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ㆍ예술 > 이학종의 ‘불교명저 산책’

논리적으로 따지니 불교가 보이네!

이학종 | urubella@naver.com | 2019-07-10 (수) 07:51

 
<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 홍창성 지음
 
‘무아(無我)’, ‘윤회(輪廻)’, ‘연기(緣起)’, ‘깨달음’, ‘열반(涅槃)’ 등 알 듯 하면서도 늘 명쾌하지 못했던 불교사상의 난제들을, 서양철학을 전공하고 불교철학에도 정통한 한 철학교수가 학생들과의 문답을 통해 해결의 힌트를 제시한 책이 발간됐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 미네소타주립대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있는 홍창성 교수. 그는 지난 기간 동안 진행된 불교철학 강의를 기반으로 한 교수-학생 간 불법(佛法) 토론을 주된 내용으로 삼은 역저를 펴냈다. 책의 제목은 <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불광출판사 펴냄). 철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대해 전담 교수 홍창성의 ‘21세기형’ 현답을 엮은 것으로 불교철학의 논리적이고 정교한 측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깨달아 열반에 들어 해탈하지 못하면 생사를 반복할 것이다. 그럼 윤회는 과거 언제 무엇에 의해 시작되었는가?’ ‘붓다는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아를 설했는데, 존재하지도 않는 수행자가 어떻게 열반에 들 수 있는가?’, ‘깨달음엔 그 대상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럼 무엇을 알고, 무엇을 깨닫는단 말인가?’, ‘해탈이 곧 육도윤회의 굴레를 끊는 것이라면, 깨달은 자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 ‘깨달음에 대한 집착도 집착이긴 마찬가지! 깨달음은 가능한 일인가?’
 
미국 학생들의 질문들은 이처럼 매우 예리하다. 어릴 적부터 합리적 사고에 익숙한 그들에게 추상적으로 보이는 이 같은 질문들에 온전하게 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격체로서의 나는 존재하는가?’라는 ‘무아’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 홍 교수의 설명을 잠깐 들여다보기로 하자.
 
“불교는 우리에게 참나(self)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논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세계를 사는 인격체(person)로서의 나의 존재조차 부정하지는 않는다. 많은 이들이 이 점을 오해하고 있다. 색·수·상·행·식으로서의 몸과 네 가지 의식 상태가 부분들(parts)를 이루며 만들어진 전체(whole)로서의 인격체는, 비록 실재(real)하지 않는 허구(fiction)에 불과하지만, 일상생활의 편리를 위해 임시로(假), 또 현상으로(幻) 존재한다고 보아도 좋다. 이 점을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우리 앞에 무게 15킬로그램인 자전거가 있다고 하자. 이 자전거는 실재하는가? 어리석은 질문 같지만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먼저 이 자전거의 부품들이 다음과 같이 무게 나간다고 해 보자.
 
(1) 바퀴 하나 당 3킬로그램 × 2 +프레임 5킬로그램 +핸들 2킬로그램 +안장과 나머지 모든 작은 부품들을 합쳐서 2킬로그램 = 15킬로그램
그런데,
(2) 자전거 전체도 15킬로그램
 
부품들이 모여 15킬로그램을 이루는데, 전체로서의 자전거도 나름대로의 무게가 15킬로그램이라면, 우리 앞에 놓인 이 자전거는 합계 30킬로그램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앞에 놓인 이 물체는 15킬로그램밖에 안 된다. 그렇다면 (1) 부분들의 모임과 (2) 전체로서의 자전거 둘 가운데 하나는 실재하지 않는 허구일 것이다. 어느 것이 허구일까?
아비달마 계통 문헌과 현대 분석철학 주류 의견에 의하면 실재하는 부품들이 모여서 전체라는 허구적 존재가 생긴다. 나는 자전거가 수행하는 모든 기능을 부품들이 일정 방식으로 모여 만드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전체로서의 자전거가 따로 실재한다고 보아줄 존재론적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밀린다왕문경>에 나오는 개념적 허구로서의 수레의 예 같은 것들도 이와 같은 종류의 논증을 이용하고 있다. 전체로서의 자전거는 실재하지 않는 허구로 보아야 한다.”
 
이처럼 저자는 불교에 대해 문외한인 미국 현지의 학생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금 시대의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개념과 방법으로 불교철학의 핵심들을 논한다. 특히 합리적인 걸 추구하는 미국인들답게 얼렁뚱땅 넘어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학생들을 위한 강의이기에 불교철학을 논리적으로 따져 가며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이 가진 가장 두드러진 강점이다. 또 불교철학의 주요 내용을 강의함에 있어 서양철학의 관점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사실 저자 홍창성 교수의 전공 분야는 서양철학이다. 바로 이런 점이 불교철학을 강의하고 학생들의 이해를 돕는 데, 나아가 독자들의 답답함을 풀어내는 데,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서양철학의 걸출한 인물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버트런드 러셀 등의 이론(시각)과 붓다의 그것을 비교·분석하는 대목을 발견할 수 있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란 영국 공리주의 철학의 기본 원리에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불자들의 삶을 대입하기도 하며, ‘공(空)’의 번역어인 ‘EMPTINESS’가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키는지를 ‘공’을 하나의 실체로 바라보게 되는 우리의 현실과 함께 바라보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붓다가 제시한 사상과 철학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홍 교수는 불교에서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경지에 이르기 위해선 불교 수행의 실천적인 면뿐만 아니라 불교철학을 이해하려는 태도 역시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렇지만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철학적 개념들은 현대인들이 쉽게 받아들이기에 난해한 구석이 있다. 불교가 어렵다고 느끼는 이는 초심자뿐만이 아니다. 불교의 열렬한 신도들에게도, 철학 좀 한다고 자부하는 이들에게도 불교철학에 관한 해결되지 않은 질문은 따르게 마련이다. 단박에 이해되지 않거나, 이해한 줄 알았는데 꼭 다시 돌이켜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은 ‘난관’에 맞닥뜨리는 순간이 도래하고 만다. 더욱이 매번 그렇게 부딪히는 것들이 들 회자되는 불교의 핵심 교리라니 때로는 힘이 빠지기도 한다.
‘무아’, ‘윤회(輪廻)’, ‘연기(緣起)’ 등의 기본 교리부터 불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경지인 ‘깨달음’, ‘열반(涅槃)’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사실 이 명제들의 사전적 의미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런데 이들 교리를 종합적으로 바라보고 파고들수록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은 왜일까? 아마 우리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지난 몇 십 년간 견지해 온 어떤 ‘굳건한 관념’과 부딪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불교철학 강의의 학생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동안 개개인에게 있어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것들, 예를 들어 ‘나’라고 부를 수 있는 불변의 존재(영혼)가 있다는 믿음, 모든 현상에는 꼭 알려진 시작점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우리의 삶은 정해진 운명대로 흐른다는 관념 같은 것은 붓다의 철학과 충돌하게 마련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그러한 의문들이 강의를 거듭할수록 촘촘하게 제기되는 미국 대학생들의 질문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사실 홍창성 교수가 한국불교계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필자가 불교인터넷신문 ‘미디어붓다’에서 일하던 시절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2016년 당시 필자는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스님과 안국선원장 수불스님 사이에서 촉발된 이른바 ‘깨달음 논쟁’을 ‘미디어붓다’의 지면을 통해 전개한 바 있다. 그러나 논쟁은 소위 동국대 교수로 대표되는 이른바 기성강단의 불교학자들의 철저한 외면 속에-솔직히 그들은 어떤 것에도 얼굴을 내밀지 않는(못한)다.- 조금씩 열기가 바라고 있었다. 이럴 때 이화여대 한자경 교수와 미네소타주립대 홍창성 교수의 논쟁 동참은 ‘깨달음 논쟁’에 기름을 끼얹는 후폭풍을 불렀다. 특히 홍교수의 적극적인 논쟁 동참은 이른바 종단권력 쟁탈이나 수입 좋은 사찰을 차지하는 다툼에 지쳐 있던 불자들에게 격조 높은 논쟁의 장을 마련해줌으로써 불교라는 종교가 얼마나 위대한 사상과 심원한 철학적 깊이를 가진 가르침인지를 알리고, 불자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나의 의도를 성공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후 동국대 불교대학 교수를 제외한 많은 관련 학자들이 깨달음 논쟁에 동참했고, 깨달음 논쟁은 그 해 최대의 이슈가 되었다.
 
홍창성 교수와 필자의 첫 만남은 홍 교수가 20여년 만에 <깨달음의 역사>의 저자인 현응스님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한하던 시기에 이루어졌다. 당시 필자는 ‘미붓아카데미’를 설립해서 강남의 한 식당을 빌려 ‘21세기 불교를 철학하다’라는 23개 강좌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미국에서 이 기획을 눈 여겨 보았던 홍 교수가 방한한 김에 이 강좌시리즈의 책임자를 만나고 싶어 했던 것이다. 필자가 현응스님의 전화를 받고 조계종 교육원장실에서 홍 교수와 처음 만났을 때, 홍 교수는 “‘21세기 불교를 철학하다’ 강좌가 서울의 강남에서 열리는 소식을 접하고 ‘불교판 한류’를 연상했다”고 말했다. ‘한국불교에 아직 저력이 남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는 덧붙임과 함께. 그의 말은 온갖 재정적 어려움을 감수하고 강좌를 진행하며 지치고 고단했던 필자에게 큰 위안이 되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때의 인연으로 나는 홍 교수와 그의 아내 유선경 교수를 불교철학 강좌 시리즈에 이어진 ‘불교 안의 과학, 과학 안의 불교’ 강좌 시리즈에 강사로 초빙하는 것까지 이어졌다. 어쩌면 이 책이 세상에 나온 것에 그때의 인연도 어떤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뿌듯하기도 하다. 
 
아무튼 저자 홍창성 교수는 이 책의 각 강의에서 학생들이 제기한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질문을 적극적으로 인용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첨예한 토론과 논증을 비롯해 불교계에서도 아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철학적 난제에 대한 제언 등을 덧붙여 이 철학에세이를 완성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불교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춘 독자들에게 적합한 책일지 모른다. 특히 동양철학에 관심이 있거나, 불교 공부를 해 오며 어떤 난제에 도달한 이들에게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불교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었던 미국의 대학생들이 그랬듯이 불교의 초심자라고 하더라도 끝까지 읽어지는 어떤 힘이 이 책 전반에 흐르고 있다. 드물게 만나는 무게 있는 불서 신간이다.
 
 
저자 홍창성 교수는?
 

서울대학교 철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브라운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지난 20여 년간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교(MINNESOTA STATE UNIVERSITY MOORHEAD)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형이상학과 심리철학, 불교철학 분야의 연구를 지속해 오고 있다. 저자는 지난 2015년에 시작되어 국내 불교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깨달음 논쟁’ 당시 누구보다 많은 분량(8편)의 글을 기고하며 논쟁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이후 월간 <불광>, <불교문화>를 비롯한 매체에 불교철학 관련 글을 연재하였으며, SNS에서 ‘YUMAA HILL’이라는 필명으로 국내 독자들과도 소통하고 있다.
현응 스님의 저서 <깨달음과 역사>(불광출판사)를 부인이자 동료 교수인 유선경 교수와 공동으로 영역하였고, 함께 저술한 <생명현상과 불교>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현재 BUDDHISM FOR THINKERS(사유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를 집필 중이기도 한 저자는 마음과 물질세계의 관계를 주제로 한 전공 분야 논문을 영어와 한글로 발표해 오고 있으며, 불교의 연기緣起의 개념으로 동서양 형이상학을 재구성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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