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ㆍ예술 > 이학종의 ‘불교명저 산책’

“바른 불교신행을 위한 지침서”

이학종 | urubella@naver.com | 2019-04-17 (수) 09:05

 
<정법천하를 기다리며> 홍사성 지음
 
집필용 컴퓨터가 놓인 내 책상 위에는 작은 책꽂이가 놓여 있다. 이 책꽂이에는 수시로 찾아 읽는 책들을 몇 권 꼽아놓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과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김담의 <숲의 인문학>, 케슬린 제이미의 <시선들>과 같은 에세이집을 비롯하여 다산의 편지를 박석무 선생이 편역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언론인 강위석 선생의 인터뷰집 <향기 나는 사람들>, 위단(干丹)의 <장자 멘토링>, 정찬주 소설가의 <법정스님의 뒷모습>, 홍사성 칼럼집 <정법 천하를 기다리며> 등이 그것이다. 이 책들은 팔만 뻗으면 언제든 빼어 볼 수 있는 위치에 꽂혀 있으므로 산골에 사는 내겐 가까운 벗과 다르지 않다.
 
이들 가운데 가장 자주 만나는 벗이 지난 2010년 출간된 <정법 천하를 기다리며>(우리출판사 펴냄)이다. 이 책은 사사롭게는 불교 언론계의 대선배이며, 시단에서도 선배인 홍사성 ‘불교평론’ 주간이 그동안 써온 칼럼들을 가려 모은 것이다. 9년 전 이 칼럼집이 출판되었을 때, 나는 홍 주간으로부터 직접 칼럼집 출판에 대한 감회를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모든 칼럼을 다 게재하지는 못했고, 주로 불교를 어떻게 신행하는 것이 바른 것인가. 포교는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하는가. 바른 믿음은 어떤 것이고, 어떤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합하는 불교인가를 천착한 내용들을 가려 뽑았지. 그래서 아마도 읽어두면 불자들의 올바른 신행에 약간의 도움은 될 거라고 믿어.”
홍 주간의 말투는 까칠한 평소의 이미지와는 달리 구수하고 완곡했지만, 불교계 대표 칼럼리스트 특유의 날카로움이 이 몇 마디 언급 속에 다 담겨 있었다.
 
칼럼집은 흔히 팔리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이 덧씌워져 있다. 사실 칼럼집이 시장에서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칼럼집은 그래서 어떤 특별한 계기에 맞춰 후배들이 헌정을 하거나 자비 출판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지만, 거개가 시장에서는 실패하는 것이 다반사다. 따라서 칼럼집을 출판사에서 필자에게 인세를 제공하면서 출간한 것은 뉴스가 된다. 출판사가 정신이 나갔거나, 아니면 관행을 깨고 시장에서도 성공할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칼럼집이 시장에서 성공할 확률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왜 나는 이 칼럼집을 불교명저로 꼽게 되었을까? 이 책은 어떤 언론인이 정년퇴임을 하거나, 환갑 등 특별한 날을 기념해 후배나 가족, 친구 등에 의해 만들어진 그렇고 그런 칼럼집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불교 언론인 홍사성의 골수를 한 곳에 모아놓은 역저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은 나에게 있어 불교에 대한 생각과 지향을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제공해주는 일종의 고전(古典)같은 것이기도 하다. 
 
“불교는 나의 사랑이자 마음이다. 희망이자 절망이다.”
홍사성 주간은 이 책의 서문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한다. 그의 말마따나 불교와 함께 눈 뜨고 불교와 함께 잠자리에 든 그의 삶이 이 책 한 권에 파노라마처럼 녹아 있다. 이 책에 실린 칼럼들 속에 불교에 대한 그의 사랑, 불교를 위하는 그의 마음, 불교가 지향해야 할 희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쇠망의 길로 치닫는 불교현실을 목도하며 절규하듯 울부짖는 그의 절망이 점철되어 있다.
불교 언론인으로 살아오면서 발표한 수많은 칼럼 중에서 97편을 엄선해 8가지 마당(場)으로 나눠 구성했다.
첫째 마당은 ‘불교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다’이다. 이 장에서는 불교에 대한 그의 인식이 담겨 있다. 거침없지만 너무나 적확한 불교에 대한 관점과 견해가 특유의 간결하고도 예리한 문장을 타고 독자의 폐부를 찌른다. ‘불교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다’라는 제목에는 역설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하고 있는 불교가 과연 석가모니 불교인가?’라는 반성을 촉구한다. 혹시 법당의 불상을 십자가로 바꾼들 별다른 차이가 없는 그런 왜곡된 불교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자는 묻는다.
‘대중화냐 세속화냐’,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한국불교 성형론’, ‘포교가 희망이다’, ‘참다운 불자의 조건’, ‘성자의 길’, ‘평화를 위한 가르침’ 등의 소제목으로 명명된 각 마당은 각각 12편씩의 칼럼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처님의 불교로 돌아가자’는 칼럼은 오늘의 불교가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음을 지적한 것이고, ‘인도불교가 남긴 교훈’은 우리 불교가 정법을 외면하고 방편이란 미명을 뒤집어쓴 비불교에 연연한다면, 소멸의 길을 걸은 인도불교의 전철을 되풀이할 것이란 경고의 글이다. ‘부처님과 동등해져야 불교다’라는 것은 부처님을 신격화하는 데 대한 경계를 밝힌 것이고, ‘도통은 없다’는 칼럼은 불교를 신비화하려는 흐름에 대한 비판이다.
수행자의 본분을 망각하고 스스로를 성직자, 즉 사제라고 일컫는 승려들의 빈한한 자기인식을 매섭게 꼬집으며, 정법은 어디로 숨었는가를 한탄한다. 현대불교가 가야할 길을 수행불교로의 전환임을 주창하며 오늘날 대세로 등장한 명상산업을 일찍이 예상하면서 동시에 불교의 사회적 책임을 ‘왜 불교에는 마더 테레사가 없는가?’ 라는 질문을 통해 촉구한다.
한국불교는 모든 걸 다 바꿔야 할 만큼 성형이 필요하다며, 예컨대 한문불교에 연연하는 현 한국불교의 현실을 질타하고, 전법의 중요성을 구구절절 강조하고 있다. 지식불교의 폐단을 날카롭게 꼬집는가 하면, 신행을 취미로 하는 풍토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나는 수시로 이 책을 찾아 읽으면서 불교와 불교현실에 대한 나의 관점과 인식을 점검하거나 비교하면서 영감을 얻곤 한다. 칼럼 한 편, 한 편을 줄을 치며 읽고 또 읽으며 언론인 홍사성의 탁견과 통찰에 놀라고 또 놀란다. 나 역시 수많은 칼럼을 써왔고, 기사를 작성했던 언론인이지만, 홍 주간은 언제까지나 저만치 앞에서 나를 이끌어주는 스승과 같은 존재로 우뚝 서 있다.
 
어떤 사건이나 현상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예리한 시각이나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칼럼을 읽으며, 나는 ‘반야란 이런 것이구나!’, 하며 무릎을 치곤 한다. 또한 이 칼럼이 초래했을 당시의 반향이야 결코 푸근할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그 논지를 30여 년이나 고집스럽게 고수해온 것은 동시대를 사는 대중들에 대한 홍 주간의 지극한 자비의 다른 표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지혜와 자비를 두 축으로 하는 불교, 초경험적이거나 신비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격했던 불교를 회복하고 진정한 불교로 돌아가자는 불교계 대표 언론인의 호소와 다르지 않은 이 칼럼집을, 그래서 나는 ‘바른 불교신행을 위한 지침서’라고 감히 명명한다. 이 책이 출간된 지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어도 그 내용이 주는 교훈과 감동은 여전하다. 그만큼 한국불교가 여전히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
불교를 제대로 신행하고자 하는 불자들에게 이 책의 필독을 권한다. 무엇이 참불자의 길인지를 알게 해주는, 이처럼 귀한 멘토를 어디서도 찾기 어려울 것이므로.
 
*저자 홍사성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불교신문 주필, 불교TV 제작국장, 불교방송 상무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마음으로 듣는 부처님 말씀>, <날마다 읽는 부처님 말씀>, <세계의 불교>, <불교입문>, <동남아불교사>, <근본불교의 이해>, <불교상식백과>, <한권으로 읽는 아함경> 등이 있다. 현재 불교평론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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