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ㆍ기고 > 법타 스님이 들려주는 금강산 전설

백운대와 금강약수

미디어붓다 | mediabuddha@hanmail.net | 2019-06-25 (화) 16:33


백운대
 
 
만회암터에서 왼쪽 연화대로 가지 말고 오른쪽으로 갈라진 길을 따라 오르면 어린이 같은 기묘한 남순동자 바위가 있다.
작은 고개를 넘고 등마루에 올라서면 앞뒤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다. 여기서 길은 왼쪽으로 꺾어지면서 중향성 쪽에서 칼날처럼 얇고 길다랗게 뻗어내린 등 말기로 겨우 한 두 사람이 지날 정도로 나 있다. 길 양옆은 까마득한 절벽이여서 자칫하면 낭떨러지에 굴러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길이다.
 
마치 줄을 타듯 아슬아슬한 길을 따라 가면 얼마 안가서 그 길마저 뚝 끊어져서 까마득한 절벽을 이루며 불끈 솟은 데가 나타난다. 여기가 아침에는 흰 구름이 흩어지고 저녁에는 휜 구름이 모여든다는 높이가 969m나 되는 전망대인 백운대이다. 예로부터 널리 알려진 유명한 백운대에는 휜 구름에 머리가 붉은 흰 학이 어울려 논다는 그럴듯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백운대의 맨 끝에 다가서서 발걸음을 멈추자마자 지금까지 발밑을 주의하느라고 보지 못한 아름다운 경치가 바닷물이 밀려들 듯 한꺼번에 안겨오면서 부지중 환성을 울리고 눈을 번쩍 뜨게 된다.
 

기암절벽 법기봉에 자리한 보덕굴이 위용을 뽐내고 있다. 한 스님이 지붕위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백운대에서는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뛰면 닿을 것 만 같이 앞을 막은 혈망봉과 그 옆으로 연 달린 법기봉이 보이고 발부리 밑으로는 만폭동과 지금까지 보면서 온 것의 모든 것이 한 폭의 그림처럼 생동하게 보인다. 멀리로는 망군대 꼭대기가 혈망봉 뒤로 삐죽이 바라보인다. 법기봉 말기의 법기암은 마치 손을 들어 일장 연설을 하는 사람 같은데 그 아래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연설을 듣고 있는 듯한 상제바위의 모습도 신통하다.
 

망군대
 
 
뒤로 돌아서 중향성을 바라보면 희한하고 수려하기 비길 데 없는 일대 장관이 눈앞을 콱 막는데 그만 “야!”하고 소리를 칠 지경이다. 특히 백운대에 가을단풍이 물들 때면 푸른 하늘에 흰빛을 드러내는 중향성과 아롱진 산골짜기들을 굽어보는 전망은 참으로 현란하기 그지없다.
 

금강약수
 
 
백운대에서 길을 되돌아 불지동“옛날에는 옥녀동”계곡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에 약수가 솟는 샘이 있다. 이것이 옛날부터 이름난 금강약수이다. 그 옆에 “옥녀동금강수”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금강약수는 얼음같이 차고 단맛이 나면서도 향기롭다고 하여 “감로수”라고도 한다. 백운대 올랐다가 이 약수를 마셔보지 않고 서는 떠날 수 없고 한번 마셔보고는 다시 마시게 되는 금강산에서도 제일 좋은 약수로 일러오고 있다.
 

일제 강점기 그림엽서 금강산 내금강 백운대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옛날 금강마을에서 살던 백운학이라는 사람이 속병을 고치기 위해 약수를 찾아 만폭동에 이르렀을 때 한쪽 날개 죽지가 부러진 백학이 백운대쪽으로 날아가더니 얼마 후 날개 죽지를 고쳐가지고 백운대를 한 바퀴 도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에 백운학은 백운대 밑으로 가서 맑은 샘물을 발견하고 그 물을 마셨더니 속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 후부터 백운대의 샘물을 “금강약수”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금강약수는 온갖 병 치료에 특효가 있는 유명한 약수로 신비화되어 국내외에 널리 알려졌으며 수많은 전설이 깃들게 되었다. 조선시대 금강약수와 관련해서는 이 약수를 먹은 마부가 사신을 따라 중국에 갔을 때 그 나라 영접사가 마부에게 먼저 인사하였다는 전설, 피부병 치료를 위해 금강산에 행차하였던 세조가 금강 약수를 먹어도 효험이 없었다는 전설, 매국 역적 이완용이 기생을 데리고 백운대 밑으로 찾아갔을 때에는 금강약수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는 이야기 등 많은 전설과 이야기들이전해오고 있다.(계속)
 

만수대창작사 1급화가 민명옥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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