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삘라가 떠난 후 싯다르타는 후계자 수업에 몰두했다. 그는 까삘라왓투에 자신을 붙들어 두려는 부왕의 조처를 체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왕정학을 가르치는 바라드와자보다는 아시따 깔라데왈라나 웨싸밋따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시따 칼라데왈라의 세심한 배려 속에서 문법, 음운학, 시학 등의 부수 과목과 함께 <베다>에도 조금씩 정통해 가고 있었다. 또한 스승 가운데 가장 젊었던 웨싸밋따와 어울려 검술과 궁술 등의 무예를 배웠다. 그 가운데서도 싯다르타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승마였다. 승마를 배워두면 언젠가 사끼야 왕국의 영토를 밖 더 먼 곳까지 답사할 기회가 있을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베다> 공부는 싯다르타에게 폭넓은 시야를 갖출 자양분을 제공해 주었다. <베다>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싯다르타는 고대의 바라문 전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해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바라드와자가 가르치는 정치학에 대한 싯다르타의 태도는 냉소적일만큼 회의적이었다. 약소국들은 남쪽에 인접한 강대국들의 영토 확장 야욕에 항상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고, 싯다르타는 누구보다도 사끼야 왕국이 처한 난감한 입장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는 바라드와자와 이 문제를 주제로 날카로운 토론을 벌이곤 했다. 어느 날, 싯다르타가 바라드와자에게 물었다.

 

“스승님, 만약 마가다 국이 우리에게 전쟁을 걸어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쪽에서 그렇게 결정한다면 거기에 대항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처지는 마치 큰 물고기에게 먹힐 수밖에 없는 바다 속의 작은 물고기 신세와 같습니다. 그것이 곧 자연계이며, 그것을 거역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싯다르타는 이런 바라드와자의 견해가 탐탁하지 않았다. 캐묻기 좋아하는 싯다르타의 성정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정의(正義)의 문제로 옮겨가게 했다.

 

“어떻게 자연은 누구에게는 그토록 불리하고 다른 쪽은 유리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저는 거기서 어떤 정의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이 세계가 만들어진 길입니다. 창조자인 브라흐마(梵神)는 이 불공평의 문제를 이미 알고 계셨지요. 즉 불공평이 없이는 공평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브라흐마는 본래부터 선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의 피조물 가운데 그의 바람에 순응하지 않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음을 추정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창조한 자연의 평형을 깨뜨릴 악의 존재를 예견했던 것입니다.”

 

싯다르타는 바라드와자의 이와 같은 설명에 공감할 수 없었다. 오히려 바라문 전통에 대해 공부할수록 바라드와자가 업(業, 까마)에 대한 믿음과 창조자의 아이디어를 조화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볼 뿐이었다. 싯다르타는 결코 바라드와자의 설명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힘이 약한 우리 사끼야 족은 악의 무리이고, 우리보다 강력한 마가다는 선(善)이라는 말입니까?”

 

싯다르타의 예리한 질문에 바라드와자는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싯다르타는 침묵했다. 사끼야 족 태자로서의 자신의 지위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자 바라드와자가 자신의 전통적 사회관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싯다르타 태자여, 대성자(大聖者) 나라야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예, 아시따 칼라데왈라로부터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가 저술한 유명한 찬가 <푸루사-수크타>를 읽어본 적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찬가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겠네요?”
“그러나 저는 나라야나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확실하게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바라드와자는 그 순간을 자신이 수용하고 있는 철학적 전통을 설명해줄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라야나의 <푸루사-수크타>의 양면성을 구분하여 설명했다.

 

“읽어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이 찬가는 철학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측면, 두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서로 무관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특성에 관해 나라야나가 가진 관념은 그의 세계관에 근거하며, 그의 세계관은 다시 그 자신의 경험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우리는 모든 사건에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 원인으로부터 발생한 결과는 결국 그 이유와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원인과 관련된 것임에 분명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우주아(푸루사, Purusa)를 ‘존재해 왔고, 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원리’로 보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러자 싯다르타가 반박했다.

 

“얼핏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저는 그것이 공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태자여. 그것은 원인과 결과의 경험에 근거한 사상으로 공론이 아닙니다. 무한한 사고능력과 소급인지능력을 가진 나라야나와 같은 성자들은 우주의 시원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같은 무한한 회상능력은 계시의 결과로 얻어진 것입니다.”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우주와 이 우주아가 어떻게 관련되어 있다는 건지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싯다르타가 냉소적인 표정을 지으며 반박하듯 말하자 바라드와자가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동일성과 차별성이 거기에 함께 있습니다. 모든 개개의 사물이 우주아라면 이 특정 사물들의 총체 역시 우주아입니다. 다만 외관이 다를 뿐이지요. 우주아가 우주로 변형되었다고 해서 그 우주가 원인(原因)을 닮지는 않습니다. 말하자면, 한 덩어리의 금을 몇 조각으로 나누고 개개의 조각으로 다른 모양의 장식물을 만들 수 있지요. 이때 우리는 그 금에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르다고 추정하는 것은, 다만 각기 다른 형태일 뿐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이 우주아를 우주라고 말할 수 있지만, 한편 그것은 우주가 아닌 것이지요.”
“스승님, 그 말씀은 지금의 사회․정치 제도와 함께 존재하는 이 세계가 본질적으로 우주아라는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그것이 나라야나가 바라문은 우주아의 입이고, 크샤트리야는 팔이며, 바이샤는 허벅지, 수드라는 그의 발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바라문들이 우주아의 입을 대변하는 까닭에 그들은 <베다>를 외우는 역할을 상속해 왔고, 그러한 역할은 그 누구도 넘겨다볼 수 없는 것입니다. 우주아의 팔인 크샤트리야는 전투와 국가의 통치를 위해 칼을 휘두를 권한과 책임이 있으며, 허벅지인 바이샤는 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일용품을 생산하고 배포하는 일에 참가하고, 수드라는 우주아의 발에서 태어났으므로 상위의 세 계급에 봉사해야 합니다. 본질적으로 이 사성계급이 곧 우주아 자체이며, 무(無)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바라드와자의 설명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싯다르타가 목청을 높여 반박했다.

 

“그렇다면 그러한 우주아는 그 자체로 악입니다. 만약 어딘가에 그 우주아의 창조자가 있다면 그 또한 악에 불과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세계에 수드라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태자여. 악의 존재를 우주아나 그 창조자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됩니다. 현 상태로 존재하게 된 수드라는 본래적인 우주아의 수드라 부위와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오랜 변천의 결과로서 현재 상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바라드와자의 혼신을 다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싯다르타는 이런 식의 이론과 설명에서 어떤 정당성도 찾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스승의 설명에 일관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가다 국의 왕이 주변의 인접국들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될 것이냐의 애초의 질문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쓸데없는 일이라고 여기고 논쟁을 중단했다.

 

나라닷따로부터 새 세계를 전해 듣다
 
이 무렵, 나라닷따라는 한 청년이 라자가하와 바라나시에서 상당한 기간을 보낸 뒤 까삘라왓투로 돌아왔다. 그의 등장은 싯다르타에게는 까삘라의 부재를 메우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
나라닷따는 유학 기간 동안의 공부를 통해 나름의 독창적인 사상체계를 정립하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나라닷따의 일부 독단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는 친절한 성정의 소유자라는 것을 파악했다. 다소 별나기는 했지만 그가 주창하는 것은 바라문교의 그것과는 달랐다. 나라닷따는 바라문의 독단과 독점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어떨 때는 싯다르타도 선뜻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완고한 기질을 보이기도 했다. 다행히 두 사람에게는 승마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서로 통하는 점을 확인하면서 둘은 자주 만났고 시나브로 가까워졌다. 평소보다 좀 더 먼 외곽지역까지 나가 보기로 약속한 어느 날, 두 사람은 말을 타고 까삘라왓투를 나섰다. 나란히 말을 달리면서 싯다르타가 나라닷따에게 물었다.

 

“나라닷따, 남부에서는 얼마나 살았지?”
“3년쯤 될 꺼야.”
“거긴 어땠어?”
“난 여행을 좋아해. 또 사람들과 사귀는 것도 좋아하지. 하지만 그곳의 교육 분위기를 좋아한 것은 아니야. 북서쪽에 있는 탁카실라가 그 면에서는 훨씬 낫다고 들었어.”

 

까빌라왓투를 벗어날 수 없었던 싯다르타는 나라닷따를 통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탁카실라가 어떤 면에서 더 낫다는 거야?”
“남부는 지금까지도 바라문교의 멍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야즈냐발캬의 신비주의가 사람들을 환상에 사로잡히게 하고 있어. 하지만 그는 빈틈없는 사람이어서 수많은 논객들을 굴복시키지.”
“그의 가르침이 그렇게 인기가 높은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가 가르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내게 알려줄 수 있겠니?” 싯다르타가 재촉하듯 물었다.

 

“야즈냐발캬는 과거 성자들이 제창했던 사상들의 정수를 종합해서 하나의 철학체계로 재구성한 일종의 혼합주의자라고 할 수 있어. 그는 모든 개인에게 독립된 자아(아트만)가 존재한다고 믿는데, 그가 생각하는 이런 개아(個我)의 실존이란 자명한 것으로서 항상 느껴지고 알려진 것이라고 말하지. 누구라도 자기 자아의 존재를 확신하고, 그 자아는 실로 영원불변하며 순수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야.”
“그것이 참으로 순수하다면 종교생활을 영위하는 목적이 뭘까?” 싯다르타의 의문은 화수분처럼 폭발했다.
“그렇지. 나도 똑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어. 야즈냐발캬의 대답은 자아(個我)가 순수하다 하더라도 우리의 무지(無知)로 인해 속박당하고 있다는 것이지. 이 무지 때문에 자아는 개체성, 즉 감각, 의식, 지성, 감정, 의지와 결합하지만, 진정한 자아는 이 모든 것을 초월한다는 거지.”
“그렇다면 이 자아가 개체성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에는 어떻게 되지?”
“그는 이 자아가 이 개체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우주아와 일치하게 돼 절대적 실재인 브라흐마가 되는 거라고 말하지. 그런데 솔직히 나도 이 개아와 우주아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어. 야즈냐발캬는 이 개아를 ‘실재이면서 비실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즉 그것은 우주아의 부분이기 때문에 실재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의 무지를 통해 개별화한 것이기 때문에 비실재라는 주장이지.”
“음, 그래? 그러나 왠지 내겐 궤변처럼 들리는군.”

 

싯다르타의 의문은 계속 이어졌다.

 

“나라닷따,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며, 실재이면서 비실재라는 것이 개아에 대한 설명이라면, 그는 우주아나 절대적 실재는 어떻게 설명하지?”
“싯다르타, 넌 정말로 예리하구나. 야즈냐발캬는 이 궁극적 자아의 실재는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없으며,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코로 냄새 맡는 것, 혀로 맛보는 것, 온몸으로 감촉하는 것 또는 의식 속에서 뚜렷한 개념으로 정리하는 어떤 것과도 동일시될 수 없다고 추정하지. 그래서 그것은 우리가 구별하고 구분할 수 있는 모든 현상을 초월한다는 거야. 그러니까 누가 우주아와 무언가를 동일시하려 하면 야즈냐발캬는 ‘그것은 이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거지.”
“그럼 그는 ‘그것은 이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다’라고 말하려는 걸까?”
“그래, 싯다르타. 분명히 그는 궁극적인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 거야.”
“그렇게 실재하는 자아가 우리의 감각이나 의식으로 인식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는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을까?” 싯다르타는 다시 물었다.
“궁극적 실재는 우리가 ‘여기 한 마리의 말이 있다’라고 아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식된다는 거야. 이 경우 우리는 주체와 객체의 이원성(二元性)을 가지게 되는데, 그 궁극적 실재로서의 자아는 이원이 아니니까. 그러나 야즈냐발캬는 그것이 수행자가 경험하는 최상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건 아냐. 하기야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반대하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싯다르타와 나라닷따는 꽤 오랜 시간 말을 달렸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까삘라왓투에 묶여 있었던 싯다르타로서는 나라닷따와 함께하는 시간과 대화가 모두 흥미로운 경험이었고, 큰 영감을 주는 기쁨이었지만 나라닷따는 피로를 느끼는 것 같았다. 나라닷따는 그가 남부에 머무는 동안 정리한 사상들, 그러나 자신에게는 어떤 감명도 주지 못하는 내용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에 대해 싯다르타와는 달리 별 흥미가 없는 듯했다.
싯다르타도 나라닷따가 남부의 바라문들에게서 배운 사상들에 만족하지 않고 있으며, 그것이 까삘라왓투로 서둘러 돌아오게 된 이유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그에 대한 토론을 자제했다. 싯다르타는 나라닷따가 단순한 남부지역의 사상과 철학을 해설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그 자신이 갖고 있는 사상에 대해 언급하거나, 바라문 사상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토로하도록 유도하고자 애를 썼다. 잠시 뜸을 들인 싯다르타가 다시 물었다.

 

“야즈냐발캬는 그런 인간관으로 어떻게 인간의 도덕적인 삶을 설명할 수 있을까? 만약 다른 사람들의 개체성이 실재가 아니라면 타인에 대해 선행을 하는 목적은 뭐가 되는 거지? 내가 설령 다른 사람을 해친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실재가 아닌 한 나는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것이 되는데.”
“동감이야, 싯다르타. 나로서도 우리의 개체성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차별도 없는 영원불변의 자아를 가정하고 선한 삶을 설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야. 그것이 바로 아지따 께사깜발리, 빠꾸다 까짜야나 같은 수행자들로 하여금 선악 개념을 경멸하고 유물론적인 교의를 제창하도록 한 거지. 그러나 야즈냐발캬는 나름대로 그럴듯하게 설명하지. 나는 공감할 수 없지만.”
“어떤 설명인데?” 싯다르타가 재촉하듯 물었다.
“야즈냐발캬는 어떤 자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아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아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자식과 재산을 사랑하는 것도 자식이나 재물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아를 사랑하기 때문이래. 어떤 착한 사람은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데, 그가 모든 존재를 사랑해서가 자아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그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궁극적 분석에서 별개의 자아가 결국 우주아와 동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그럴 거야.” 나라닷따가 조금은 피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돌아가야겠어.” 싯다르타가 일어서서 말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언제 다시 오고 싶다. 그 때는 좀 더 오래 머무를 수 있게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게 좋겠다. 늦게 돌아가면 아버지께서 걱정하실 거야.”
“그래, 알았어.” 싯다르타처럼 늦은 귀가를 걱정하지는 않았지만 나라닷따는 싯다르타를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둠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밤새 쉴 둥지를 찾아서 이리저리 날아가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석양의 고요를 배경으로 평화로운 광경을 만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침묵한 채 말을 몰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저녁노을은 오래지 않아 칠흑 같은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이날 밤, 싯다르타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시따 칼라데왈라나 바라드와자로부터 배운 신학과 업에 대한 바라문교의 가르침, 그리고 오늘 나라닷따로부터 전해들은 야즈냐발캬의 자아에 관한 사상은 그가 보고 들은 바라문들의 폐해들과는 전적으로 상반되는 것이었다.
싯다르타는 인간의 삶은 그들이 태어난 환경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자기들의 현존재에 대하여 그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인가? 왜 그들은 그러한 상태로 태어나게 된 것일까? 그런 어린애들이 근근이 그토록 조악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하루 종일 일할 때 어째서 나는 이렇게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는가?’ 그의 심중에 걸린 이런저런 생각들은 그대로가 괴로움이었다. 

 

 

싯다르타와 나라닷따는 우정을 키워나갔다. 나라닷따가 바라나시와 라자가하에서의 교육과정을 다 마치지 않은 채 돌아온 사실 자체가 싯다르타에겐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나라닷따와 나누는 대화와 토론 과정을 통해 싯다르타는 까삘라왓투에 갇혀 얻을 수 없었던 보다 넓고 깊은 지식과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인간의 삶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그의 욕망은 태자의 지위라는 부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뻗어나가는 담쟁이처럼 자라나고 있었다. 아시따 칼라데왈라, 웨싸밋따, 바라드와자를 스승으로 진행된 태자 교육도 마무리를 지을 시기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숫도다나 왕은 가끔 사끼야 왕국이 관할하는 여러 지방을 순시하는 여정에 싯다르타를 합류시키곤 했다. 그때마다 흔쾌해하지 않아하는 아들에게 왜 태자에게 지방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한 것인지를 설명했다. 숫도다나 왕이 사끼야 왕국의 이곳저곳을 순방하는 동안 머무를 수 있는 집들이 있었다. 이 집들은 왕실의 가족들이 철따라 사용하는 것이었다. 싯다르타는 왕국의 통치에 대한 흥미보다는 주민들의 삶과 그들이 바라는 것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부왕과 함께 하는 여행을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싯다르타는 가끔 나라닷따와 데와닷따를 초청하여 함께 여행을 떠나곤 했다. 싯다르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과 함께 사슴과 영양, 물새, 숲속에 사는 진귀한 동물들을 보기 위해 가까운 숲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나라닷따와 데와닷따는 사냥에 재미가 붙어 숲에 갈 때마다 활을 가지고 갔다. 싯다르타는 사냥이 내키지 않았지만 친구들의 오락을 방해할 마음은 없었다. 한번은 나라닷따가 쏜 화살에 맞은 물새 한 마리가 싯다르타 가까이에 떨어졌다. 싯다르타는 급히 새가 있는 쪽으로 달려가 새의 몸에서 화살을 뽑아냈다. 상처를 살피고 있는 싯다르타에게 나라닷따가 다가오며 웃음을 터뜨렸다.

 

“오, 싯다르타, 자비로우신 분! 마치 야즈냐발캬 신봉자처럼 보이는군. 넌 그 새도 영혼을 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래서 그걸 해치는 건 잘못이고?”
“새가 영혼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고통스러워하는 이 가엾은 생명이 넌 보이지 않니? 나라닷따, 넌 다른 생명은 괴롭히면서 즐거워하는 같구나.” 싯다르타의 눈빛에는 친구에 대한 실망이 담겨 있었다.
“그 새가 정말 고통을 당하고 있는 건지 나는 확실하게 알 수 없어. 내가 보이는 거라고는 날개를 퍼덕이며 다시 날아가려고 하는 게 전부야. 그거야 새가 타고난 버릇일 뿐이야. 내가 새를 쏘아 떨어뜨린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니?” 나라닷따가 다시 물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 싯다르타가 다소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럼 사냥꾼들은 늘 옳지 못한 짓을 저지른다는 거니? 또 도덕철학자들의 말대로 하면 그네들 모두가 지옥에 떨어져야 하겠지. 그렇지 않니?”
“나라닷따, 다른 생계수단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냥을 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게 아니야. 나는 다만 너처럼 재미 삼아 다른 생명을 해치는 것을 이야기 하는 거야.”

 

나라닷따는 자신의 행위와 직업 사냥꾼의 행위에 그런 식의 구분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다시 우겼다.

 

“똑같은 행위가 어떤 사람에게는 그르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는구나. 그건 몇몇 사람들이 주장하는 이원론적인 도덕규범에 지나지 않아. 싯다르타, 우리의 행위가 결국 똑같은 거라고 생각하지 않니? 사냥꾼이나 내가 한 행위는 물리적 원소들의 덩어리에 화살을 날려 보냈다는 거야. 개체성을 근거로 한 선악(善惡), 정사(正邪) 따위의 의미 없는 구별은 실체와는 무관한 것 아니겠니?”

 

싯다르타는 나라닷따가 전통적 도덕관에 지극히 비판적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유물론자라는 것까지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언젠가 까삘라왓투의 외곽마을에 함께 갔을 때, 아지따 께사깜발라와 빠꾸다 까짜야나에 대한 그의 동정적인 언급을 떠올리고 나서야 싯다르타는 비로소 그가 유물론자임을 헤아릴 수 있었다. 그때 데와닷따가 투석기로 쏘아 잡은 예쁜 새 한 마리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자기가 잡은 새를 박제로 만들어 방을 장식할 생각으로 한껏 들떠 있었다. 싯다르타는 데와닷따의 살생행위를 강하게 나무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