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법정 스님이 해마다 빼놓지 않고 찾았던 여행지는 단 두 군데였다. 하나는 섬진강 백운산 자락의 매화농장이었고, 또 하나는 강진의 다산초당이었다. 다산초당을 다녀오셔서 불일암을 찾아온 방문객들에게 덕담 삼아 하신 말씀이다.

 

 “빠삐용은 영화 속에서 인생을 낭비한 죄로 절해고도에 갇히는 벌을 받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살 줄 아는 사람은 어떤 참혹한 상황 아래서도 자신만의 꽃을 피울 수 있어요. 반면에 살 줄 모르는 사람은 어떤 좋은 조건에게도 인생을 낭비하고 말지. 저기 빠삐용 의자가 있는데 빠삐용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느끼는 바가 있어서 굴참나무로 만들었어요. 자, 다산은 어떻게 살았지요? 18년 유배생활에서 260여 권의 저서를 남겼어요. 다산은 가장 참혹한 시기를 자신의 황금시대로 만들었지요. 다산에게 유배생활이 없었다면 오늘의 다산이 있을까 싶지요.”

 

 그해도 다산초당을 다녀오신 뒤 월간 <샘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하신 적이 있다.
 ‘살 줄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 아래서도 자신의 인생을 꽃피울 수 있다. 그러나 살 줄을 모르면 아무리 좋은 여건에서도 죽을 쑤고 마는 것이 인생의 과정이다.(중략)
 그는 18년 유배생활에서 26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의 재능과 출세를 시기하여 무고한 죄를 씌워 유배를 보낸 그때의 지배계층은 오늘날 그 존재마저 사라져버렸다. 귀양살이에서도 꿋꿋하게 살았던 다산은 오늘까지 숨을 쉬면서 후손들 앞에 당당하게 서 있다. 참과 거짓은 이렇듯 세월이 금을 긋는다.’

 

 스님은 당신이 다산초당에서 보고자 했던 것은 1950년대에 복원한 초당 건물과 연못이 아니라 ‘다산의 정신’이라고 말씀하셨다. 스님은 추사보다 다산을 더 자주 이야기하셨다. 물론 추사 유배지를 가셔서 수선화 뿌리를 가져와 불일암 뜰에 심을 정도로 추사의 예술세계에 관심이 많았지만 “다산은 현실의 고난을 놔버리고 자신의 유배지마저도 사랑하면서 살았지만 추사는 꼬장꼬장한 성격 탓인지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고 평했던 것이다. 

 

 

 나는 스님의 일대기 <소설 무소유>를 집필했고, 다산의 유배생활을 그린 <소설 정약용>을 발표한 적이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법정 스님의 정신과 다산 정약용의 정신은 흡사한 데가 많다.
 스님 역시 다산의 18년만큼이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던가. 중학교 때 학비가 없어 울면서 고향 우수영으로 내려가 배표 파는 일을 거들기도 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밤이 되면 인쇄소에 나가 아르바이트를 했고, 대학시절에는 6.25전쟁의 극단적인 폭력을 목도하면서 출가라는 제3의 길을 걸었음이다.

 

 그러나 스님은 불행했던 시절의 에너지를 출가한 뒤 수행정진의 에너지로 바꾸어 스님만의 인생 꽃을 피웠으니 다산의 인생과 흡사한 것이다. 스님께서 다산초당을 자주 찾은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다산이라는 거울에 스님 자신을 비춰 보고자 그러셨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스님은 ‘참과 거짓은 세월이 금을 긋는다.’라고 말씀을 남기셨을 터이다. 다산의 정신과 스님의 정신이란 주제를 가지고 누군가가 한 번 깊이 연구해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