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로 예정된 미얀마 수행일정의 절반이 지났다. 오늘부터는 귀국할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는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아직 수행에 별 진전이 없는데 벌써 내리막으로 접어들다니, 조급함이 밀려온다. 새벽수행을 위해 평소보다 조금 먼저 꾸띠를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평소 같았으면 3시 30분 알람을 듣고도 일어나지 않고 15분 정도 침상에서 뒤척거리곤 했는데, 오늘은 곧바로 일어섰다.

“새벽에 눈이 떠지면 두 가지 마음이 생깁니다. 일어나려는 마음, 그리고 더 눕고 싶다는 마음이지요. 그럴 땐 그런 마음을 알아차리세요. 그리고 가능한 일어나는 마음을 강화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하루의 사띠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날 때부터 사띠하라.’는 혜송스님의 신신당부를 이제껏 잘 지키지 못했는데, 오늘은 이를 지켰다. 이제부터는 수행할 시간이 급하게 줄어들 것이라는 조바심이 ‘까칠지존’ 혜송스님보다 더 무섭게 다가왔나 보다. ‘까칠지존’은 내가 지은 혜송스님 별칭이다. 그런데 이 큰 수행센터를 원만하게 운영하려면 저런 정도의 단호함과 날카로움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오늘 새벽 정진은 편안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어떤 목표를 두지 않고 일상의 마음을 그대로 유지한 채 좌복 위에 앉았다. 바로 일어남 사라짐을 관찰했다. 몇 분이 지나니 여지없이 망상이 찾아온다. 망상을 알아차리며 다시 주 관찰 대상으로 돌아갔지만 망상은 화수분처럼 또 다시 일어난다. 가만히 살펴보니 망상은 일어남 사라짐 가운데, 주로 사라짐이 끝나는 순간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 같다. 그래서 일어남, 사라짐 다음에 ‘앉음, 닿음’이라는 일종의 터칭 포인트를 관찰대상으로 추가 도입하는 테크닉이 있는데, 몇 번 해보니 더 번잡해지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망상의 끝은 없는 걸까? 망상이 얼마나, 언제까지 일어나고 이어지는지 흥미롭게 관찰해 보면 어떨까? 이 역시 위험한 망상에 지나지 않겠지만 한번쯤은 지켜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여지없이 망상이 밀려온다. 맨 처음 떠오른 망상은 내가 어느 곳에 가서 불교의 핵심 수행체계를 주제로 강의를 하는 장면이다. 얼마나 열강을 하고 있는지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가는 듯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제 아침 들었던 사야도의 법문 내용이 떠오른다. 수행은 혼자서 하는 것이라는 것,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순간 사띠는 놓치는 것이라는 경고, 사람으로 태어나 사띠파타나 위빠사나 수행법을 만났을 때 반드시 도와 과를 성취해야 한다는 당부 등이 차례로 떠올랐다. 이것 역시 망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마음을 호흡으로 돌리지 않고 그대로 지켜보았다. 선원에 온 뒤의 주요 관심사가 사띠를 온전하게 챙기는 것과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 부처님의 바른 수행법을 어떻게 펼쳐야 할까 등이었으므로, 자연 이런 망상이 떠오른 것이리라.

망상의 내용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수행을 할 때 떠오르는 장면이나 생각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모두 망상에 불과하다. 건전한 망상이란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 올바른 수행자라면 망상을 알아차리는 즉시 주 관찰대상인 호흡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백 번 천 번 맞다. 그 후로도 떠오르는 몇 가지 망상을 그대로 지켜본 뒤, 점차 쓸 데 없는 망상이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마음을 호흡으로 돌렸다. 파동이 느껴진다거나 특별한 장면이 떠오르는 일 없이 평온하게 한 시간 정진이 끝났다. 나도 모르게 깜빡 조는 혼침도 거의 사라졌다. 며칠 동안 몸을 괴롭힌 위통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싸우는 과정에서 위리야, 즉 정진력에도 약간의 진전이 이루어진 느낌이다. 아무튼 개운한 오늘의 첫 정진이었다.

그러나 망상의 실체를 들여다본다며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망상을 의도적으로 방치한 것은 결코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이 내용을 인터뷰에 보고하면 보나마나 사야도께 혼쭐이 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한국으로 먼저 돌아간 담마다사 이병욱 도반이 에인다까 사야도와 첫 인터뷰를 했을 때 ‘앉음수행을 하다보면 자꾸 경전 구절이 떠오른다.’고 보고했더니 사야도께서 ‘그런 생각을 즉시 버리고 호흡으로 돌아오라’고 경책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부처님의 설법 내용인 경전구절까지도 사띠를 챙길 때 떠오르면 버리라는 가르침이니, 내게 아무리 좋은 내용이 떠올랐다고 한 들 대수겠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아신 자띨라 사야도의 명저 <담마 디스커스>에서 읽은 ‘뿓티라 선례’가 떠올랐다. ‘뿓티라 선례’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6개의 감각기관(六根) 가운데 마음의 문(門)만 열어놓고 나머지 5근으로 들어오는 모든 현상을 알아차림 하는 현상을 말한다. ‘뿓티라 선례’에 관한 이야기를 간추려 옮겨보면 이렇다.

부처님 재세 시에 경전을 가르치는 유명한 스승인 ‘뿓티라’라는 이름의 매우 유식한 주지스님이 있었다. 그는 당시 18개의 다른 종파에서 온 500명의 승단을 가르쳤고, 그의 제자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았다. 어느 날 그는 존경을 표하기 위해 부처님께 갔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에히 뜻차 뿓티라(이리 와라. 쓸모없는 뿓티라)’, ‘완다 뜻차 뿓티라(절해 쓸모없는 붇티라)’, ‘아히 뜻차 뿓티라(가거라. 쓸모없는 뿓티라)’라고 말하면서 맞이했다.
뿓티라 대장로는 자기는 18개 종파의 상가에게 불경을 성공적으로 가르치고 있는데도 전지(全知)한 부처님께서 왜 자기를 쓸모없다고 불렀는지 깊이 반추해보았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빠리앗띠(교학)에만 종사했지 실제적인 빠띠빳띠(수행)를 완전히 소홀히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결점을 고치기로 마음먹고 모든 강의를 그만두었다. 그는 수행을 통해 아라한의 경지를 얻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세우고는 비구의 관습에 따라 가사 세 벌과 발우 한 개를 챙겨서 수행을 할 수 있는 수행처를 향해 떠났다.
뿓티라 대장로가 찾아간 수행처는 당시에 매우 유명한 곳이었다. 이 수행처의 스승은 물론 모든 비구들, 사미까지도 이미 아라한과를 이룬 곳이었다. 뿓티라 장로는 먼저 이 수행처의 최고 스승을 찾아가 수행지도를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온 나라에 많은 제자가 있는 유명하고 유식한 스님을 감히 자신의 제자로 삼아 가르칠 수 없다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물론 이것은 수행을 방해할 수 있는 학식 있고 유명한 주지라는 자만심을 제거하려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뿓티라 대장로는 두 번째, 세 번째 장로를 차례로 찾아갔으나 모두 똑같은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렇게 선원의 모든 비구들에게 차례로 거절을 당하자 뿓티라 장로는 마지막으로 매우 젊지만 아라한을 획득한 사미에게로 갔다. 그는 사미에게 존경을 표시했고 제자로 받아줄 것을 간청했지만 사미 역시 같은 이유로 거절했다. 그러나 더는 갈 곳이 없게 된 뿓티라 장로는 사미를 붙들고 거듭 지도를 요청했다. 그러자 젊은 사미는 그에게 연못 하나를 보여주고는 안으로 들어가라고 요구했다. 뿓티라 대장로는 곧바로 공손하게 사미의 명령을 따라서 연못의 중앙을 향해 들어갔다. 가사가 젖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나아갔다.
유식하고 유명한 주지가 어느덧 매우 복종적이게 된 것을 확인한 사미는 연못으로부터 그를 다시 불러서 제자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한 뒤, 대장로에게 6근(六根)으로 들어오는 모든 현상을 알아차림 하는 것의 중요성을 확신시키기 위해서, 그에게 6개의 구멍이 있는 흙무더기에 사는 이구아나가 있다면 어떻게 잡을 것인지를 물었다. 뿓티라 대장로는 한 구멍만 열린 채 놔두고, 나머지 5개의 구멍을 모두 막은 뒤 이구아나가 남은 한 구멍으로 나올 때 잡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미는 몸의 5가지 육체적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모든 현상을 마음으로 알아차림 해야 한다고 상세히 설명했다. 뿔티라 대장로는 사미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6개의 감각기관 가운데 마음의 문만을 열어놓고, 나머지 5근으로 들어오는 모든 현상을 알아차림 했다. 이런 정확한 수행으로 그는 적당한 시간 안에 아라한과의 소중한 목표를 획득할 수 있었다.  
 
아침 죽 공양을 미량으로 마치고 한국 도반들과 함께 수행센터 경내를 산책했다. 소화도 시키고 신선한 아침공기도 마시기 위해서다. 이번에 비구계를 받은 5명 가운데 내가 4번째로 계를 받았으므로 위로 사형이 셋, 아래로 사제가 하나인 셈이다. 그렇게 따져서 둘째 사형이 되는 신야나 비구(지후 사형)과 함께 걸으며, 오늘 새벽 정진의 체험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신야나 사형은 겨우 혼침을 극복했는가 싶었는데 오늘 새벽 또 다시 두어 차례 깜빡 혼침에 휘둘렸다고 털어놨다. 나는 앞서 언급한대로 망상이 찾아왔는데, 얼마나 번지는지 그냥 지켜보았노라고 말해 주었다. 서로의 수행 경험을 교환하면서 도움을 주고받는 좋은 산책이었다.

나는 신야나 사형에게 일어남, 사라짐 다음에 ‘앉음, 닿음’을 추가해 혼침과 망상이 들어올 틈을 미리 방지하는 방법을 한 번 시도해 보라고 조언했다. 또한 신야나 사형은 내게, 15년 수행경력을 가진, 대구에서 사업을 하는 신 거사님에게 전해들은 노하우라며 일어남 사라짐을 관찰할 때, 일어남과 사라짐의 사이, 사라짐과 일어남의 사이, 즉 들숨과 날숨이 교차하는 순간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면 망상이 찾아드는 것을 막고 사띠를 이어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일어남 사라짐 이후에 길게 이어지는 여운에 ‘앉음, 닿음’을 추가하는 것이나, 바로 여운 시간을 의도적으로 집중해 관찰하는 것은 일맥상통하는 호흡법으로 보인다. 

발바닥 부상으로 탁발을 나가지 않으니 8시부터 한 시간 동안 진행되는 앉음수행 시간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래서 8시 정진 시간에 아침 산책에서 신야나 사형님으로부터 얻는 팁, 즉 일어남과 사라짐의 사이(틈)를 집중적으로 관찰해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호흡이 단절되는 듯한 느낌이 일어나 오히려 사띠에 방해가 되는가 싶더니, 차츰 자연스럽게 호흡이 돌아왔다. 확실히 망상을 미리 방어하는 데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다만 내게 이 방법과 기존의 방법인 ‘일어남 사라짐 앉음 닿음’으로 관찰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더 효과적인지는 앞으로 번갈아 가며 테스트를 해볼 작정이다. 

담마마마까의 아침. 새벽 앉음수행을 마치고 법당 밖으로 나오면 맑고 밝은 태양이 떠오른다. 어둠을 밝히는 태양처럼 무명을 벗어나는 명지를 이루어야 할 텐데, 그 길이 참으로 멀다.  

오늘 오후 2시 한국관에서의 녹음법문의 주제는 에인다까 사야도의 ‘메타 까로니’인데 ‘자비경’을 주제로 한 설법이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500여 스님에게 내린 메타 법문의 요지는 이렇다.

에인다까 사야도는 “이때 부처님께서 500명의 제자들을 위해 설한 <자비경>은 이처럼 장애를 없애고 큰 공덕을 가져다 주는 경”이라며 “담마마마까 선원에서 수행 중인 모든 수행자들도 수행에 장애가 생기면 메따(자비) 수행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고 사띠파타나 위빠사나 수행을 잘 해서 목적을 이루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동안 먹는 것이 부실했으니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다. 몸이 부실하니 의욕이 떨어지고, 정진력도 약해지는 것 같다. 혹시 선물을 사용할 곳이 있을지 몰라 여분으로 남겨두었던 홍삼정 한 박스를 내가 먹기로 하고 포장을 뜯었다. 우선 기력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앉음수행은 오후 6~7시 한 타임만 하기로 하고, 나머지 시간은 가사 세탁과 걸음수행으로 대체했다. 그리고는 평소보다 2시간 빠른 오후 8시부터 취침에 들었다. 몸과 마음의 힘을 회복하기 위해 충분한 자둬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