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고익진 박사(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교수)의 저서 『현대한국불교의 방향』을 요약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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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하느님 신앙

하느님 관념의 개혁(1)

고대 종교의 하느님 신앙과 오늘의 기독교 신앙이 전적으로 동일하다고는 볼 수 없다. 예수 크리스트는 이스라엘 민족의 전통적인 하느님 관념을 계승하여 그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 부여가 어떤 내용의 것인지는 신학 전공자가 아닌 필자로서는 자세히 헤아릴 수가 없다. 다만 필자의 상식적이 느낌을 말한다면, 구약성서에 나오는 여호와 신은 이스라엘 민족의 수호신이요. 인간의 죄를 가차없이 징벌하는 냉혹한 율법의 신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신약성서에 비치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 그치지 않고 전 인류의 죄악을 용서하고 구제하려는 사랑과 도덕의 신이요. 딘체적인 종교 의례보다는 개인적인 기도 속에서 아들과 만나는 아버지와 같은 인상을 준다.

불교는 인도의 전통적이 종교 관념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신(神)중심적인 신앙의 맹목성을 비판하고 새로운 인간 중심의 진리를 제시한 종교이다. 따라서 불교는 처음부터 이렇게 전통적인 종교 관념을 비판하는 데에서 출발하였지만, 그러나 종래의 하느님 관념을 전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입장에서 그것을 다시 폭넓게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 관념의 형성은 애초에 인간과 자연으로 구성된 세계에서 그들 사이에 주종관계가 있다는 관념에서 형성된 것임은 상술한 바와 같다. 그러나 그런 전제가 과연 정당성을 띤 것일까? 우리는 이 점부터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왜 그러냐면 인간에게는 분명히 자유의지가 있어 업(業)을 일으키지만, 자연물은 의지가 없어 업의 작용을 받으면 단지 필연적인 반응을 보일 따름이다. 따라서 주종관계로 말한다면 인간이 오히려 자연을 지배하는 위치에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견지에서 하느님을 되돌아 볼 때, 그가 만일 세계를 지배하는 의지를 갖고 있다면 그 또한 인간(중생)의 일종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세계를 지배할 위치에 올랐다면 그것은 그가 그럴만한 업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부처님은 인도 바라문교의 전통적인 하느님 곧 ‘인드라(Indra)'신을 인간의 업에 따라 나타난 과보의 일종으로 설하고 계신다. 뿐만 아니라 그가 인간으로 있을 때 그 집안의 성은 ’코시카[Kosika]'였고, 그가 닦은 업은 ‘하기 어려운 보시를 능히 하는 것(能施)’이었으므로 그의 현재 이름은 ‘사카{ṥakra. 能] 하늘임[devānām-indra]'이라 부른다고 설하고 계신다. 한자로 석제환인 또는 줄여서 제석(帝釋)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당시의 바라문들이 부처님의 이 말씀에 당황하고 있음을 보면 그것은 그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설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인도의 바라문 신학은 인드라와 같은 지배신 관념에서 다시 셰계를 창조하는 창조신의 개념으로 발전하여 그것을 ‘브라흐만(Brahman. 梵)’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고오타마붓다는 그러한 브라흐만에 대해서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우파니샤트 철학에서 설하는 바와 같이 브라흐만 신이 욕심을 일으켜 세계를 발생하였다면 브라흐만도 인간(중생)의 일종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현 신분 또한 업보의 일종으로 봐야 할고 그런 업보를 가져온 전생의 업이 문제된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당시의 바라문들을 향해 ‘브라흐만에 이르는 길은 자비희사(慈悲喜捨)의 네 가지 무량한 마음(四無量心)을 닦는 것, 이라고 설하고 계신다.

고오타마 붓다의 이러한 선언은 당시의 전통적 바라문 신학에 커다란 도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왜 그러냐면 브라흐만 신은 바라문 계급의 수호신과 같은 성격을 띤 것이었고, 피비린내 나는 희생의 제물을 받는 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편협한 브라흐만을 부처님은 사성(四姓)을 모두 평등하게 사랑하고 생명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무한한 사랑((慈悲喜捨)의 신으로 개혁하신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