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가장 큰 병은 자신을 기준으로 삼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미움이 싹트고, 전쟁이 일어나고, 무차별적인 환경파괴가 일어납니다. 나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원망이 생겨나고, 나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욕망의 좌절이 찾아옵니다. 나의 기준이 모든 번뇌의 원인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고통을 불러오는 원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고통을 부르는 가장 큰 원인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을 나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의 육체를 포함해 모든 것은 변화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 변화를 원치 않습니다. 모든 것은 무상합니다. 그러나 나는 영원히 살기를 원합니다.

 

 부처님이 강조한 ‘무아(無我)’란 바로 자신을 기준으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 것이 ‘바르게’ 보는 것이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나’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멈춘다면 ‘바르고 완전하게 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이 자리의 진리를 발견하는 길입니다. 그런 경험들을 하지 않습니까? 생각이 많을 때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도 바깥의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눈은 뜨고 있지만 망막에 상이 그려질 뿐 실제로는 보고 있지 않습니다. 마음이 복잡하면 눈앞의 실체를 볼 수 없습니다.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나를 놓아버리면 무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내 삶을 순간순간 ‘바르고 완전하게 보기’가 가능해져 내 삶이 단순하고 투명해질 터이다. 그런데 나를 놓아버리는 무아를 깊이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혜암스님을 뵙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스님께서 입적하기 전 마지막 인터뷰였다. 혜암스님의 말씀 중 대중에게 잘 알려진 것 중 하나는 ‘공부하다 죽어라’이다. 그때 나는 그 말씀을 내 식대로 받아들였다. 무슨 일을 하든지 지금 자기가 집중하고 있는 일에 나라는 존재가 사라질 때까지 녹아들라는 뜻으로 소화했다. 회사원이든, 공무원이든, 학생이든, 사랑을 하는 남녀이든 모두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무아를 체험할 수 있는 도리의 말씀이었다. 이는 내 나름대로의 깨달음이었다. ‘내가 사라짐’이 바로 무아의 체험이라는 자각이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무아를 체험할 수 있을 만큼 온몸을 다 바친다면 그것이 바로 수행이고 행복이 아닐까 싶었다. 지금 하는 일이 자기를 위하고 남을 위하는 일이라면 복덕까지 쌓는 일이니 얼마나 더없는 행복이고 정진인가!

 

 혜암스님의 말씀 중에 또 하나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 스님은 남의 것(지식)을 외워 말하지 말고, 내 것(지혜)을 내놓고 말하라고 강조하셨다. 스님은 다른 스님들처럼 옛 고승의 선어록을 즐겨 꺼내지 않으셨다. 옛 고승의 법어를 당신의 것인 양 내세우지 않고 당신의 것만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스님의 매력은 ‘단순과 천진’이었다. 북한에 대한 원조를 두고 우리 국민 간에 갈등이 심하다고 하면서 해법을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도와야 합니다. 가난한 북한을 돕는 일은 복 짓는 일입니다. 복 지을 기회를 준 북한에게 오히려 우리가 고마워해야 합니다.”

 

 종교인이면서도 갈등과 대결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혜암스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