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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공감법어 58
정찬주 2019-07-24 (수) 10:52
일러스트 정윤경
어머니의 힘으로 세상이 바뀐다
한 생명의 출생에는 어머니의 희생이 따릅니다. 인간이든 미물이든 모든 생명체는 어머니를 거쳐서 이 세상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뿌리는 어머니입니다.
생명의 근원인 모성은 누구보다도 생명이 귀하고 소중함을 압니다. 어머니는 우주의 생명력을 사랑으로 빚어서 탄생시킨 창조주입니다. 누구도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창조의 능력을 지닌 어머니의 힘으로 세상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일도 바로 어머니의 몫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벽제 화장터에 다녀왔습니다. 연습 삼아서, 언젠가 나도 그곳으로 갈 테니까 한번 가 보았습니다. 제가 그곳에 갔을 때 웬 젊은 여자가 온 화장터가 떠나가도록 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알아봤더니 2개월 된 아이가 죽었답니다. 아이가 잠자다가 엎어져서 질식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 엄마가 통곡을 하는데, 저도 다른 때는 울지 않건만 그 통곡 소리를 들으니까 저절로 눈물이 났습니다. 어른의 경우는 넉넉잡아 두 시간이면 다 탄다고 합니다. 그러나 2개월 된 아이는 30분쯤 돼서 나오는데 뼈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한 생명이 탄생해서 채 피어나지도 않고 죽는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한 여성이 처음부터 어머니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한 사람의 여성이었지만, 자식을 낳아 기르는 동안 애간장을 태우며 밤잠을 못 자고 참고 다독거리면서, 하루하루 어머니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갑자기 어머니가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평범한 여성이 자식을 통해서 어머니가 되어 갑니다.
이와 같은 어머니 밑에서 부처님 같은 성인도 나오고, 카드빚을 갚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살인자도 나옵니다.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가, 어떤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랐는가, 어떤 관심을 받고 살았는가에 따라 다릅니다. 따라서 어머니에게는 무거운 책임이 있습니다. 자식을 낳을 때 세상에 대한 책임도 동시에 져야 합니다.
사족의 말
나는 낙향을 하면서 절 부근에 땅을 마련해 산방을 지었다. 그리고 산방 이름을 이불재(耳佛齋)라고 지었다. 솔바람 소리에 불(佛, 진리)을 이루는 집이라는 뜻을 담았다. 물론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귀를 열고 세상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집’으로 바뀌었다. 소승적인 입장에서 대승적으로 진화한 것인지 모르겠다.
처음 낙향했을 때는 아내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으므로 광주에 계신 어머니가 오셔서 함께 살았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어머니를 따라서 왔다 갔다 하셨다. 나는 아래 절에서 새벽예불을 참여하는 것으로부터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새벽예불은 나에게 하루 시간을 온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끔 힘을 주었다. 작품을 집필하는 양은 서울에 있을 때보다 배가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아래 절을 가려다가 주무시고 계시는 어머니 모습을 보게 되었다. 문득 어머니가 관세음보살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다 성장한 아들의 끼니를 위해 광주에서 산중으로 들어와 계신 어머니야말로 관세음보살이라는 자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절에 내려가는 것을 포기했다. 관세음보살이 옆에 계시는데 굳이 부처를 만날 필요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관세음보살인 어머니가 계신 내 산방이 바로 법당이었다.
중국 당나라 때의 양보라는 거사가 생각났다. 양보는 영험하다는 부처를 만나러 집을 나섰다가 어느 주막집 주인이 ‘헛걸음하지 말거라. 집에 가면 신발도 신지 않고 뛰어나와 너를 맞이하는 사람이 부처다’라는 말을 해주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오매불망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였던 것이다. 훗날 양보는 ‘부처는 집안에 있다(佛在家中)’이란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나의 어머니나 천 년 전 양보의 어머니나,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식에게 무한한 자비와 사랑을 베푸는 관세음보살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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