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이 쑤시고 뻐근했던 고통의 여운이 새벽녘까지 이어졌다. 몸살에 걸린 것처럼 몸이 무겁고 살갗엔 통증의 막이 덮였다. 그런데도 담마마마까에 머물 날이 사흘밖에 남아 있지 않으니, 저절로 잠이 깬다. 새벽 3시 50분, 간단하게 찬물로 세수를 한 다음 두툼하게 옷을 입고 법당으로 향했다.
법당에 도착하니 여기저기에서 수행자들의 기침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온다. 이곳의 일교차가 상당해 감기에 걸린 수행자들이 늘어난 모양이다. 기침소리에 유난히 민감했던 터라 ‘들림’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반성도 한 덕분인지 이전처럼 신경이 예민해지지는 않는다. ‘기침하는 저 분들이 어서 빨리 건강을 회복하기를! 그리하여 수행에 장애가 사라지기를!’라고 속으로 축원을 보냈다. 메타수행을 실천한 것이다. 모든 것이 마음의 조화인 터라, 이런 마음으로 들림의 대상을 대하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고 수행의 장애가 사라진다는데, 정말 그렇다. 내 마음과 내 몸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아침 공양을 마치고, 도반들과 함께 수행센터의 산책로를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 대화는 시나브로 담마라는 주제로 모아졌다. 삼매를 체험한 이야기, 간화선 수행 경험이 위빠사나 수행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 탁발체험을 하며 느꼈던 감동 이야기 등이 진지하게 오갔다. 수행 초기 잡담에 머물렀던 산책길에서의 대화가 어느 순간 담마 토크로 변한 것이다. 출가 비구이든 재가 수행자이든 다들 표정이 진지해졌다. 처음 담마마마까에 왔을 때의 얼굴이 아니다. 표정은 한결 밝아졌고, 말씨는 부드러워졌다. 뛰는 사람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고, 두 팔을 휘저으며 활보하는 사람도 찾아볼 수 없다. 걸을 때에는 뒷짐을 지거나 앞으로 손을 모으고 있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왼발 오른발 발이 지면에 닿는 느낌을 사띠하는 것이리라. 느낌이겠지만 어떤 수행자는 얼굴에서 광채가 나기도 한다. 물으나마나 저마다 수행에 진전이 있었다는 증거다.

 

비구들이 탁발공양을 위해 수행센터 바깥으로 나가는 시간인 8시, 나는 앉음수행을 위해 법당으로 향했다. 이번 시간에는 통증을 집중적으로 사띠해서 해결해보리라는 결심을 하며 모기 망을 내린 후 부처님께 3배를 올리고 평좌 자세로 앉았다. 앉음수행을 시작한 지 10여 분만에 심한 고통을 안겨주었던 통증이 등으로 찾아왔다. ‘어서 오세요. 통증님. 내 몸을 정화시켜주러 오셨군요. 고맙습니다. 만나서 반가워요.’라고 마음속으로 통증에게 인사를 나눴다. 통증은 대답을 하는 듯 그 강도를 더했다. 나는 ‘아, 내 몸이 많이 오염됐군요. 통증님께서 몸을 더 말끔하게 정화 시켜주려고 강도를 더하시는군요.’라며 화답했다. 이렇게 통증과의 상견례가 끝나고 통증부위를 집중해서 사띠했다. 통증이 강해질수록 사띠의 집중도를 높였다. 통증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집중해서 관찰하는 강도를 더한 것이다. 통증을 사띠하다보니 망상도, 집중을 방해했던 소리도 찾아오지 않았고 들려오지 않았다. 오직 통증을 바라보는 사띠만 성성하게 또렷해진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한 20분이 지났을까. 통증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통증이 완화되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등 중간부분에서 아래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 순간 사띠의 힘을 더 강화시켰다. 그러자 통증의 부위가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이 밀려왔다. 그렇게 조금씩 줄어들더니 밤톨 정도의 크기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통증이 완화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이 사띠의 힘으로 통증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자, 나는 더욱 주의를 집중해 사띠를 명료하게 했다. 그러나 단단한 통증덩어리는 요지부동이다. 아무리 집중해서 사띠를 해도 상당시간 미미한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통증님, 본래 그곳이 통증님이 있어야 자리가 아니잖아요. 이제 충분히 놀았으면 본래의 성품을 돌아가세요.’라며 대화를 걸었다. 신기하게도 말길을 알아들었는지 통증 덩어리가 다시 아래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천천히 아래로 향하는 통증을 좇아서 사띠의 목표지점도 옮겨졌다. 어느 순간 고통이 완화되고 있다는 느낌이 찾아왔다. 실제로 통증은 절반 이상 위력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럴 때 통증이 줄어든다고 사띠의 힘까지 줄여서는 안 된다’는 혜송스님의 가르침이 화들짝 머리를 스쳤고, 나는 다시 사띠를 명료하게 했다. 통증은 어느 새 허리부위까지 내려가서 약하게 남아 버티고 있었다. 사띠의 강도를 줄이지 않은 채 통증의 뿌리를 뽑겠다는 각오로 통증 덩어리를 면도칼로 썰 듯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좀처럼 그 덩어리는 잘라지지 않았다. 단단하기가 밤톨 이상인 것 같았다. 그렇게 밀고 당기기를 하기를 수 분여. 통증은 밤톨 모양에서 옆으로 퍼진 모양새로 변하고 있었다. ‘땡~, 그렇게 통증과 노니는 동안, 앉음수행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통증의 기운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으나 등에서 일종의 시원함이 느껴졌다. 며칠 동안 아프고 쑤시던 등에 시원한 기운이 맴돌자 기분마저 상쾌해졌다. 통증을 극복하는 것까지는 아직 요원한 일이겠지만, 사띠로 통증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소중한 체험을 한 값진 정진 시간이었다. 법당을 나와 산책을 하는 발걸음이 공중을 걷는 듯 가벼웠다.

 

오후 1시 정진을 마치고 2시가 되면 한국인 수행자들은 사야도의 법문을 듣기 위해 한국관 1층 법당으로 모인다. 이곳은 새로 짓는 건물이어서 공사로 인해 시끄럽기는 하지만, 비교적 깨끗하고 에어콘 시설이 잘 되어 있어 수행센터 어느 공간보다도 쾌적하다. 또한 한 자리에서 가까이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고 가벼운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어서 한국인 수행자들은 대부분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한국인 수행자들에게 전할 공지사항이 있으면 이 시간을 활용한다. 조만간 한국관이 완공되면 한국인 수행자들은 주로 이 시설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오늘의 사야도 법문 주제는 ‘부처님 법문의 4가지 형태’에 관한 것이다. 에인다까 사야도는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보시 공덕에 관한 법문, 지계 공덕에 관한 법문, 색계와 무색계 천상에 태어날 수 있는 선정에 관한 법문, 열반으로 갈 수 있는 사띠파타나 위빠사나에 관한 법문 등 크게 4가지의 법문을 하셨다”며 부처님께서 어느 때 사왓티 인근에 위치한 알라위 시에서 수많은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 ‘죽음의 법칙에 대해 잊어버리지 말자’는 주제의 설법 내용을 소개했다. 법문의 요지는 이렇다.

 

 

 

 

 

 

 

수행자 여러분, 부처님과 실 뽑는 소녀가 나눈 이 대화는 너무나 좋은 대화입니다. 전생에 내가 누구였는지, 어디로부터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내가 어느 생으로 갈 것인가 중요합니다. 3년 동안 마라나누 사띠를 한 이 소녀는 탐‧진‧치 3독을 거의 없앴고, 아만과 교만심이 옅어진 공덕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의 짧은 법문을 듣고 바로 수다원과를 성취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법문을 마치고, ‘눈먼 사람이 참 많구나. 위빠사나 지혜가 없는 것은 눈이 먼 것과 같다. 위빠사나 지혜가 있는 사람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구나!’라고 한탄하셨습니다.
부처님과의 대화 과정에서 수다원과를 성취한 소녀는 다시 실바구니를 들고 아버지에게 갔습니다. 아버지는 딸을 기다리다가 지쳐 베틀에 다리를 얹어놓고 졸고 있었습니다. 소녀가 아버지를 부르자 아버지는 엉겁결에 베틀에서 발을 내렸고, 그 순간 북이 튕겨져 나와 소녀의 가슴에 박혔습니다. 소녀는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소녀는 수다원과를 얻은 공덕으로 미륵보살이 계신 도솔천에 태어났습니다.
자신의 실수로 딸이 죽었다는 죄책감으로 소녀의 아버지는 며칠몇날을 통곡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결국 부처님을 찾아갔습니다. 부처님은 아버지에게 ‘그대가 수없이 많은 생을 윤회하면서 자식 때문에 눈물을 흘린 것이 저 바다보다도 많다’며 ‘딸은 바라밀 공덕으로 수다원이 되어 도솔천에 태어났으니 그대도 수행을 해서 도와 과를 이루라’고 권했습니다.
아버지는 바로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고, 열심히 수행하여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사야도의 법문을 듣고 나니 처음 담마마마까에 왔을 때, 에인다까 사야도께서 내게 ‘어떤 목표를 갖고 이곳까지 왔는가?’라고 물었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수다원과를 얻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수다원과를 얻으면, 고귀한 목표 열반으로 가는 길에서 퇴행하는 일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알라위 시의 직조공의 딸이 부처님의 자상한 법문과 자상한 문답에 힘입어 수다원과를 성취했으니, 참으로 놀랍고도 부러운 일이다. 더욱 정진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다짐이 저절로 일어났다. 

 

담마마마까 수행에 함께 한 태고종 소속 비구니 서융스님. 스님은 수행기간 내내 홍가사를 수해 태고종도의 자부심을 드러냈고, 모든 수행에서 모범을 보이셨다.  

 

 

오후 4시는 본래 앉음수행을 하는 시간이지만, 수행센터의 아름다운 길을 걸음수행 반, 산책 반의 형태로 걷기로 했다. 등의 통증을 어느 정도 다스렸으나 완벽하게 사라지지는 않았으므로, 집중력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걸음수행으로 집중력을 보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환자처럼 천천히 움직이라.’는 선원규칙이 아니더라도 걸음을 뗄 때마다 전해지는 왼발, 오른발로 발바닥의 촉감을 온전히 느끼려면 자연스럽게 속도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평소 같으면 20여 분이면 돌아볼 수 있는 길을 90분 가까이 걸려 돌았다. 천천히 걸었을 뿐인데도 온 신경을 발바닥에 두고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걸음수행이 의외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통증을 극복하기 위한 정진력을 키우는 데는 걸음수행이 큰 도움이 된다는 선배 수행자들의 조언도 오랜 산책을 하게하는 한 이유였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줄줄 흐르지는 않았지만, 옷을 갈아입어야 할 정도의 땀이 배어났다.

 

오후 6시, 앉음수행을 위해 다시 법당에 앉았다. 호흡을 흐름을 관찰하며 사띠를 챙겼다. 망상도, 혼침도 찾아오지 않았다. 이따금씩 기침소리만이 사띠가 이어지는 것을 간섭할 뿐, 제법 사띠가 잘 챙겨지는 듯했다. 아, 그러나! 채 20여 분이 되지 않아 등에 다시 통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반갑게 맞이해야 하거늘, 반가운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또 다시 앞으로 30여 분을 통증을 관찰할 생각을 하니, 갑갑함이 밀려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것이 수행인 것을. 부처님께서는 스승 없이 홀로 이 길을 무소의 뿔처럼 걸어가셨거늘!

 

지금 느껴지는 이 고통은 농사철 농사를 짓는 그것을 훌쩍 뛰어넘고도 남음이 있다. 부처님께서 탁발을 할 때, 일하지 않고 탁발을 하는 것을 비난한 한 바라문에게 ‘나도 마음농사를 짓는다.’라고 하신 그 마음을 귀촌해 농사를 짓다보니 조금은 실감할 수 있다.
테라와다에서는 수행을 ‘침착’과 ‘인내’로 표현하기도 한다. 어떤 상황에 직면해도 침착을 잃지 않는 것, 어떤 어려움과 난관이 닥쳐도 ‘인내’하는 것이 수행이다. 그러므로 이제 막 위빠사나 수행법을 한 달 정도 맛본 초보수행자가 힘들다, 고통스럽다는 따위의 푸념을 늘어놓을 게재가 아니다. 비록 어설프기는 하나, 통증을 다스리는 방법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부처님께서 가신 옛길, 그 위대한 길목으로 막 접어들었으니 단단하게 마음을 먹는 일만 남았다.

 

8시 앉음수행을 마치고 꾸띠로 들어오는 길, 오후 9시가 넘은 시간에 미얀마 비구들의 아비담마를 공부하는 소리가 시마홀에서 낭랑하게 들려오고 있다. 미얀마 말을 모르니, 그 뜻은 모르겠으나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감동이 밀려온다. 한국 땅에서 그토록 그리워했던 참 상가(Sangha)의 모습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으므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