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부터 날이 한껏 흐리더니, 자정을 넘기면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꾸띠의 지붕이 양철 판이라 빗소리가 유난히 요란하다. 빗소리에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 그러나 빗소리보다는 잠이 들 때에 ‘누워서하는 수행’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미얀마 수행에 동참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물심양면 도움을 아끼지 않아주신 도이 법사님으로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알아차림을 하면 숙면을 취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았건만, 습관처럼 그것을 놓쳐버렸다. “잠이 드는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졸음이 옴, 옴, 옴…, 알아차리라”는 말씀을 또 지나치고 말았다. 

 

 

 

 

1월에 내리는 비. 생소한 만큼 신선하게 다가온다. 미얀마도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받아서 이상기온이 찾아왔는데, 건기의 중심인 1월의 비는 최근 몇 년간 없었던 일이란다. 미얀마의 1월은 청명하기가 비길 데 없는 게 특징인데, 그도 옛말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름 날씨도 42도 정도였는데, 온난화이 영향 이후 46도까지 상승했다.
꾸띠에서 정진법당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에 불과한데, 질척질척 비가 내리니, 꼭 가야하나? 하는 해태심이 마음 한 구석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게다가 우산도 없어 핑계거리는 충분하다. 20여 분 가까이 갈까 말까 망상을 피우다가 옷을 챙겨 입고 꾸띠를 나섰다. 여기까지 온 이유가 수행하기 위해서인데, 이깟 비로 주저하는 마음을 일으키다니,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정진법당에 도착해보니, 평소보다 절반 정도밖에 수행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나처럼 망상을 피우다가 망상에 굴복한 이들이 꽤 많은 모양이다. 그 순간 망상을 이겨낸 내 자신이 대견해보인다. 이크! 이런 착각 또한 망상인 것을!

 

어제 인터뷰에서 에인다까 사야도의 가르침을 상기하며 앉음수행을 시작했다. 평소와 달리 오늘 새벽에는 처음부터 호흡에 신경을 쓰지 않고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스캔하듯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다시 아래부터 머리까지 거꾸로 스캔을 하고, 두세 번을 더 반복했다. 한 수행도반이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앉음수행을 시작하려면 시작부터 호흡에 집중하지 말고, 먼저 자기의 몸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호흡을 조절하고, 어느 정도 편한 호흡이 되었을 때, 그 느낌 그대로 이어서 호흡을 관찰하라는 팁을 주었던 것이다.
그대로 실행했더니 과연 편하다. 어제까지 호흡이 거칠어 진땀을 흘리던 고통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집중도 비교적 잘 되었다. 수행 둘째 날 느꼈던 파동을 다시 느꼈다. 그것도 여러 차례 반복해서 파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기쁨이 찾아왔다. 수행을 하면서 찾아온 첫 기쁨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초선정(初禪定)의 경지에서 경험한다는 삐띠(pitti), 즉 초선정에서 나타나는 희열은 아닐 것이다. 아직은 집중력이 일천한 수준이니 잠시 경직된 몸과 마음이 이완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리라.
사야도의 가르침에 따라 파동을 느끼는 그 순간을 더 집중적으로 관찰하려고 노력했다. 더 예리하게 관찰하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 일면 호기심도 가지면서 집중했다. 그러나 아무리 집중을 해도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더 진전을 볼만큼 집중력이 강해지지 못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래도 그동안의 답답함과 거친 호흡, 약간의 통증을 느끼던 문제점을 해결을 했으니 내심 만족스럽다. 4시부터 5시까지의 앉음수행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자정부터 내린 비가 오전 내내 지속되고 있다. 비의 영향 때문인지 전기도 나가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전기가 들어왔다, 나갔다 불안정한 상태였는데 이렇게 비가 내리고 있으니 정전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꾸띠 안이 습기로 온통 축축하다. 아무래도 해가 나면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킨 후 선풍기를 돌려 제습을 해야 할 것 같다.
예불과 아침 공양을 마치고 꾸띠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내 꾸띠에서 같이 살고 있는 도마뱀이 후다닥 놀라 몸을 숨긴다. 도마뱀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도 성지순례 등 동남아 국가들을 순례할 때 흔히 닥치는 일이라 굳이 내쫓을 생각은 없다. 처음 욕실에서 도마뱀을 발견했을 때에는 바깥으로 내쫓을 생각을 냈었으나, 생각을 바꾸어 이곳에 머무는 동안 한 방에서 같이 살 식구로 대접하기로 했다.

 

양치를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8시부터 시작하는 앉음수행과 이어지는 걸음수행을 위해 꾸띠를 나섰다. 법당에는 새벽보다는 많았지만 평소보다는 수행 참석자가 많이 줄었다. 비의 영향이 생각보다 큰 모양이다. 모기도 보이지 않아 모기 망을 치지 않고 그대로 좌복에 앉았다.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상쾌했다. 좌선에 들어 새벽 정진과 똑같이 수행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한 시간 동안 사띠를 놓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호흡에 따라 배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주 관찰대상으로 하고, 통증이 생기거나 다리가 저려오면 그것을 알아차림 한 후 다시 배의 일어남 사라짐으로 돌아오는 것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수행했다.
망상이 일어나면 망상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림하고, 기침 소리나 바깥에서 새소리가 들리면 들림, 들림 하며 알아차린 후 다시 배의 일어남 사라짐으로 돌아오는 과정의 반복이다. 며칠 수행을 한 결과인지 다리가 저리고 등에 통증이 오는 현상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순간적으로 혼침에 빠져 사띠를 놓치는 경우도 제법 개선되었다. 한 시간이지만 놓치지 않고 사띠를 유지할 수 있다면 적지 않은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앉음수행을 하는 동안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드디어 한 시간 동안 사띠를 놓치지 않는 데 성공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망상이 조금 길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사띠를 놓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심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앉음수행이 끝난 후 일어나 걸음수행을 시작했다. 걸음수행을 잠깐 잠깐 연습을 했지만 한 시간 동안 지속해서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어제 인터뷰에서 사야도로부터 집중력을 키우는 데 걸음수행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는 가르침을 들었으니, 걸음수행을 대하는 마음자세가 확 달라졌다.

 

벌써 걸음수행을 시작한 수행자들이 열 명 남짓이나 있었다. 그들의 동선을 피해 법당 중앙에 코스를 잡고 걸음수행을 시작했다. 걸음수행은 발바닥에 주의를 기울이고 걷는 수행이다. 발바닥을 뗄 때에 ‘(발을) 듦 듦’하고 알아차리고, 발이 앞으로 나아갈 때에 ‘나아감 나아감’하고 알아차리고, 발을 바닥에 내려놓을 때 ‘놓음 놓음’ 하며 알아차리는 것이다. 얼핏 보면 천천히 걸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행자들의 마음은 발바닥에 집중되어 있다. 발의 움직임과 발바닥과 바닥의 닿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이기에 집중력 향상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한 시간 동안 혜송스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대로 걸음수행을 했다.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집중력이 좋아지는 느낌이 든다. 30여 분 넘게 걸음수행을 하다가 문득 주위를 돌아보니 정진법당에서 걸음수행과 앉음수행을 하고 있는 분들이 모두 한국 수행자들이다. 한국 수행자들의 수행열기가 그만큼 뜨거운 것이다. 미얀마의 사야도들이 ‘미얀마의 테라와다의 전통이 앞으로는 한국으로 넘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는 입소문이 난 것은 아마도 이런 광경들 때문에 나온 말은 아닐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