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침상에서 뒤척이지 않고 곧바로 일어나 정진하러 나갈 채비를 했다. 양치를 하고, 고양이 세수를 한 후 옷을 갈아입었다. 가사가 아닌 수행복을 입는 것이 아직 낯설다. ‘비구생활을 얼마나 했다고?’ 몸과 마음이란 게 이렇게 간사하다. 바깥 날씨는 며칠 전처럼 춥지는 않지만 서늘한 기운이 자욱하다.
3시 30분쯤 법당에 도착했다. 벌써 깊은 고요에 든 수행자들이 꽤 있다. 새벽 수행이 비교적 집중도 잘되고, 혼침도 덜한 편이라 조금 더 긴 시간 동안 수행을 하려는 까닭일 것이다. 엊그제부터 찾아온 등의 통증은 심하지 않았으나 왼쪽 무릎이 저려온다. 어지간한 통증은 무시하고 의식적으로 호흡에 집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망상이 찾아온다. 망상을 알아차렸지만, 망상이 물러간 자리에 흐릿한 정신상태가 이어진다. 또렷하고 성성해야 하거늘 나사가 하나 쯤 풀린 듯하다. 정신을 바짝 차려보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마음이 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긴 모든 번뇌와 고통이, 그리하여 윤회가 지속되는 까닭이 다 오온(五蘊)이 나인 줄 착각하는 우매함 때문이 아니겠는가.
한 시간 동안 제대로의 집중을 하지 못한 채 망상과 흐리멍덩함을 분주하게 오갔던 나의 마음을 훤하게 읽으셨는지, 예불 후 시작된 에인다까 사야도의 새벽 법문의 주제는 ‘도와 과, 열반을 이루기 위한 5가지 단계’이다. 
 

 

 

 

 

 

 

 

사야도의 아침 법문이 있는 날의 아침공양은 다소 늦게 시작된다. 그래도 수행처에서는 사야도의 뜻이 최우선이므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군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아침 일정이 조금 바쁘게 돌아갈 뿐이다. 그리고 음력으로 보름날이기도 한 오늘 오후 2시에도 사야도의 법문이 설해진다. 미얀마의 절에서는 보통 초하루와 보름날에 법회가 있다. 이날 저녁 스님들은 시마홀에 모여서 자자와 포살을 한다. 이날 법회에 동참하는 재가자는 약간의 다나, 즉 보시를 하는 것이 이곳의 관례이다. 선배 수행자들에게 물으니 미얀마 돈으로 1,000짯 정도면 적당하단다. 오전 8~9시 앉음수행 시간이 끝나고 오후 2시 법회를 위해 모든 수행자들은 자신의 좌복과 모기망을 법당 한 켠으로 옮겼다.
오늘 아침공양부터는 공양석을 재가 수행자의 자리로 옮겼다. 재가자의 공양석으로 자리를 옮기니, 확실히 신분이 2단계 ‘급락’했다는 것을 실감한다. 한국인 수행자들은 ‘농반진반’으로 ‘추락하는 것은 본디 날개가 없다’며 조크를 던진다.
드디어 오후 2시 법회가 시작되었다. 사야도의 법문은 통역을 해야 하므로 보통 한 시간 반 정도가 소요된다. 통역을 감안한다 해도 열정적으로 법문을 해주시는 사야도에게서 아직 도과를 이루지 못한 수행자들에 대한 지극한 연민심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 보름 법문의 주제는 ‘마음을 사띠하여 깨달음을 성취한다.’이다. ‘우주 31세계의 모든 존재들이 위험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평화롭기를!’이라는 축원으로 시작되는 사야도의 법문 요지는 이렇다.

 

 

 

 

 

 

에인다까 사야도의 법문은 두 시간 넘게 진행됐다. 가만히 앉아서 경청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리 저리 몸이 비틀리고 쑤셨다. 그러나 오직 두 사람, 법문을 하는 사야도와 통역을 하는 혜송스님은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수행자들을 잘 지도하고 수행에 진전이 이루어지도록 배려하는 대 자비심이 아니라면 저런 초인적인 원력은 일으키기 어려울 것이리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