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ㆍ예술 > 이학종의 ‘불교명저 산책’

낯설었던 불화가 대중 속으로!

이학종 | urubella@naver.com | 2019-07-31 (수) 06:25

 
<명화에서 길을 찾다> 강소연 지음
 
강소연 교수의 역저 <명화에서 길을 찾다>(시공아트 펴냄)라는 책의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콜롬부스의 달걀을 떠올렸다. ‘매혹적인 우리 불화 속 지혜’라는 부제가 외려 사족처럼 느껴질 만큼 책의 제목이 신선하고 좋았다.
 
사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명화=서양의 이름난 화가들의 그림’이라는 고정관념에 매몰돼 살아왔다. 명화는 언제나 그들의 그림이었다. 그들의 그림은 벌거벗은 나체를 그려도 명화가 되었고, 관능적인 분위기를 짙게 풍겨도 성스러운 그림으로 평가받았다.
반면 우리의 그림에 대한 평가는 어땠을까? 단원과 혜원의 그림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대단한 그림’이라는 생각을 가졌겠지만, 거기에 ‘명화’라는 지극히 당연한 평가를 부여하지 못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우리 그림에 대해 왠지 모를 주눅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솜씨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환상적인 고려불화의 섬세한 표현기법에 놀라면서도 거기에 ‘고려시대의 명화들’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가치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쑥스러워서 그랬을까? 아니면 겸손해서 그랬을까? 그것도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 뇌리에 깊숙하게 박혀있는 서양예술에 대한 사대적 선입견 때문일까?  
 
서양의 명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주제가 ‘천지창조’와 ‘아담과 이브’, ‘최후의 만찬’ 등이다. 이는 모두 서양 사람들의 역사와 밀접한 그리스도교적인 주제다. 이러한 주제의 그림들은 ‘그리스도교 회화’로 불리기보다는 보통 ‘서양 명화’라고 칭해진다. 반면 우리에게 우리의 ‘명화’란 무엇인가? 흔히 김홍도나 신윤복 등의 그림 말고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예로부터 그려온 우리의 불화(佛畵)에서도 뛰어난 예술성과 거기에 깃든 스토리들이 감동을 불러일으키기기에 모자람이 없다. 불화를 뜯어보면 볼수록 옛 선조들의 지혜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렇기에 불화를 ‘명화’라고 불러도 아무런 손색이 없다. 1천 년 이상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 불교적인 주제를 다룬 불화를 우리는 종교라는 테두리에서 가둬놓고, 그것에 명화라는 지극히 타당한 평가를 외면했던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원인 모를 주눅에 들린 고정관념에서 불화를 해방시킨 책이다. 주눅의 굴레서 불화를 꺼내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도상을 살펴봄으로써 ‘명화’의 경계를 넓히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불화가 명화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종교적 배타성에서 벗어난 이라면 누구나 고려불화 앞에 서는 순간 높은 예술성과 작품성에 탄성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불화에 ‘명화’라는 호칭을 당당하게 책의 제목에서 공개적으로 사용한 이는 강소연 교수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처음 펼치면서 콜롬부스의 달걀을 떠올린 이유다.
 
강소연 교수는 30여 년간 문화재만 연구한 불화 전문가다. 그가 이 책에서 열정에 넘치는 목청으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명화 ‘불화’를 이야기한다. 때론 조곤조곤하게, 또 때로는 준엄하게 불화를 주제로 이야기보따리를 펼치는 강 교수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불화 속 주인공들이 살아나 직접 대화를 나누는 듯 다가온다. 그들의 이야기는 물론 각기 다른 테마와 배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의 첫 장은 안락국태자이야기이다. 저자는 ‘안락국태자경변상도’를 통해 희생의 참 의미를 천착해나간다. 관련 불화들을 때로는 전체적으로, 때로는 부분을 클로즈업해 가면서 마치 한편의 구연동화를 읽어가듯이 술술 불화의 세계로 이끌어 들인다. 왠지 모르게 조금은 버겁고 난해했던 불화들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강 교수의 안내를 따라 책 속으로 들어가면 대왕이 왕궁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사찰의 허드렛일을 하러 떠났다는 것, 그리고 여왕의 몸으로 몸종으로 자신을 팔아 왕의 수행을 도왔다는 것에서 온갖 탐욕과 이기심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우리네 뭇 중생들에게 천둥 같은 교훈을 제공한다. 
 
<명화에서 길을 찾다>가 독자들에게 주는 또 하나의 큰 선물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불화 명작들을 클로즈업한 이미지가 2백여 장이나 수록돼 있다는 점이다. 책에 담긴 대부분의 이미지는 저자가 직접 소장처를 찾아가 촬영한 것들이다. 실물을 접하기 힘들거나 멀리서만 볼 수 있는 불화를 바로 눈앞에서, 더 나아가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디테일까지 살펴볼 수 있어, 마치 작품을 그리는 현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저자는 이러한 클로즈업 이미지들은 명화의 스토리를 분명하게 전달하면서 이 명작들에 담긴 삶의 지혜를 생생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오랜 시간 우리 문화재를 연구한 저자의 공력은 각각의 명작들 속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데에서 잘 드러난다. 희생과 자비, 용서와 관용, 인내와 노력, 버림과 해탈 등 현대 사회에서는 생소하게 들리는 가치들이지만, 결국 우리 삶의 궁극적인 지혜라고 할 수 있는 것들에 주목한다. 십바라밀의 덕목에서 착안해, 이 책에서는 열 가지 이야기의 제목으로 구성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삶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열 가지 이야기와 열 가지 그림은 예술성과 교훈을 모두 갖추고 5백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명작들이다. 명예와 애욕, 부귀영화를 버리고 수행하는 ‘희생’의 가치를 보여 주는 <안락국태자경변상도>, 진리의 세계로 향하기 위해 끊임없이 가르침을 받는 선재동자와 관세음보살의 만남을 그린 <수월관음도>, 인간이 가지는 근본적인 욕망을 벗어나 영혼을 구하기 위한 <감로도>, 난폭한 아들 탓에 극락을 염원하는 여왕 이야기인 <관경16관변상도> 등 열 가지 명작들을 따라가다 보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보편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접했던 익숙한 내용들도 찾아볼 수 있다. 한 예로, 큰 인기를 얻은 웹툰이자 역대급 한국 영화 블록버스터 ‘신과 함께’에서 주된 배경으로 등장하는 지옥에 관한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지옥에 뛰어든 바라문의 딸을 통해 여러 종류의 지옥을 보게 되는데, 고통이 끊이지 않아 쉴 수 없는 무간지옥·비명소리가 끊임없는 규환지옥·구리물에 펄펄 끓는 확탕지옥·칼날이 무수하게 거꾸로 박혀 있는 도산지옥 등 영화에서 보았던 지옥이 ‘지장시왕도’라는 그림으로 펼쳐진다. 이러한 지옥의 풍경은 사람들이 생전에 저질렀던 ‘업’의 결과이고 이 그림을 보는 이들이 진심으로 참회하도록 하기 위해 그려진 것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그림들은, 물론 불교라는 종교적 의미를 담아 그려진 것들이다. 그렇기에 불자라면,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불화 이미지를 접하는 즐거움과 더불어 불화 속 경전 이야기에 심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교를 잘 모르는 이들이라도 옛 명화의 화려함을 클로즈업해서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명화들을 통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저자  강소연은?
 
30년이 넘도록 오로지 문화재만 연구한 베테랑 학자인 저자는 국내의 무수한 문화재를 조사하는 것도 모자라, 해외에 흩어진 우리 문화재도 10여 년간 조사하였다. 특히 불교 문화재와 관련하여 이론과 수행을 접목시킨, 탁월한 해설로 유명하다. 문화재청 전문위원, 문화창달위원회 위원, 사찰보존위원회 위원, 조계종 국제위원으로도 일하고 있다. 홍익대 겸임교수, 동국대 연구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조선일보 전임기자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서> <사찰불화 명작강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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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아리랑 2019-07-31 11: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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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잘 소개주시니 고맙습니다. 무더위 속 감로수를 만난듯~_()_
무디 2019-11-28 13: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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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그림과 설명이 예술입니다. 감사합니다. 합장(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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