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ㆍ예술 > 이학종의 ‘불교명저 산책’

상처 하나 없이 공안을 절묘하게 해설하다

이학종 | urubella@naver.com | 2019-08-07 (수) 09:19

 
<깨침의 미학> 이원섭 지음
 
지금은 고인이 되어 그 형형하고도 자상한 눈빛을 볼 수 없지만, 법보신문 창간 시절 이원섭 선생을 만나는 것은 신출내기 기자로서는 더 없이 소중하고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매주 한 차례 원고 수령을 위해 나는 대학로가 있는 동숭동의 한 찻집을 찾았다. 1980년대 후반이었던 당시만 해도 이메일이 없던 시절이어서 원고를 직접 수령하는 것이 관례였고, 그 시간은 저명한 분들로 구성된 외부 필진과 기자가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참으로 값진 시간이었다.
선생께서는 막 창간된 법보신문이 기획한 ‘깨침의 미학’이라는 연재를 맡아달라는 청탁을 수락하고 집필을 해주셨다. 원고지에 육필로 눌러쓴 정감어린 원고를 건네주는 날이면, 선생께서는 내게 선에 대한 다양한 말씀을 맛깔나게 들려주시곤 했다. 그 귀한 말씀들을 다 기억할 수 없지만, 그때 들었던 이야기들이 자양분이 되어 나는 훗날(2000년) <선을 찾아서>라는 책을 펴낼 수 있었다.
이때 이원섭 선생이 100회에 걸쳐 매주 게재해 주신 원고를 묶어 책으로 출간한 것이 <깨침의 미학>(법보신문사)라는 책이다. 1991년 5월 10일자로 발행된 이 책은 두고두고 찬사를 받는 불교계의 대표적인 명저로 꼽힌다.
 
“법보신문이 창간되면서 선의 공안에 대해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있어, 처음에는 몇 번만 쓰면 되겠거니 여겨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것인데, 뜻밖에도 독자들의 반응이 있는 듯하여, 이런저런 사정이 결국은 나로 하여 몇 해 동안이나 연재를 계속하게 만들었다.”
                                        -머리말 중에서
 
선생께서 머리말에 밝히신 것처럼 연재 당시 독자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그때의 반응은 윤창화 민족사 대표가 <월간금강>에 쓴 명저를 소개하는 글에 잘 나타나 있다.  
  
“공안 해설서가 전무하던 상황에서 1990년에 ‘법보신문’을 통하여 〈깨침의 미학〉이 연재되자 많은 사람들이 흥미진진하게 읽고 또 읽었다. 언어도단의 세계에 있는 공안에 대하여 흠집 없이 건드린(해설) 경우는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 선승들의 공안은 깨달음의 경지에 다가가 있는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언어로만 여겨졌다. 그 외 나머지 사람들은 겁이 나서 공안에 감히 접근조차 할 수가 없었다. 어설프게 접근했다가는 뭇매를 맞고 사장(死藏)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중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비교적 쉬운 언어로 공안에 다가간 책이 바로 〈깨침의 미학〉이었던 것이다. 또 문장도 감칠맛 나서 독서하는 재미도 상당했다.”
 
윤창화 대표의 평가처럼 이 책은 심심산골 선방에서 정진 중인 선승들의 전유물이었던 선과 공안의 참 가치와 맛을 대중들에게 해방시킨 기념비적인 결과물이었다.
‘마음을 통일하는 것에 의해 절대의 차원으로 뛰어드는 것이 선이고, 이 같은 절대적 경지에서 내뱉은 말이 선사들의 공안이다.’ 이원섭 선생이 내린 선과 공안에 대한 정의는 처음 읽었을 때나 지금이나 참으로 명쾌하고 간결하다.
사실 공안을 해설한다는 것은 지극히 난해한 문제다. 겁 없이 대들다가 단칼에 죽어나가기 십상이다. 그래서 늘 선사들의 대화나 거량은 서슬이 퍼렇다. 살기가 자욱한 것이 서늘한 기운이 흐른다.
여기서 남전선사의 저 유명한 ‘남전참묘(南泉斬猫)’ 공안 이야기를 살펴보자.
동당(東堂)과 서당(西堂)에 사는 제자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을 때, 남전선사가 고양이를 움켜잡아 번쩍 들어올리고 “제대로 한 마디를 말한다면 베지 않으리라.”고 한 후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자 날 시퍼런 계도(戒刀)로 고양이를 두 동강 낸 사건이 있었다. 남전선사는 몇 시간 뒤 조주가 외출했다가 돌아오자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일러 주고 “너 같으면 어떻게 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조주는 짚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 나가버렸고, 이를 본 남전스님은 “네가 있었다면 고양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불살생을 제일덕목으로 하는 출가자의 신분으로 서슴없이 고양이를 일도양단한 그 조치가 강하고도 통쾌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려니와, 그런 만큼 이것에 끌린 나머지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말 위험도 따르는 이 공안을 이원섭 선생은 <깨침의 미학>에서 어떻게 ‘요리’했을까.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러면 ‘제대로 한 마디를 해보라’는 한마디는 무엇인가. 짚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 나가버린 조주의 행동은 긍정된 터이니까, 이것과 관련시켜 이 ‘한마디’의 뜻을 살펴보자.
이 조주의 조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다. 짚신이 곧 고양이니, 그것을 머리에 이고 나감으로써 고양이의 생명은 구해진 것이라는 설이 있다.
또 절대적 입장에서는 남전스님의 언행이 신을 머리에 이는 것만큼이나 쓸데없는 일로 보였던 것이라는 설도 있다.
또 고양이를 베든 말든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뜻을 보인 것이라는 설도 있다.
모두가 그럴 듯한 주장이고, 그런 결론을 이끌어낼 때까지 무척이나 노심초사하는 과정을 겪었으리라는 것도 짐작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한 마디 하라’는 말을 세속적 질문처럼 여겨 해답을 시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서 남전선사가 요구한 ‘한 마디’의 성질을 구명해 보아야 한다.
그것이 제대로 말해지면 고양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으로도 드러나듯, 이는 분별 이전의 한 마디요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의 한마디다.
분별을 넘어 절대에 서되 그 절대에도 머물지 않고, 구체적 언행이 절대가 되도록 그 절대를 제시해 보라는 요구니, 진정한 절대라면 상대(相對)와의 대립마저 해소돼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답 또한 질문과의 논리적 관계가 남아 있어서는 안 되니, 도리어 질문을 질문 이전으로 되돌리고 분별을 분별 이전으로 환원시키는 것이라야 한다. 곧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아울러 해체시키는 ‘한 마디’가 있어야 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머리에 인 이 짚신을 보라. 거기에는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가 그러했듯, 어떤 이(理)도 따라붙을 여지가 없다. 그것은 오직 짚신일 뿐이다. 짚신이 바로 절대 자체의 직시(直示)여서 온갖 분별에서 벗어나 있다. ‘한 마디 해보라’는 물음도 스러지고, 그런 말을 한 남전스님마저 스러지게 한 이 행위 속에, 도리어 남전뿐 아니라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이 넘쳐 흐르고 있지 않은가.” (P157~158)  
 
남전참묘는 물론, 막상 닥치면 오도 가도 못할 선가의 공안에 대하여,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상처 하나 내지 않고 절묘하게 해설한 책이 바로 이원섭 선생의 〈깨침의 미학〉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공안 해설서다. 출판된 지 30년이 가까워도 여전히 따끈따끈한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 윤창화 대표는 이 책에 대해 “아직까지 이렇게 공안에 대해 탁월하게 해설한 책은 없다”며 “좀 과장 한다면 한국에서 전무후무한 책”이라고 극찬한다.
선은 삶이다. 따라서 선은 체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지, 교리적·논리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식과 이성적 사고를 초월한 비논리의 세계가 바로 선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선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의 지식과 지성으로 모든 것을 분별하는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 지식과 지성으로 선에 다가갈 수 있다는 착각부터 버려야 한다. 그렇게 디딘 한 걸음만이 이 언덕(此岸)에서 저 언덕(彼岸) 가는 첫 걸음이다.
이원섭 선생의 말씀마따나 분별을 수단으로 진리를 찾아 나선다면 그렇게 얻어지는 진리 또한 분별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진리라는 이름의 분별’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 인류를 지금껏 괴롭혀 온 이념의 갈등이었다면, 처음부터 무분별에서 출발하여 마침내 진리에 집착하는 것마저 거부하는 선의 특성은, 어쩌면 인류가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등불일지도 모른다.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라, 독자들께서 원해도 이 책을 구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선을 제대로 공부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이 책의 일독과 소장을 권하고 싶다.
 
 
이원섭(李元燮, 1924∼2007) 선생은?
 
1924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혜화전문학교(동국대 전신) 불교학과를 나온 후 경신고등학교, 마산고등학교, 숙명여고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1948년에 ‘시’로 문단에 나온 이래 전국신도회 부회장과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한국시인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첫 시집 〈향미사〉(1953)를 낸 이후로는 불교경전 공부와 번역에 심혈을 기울였고, 선(禪)의 세계를 간결하고도 정교한 언어로 풀어냈다. 〈불교대전〉, 〈선시(禪詩)〉, 〈당시(唐詩)〉, 〈노자〉, 〈장자〉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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