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연재 > 이학종의 ‘불전으로 읽는 붓다 일대기

이학종의 ‘불전으로 읽는 붓다 일대기’②

이학종 | urubella@naver.com | 2019-09-27 (금) 15:59

감수성 예민한 소년, 싯다르타
 
싯다르타는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였다. 그의 표정과 행동에는 뭇 생명에 대한 연민이 넘쳐흘렀다. 태어나면서부터 비범함이 남달랐다. 용모는 준수했고, 머리는 영특했으며, 그 밖의 분야에서도 발군의 자질을 드러냈다.
숫도다나 왕은 서른두 명의 여인을 선발해 싯다르타를 돌보도록 했다. 그러나 고따미는 어린 왕자를 여간해서는 시녀들에게 맡기지 않았다. 손수 데운 따뜻한 물에 까시 국에서 생산된 전단향을 풀어 아침저녁으로 왕자를 목욕시켰다. 행여 작은 병마에게 틈을 보이지 않을까 한 순간도 왕자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만월을 향해 차오르는 달처럼, 기름진 땅의 니그로다 나무처럼 왕자는 순탄하게 자랐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고따미의 얼굴도 날로 밝아졌다.
왕자가 태어난 뒤 주변국들과의 마찰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적재적시에 찾아오는 비바람에 들녘은 풍성했고, 풀이 무성하게 자란 언덕은 송아지와 양떼들의 만족스런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풍속은 저절로 화평해졌으며, 거리는 웃고 뛰노는 아이들로 부산했고, 외진 골목까지 생동감 넘치는 기운으로 충만했다. 이 모든 것이 비범한 왕자가 탄생한 덕이라고 여긴 백성들은 사끼야 족에게 새 영광을 가져다줄 왕자를 직접 볼 수 있기를 원했다. 
‘사끼야 족의 희망, 싯다르타 왕자를 보고 싶다’는 백성들의 간절한 바람에 따라 숫도다나 왕은 국사에게 길일을 물었다. 날이 정해지자 그는 왕자와 함께하는 바깥나들이를 채비를 지시했다. 나들이 날이 다가왔다. 왕자의 머리는 온갖 보배로 장식되었고, 아름다운 꽃으로 만든 목걸이를 걸었으며, 금실로 짠 굵은 띠가 허리에 둘렸다. 팔뚝과 팔목, 종아리와 발목에는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황금 고리를 찼고, 손가락에는 보배와 영락(瓔珞)으로 만든 반지를 꼈다. 가죽신에는 짤랑거리는 금방울을 달았다. 또한 사끼야 족 최고의 세공사들이 7일 밤낮 동안 공들여 만든 멋들어진 보관이 준비됐다.
풍악을 울리며 왕을 태운 마차와 왕비를 실은 가마가 성문을 나서자 구름처럼 몰려든 백성들은 하늘 가득 꽃과 비단을 흩뿌리며 열광했다. 왕자의 위용을 상징하는 보관을 머리에 쓴 싯다르타의 발아래 온 백성들이 예배하며 건강을 빌었다. 왕자를 품에 안은 고따미의 얼굴엔 자랑스러운 아들을 둔 어머니의 흐뭇함이 물씬 배어 나왔다.
어린 왕자는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울며 떼쓰는 일이 없었다. 더러운 오물을 흘리는 일도 없었으며, 거친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도 없었다. 아버지 숫도다나 왕과 왕비 고따미의 각별한 보살핌 아래 싯다르타는 궁전 뜰에서 사촌들, 친구들과 어울려 숫양을 타며 놀았다. 그의 곁에는 같은 해 같은 날 태어난 국사의 아들 깔루다인과 찬나가 언제나 그림자처럼 함께 했다.
싯다르타는 일곱 살 때부터 왕자로서 갖춰야할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숫도다나 왕은 아시따 칼라데왈라 등 명망 있는 바라문들을 초빙해 싯다르타에게 왕자가 갖춰야할 지식을 전수하도록 부탁했다. 일종의 후계자 교육이었다.
 
생모의 죽음을 알게 되다
 
열 살이 되었을 때, 싯다르타는 그의 생모가 자신을 낳고 출산의 후유증으로 칠 일만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상도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경험하는 충격과 혼란스러움에 싯다르타는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온갖 정성으로 자신을 돌보아 주는 어머니, 세상에 둘도 없을 것 같은 어머니가 친모가 아니라니! 싯다르타는 지금까지 고따미의 돌봄 속에서 온갖 온정과 사랑을 만끽하며 자랐다. 어머니 고따미가 베풀어주는 따뜻한 사랑은 세상에서 오직 그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가 친모가 아닌 양모였다니! 그리고 친모는 자신을 낳다가 얻은 충격으로 인해 그토록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니!
사실 싯다르타에게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란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조차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런 일련의 크고 작은 충격들은 어린 시절 싯다르타의 성격과 인격 형성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주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되면서 받은 충격과 자식에 대한 세상 어머니들의 고귀한 사랑에 관한 싯다르타의 깨달음은, 사촌동생 데와닷따, 까삘라 등 몇몇 사끼야 족 또래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 봄날이었다. 사끼야 왕국의 수도 까삘라왓투는 <베다> 의식인 농경제 준비로 부산했다. 행사를 위한 준비물들이 정성스럽게 만들어졌고, 의식을 치를 식장이 마련됐다. 식장으로 가는 길을 화려하게 장식되었으며, 의식에 쓰일 제단과 촌장들이 앉을 정자를 짓기 위해 주민들은 밤낮 없이 일에 매달렸다.
농경제가 열리는 날, 의식을 이끌기 위해 숫도다나 왕이 아들 고따마 싯다르타와 왕족들, 대신들을 대동하고 식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장엄한 파종의식은 싯다르타에게는 별 다른 흥미를 주지 못했다. 오히려 들녘으로 통하는 길가에 정성껏 만들어 걸어놓은 화려한 장식들이 눈길을 사로잡았고, 들판의 네 구석에 세워져 사방의 수호신에게 헌정된 제단에 매혹되어 있었다. 반면 어른들이 종교적 경외심 가득 찬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는 갖가지 제물의 공양이나 바라문 승려들의 <베다> 찬송에는 이렇다 할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왕자답게 행동하도록 엄격하게 교육받아온 덕에 싯다르타는 행사 분위기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처신했다.
주문 암송 등 바라문들이 집전하는 농경제 의식은 쾌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됐다. 싯다르타는 도무지 제의의 의미를 종잡을 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싯다르타는 따분함을 잊기 위해 일부러 딴 생각을 떠올려 보았지만 그때뿐이었다. 그의 시선은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몇날며칠을 밤낮으로 일한 사람들에게 머물렀다. 싯다르타는 그들이 불가피하게 맞닥뜨려야 했을 불편과 고통을 떠올렸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의 표정은 태연했다. 일종의 최면과 같은 신앙심으로 마땅히 느껴야할 불편과 고통은 아예 염두에 없는 듯했다. 어쩌면 그들의 그런 모습이 더 싯다르타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주인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면서 소작농들이 일군 노동의 과실을 차지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아앗! 싯다르타는 막 일구어 놓은 밭이랑에서 기어 나온 벌레가 쏜살처럼 날아든 새의 먹이가 되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약육강식의 비정한 먹이사슬 현장을 눈앞에서 본데 따른 일종의 충격이었다. 흔히 그냥 넘겨버리는 일이나 현상에 대해 싯다르타는 골똘하게 생각하는 성향이 있었다. 그렇기에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 자연스러운 광경에도 그에게는 연민이 솟아났다. 싯다르타는 천성적으로 사색을 즐겨하는 사려 깊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런 성향은 명상을 즐겨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다.
바라문에 대한 존경은커녕 <베다> 의식에도 일체의 감흥을 느낄 수 없던 싯다르타에게 농경제 의식은 불편하고 짜증스럽게 다가왔다. 더 견디지 못한 싯다르타는 슬그머니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힘겹게 괭이질을 하는 한 농부에게 다가갔다. 어떻게든 그에게 위로를 주고 싶었다.
 
“힘드시죠? 잠시라도 쉬었다 하시지요.”
“오, 왕자님. 제게 휴식은 허락되지 않았답니다.”
“그래요? 왜 그렇죠? 왜 이토록 힘겹게 일해야만 하는 거죠?”
“왕자님, 제게 부과된 세금을 내려면 한가하게 쉴 틈이 없습니다.”
 
싯다르타는 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농부의 눈빛은 바로 당신들, 우리를 지배하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농부에게 조금의 위로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절망했다. 긴 한 숨을 내쉰 어린 왕자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다시금 골똘해졌다.
‘왕족과 귀족의 횡포 때문에 백성들이 고통 받고, 두려움에 떨고 있구나! 먹고 먹히는 미물들은 또 어떤가? 서로를 잡아먹고 또 먹히고 먹는 비극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는 혼란스러웠다. 왕족들은 위세를 과시하는 과장된 몸짓과 함께 가식 섞인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광경을 뒤로 하고 싯다르타는 조용히 일어섰다. 그가 향한 곳은 한적한 숲이었다. 한낮의 작열하는 태양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햇볕을 피해 싯다르타는 잠부나무(廉夫樹) 그늘 아래로 들어갔다.
 
잠부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다

시원한 잠부나무 그늘 아래 두 다리를 포개고 앉은 싯다르타는 곧 사색에 잠겼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그는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고 고요히 잦아드는 숨결의 흐름을 관찰했다. 사려가 깊어지면서 평정이 찾아왔고, 모든 것이 선명해지고 있었다.
‘강자가 약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는 현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쳐보지만 약자의 몸부림은 강자에게 웃음거리밖에 되지 못하는 세상, 그들도 더 강한 자들 앞에서는 두려움에 몸서리칠 가련한 처지인데도 그것을 잊은 채 탐욕에 들떠 있는 모습들! 왜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불편함을 그저 운명으로 여긴 채 견디고 있는 걸까? 저런 태도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 아, 나는 눈물과 고통을 초래하는 저런 탐욕에 결코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깊은 사색에 잠긴 싯다르타에게 안락함이 밀려왔다. 그런데 이 안락함은 세상의 모든 것을 망각한, 그런 안락함과는 달랐다. 세상의 흐름, 시시각각 다가오는 현상과 대상에 집중하는 고요가 가져다 준, 차원이 다른 즐거움이었다. 비록 잠시였지만 시원한 그늘 아래서의 고요, 그 고요를 바탕으로 한 깊은 통찰이 가져다 준 청량감은 그에게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위안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싯다르타가 느끼는 안락의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왕자가 의식이 집행되는 현장을 벗어난 것을 알아챈 숫도다나 왕의 일그러진 표정이 왕자의 안식을 멈추게 했다. 왕자를 찾아 나선 대신들은 싯다르타가 앉아 있는 잠부나무 아래로 다가와서 할 말을 잃은 채 서 있었다. 깊은 강물처럼 고요한 왕자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평온과 평정이 넘쳐흘렀기 때문이었다. 잠부나무도 왕자의 선정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해가 이동하는데도 시원한 그늘을 옮기지 않았다.
아들이 깊은 선정에 들어 있는 잠부나무까지 찾아온 숫도다나 왕은 불편한 심기를 펴기도 전에 아들의 근엄한 표정을 발견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낮추었다. 깊은 선정에 들어 있는 아들의 모습이 너무도 성스러워 저절로 무릎이 꿇려진 것이었다.
‘아! 사랑하는 아들아, 네 이 성스러운 모습이 아비로 하여금 자식에게 절을 하게 만드는구나.’
농경제 의식이 끝난 오후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우유죽을 먹었다. 이 순간을 위해 충분한 양의 우유죽이 준비되어 있었다. 따분하고 지루한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식장을 벗어났던 싯다르타도 맛난 우유죽을 받아먹었다.
농경제가 마무리된 후 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싯다르타가 아버지에게 약간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이 질문에는 성의 없이 의식에 참여한 것에 대한 일종의 미안함을 상쇄하려는 뜻도 담겨 있었다. 
 
“아버지, 저는 식장에서 사제들이 부른 찬송의 내용을 한 마디도 알아듣거나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들이 부른 노래는 무엇이며, 또 어떤 언어인가요?”
“아들아, 그것은 신성한 <베다>의 언어란다. <베다> 찬송은 그 뜻이 아주 깊지. 그것들은 범신(梵神) 브라흐마가 옛적 성자들에게 계시한 것으로 오랜 세월동안 바라문 사제들에 의해 이어져 왔지. 이 신성한 찬가는 오직 바라문들에 의해서만 전승될 수 있단다. 또한 그들만이 의식에서 그 찬가를 부를 수 있게 되어 있지.”
 
싯다르타는 아버지의 설명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 않았다. 꼬치꼬치 캐물어서 아버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또한 신이 있다면 혹시 있을지도 모를 신의 분노가 두려운 탓도 있었다. 그러나 숫도다나 왕에게는 외려 싯다르타의 침묵이 불안으로 다가왔다. 그는 자신의 설명이 호기심 많은 어린 아들을 충족시키지 못했음을 직감했다.
 
까삘라왓투를 벗어나고 싶지만…
 
라자가하, 바라나시, 사왓티 등 잠부디빠 중부의 대도시들은 학문과 교육의 중심지 역할도 담당했다. 또한 바라문과 크샤트리야 계급이 사회적 지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이 지역을 중심으로 각축을 벌였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두 계급의 수행자들 사이에 철학과 종교에 관한 온갖 종류의 논쟁이 벌어졌다.
북서쪽에 위치한 간다라의 수도 탁카실라는 잠부디빠 전역과 외국, 특히 그리스와의 교역으로 번창한 곳이었다. 저명한 우파니샤드 철학자이며 성자인 웃달라까 아루니가 교육을 받은 곳도 바로 이곳 탁카실라였다. 웃달라까 아루니는 철학적 소양을 타고난 인물이었다. 그의 철학은 간다라 문화와의 접촉을 거치면서 인간의 경험을 토대로 해 체계적으로 재구성되었다. 그의 가르침이 바라나시의 교육시설과 연결되면서 잠부디빠의 중부에 널리 파급되고 있었다. 특히 웃달라까 아루니보다 연하인 야즈냐발캬에 의해 좀 더 신비롭게 각색된 사상이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다.
싯다르타의 놀이친구 중에 까삘라가 있었다. 그는 싯다르타보다 한두 살 연상이었지만 친구로 지냈다. 까삘라는 싯다르타, 데와닷따 등과 함께 아시따 칼라데왈라 선인에게 수학하던 학우이기도 했다. 그런데 까삘라의 아버지는 보다 수준 높은 교육을 시키기 위해 아들을 탁카실라로 유학보내기로 했던 것이다. 까삘라의 아버지는 바라문 전통이 지배적인 잠부디빠 중부지역보다는 북서부에 위치한 탁카실라의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가 아들에게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믿었다. 더구나 그는 사끼야 족의 한 사람으로서 강대국들의 패권주의를 싫어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정치적 야욕에 분개하는 열혈적이면서도 열린 성정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까삘라의 반응은 착잡했다. 새로운 공부를 위한 먼 여행을 앞두고 내심 두근거림이 있었지만, 십대 중반의 아직은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헤어져야 하는 것, 그리고 친구 싯다르타와 헤어져야 하는 것이 그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까삘라는 친구에게 탁카실라로 공부하러 떠나게 됐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영 달갑지가 않았다. 까삘라와 주사위 놀이를 하던 싯다르타는 까삘라가 이전과는 달리 놀이에 집중하지 않고 있음을 알아채고는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나 까삘라는 자신의 탁카실라행 이야기를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말하라는 싯다르타의 재촉에 까삘라는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싯다르타, 사실 우리 아버지께서 나를 탁카실라로 유학 보내기로 하셨어. 긴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도 있지만, 먼 나라에서 마주치게 될 여러 가지 생소한 문제들을 생각하면 조금은 불안하기도 해. 여기서도 친구가 많지 않지만, 거기 가서 다른 친구들을 사귀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러나 까삘라가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싯다르타는 초조해하는 친구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부모님들이 자식의 교육을 위해 탁카실라, 바라나시, 또는 라자가하로 유학을 보내는 것은 전부터 있어온 관례잖아. 그곳에는 여기보다 더 많은 스승들이 있다고 들었어. 우리 아버지도 그런 곳으로 나를 보내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튼 네가 떠나면 금세 그리워질 거야. 공부를 마치고 나면 다시 까삘라왓투로 돌아오는 거지?”
 
까삘라의 아버지는 아들을 탁카실라로 보내려는 계획에 대해 숫도다나 왕에게도 미리 언질을 주었다. 그날 저녁 싯다르타는 숫도다나 왕이 이미 까삘라가 유학을 떠날 것이라는 소식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온 가족이 모인 식사시간에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 까삘라가 곧 탁카실라로 가게 될 거래요. 금세 그가 보고 싶어지겠지만 정말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싯다르타는 아버지가 이 말에 대해 내키지 않는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래. 며칠 전에 까삘라의 아버지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바라나시나 라자가하로 갈 수도 있을 텐데, 왜 그렇게 멀리까지 보내려는 건지 알 수 없구나. 까삘라에게는 아주 지루한 여행이 되겠지. 네가 곧 그 친구를 그리워하게 되겠지. 그렇지 않니?”
 
이 때 고따미가 싯다르타를 위로하기 위해 대화에 끼어들었다.
 
“싯다르타, 까삘라왓투를 떠나는 친구 때문에 너무 동요되어서는 안 된다. 네 친구가 탁카실라에서 돌아오면 너를 도울 수 있을 거야. 누가 아니. 네가 사끼야 왕국의 왕이 되었을 때 까삘라가 최고의 고문이 될지.”
 
그러나 싯다르타에게 그런 이야기는 거북스러울 뿐이었다. 그가 듣고 싶었던 말은 부모님들이 그를 까삘라처럼 탁카실라나 라자가하로 보낼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였다.
대화가 까삘라의 탁카실라 유학에 대한 방향으로 진행되자 부담을 느낀 숫도다나 왕이 화제를 돌렸다. 사실 며칠 전에 숫도다나는 자신의 종교 고문이자 친구이기도 한 아시따 칼라데왈라와 싯다르타의 교육을 위해 다른 도시로 내보내는 문제를 상의했고, 그로부터 다음과 같은 고민스러운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왕이시여. 당신의 아들은 처음 제가 예견했던 대로 호기심이 많은 성정의 소유자입니다. 그는 권위주의나 전통을 빙자한 인습에 근거한 그 어떤 사상이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탁카실라는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충만한 도시입니다. 따라서 싯다르타 왕자의 성정을 더 활발하게 계발시키는 불쏘시개와 같은 장소가 될 것입니다. 라자가하나 바라나시 역시 염려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에도 수많은 출가수행자와 방랑자들이 배회하면서 자유정신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의 아들로 반드시 왕위를 계승하도록 하시겠다면, 싯다르타를 이곳 까삘라왓투에 머물게 하고, 국왕으로서 행해야 할 직무를 잘 익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시따 칼라데왈라의 이야기를 들은 숫도다나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출가의 길을 선택할지도 모를 자신의 아들을 궤변론자들의 갖가지 주장에 노출시키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확신했다. 더구나 사끼야 왕국의 왕이 되려면 싯다르타에게 장차 왕으로서 담당해야할 역할과 책무에 대해 더 많은 연구와 고민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태자가 되어 후계자 수업을 받다
 
싯다르타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숫도다나 왕은 싯다르타가 자신의 뒤를 이어 사끼야 왕국의 왕위를 이을 후계자임을 내외에 알리는 의식을 진행하기로 했다. 숫도다나 왕의 입장에서는 아들에게 왕이 되는 것을 타고난 숙명으로 받아들이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이 해 봄, 싯다르타는 멀리 강가(갠지스) 강까지 가서 신성하다고 알려진 강물에 이마를 씻고 사끼야 왕국의 태자에 오르는 의식을 봉행했다.
때를 같이하여 숫도다나 왕은 본격적인 후계자 교육을 위해 아시따 칼라데왈라와 함께 싯다르타를 가르칠 스승들을 왕궁으로 불러들였다. 스승들이 당도하자 숫도다나 왕은 현관까지 나아가 직접 그들을 최상의 예우로 맞이했다.
웨싸밋따와 바라드와자가 차례로 궁으로 들어섰다. 웨싸밋따는 사끼야 족의 영토 안에서 가장 인정받는 무술교사였고, 바라드와자는 왕정학(王政學)에 정통한 학자이자 바라문이었다. 이들은 아시따 칼라데왈라처럼 숫도다나 왕의 절친한 동료로서 사끼야 왕국 경영에 많은 조언을 해주는 실력자들이었다.
사실 숫도다나 왕이 이들을 서둘러 왕궁으로 불러들인 것은 싯다르타가 까삘라의 탁카실라 유학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다잡기 위해서였다. 또한 아들을 외지에 보내지 않고 까삘라왓투 안에서 만반의 교육을 시켜 왕위를 물려주기 위한 치밀한 계획의 일환이었다.
아시따 칼라데왈라는 이미 싯다르타와 몇몇 사끼야 족 소년들에게 어학과 문학 등의 정규과정을 가르쳐 왔다. 이 과정들은 <베다>의 철학 및 종교수업을 포함한 높은 수준의 교육이었다. 그러나 숫도다나 왕은 지금부터는 싯다르타가 무사(武士), 정치가로서의 훈련을 시작할 시기라고 판단했다. 웨싸밋따와 바라드와자를 발탁해 초빙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싯다르타는 이 스승들로부터 문학, 논리, 종교, 철학, 의학과 약학, 기술, 공학 등 육십여 종류의 경전을 모두 배워 통달하였고, 검술과 창술, 궁술, 승마 등의 무술과 군사지략 등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실력을 쌓았다. 싯다르타는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스승들의 가르침을 빠르게 습득해나갔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 정도로 모든 분야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자신의 출가를 차단하고 오직 사끼야 왕국의 통치자로 성장하도록 하겠다는 아버지의 내밀한 의도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싯다르타는 고따미와 대화를 나누었다. 모자는 거실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이어갔다. 그들은 까삘라가 북서쪽을 향한 여행을 떠나는 중에 일어날 수 있는 모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싯다르타는 심중에 간직했던 말을 꺼냈다.
 
“그런데 어머니, 저는 언제나 떠날 수 있을까요? 혹시 아버지께서 저를 어디론가 유학 보낼 계획은 없으신가요?”
 
고따미는 싯다르타가 달갑게 여기지 않을 소식을 발설하지 않으려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들의 표정을 살피며 고따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싯다르타, 네 아버지는 사끼야 왕국을 다스리는 왕이시다. 그 분이 퇴위하게 되면 이 나라를 다스릴 책임이 너에게 떨어지게 될 거야. 네 친구 까삘라에게는 그런 막중한 책임이 없지 않니? 그래서 그는 원하는 거라면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네 경우는 다르단다. 너에게는 통치자로서의 훈련이 필요해. 부왕께서는 네게 어떤 것이 최선의 것인지 아주 잘 알고 계실 거야.”
 
양어머니의 말을 들은 싯다르타는 크게 실망했다. 장래의 의무라는 것이 열려 있는 넓은 세계로 가고자 하는 길에 장애가 된다니 답답했다. 까삘라처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더 높고 깊은 공부를 하고자 했던 희망이 산산조각 나는 아픔이 그에게 밀려왔다.
이런 형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세 살짜리 이복동생 난다가 싯다르타에게 달려들더니 무릎까지 기어올라 놀아달라고 보챘다. 싯다르타는 어린 동생 난다에게 깊은 애착을 갖고 있었다. 동생의 재롱을 받아들이며 함께 노는 시간만큼은 모든 고민과 실의를 잊어버릴 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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