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환영합니다. 통증님!”

 

미얀마에서 수행할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다. 수행의 성과가 미미한데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십수 년째 미얀마에 와 수행을 해도 늘 어렵다는 분도 있다지만, 내 스스로 최선을 다했는가를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점이 한 둘이 아니다.
그래도 훌륭한 수행선배들을 알게 되었고, 멋진 수행도반들도 생겼으니 수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미얀마에 온 이후 짧지만 비구계를 받고 비구생활을 경험했다는 것은 이생을 마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함께 출가를 했던 다섯 명의 비구들은 한국에 돌아가서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격려하고 수행의 탁마가 되기로 다짐했으니, 이 또한 엄청난 복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담마에 대한 해박한 안목과 탁견, 사띠파타나 위빠사나 수행법에 대한 정교한 수행지도법을 갖추고 있는 에인다까 사야도를 알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한국 비구니로서 놀라운 역할을 해내고 있는 혜송스님을 만났다는 것은 빼어놓을 수 없는 홍복이다.

 

 

 

담마마마까는 겨울철이 가장 활기차다. 한국인 수행자들이 찾아오는 시기가 대개 12월에서 2월 사이이기 때문이다. 수행센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공양시간에 산만하게 행동하다가 따끔하게 지적을 받고, 이런저런 실수로 번번이 사야도로부터 꾸중을 들어도 한국인 수행자가 있어야 생기가 돈다. 이 시기가 지나면 수행센터에 한국인 수행자들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기를 제외하면 이곳 담마마마까가 온전하게 미얀마인들의 수행센터가 된다.
한국인 수행자들이 하나 둘씩 떠나면서 담마마마까도 조금씩 활기가 수그러지고 있다. 한국인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주는 미얀마의 유일한 선원이 더 발전하고 확고한 위상을 차지할 수 있도록 더 많은 한국인 수행자들의 적극적인 수행참여가 절실하다. 돌이켜보면 평생을 머리로만 불교를 해온 나의 입장에서 이곳에서의 한 달은 너무나 귀중하고 보람찬 시간이었다. 어쩌면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언제 한 번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로지 도와 과를 이루기 위해 수행에만 전념해본 적이 있었던가.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격려와 힘이 되어준 인연들, 특히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수행을 할 수 있도록 해준 가족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며칠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부지불식간 조급함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새벽 정진에 일찌감치 참석한 것이나, 앉음수행을 할 때 다른 수행자들의 인기척이나 기침소리에 민감해지는 것은 아무래도 조급함 때문일 것이다.
새벽 수행에서는 등에 찾아온 통증을 살피느라고 절반 가까이 시간을 보냈다. 왼쪽 무릎 아래가 저려오기도 했지만 가장 큰 통증은 역시 등에서 시작됐다. 예리한 칼로 마구 쑤시는 것과 같은 통증이 극에 달하면 호흡관찰은 사실상 어려워진다. 어제 오후 자칭 통증박사 신성조 거사님으로부터 통증에 대한 풍부한 경험담을 들었던 만큼 새벽 시간에 찾아온 통증을 제대로 다뤄보겠다고 내심 작정을 했다.
수행을 시작한 지 10여 분쯤 지나니 어김없이 통증이 찾아왔다. 먼저 통증이 찾아오는 순간을 알아차림 한 후 신거사님의 조언에 따라 ‘이렇게 찾아와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나의 수행력을 높여주기 위해 찾아온 손님이니 잘 대접해야 한다. 통증 부위를 대상으로 사띠했다. 통증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냥 통증의 성질과 근원을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통증의 변화와 흐름을 그대로 알아차리며 그 근원으로 마음을 집중했다. 어느 순간 손바닥 크기만큼으로 느껴졌던 통증의 부위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차츰 통증 부위가 줄어들다가 밤톨 정도로 통증의 핵심부위가 작아진 것을 알아차림 했다. 그러는 사이 통증의 강도도 차츰 약해졌다. 통증의 강도가 약해질 때 더 사띠의 힘을 강화하라는 신 거사의 말씀이 떠올라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 통증이 아주 가시지는 않았으나, 다시 마음을 호흡으로 옮겨 관찰을 할 수 있을 만큼 가라앉았다. 거의 동시에 찾아왔던 왼쪽 다리의 저림도 시나브로 사라졌다.
통증관찰을 하다 보니, 사띠를 놓치는 시간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 통증만 극복할 수 있다면 온전하게 호흡을 관찰할 수 있게 되고, 집중력이 깊어져 수행에 큰 진전이 있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이 또한 성급한 생각일 것이다. 통증이란 것이, 아니 이 몸뚱어리라는 것이 내가 마음대로 어찌할 수 없이 요동을 쳐대는 ‘요물’이 아닌가.

 

 

 

아침 죽 공양을 마치고 사야도의 허락을 받아 수행센터에서 양곤-만달레이 고속도로변을 따라 약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시장을 찾아갔다. 미얀마의 시장을 구경하고, 또 휴지 등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다.  
말이 고속도로이지, 차들은 자유자재로 중앙선을 넘어 U턴을 하기도 하고, 사람들은 수시로 눈치껏 도로를 건넌다. 불법이 아니라 무법이 횡행하는 나라인 것 같다. 아직까지는 굳이 법으로 정해 규제를 하지 않는 부분이 많아 보인다.
고속도로를 따라 주스 등 음료를 파는 노점상 같은 것이 군데군데 있었고, 시장이 가까워오면서는 크고 작은 사원들도 자주 보였다. 시장에 도착해보니, 우리나라 70년대 시골 재래시장을 보는 듯했다. 사람들로 북적였고, 온갖 농산물과 과일, 잡화 등이 시장 거리 양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틈을 비집고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개조해 만든 운송수단이 당당하게 활보한다. 부처님께서 가장 좋아하셨던 망고를 조금은 덜 익었지만 사서 맛을 보았다.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한국산 컵라면도 몇 개 비상용으로 구입했다. 시장에서 파는 요거트가 의외로 맛이 좋았다. 신선감이 뛰어났고, 그 위에 한 스푼 얹어주는 꿀맛이 입맛을 더했다. 낮에는 섭씨 30도를 훌쩍 넘기는 기온이지만 그래도 이 나라에서는 계절상 가장 추운 겨울이다. 아마도 겨울이면 미얀마 사람들도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찐빵을 즐기는 모양이다. 마침 찐빵 파는 노점상이 있어 사서 시장 인근에 자리한 ‘아웅산 공원’으로 가서 맛보았다. 그러나 내 입맛에는 영 맞지 않는다. 결국 다 먹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았다. 음식을 버리는 행동에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무려나, 동남아시아 국가의 시장에 들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무질서 속에 형성된 질서가 절묘하기까지 하다. 미얀마에 와서 사람 사는 냄새에 모처럼 흠뻑 취한 시간이었다.

 

왕복 4킬로미터를 걷고 나니, 정강이가 뻐근하다. 꾸띠로 돌아와 빨래를 해 난간에 너른 후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점심공양을 마치고는 경내 산책에 나섰다. 오랜 만에 혼자서 사띠를 챙기며 걸었다. 햇볕이 따가워 오래 걷기에는 아무래도 무리다. 다시 꾸띠로 돌아와 잠시 누웠다. 오후 1시에는 인도 캘커타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기 위해 떠나는 에인다까 사야도와 혜송스님을 전송했다. 불교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두 분에게 큰 격려가 될 것 같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한국관에서의 사야도 녹음법문의 주제는 ‘8정도를 닦으면 도와 과를 성취한다.’이다. 에인다까 사야도는 부처님께서 마지막 열반 직전에 늙은 바라문 수밧다에 내린 8정도 법문을 주제로 법문했다. 법문은 수밧다의 ‘부처님의 가르침이 당시 6사외도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법문을 듣고 수밧다는 마지막 아라한이 되었다. 에인다까 사야도를 통해 들은, 부처님께서 수밧다에게 하신 8정도에 대한 간결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법문은 8정도를 순수 위빠사나 수행의 측면에서 설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8정도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과는 그 내용과 형식, 관점이 다르다. 그러나 부처님의 모든 교설이 결국 수행을 지향하고 있으므로, 수행의 관점에서 팔정도를 설명한 사야도의 법문은 매우 인상 깊게 들렸다. 

 

법문 시간이 끝난 후 한국인 수행자들은 도이 장로님의 꾸띠에 모여, 사야도의 8정도 법문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정사유(正思惟)는 ‘정사(正思)’로 바꿔 표현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견해에서부터, 정견에 대한 설명을 ‘;4성제를 보는 것’이라고 한 일각에서의 설명이 과연 맞는 것인가에 대해 각자 견해가 피력되기도 했다. 그러나 불교에서 8정도가 차지하는 위치가 워낙 큰 것이어서 이 문제는 추후 다시 토론하기로 했다.

 

누가 제안을 하지 않았는데도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국인 수행자들은 오후 4시 앉음수행을 하기 위해 법당으로 향했다. 귀국일이 가까워오면서 수행할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을 내남없이 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4시, 6시, 8시 앉음수행 시간에 거의 모든 한국인 수행자가 함께 했다. 사이사이 시간에는 걸음수행을 하거나 산책을 하며 통증으로 지킨 몸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