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정스님의 향기로운 공감언어와 법문

법정스님 공감법어 59

정찬주 | | 2019-07-31 (수) 06:17


일러스트 정윤경
 
 
인생을 영원히 사는 법
 
 물질과 거창한 법문으로만 나누어 갖는 것이 아닙니다.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만 기울이면 얼마든지 이웃과 나누어 가질 수 있습니다.
 
 저 자신이 목격한 일입니다. 지리산 자락에 한 이상한 노인이 살았습니다. 환갑이 넘은 노인이 욕심 사납게 누가 뭘 버리려고 하면 다 자기를 달라고 했습니다. 노인은 깨진 그릇이든, 옷가지든, 농기구든, 주는 대로 다 긁어모았습니다. 사람들은 저런 걸 가져다 무엇에 쓰려고 욕심을 부리는가 하고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노인은 혼자 살았습니다. 그런데 집 뒤에 조그마한 선반을 만들어 놓고 얻어 온 물건들 중 망가진 것은 고치고, 해진 옷은 깨끗이 빨아서 기운 뒤 사람들이 쓸 수 있도록 선반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러고는 자기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아무거나 다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남을 돕는 것은 돈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마음만 내면 얼마든지 노력해서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보살이라는 이름 없이 보살행을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연말이 되면 자선냄비가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자선냄비 옆으로 한 스님이 와서 곁에다 시주함을 놓고 종일 목탁을 치더랍니다. 자선냄비 사람들은 말은 못하고 영 불쾌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해가 질 무렵, 스님이 주섬주섬 정리하는 가 싶더니 자기 시주함에서 돈을 모두 꺼내어 자선냄비에 넣어놓고 가더랍니다.
 
 한 생각 일으키면 누구든지 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자기 것이 많아서만 이웃을 돕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 한 가지라도 이웃에게 착한 일을 한다면, 그날 하루는 헛되이 살지 않고 잘 산 날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산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목숨의 신비가 그만큼 닳아진다는 것입니다. 그 소모되는 생명의 신비를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서 인생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인생은 자기 자신에서 끝이 납니다. 이웃과 함께하는 인생은 이웃과 함께 영원히 삽니다.
 
 사족의 말
 
 나는 누구인가? 가장 분명한 것은 권력도 없고 경제적인 부를 누리고 사는 사람도 아니라는 점이다. 고백하건대 누가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간에 평생 글을 쓰고 살아갈 작가라는 것이 나의 정체성일 터이다. 아내는 가끔 남을 도와주고 싶은데, 말하자면 내가 사는 산중의 중학교에 장학금도 내놓고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안타까워한다.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이웃을 돕는 삶이 영원히 사는 비결일 것이다. 선인선과라는 인과의 법칙을 떠나서도, 시골 산중에서는 덕(德)을 베푼 한 사람의 칭송은 대를 잇는다. 누구네 어른의 자식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화투놀음 같은 도박을 하여 욕을 먹어도 대를 잇는다. 그래서 밤중에 도시로 떠나는 시골농부도 있다.
 
 내 산방에 가끔 손님들이 찾아온다. 나는 주로 내가 쓴 책을 선물하거나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차 한 잔을 우려 준다. 엊그제도 야당 대표를 지낸 정치인이 찾아와 차를 마시고 갔다. 전화통화할 일이 있어서 팔순이 되어가는 은사님에게 말했더니 나에게 뭔가 지혜를 구할 일이 있어서 그럴 것이라고 짐작하셨다. 그러나 나에게 무슨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내가 해준 것은 손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차를 우려 준 것밖에 없는 듯하다. 그 정치인뿐만이 아니다. 평범한 직장인부터 수녀님, 영화감독, 교수, 사업가, 검사, 변호사, 수행자, 경찰 등등 수없이 많다. 내가 어찌 경험해 보지 않은 그 손님들의 세계를 다 알 수 있을 것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차를 우려 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청자(聽者)가 되는 것도 소중한 일이 아닐까 싶다.
 
향기로운 차 한 잔 권하고 손님이 화자(話者)일 때 내가 청자가 되는 것이 설령 영원히 사는 길은 아니라도 남은 여생을 그런 대로 괜찮게 사는 삶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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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경담 2019-07-31 06:21:54
답변  
어제 임실군에서 영화 ‘나랏말싸미’를 두 번째로 봤다.
임실군 체육관에 지하에 있는 ‘작은 별 영화관’이다. 좌석은 오륙십 명 정도 앉을까. 그런데 지금 상영하고 있는 대부분의 영화를 볼 수 있다. 이름 하여 개봉관이다. 관람료가 6,000원 이다. 완전히 금맥이다.

저녁 9시 영화가 끝나고 2차선 시골길을 꼬불꼬불 돌아오는데, 한 마리가 길 중간에 서서 빤히 처다 본다. 고라니인가 했더니, 귀를 보니 어린사슴이다. 한 5초 정도 눈싸움을 하다가 산 숲으로 가 버린다. 이번에는 뱀이 차선을 건너간다. 순간적으로 핸들을 움직여 차바퀴 사이로 뱀이 무사하도록 조작한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핸들을 움직여 내 삶이 무사하도록 배려해준 이름 모를 이들에게 감사한다.
화엄 2019-07-31 09:5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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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말씀 중에 "장학금"이야기가 나오니, 뜨끔한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생각하길 어른이 되어 돈을 벌면 꼭 내가 다린 학교에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작은 실천이라면 건강한 몸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한에는 작은 금액이라도 어려운 이웃이나 불교발전을 위해 애쓰는 단체에 조금씩 보시하는 것으로 위안을 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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