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처의 일상은 휴일과 별 관계가 없지만, 일요일인 오늘은 조금은 긴장을 풀 수 있을 것 같다. 담마마마까를 이끄는 두 어른, 에인다까 사야도와 혜송스님이 공무 차 출타를 했기 때문이다. 두 분이 수행센터에 계실 땐 아무래도 더 긴장을 하고 움직이는데도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평상시에는 수행시간에 5만 평 가까이 되는 경내를 거니는 것에 살짝 눈치도 보였었는데, 오늘은 마음 놓고 두 차례나 산책을 했다.

 

 

 

그런데 산책이라고 해서 수행이 아닌 것은 아니다. 걸음걸음마다 사띠를 놓치지 않는, 걸음수행의 마음자세로 걷는 것이니 나름 집중의 힘을 키우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다만 걸음수행을 할 때는 시선을 3~5미터 정도에 두고 걸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경내를 거닐다 보면 말처럼 사띠를 챙기는 일이 쉽지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걷다가 보면 습관적으로 멀리 풍광을 내다보기도 하고, 야자나무와 대나무들에 시선이 따라가기도 하며, 부지불식간 꾸띠 앞에 핀 이름 모를 꽃들을 감상하는 경우도 빈발하니, 걸음수행을 하며 사띠를 온전히 챙기기가 쉽지 않다.

 

걸음수행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사실 걸음수행을 통해 8정도를 알아차리라는 것이 사야도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간결하게 정리한다면, 걸음수행에서 왼발(또는 오른발)을 뗄 때 왼발을 떼고 있는 순간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정견(正見)이고, 걷는 행위를 알아차림 하는 마음이 정사(正思)이며, 걷는 행위를 위한 노력이 정정진(正精進)이고, 이 모든 행위에 대한 알아차림(사띠)이 정념(正念)이며, 발을 떼며 알아차림 하는 마음이 계속적으로 깨어 있는 것은 정정(正定)에 해당한다. 이 다섯 가지의 바른 길이 도과를 얻기 전의 번뇌를 없애는 길에 해당된다. 여기에 수행자가 8계를 받아 지니면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을 이미 준수하고 있는 것이니, 걸음수행을 통해 8정도가 완성되는 것이다.  

 

오늘 새벽 앉음수행 정진에서는 위통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덕에 비교적 집중을 잘 할 수가 있었다. 두어 차례 망상이 일기는 했지만 곧 알아차리고 호흡으로 돌아가는 정사유를 제대로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그래도 약간의 통증이 남아 있어 여전히 음식섭취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평온을 유지하면서 사띠를 하고 있는데, 오늘 따라 바로 뒷줄에 앉은 미얀마인 남성 재가수행자가 기침을 연신 해댄다. 큰 일교차로 인해 기침감기에 제대로 걸려든 모양이다. 나도 처음 선원에 왔을 때 기침으로 고생을 했고, 그로인해 다른 수행자들에게 피해를 준 전과(?)가 있으니 불평을 제기할 형편은 못된다. 그렇더라도 기침 소리가 너무 잦아서 집중을 하는 데는 몹시 방해가 된다. 어지간하면 조용히 밖으로 나아가 걸음수행을 해주었으면 좋으련만, 이 양반 끝까지 앉아 정진을 고수하고 있다. 수행에 대한 강력한 의지만큼은 높이 살 일이다.
게다가 새벽부터 마을에서 확성기로 틀어대는 노래 소리가 오늘 따라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들림, 들림…’ 하며 아무리 알아차려도 집중에 어려움이 있다. 역시 수행처는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 제격이지만, 매일 인근마을로 탁발을 나가야 하는 미얀마의 사원 입장에서는 마을과 너무 떨어져 있어도 문제가 될 것이니, 어떤 여건에서든 사띠를 놓치지 않을 만큼 정진력을 기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한 시간 동안의 정진을 마친 뒤 잠시 쉬다가 새벽 죽 공양을 위해 꾸띠를 나섰다. 아직도 새벽 5시 30분이니 해 뜨기 전이어서 플래시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어둡다. 새벽 3시 30분부터 시작되는 선원의 하루는 그래서 더 길게 느껴진다.
체증으로 한동안 고생을 한 끝이라 뭐든 먹는 게 두렵다. 새벽 죽 공양에 빠지고 싶었지만 밥상자리가 비는 것으로 인원체크가 되는 것이니, 부득이 참석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따라 죽 공양의 상차림이 허술하다. 죽조차 먹기가 버거워 바나나와 반숙계란 정도를 먹는 것으로 공양을 마쳤다. 소화제를 먹기 위해서라도 위에 무언가는 조금이라도 채워야 할 것 같아서다.
이곳에 온 뒤로 평소 식사량의 절반 정도만 먹고 있는데, 그나마 제대로 먹지 못하니 체중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혈압이 있는 한 도반은 고혈압 약을 반으로 줄였는데도 정상수치가 나온다며 즐거워하고, 당뇨가 있는 수행자들도 저마다 혈당이 떨어졌다고 뿌듯해하는 눈치다. 그러고 보니 만병의 근원은 지나치게 잘, 많이 먹는데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새벽 죽 공양을 마친 후, 8시에는 탁발을 나가야 하는데, 오늘까지는 일단 쉬기로 했다. 발바닥의 상처가 아직 완전하게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위해서라도 따라가 볼까, 하다가 다음으로 미뤘다. 대신 한국 비구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가사를 입혀주는 등 많은 것을 도와주고 있는 미얀마 비구 난다완다 스님에게 감사의 표시로 미얀마 화폐 2만 짯을 모아 전달했다. 2만 짯이면 미얀마에서는 작은 돈이 아니니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으로는 적당한 액수인 것 같다. 우리 일행을 공항으로 마중 나올 때부터 안면이 익었던 난다완다 스님은 늘 만면에 미소를 짓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상쾌해지는 그런 비구다.

 

아무려나. 오늘은 최대한 경내를 천천히 거닐며 걸음수행에 집중하기로 했다. 마음을 발바닥에 두고 오른발 왼발이 교차로 표면과 닿는 느낌을 알아차리면서, 이 간단한 행동 속에 놀랍게도 8정도의 가르침이 두루 포함되어 있다는 사야도의 가르침을 상기했다. 속도 풀리고, 운동도 되고, 많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앉음수행 자세만 하면 찾아오는 통증에서도 벗어날 수 있으니 일거삼득인 셈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걸음수행은 초보 수행자에게는 사띠를 유지시키기가 녹녹치 않은 수행법이다. 앉음수행에서 어느 정도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고 면밀히 현상을 따라가며 사띠를 유지하던 수행자들도, 막상 걸음수행을 하면 부지불식간 산만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걸음수행을 할 때에는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걸음수행을 하는 도중에 호기심을 일으킬만한 어떤 것을 보았을 때에는 걸음을 멈추거나 혹은 걸으면서도 그것을 봄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사띠를 놓치지 않도록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어떤 소리를 들었을 때에도 그것에 귀를 기울이거나 그것에 휘말린 채 걷는다면 사띠를 놓치게 된다. 들림, 들림 하고 곧 바로 발바닥으로 마음을 되돌려 가져가야 한다.  

 

미얀마의 1월의 날씨는 청아하기가 그지없다. 이상기온으로 인해 엊그제 때 아닌 비가 내리기는 했지만 마치 우리나라의 초여름 날씨를 연상시킨다.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고, 낮은 더운 전형적인 동남아시아의 건기 날씨를 유지하고 있다. 하늘도 맑고 공기도 청량한데다  햇볕까지 청명해 꾸띠에서 깔고 덮고 자는 이불과 요, 베개를 난간에 내다 걸었다. 여러 사람이 거쳐 갔을 것이고, 청결상태 또한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으니 일단 햇볕을 쪼이면 낫지 않을까 해서다. 마침 한 여성수행자가 이불에 붙어 있던 빈대에게 물리는 피해를 입었다는 소문이 돌아 서둘러 이불소독에 나섰다.     

 

꾸띠에 머물며 휴식을 취하노라니, 이번에 같이 계를 받은 사형 ‘신야나 비구’가 서울에서 가져온 생수 몇 병을 들고 찾아오셨다. 물이 안 좋아 몸이 아플 수도 있다며 우정 마음을 내신 것이다. 당신 드실 물도 모자랄 텐데, 이렇게 마음을 써주시니 고마울 뿐이다. 잠시 사형과 환담을 나누고 있노라니, 역시 이번에 함께 동행해 미얀마에 온 청양 약수암 주지 서융스님이 과일과 죽염을 들고 꾸띠의 문을 두드리신다. 수행처에 와서 처음에는 감기로, 중간에는 체증으로 고생을 하며 주변 도반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리는 것 같아 송구한 마음이다. 이래저래 부처님께서 맺어주신 고마운 인연들이다.   

 

2시에는 한국관에서 열리는 법회시간에 참석했다. 오늘은 에인다까 사야도의 ‘5계’를 주제로 한 녹음법문이다. 음향 상태가 좋지 않아서 대강의 내용만 들을 수밖에 없었지만, 사야도의 법문은 언제나 들어두면 수행에 큰 도움이 된다. 오늘 법문의 요지는 이렇다.

 

 

부처님께서 사왓티 기원정사에서 머무실 때 두 어린 비구에게 해주신 법문 내용을 들려준 에인다까 사야도는 이처럼 5계는 지역에서 지역민들이 지키면 그 지역이 좋아지고, 나라에서 지키면 나라가 좋아지며, 전 세계가 지키면 세계 전체가 좋아지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야도는 또 아리야, 즉 성인의 흐름에 든 분들은 모두 5계를 잘 지킨 분들이라며 오늘 법문을 듣는 대중들은 모두 5계를 잘 지켜 반드시 도와 과를 성취하라고 격려했다.

 

이런저런 일들이 겹쳐서 오후 앉음수행은 마지막 8~9시 정진에만 참석했다. 그렇다고 마음이 해태해진 것은 아니다. 최소 하루 4번은 앉음수행을 해야 하지만(물론 강제규칙은 아니다) 오늘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달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수행은 좀 더 짬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앉음수행을 하다보면 손님처럼 찾아드는 통증으로 인해 다른 망상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남 사라짐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세밀하게 관찰하는데는 여의하지 못했으니 수행에 이렇다 할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부끄러운 내용지만 미얀마 수행센터에서 한국인 수행자들을 향해 현지 수행자들이 하는 소리가 있다. 그것은 한국인들이 수행센터에서 지켜야할 예절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수행처에서는 가급적 말을 하지 않고 몰려다니지 않아야 하지만 한국인 수행자들은 이 규칙을 좀처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사실 한 꾸띠에 수행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나, 담소를 나누며 산책을 하는 것 등은 이곳 수행센터에서는 비난 받아 마땅한 행동에 해당한다.

 

수행센터에서 생활하려면 기본적으로 인내가 요구된다. 아프더라도 혼자 감내 해야 하고, 말을 하고 싶어도 가급적 침묵해야 한다. 통증이 찾아와도 혼자서 고통을 극복해 내야 수행에 진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도반이 아프더라도 돌보아 준다는 명목으로 약을 준다거나 지압을 해 준다거나 등의 관심을 보이는 것은 적절한 행동이 아닌 게 된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동안 아프다는 이유로 주변을 너무 많이 번거롭게 했다.

 

승가에는 율장이 있어서 질서가 유지되듯이, 수행센터에는 규칙이 있어서 센터가 유지될 수 있다. 그러므로 수행센터에서 수행하는 요기들이 제멋대로 개별행동을 한다면 규칙을 무시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수행센터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우리나라와 미얀마의 문화적 차이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이런 잘못된 행동을 하는 수행자들 가운데 한국인 수행자들이 유별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듯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