자의 신붓감을 구하기 위해 연회를 베푼다는 소식이 사끼야 족 내에서 전해지자 많은 왕족과 귀족들이 자신의 딸을 다투어 추천했다. 연회가 열리는 날, 과년한 딸이 있는 친족들은 그들의 딸을 태자에게 시집보내기 위해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온갖 호화로운 장식으로 꾸며서 그의 앞에 나타나도록 했다. 이 때문에 순수한 혈통과 비할 데 없는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사끼야 족의 수많은 처녀들이 왕궁 연회장으로 모여들었다.
숫도다나 왕은 500개의 꽃바구니를 준비시킨 후 싯다르타에게 신부 후보들을 직접 보고 마음에 드는 여인을 고르라고 당부했다. 결혼할 생각이 없었던 싯다르타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연회에 참석한 여인들에게 꽃바구니를 전하며 ‘이상적인 여인’이 있는지를 살폈다. 연회장에는 아름다운 음악이 흘렀고 맛난 음식이 차려졌지만 참석한 처녀들은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오히려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한편 사끼야 족의 일파인 꼴리야 족으로, 싯다르타의 친어머니 마야데비의 친동생인 숩빠붓다의 외동딸 야소다라는 이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강했던 야소다라는 신부를 상품 고르듯 하는 연회에서의 간택 형식이 영 마뜩치 않았다. 그러나 부모의 간곡한 설득을 끝내 뿌리치지 못한 야소다라는 뒤늦게 연회에 참석했다. 별다른 치장도 하지 않았지만 거침없이 싯다르타를 향해 걸어가는 야소다라의 당당한 모습은 화려하게 치장한 다른 처녀들 사이에서 오히려 빛났다. 싯다르타는 앞으로 다가온 야소다라에게 예를 갖춰 인사했다. 그러나 이미 꽃바구니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자 싯다르타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끼고 있던 반지를 빼 그녀의 손에 끼워주었다.
싯다르타가 준 꽃바구니를 품에 안은 채 이 광경을 지켜보던 처녀들은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도도한 야소다라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싯다르타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순간 야소다라가 미소를 지으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태자님, 고맙습니다.”

 

그날 이후 고따미는 싯다르타가 야소다라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야소다라는 자신의 오빠인 숩빠붓다와 남편 숫도다나 왕의 여동생 아미따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기도 했다. 데와닷따의 친누이이기도 했던 야소다라는 아름답고 영민하며 지성적이고 솔직한 성정을 지닌 처녀였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훌륭하게 교육을 받았기에 사끼야 왕국 처녀들 가운데에서 단연 돋보이는 여인이었다. 종교축제나 사회 행사 등 젊은 남녀가 서로 만날 수 있는 모임이나 자리에서 야소다라는 언제나 여러 청년들의 눈길을 받았다. 그만큼 그녀가 풍기는 지성미와 아름다운 자태는 단연 으뜸이었다.
어느 날 저녁, 숫도다나 왕과 고따미가 궁전의 2층 발코니에 나가 있을 때, 그들은 문득 아래 정원에서 뛰어다니다 덤불 속으로 숨는 싯다르타를 발견했다. 잠시 후 어린 동생 난다가 나타나 싯다르타를 찾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동생 난다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기꺼이 술래잡기 놀이를 해주고 있었다. 나이 차가 꽤 많이 나는 동생인데도 불구하고 싯다르타는 난다를 매우 아끼고 위해주었다.

 

“왕비, 저길 좀 보시오.” 숫도다나 왕이 정원에서 놀고 있는 두 아들 쪽으로 고따미의 시선을 돌리게 했다.
“싯다르타는 아직도 어린애 티를 벗지 못하고 있는 것 같소. 집에 있을 때는 고작 어린 난다와 장난을 치고, 나머지 시간은 친구들과 어울려 바깥으로만 나돌고 있으니, 국왕으로 갖춰야할 의무와 책임을 익힐 생각은 아예 없는 듯 보이오. 나는 저 애가 이제 무엇인가에 전념을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오.”
“아니에요. 싯다르타 태자는 결코 무책임한 아이가 아닙니다. 이제 의젓한 청년이 되었고, 또 충분한 교육을 받은 태자이기도 하잖아요?” 고따미는 숫도다나 왕의 견해에 이의를 제기했다.
“싯다르타는 사끼야 족 사람들의 희망과 요구에 대해 좀 더 잘 알기 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어요. 난다와 놀 때에도 동생의 행동과 상황에 대한 반응을 잘 관찰하고 있어요. 내가 난다의 행동을 제지하려 할 때면 가끔 싯다르타와 논쟁을 벌이곤 해요. 그는 어린아이들이 어떤 억압도 없이 자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싯다르타가 결혼을 생각해볼 나이가 되었다는 당신의 생각에는 저도 동감해요.”

 

숫도다나 왕은 고개를 들어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땅과 하늘의 경계가 가물가물 거리는 지점에 못 박힌 듯 멈춰져 있었다.

 

“연회도 마쳤으니, 이제 싯다르타에게 적당한 처녀를 택하도록 지금부터 서둘러 준비해야 하지 않겠소. 간택을 늦추면 내 허물이 될 것이오. 그렇지 않소. 왕비.”
“싯다르타에게 결혼할 처녀가 정해졌는지, 이야기를 해보신 적이 있나요?” 고따미가 물었다.
“아니오, 아직. 먼저 적당한 사람을 찾아내고 나서 그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소?” 숫도다나 왕이 대답했다.

 

고따미는 지금 이 순간이 그녀가 그동안 눈여겨 보아왔던 야소다라에 대해 숫도다나 왕에게 말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싯다르타가 아직 결혼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일 거예요. 하지만 그가 아미따의 딸 야소다라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요. 연회장에서 보인 태자의 행동에서 야소다라에게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숫도다나 왕은 그러나 왕비 고따미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숫도다나 왕은 자신의 처남이자 여동생인 야소다라의 부모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소다라의 부모인 숩빠붓다와 아미따는 매우 자유분방한 성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야소다라는 그 사회의 다른 소녀들이 따라야 하는 관례적 구속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바로 그런 점이 그를 찜찜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숫도다나 왕의 뇌리에서는 한 순간도 아시따 칼라데왈라의 예언이 떠난 적이 없었다. 그는 그토록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자란 야소다라가 자신이 막아보려고 애 쓰는 것을 반대로 부추기지 않을까 염려했다.

 

“싯다르타가 정말로 야소다라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고 보시오?” 한참을 침묵하던 숫도다나 왕이 고따미에게 확인을 하듯 물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에요.” 고따미는 지체 없이 대답했다.

 

싯다르타는 사려 깊고 동정심이 많은 청년으로 성장해 있었다. 왕궁 안에서의 교육으로도 그 또래의 젊은이들이 갖는 매우 자연스러운 감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야소다라의 매력에 대해 자꾸만 관심이 가는 것도 그런 감정 중의 하나였다. 야소다라가 자신이 알고 있는 여느 여자들과는 달리 매우 진보적이며 자유로운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싯다르타의 마음을 사로잡는 중요한 매력 포인트였다. 싯다르타는 장차 왕국을 다스릴 태자라는 지위와 태자가 지닌 권력 등 우월한 조건 따위로 야소다라의 마음을 얻겠다는 생각은 아예 갖고 있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따미는 아들의 결혼과 며느리 후보로서 야소다라에 대해 싯다르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고따미는 마침 크샤트리야 청년들이 참가하는 운동경기장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 운동경기에 데와닷따와 나라닷따는 참가하고 있었지만 싯다르타와 까삘라는 참가하지 않았다. 이를 확인한 고따미는 마침 경기장에 와 있던 야소다라와 이야기를 나눌 생각으로 야소다라가 앉아 있는 정자로 다가가 옆자리에 앉았다. 고따미에게 공손하게 목례를 한 야소다라가 거침없이 물었다.

 

“싯다르타가 보이지 않아요. 어디로 갔는지 아세요. 이번 경기에는 참가하지 않을 건가요?”
“글쎄, 여기에 싯다르타가 오지 않은 것은 내게도 놀라운 일이란다.” 고따미가 대답했다.
“아침 일찍 까삘라와 함께 궁을 나서기에 여기에 오는 줄 알았는데….”
“그렇군요. 하긴 몇 년 만에 가장 친했던 친구를 만났으니 이야깃거리가 많을 거예요. 하지만 아쉬워요. 싯다르타라면 분명히 지금 경기를 주름잡고 있는 나라닷따와 좋은 경쟁을 했을 텐데요.” 야소다가가 아쉬움을 머금은 표정으로 말했다.

 

고따미는 싯다르타가 야소다라에게 끌리고 있는 것처럼 야소다라 역시 싯다르타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직감했다. 경기장에 싯다르타가 보이지 않은 것을 못내 서운해 하는 눈치였던 것이다. 고따미는 그런 야소다라의 모습이 싫지 않았다. 고따미는 자신도 시나브로 야소다라를 좋아하고 있음을 느꼈다. 문제는 숫도다나 왕이 야소다라를 마음에 드는 싯다르타의 짝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숫도다나 왕과 고따미, 난다가 경기장에서 왕궁으로 돌아왔을 때 싯다르타는 궁에 돌아와 있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난 후 숫도다나 왕은 낮 동안 싯다르타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묻지도 않고 침실로 들어갔다. 이어 시녀가 난다를 침대로 데리고 나가니 그 자리에는 싯다르타와 고따미 두 사람만 남았다. 고따미가 물었다.

 

“태자, 오늘 야소다라를 만났단다.”
“그래요? 어디서요?”
“경기장에서. 야소다라가 너에 대해 묻더구나. 왜 경기에 참가하지 않았는지 궁금해 했어.” 싯다르타의 반응을 살피며 고따미가 말했다.
“경기에 참석하고 싶었지만 까삘라가 마을에 나가보자고 해서 가지 못했어요. 그런데 경기는 어떻게 됐나요?”
“데와닷따가 활쏘기에서 일등을 했고, 승마에서는 나라닷따가 모두를 물리쳤단다. 아무튼 야소다라는 네가 오지 않은 것을 많이 서운해 하는 것 같았어. 그 아이는 만약 네가 참가했다면 틀림없이 나라닷따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그걸 어떻게 아세요?” 싯다르타가 약간의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글쎄. 그거야 야소다라가 그렇게 말을 했으니까.”

 

싯다르타는 야소다라가 더욱 궁금해졌다. 야소다라가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니 그녀에게 끌리는 마음이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야소다라의 속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어째서 제가 나라닷따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그야 네 능력을 확신하기 때문이겠지. 그 아이는 널 아주 좋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어. 넌 야소다라를 어떻게 생각하니?”
“그, 그건 왜 물으세요?”
“왜라니? 이 문제는 아주 중요한 거잖아. 그렇지 않니?” 고따미가 되물었다.  

 

싯다르타는 순간 양어머니의 질문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가 결혼을 해야 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할 시기가 거의 다가왔음을 느낀 것이다.

 

“예. 그건 중요해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싯다르타가 말했다.
“그게 뭔데?”
“제가 결혼을 할 건지 말 건지부터 먼저 결정해야 되지 않겠어요? 만약 제가 결혼을 하기로 한다면 내가 원하는 사람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되고, 또 제가 결혼하려는 여자에 대해서 잘 알아야 되는 것 아니겠어요?”

 

고따미는 신중하게 싯다르타의 첫 번째 질문을 피하면서 말했다.

 

“나도 네 스스로 결혼할 여자를 선택하고 또 그 사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네가 너의 미래의 삶에 대해 알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고는 볼 수 없지 않겠니? 그러니까 인생을 좀 더 잘 아는 사람들로부터 충고와 조언을 받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니?”

 

싯다르타로서는 지금 고따미가 자신과 야소다라의 관계를 지원하는 건지, 방해하는 건지 종잡을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부모님이 그가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고, 아내를 선택하는 데 부모의 충고를 존중해달라는 점이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어머니.” 멋쩍은 표정으로 방을 나서며 싯다르타가 인사했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싯다르타는 나머지 저녁시간 동안 자신의 장래에 대한 생각으로 골똘해졌다.
‘나는 왕의 아들로 태어남으로써 운명처럼 제시된 삶을 꾸려나가야만 하는 것인가? 그것을 바꾸어 버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결혼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관습이나 운명에 의해 정해져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운명이란 관례 자체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런 것들은 나라야나의 <푸루사-수크타>가 획책하는 것이다. 결혼이 해괴한 일은 아니지만, 관습과 전통이 그것을 간섭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만약 내가 결혼을 한다면 내 스스로 아내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아내는 평생 친구이자 반려자이므로.’

 

싯다르타는 야소다라를 떠올렸다. 생각할수록 그녀가 자신이 바라는 동반자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굳어지고 있었다.
한편 고따미는 이튿날 아침까지 숫도다나 왕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공무를 마친 숫도다나 왕이 고따미가 있는 거실로 들어섰다.

 

“왕비여. 싯다르타의 생각에 대해서 뭔가 알아낸 것이 있소?”
“아직은 없어요. 하지만 제 짐작으로는 싯다르타와 야소다라는 서로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같았어요. 어제 경기장에서 야소다라를 만났을 때, 그 아이가 싯다르타에 대해 물었어요. 싯다르타에게 그 아이 이야기를 했을 때에도 싯다르타는 호기심에 차 있었고요. 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어요. 사실 싯다르타가 결혼할 마음을 가지고 있기는 한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요.” 고따미가 대답했다.  

 

숫도다나 왕은 무엇인가 답답한 듯 방안을 위아래로 번갈아 훑어보았다. 싯다르타가 어렸을 때 그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외부로 보내지 않고 까삘라왓투에 붙들어 두도록 결정했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싯다르타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해야 한다는 것에 조금은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싯다르타의 결혼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관습과 전통에 따라 부모들이 정해준 배우자와 결혼하는 것 또한 중요한 것이지만, 싯다르타는 관습과 전통의 맹신자가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 할 것인가? 고심을 거듭하던 숫도다나 왕은 일단 싯다르타의 의중을 알아보기로 작정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