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말하는 생명은 사람뿐이 아닙니다. 일체중생입니다. 서양의 종교와 동양의 종교가 크게 다른 점은 이것입니다. 서양은 인간 중심입니다. 모든 생물은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진 종속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양의 사상은 생명은 다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위해서 모든 생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많은 생명 가운데 하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기준이 아니라 생명이 기준입니다. 이것은 수평적인 자비이고, 서양은 인간 본위의 수직적인 사랑입니다. 서양은 인간 본위이고 동양은 생명 본위입니다. 오만한 인간들이 저지른 일들의 결과가 오늘날과 같은 혼란을 초래한 것입니다.

 

 우리가 산목숨을 해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살기’가 생깁니다. 하다못해 파리나 모기를 잡을 때에도 무심코 잡지만 살기가 동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목숨을 해치면 우리 심성 가운데 본래부터 갖춰진 자비의 씨앗, 사랑의 씨앗이 소멸되어 버립니다. 아프리카의 성자로 불리는 슈바이처 박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나는 나무에서 잎사귀 하나라도 의미 없이는 따지 않는다. 한 포기의 풀꽃도 꺾지 않는다. 벌레도 밟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여름밤 램프 밑에서 일을 할 때, 많은 날벌레들이 날개가 타서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창문을 닫고 무더운 공기를 호흡한다.”

 

 이분은 보살계를 받은 불자도 아닙니다. 생명의 원리를 알게 되면 저절로 이런 자비심이 우러납니다. 그가 종교를 가졌든 갖지 않았든, 어떤 일에 종사하든 간에, 생명의 원리를 안다면 저절로 이런 자비심에 접근하게 됩니다.

 

 

 전남대 의대를 정년퇴직한 미생물학자 정선식 박사는 나를 자주 놀라게 한다. 프랑스 유학시절에 구해온 아코디언 연주 실력도 그렇고, 하모니카를 300여 개나 가지고 있는 마니아라는 점도 그렇다. 한국인답지 않게 노래방 가기를 꺼려하는 나이기에 정 박사가 부럽다.

 

 그가 비브리오 폐혈증균을 최초로 발견한 학자라는 사실도 나를 놀라게 한다. 그런데 나를 더 놀라게 하는 것은 그가 생명의 가치를 얘기할 때는 의학자가 아니라 종교적인 겸손한 사람으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이다. 의학자들은 병균을 죽이는 항생제를 한때는 전지전능한 ‘마법의 탄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일부 균은 항생제의 강력한 공격에도 살아남았고 내성이 키워진 균의 독성은 치명적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정 박사는 프랑스에서 귀국한 이후부터 30년째 균을 죽이기보다는 균을 달래서 독성을 순화하여 공생하는 쪽으로 연구를 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 해로운 균이나 이로운 균이나 생명의 가치는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정 박사의 얘기에 의하면 현재까지 우리 입속에서 발견된 미생물은 750여 종이란다. 경이롭게도 입속의 미생물은 자기 자리에서 옆 공간을 탐하지 않고 조화롭게 산다고 한다.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작은 미생물도 상생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은 왜 그러지 못한지 불가사의하다. 정 박사의 의학적인 연구도 서양적인 태도에서 출발하여 동양적인 데로 옮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