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고익진 박사(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교수)의 저서 『현대한국불교의 방향』을 요약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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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간의 대립과 불교의 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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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관용의 요청에 대해서 불교는 어느 정도로 응할 수가 있는가를 살펴본다.

석존께선 ‘연기(緣起)의 법은 부처가 세상에 나오건 안 나오건 법계상주(法界常住)의 것으로서 부처는 그것을 깨달아 사람들에게 설할 뿐 이라고 말하고 계신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는 예언자적 종교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신이 인간에게 계시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서 각성된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의 능력(佛性)은 ’일체중생(一切衆生)에게 실유(悉有)하다‘고 설하고 있다. 우선 그 진리의 개현성(開顯性)에 있어서 불교는 폐쇄적이거나 배타적인 점이 없음을 본다.

불교에는 여러 가지 법문이 많이 설해져 있다. 그 모든 교리는 어느 것이나 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교설에 대한 절대성의 주장은 발견되지 않는다. 여래는 다만 길을 가리킬 뿐 모든 교설은 방편으로 시설(施設)된 것에 불교하다. 강을 건너간 뒤에는 버려야만 할 ‘뗏목’에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진리를 깨달을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진리가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언어로 표현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그것을 ‘최상의 바른 깨달음’이라고 간접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을 뿐이다. 깨달음을 얻는 데에도 3아승지(阿僧祗)라는 장시간이 걸쳐서 오십이위를 닦아야 할 것이 설해져 있다. 종교에서 주장하는 진리라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를 엿볼 수가 있다.

불교의 진리에 대한 태도는 이렇거니와, 이교(異敎)에 대한 태도는 어떠한가. 이교의 절대성 주장에 대해서 불교는 덮어 놓고 승인하지는 않는다. 합리적인 입장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석존은 당시의 이교를 다음과 같이 3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일체를 신의 창조로 보는 존우화작인설(尊祐化作因說), 숙명적인 것으로 보는 숙작인설(宿作因說), 그리고 우발적인 것으로 보는 무인무연설(無因無緣說)의 셋으로 그리하여 일체를 그렇게 본다면 악(惡)을 지어도 죄는 성립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에게 자유의지와 같은 현상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논박하고 계신다.

뿐만 아니라 이교를 될 수 있는 한 불교 속에 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교도의 득도(得度)에 대한 문호가 개방되어 있음은 물론, 불교경전 속에는 인도의 재래 신들이 그대로 등장하고 있다. 중요한 교리적인 술어들도 대부분이 이교에서 사용하고 있던 것을 그대로 채택한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선재동자가 구도의 편력에서 만난 53인의 선지식 속에는 이교의 스승들도 포함되어 있어 종교 간의 대립에 있어서 불교의 이교에 대한 관용성이 어떠했던가를 엿보게 해준다.

불교는 오랜 전도의 역사 속에서도 다른 세계종교에서는 예를 찾을 수가 없을 정도로 포용적 관용성을 발휘하고 있다. 육파 철학과의 대립이 극심했던 5세기경의 인도에서 불교는 새로운 논리학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것은 그러한 대립을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 타개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가 있다. 중국에 전해져서는 그 곳의 도교와 유교에 대해서 투쟁이 아닌 교섭 관계를 유지했으며 중국인의 사유방법에 맞는 새로운 불교사상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불교는 교리에 있어서나 실제적인 전도 과정에 있어서 놀라운 ‘포용적 관용성’을 보여주고 있다. 불교의 이러한 포용적 관용성은 이제 현대에서는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 것인가. 몇 가지 점을 지적해 보겠다.

첫째로, 자신의 절대성 주장에 맹목적인 요소가 있다면 그것부터 우선 반성할 필요가 있다. 불교는 원래 ‘진리란 무엇 인가?의 입장에서 인간의 근본 문제를 밝히려는 지극히 인간적인 종교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특히 중국적인 사유과정을 지나는 동안 대승불교는 본래 합리성을 잃고 직관을 중시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주술적인 색채도 지나칠 정도이다. 진리를 깨닫기 위해 심신을 바치는 열렬한 보살행이 다시 선양되어야 한다.

둘째로, 다른 종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솔선해야 한다. 서구 기독교인에 의한 불교 비판을 볼 때 너무나도 천박한 이해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종류의 천박한 이해를 우리도 다른 종교에 대해서 하고 있지는 않을까. 남의 종교에 대한 정당한 평가에 힘쓰면서 되도록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석존 이래 행해져온 불교적 관용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오늘날 세계적으로 신교(信敎)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는 전체주의적 정치사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말할 필요도 없이 그 위험을 제거하는 일에 최대의 노력과 대결을 해야 할 것이다. 신교의 자유를 빼앗음은 종교의 기본성격에서 볼 때 도저히 방치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관용정신이 이렇게 전개될 때 그것은 다시 현대의 종교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다할 수가 있을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