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ㆍ예술 > 이학종의 ‘불교명저 산책’

선, 노장의 잣대로 봤더니 지혜가 ‘철철’

이학종 | urubella@naver.com | 2019-08-21 (수) 07:08

 
<노장으로 읽는 선어록(상‧하)> 이은윤 지음
 
노장(老莊)사상과 선(禪)불교는 불가분(不可分)의 관계다. 민족사가 최근 펴낸 이은윤 전 중앙일보 대기자의 <노장으로 읽는 선어록>(상·하)이 주목받는 이유다. 저자는 중앙일보 종교담당 대기자로 활약했고, 퇴임 후에는 한국불교 선학연구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종교담당 기자 시절 저자는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이 종정’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기자들 사이에서 서로 재미삼아 부른 것이지만 그만큼 저자는 종교담당 기자로서 남다른 역량을 드러냈다. 산사의 큰스님이나 조실방장을 인터뷰한 글에서, 저자는 자신의 관점이 반영되거나, 특유의 독자적 시각으로 해석한 기사를 작성하는 일이 많았고, 그때마다 크고 작은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이 종정’이라는 별칭을 얻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중앙일간지의 종교담당 기자의 출입처는 물론 불교만이 아니다. 이웃종교도 함께 취재하지만 다수 종교담당 기자들의 주 종목은 불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는(또는 해야 하는) 기자의 눈으로 볼 때에도 단연 눈길을 잡아끄는 매력은 불교에 견줄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의 눈에 비친 이은윤 대기자는 절집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불심 깊은 불자는 아니었다. 그는 어느 특정한 종교에 기우는 그런 성정의 소유자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런 그가 복잡한 교리체계를 가진 불교학보다는, 말뚝 신심을 강조하는 신앙적 불교보다는 담백하고, 명쾌하며, 예리하고, 멋들어지기까지 한 선불교에 매료된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아마도 꽤 오랜 기간 선과 깊은 연결고리를 가진 노장을 접했던 모양이다. 본래 유능한 기자들의 공통된 특징이, 일단 어느 한 분야에 천착하면 그로 인해 만들어진 안목과 저력을 놀라울 정도로 확대재생산하는 데 있는 것이고 보면, 저자가 이번에 역작으로, 중국선이 노장의 사상과 어떻게 통하며,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자세히 탐구하는 책 <노장으로 읽는 선어록>을 두 권 분량으로 펴낸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노장과 불교는 어떻게 통하고, 어떤 점이 다를까? 저자가 이 책에서 일관되게 드러내 보이고 있는 화두다. 노장(老莊)사상과 선(禪)불교가 서로 통한다는 건 상식과 같은 것이지만, 이상스럽게도 한국에서 이와 관련한 서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 공백을 오랜 종교담당 대기자의 선과 노장사상에 대한 안목으로 파고든 것이다.
 
“나이 70이 훨씬 넘어 한가로움을 얻어 젊은 날 읽고 싶었던 <노자>·<장자>를 숙독했다. 덕분에 오랜 종교기자 경력에서 소경 벽 더듬은 식으로 익혔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같은 선구(禪句)들을 새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선과 노장이 아주 가깝게 이웃하고 있음도 확인했다. 이 책은 본격적인 학문적 천착이 아니라 선어록을 <노자>·<장자>와 함께 읽은 독후감 같은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의 저술에 대해 겸사하고 있으나, 사실 이 책의 수준은 심원(深遠)하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어렵고 모호하게만 느껴지는 노장과 선의 세계가 아주 쉽게 다가오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막연한 깨달음의 세계, 감히 일반인들은 쳐다볼 수도 없을 정도로 멀게 느껴지던 선의 세계가 노장과 연결해 읽을 때 아주 분명해진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본문을 일부를 살펴보기로 하자.
 
“노장(老莊)은 저 멀리 설정해 놓은 이상을 향하지 말고 가까이에서 접촉하고 있는 자연적·일상적 직접성에 충실할 것을 강조한다. 이 같은 설법 속에는 본체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차이와 다양성, 즉 ‘현상계의 삼라만상’을 체용일여(體用一如)의 세계관으로 인정하고 수용하자는 깊은 철학이 들어 있다. 선사상도 같은 입장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며, ‘푸른 대나무’와 ‘계곡물 소리’가 부처의 법신이고 설법이 되는 도리도 바로 이것이다. 선가(禪家)의 현성공안(現成公案)은 공(空)과 색(色), 유(有)와 무(無) 양쪽 둘 다를 초월한 절대긍정의 존재론으로 두두물물의 실존을 기꺼이 수용한 것이다.” (상권 51쪽)
 
노장과 선불교가 서로 통하는 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바로 이러한 삶에 대한 실존적 통찰이다. 도와 불법 진리는 어디에나 다 흩어져 있다. 선어록에 자주 등장하는 공안들, ‘뜰 앞의 잣나무’, ‘간시궐(똥 젓는 마른 막대기)’에서 엿볼 수 있듯 삼라만상 두두물물, 심지어 오줌·똥 속에도 진리가 들어 있다는 것이 선과 노장의 공통된 진리관이다. 또 노장과 선불교는 절대 평등, 절대 긍정을 설파함으로써 권력에서 소외된 민중들을 위로하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한다. 명예, 부귀영화 같은 뜬구름 같은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의 진정한 행복, 대자유를 보여 주는 것이다.
선과 노장은 여러 가지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선사상과 노장사상의 도는 일치하고 있으며, 분별심을 금기시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또한 존재론의 인식 사유체계가 동일하며, 세계를 낙관적으로 바라다보는 태도도 흡사하다. 무심이 곧 도라는 인식도 두 세계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렇게 선과 노장이 공유하는 세계관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노장과 선불교가 궁극의 지점에서 만난다는 것을 실증을 늘어 논파한다.
그렇다면 노장과 불교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저자는 두 세계가 같기만 하다면 굳이 구분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 착안, 다른 점을 드러내 보이는 치밀함을 잊지 않는다.
 
“양쪽 다 근본적인 도(道)를 깨달은 수준에서는 사실상 같지만 노장이 그 도를 표면적으로 정치 철학화시킨 점은 선사상과의 현격한 차이점이다. 노자·장자가 설법의 우선 대상으로 삼는 자는 일반 백성이 아니라 정치 지도자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선가의 도가 번뇌를 벗어나는 길을 제시, 자기 해탈에 중점을 두는 데 비해 노장의 도는 만물과 하나 되는 길을 제시해 ‘우주 해방’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노장의 ‘무위’는 질서의 부정이나 해체가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질서를 의미한다.” (하권 412~413쪽)
 
저자는 이 책의 결론 부분이라 할 수 있는 하권 끝자락에서 약간의 지면을 빌어 위와 같이 노장과 선불교의 상이점에 대해 밝히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노장사상과 선불교의 상이점은 이렇다. 노장이나 선불교는 다 근본적인 도를 깨달은 수준에서는 사상이 같지만 노장이 그 도를 표면적으로 정치 철학화한 점, 선가의 도가 번뇌를 벗어나는 길을 제시해 자기 해탈에 중점을 두는 데 비해 노장의 도는 만물과 하나 되는 길을 제시해 ‘우주 해방’을 강조한다는 점 등이다.  
 
두루 알다시피 선불교는 중국에서 이루어진 아주 독특한 불교다. 불교가 중국 문화를 만나서 이루어진 ‘중국화 된 불교’다. 따라서 그 속에는 중국문화가 배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인도불교에는 우파니샤드, 바가바드기타 등 힌두이즘과 인도문화가, 일본불교에는 신도(神道)와 무사문화가, 중국 선불교에는 도가사상과 도가문화 그리고 유가문화가 들어 있다. 저자는 이렇게 그 나라와 그 지역의 문화적 영향을 받지 않는 종교나 철학은 없지만, 그 점을 제대로 알고 장점을 활용한다면 이 시대의 유용한 종교, 철학으로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선시(禪詩)의 세계를 노장의 시선으로 읽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평생을 갈고 닦은 언론인의 명쾌하면서도 유려한 필치는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다.
“선(禪)과 노장(老莊)은 ‘무용지용(無用之用)’을 통해 새로운 가치 창조(value orientation)를 이끈다. 선가의 해탈과 노장의 초월은 실용적 측면에서는 별 쓸모가 없는 것 같지만 그 ‘쓸모없음의 큰 쓸모’가 정신적 양식이 된다.”는 저자의 말처럼 오늘날 융합과 소통을 통한 새로운 가치 창조의 시대에 이 책 <노장으로 읽는 선어록>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밝은 지혜를 열어 줄 것이다.
 
 
*저자 이은윤은?
 
중앙일보에 입사해 문화부장·편집국 국장·논설위원·종교전문위원을 지냈다. 한국불교선학연구원장, 금강불교신문 사장 겸 주필을 역임, 대중들에게 선(禪)을 알리기 위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하였다. 지은 책으로는 <혜능평전>, <선시>, <한국불교의 현주소>, <중국 선불교 답사기>(전4권), <화두 이야기>, <왜 선문답은 동문서답인가>, <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큰 바위 짊어지고 어디들 가시는가>, <격동하는 라틴 아메리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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