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사야도와 생애 첫 수행인터뷰를 하다
 

 

월요일,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됐다. 수행센터에서의 하루일과에는 요일에 차이가 없으나 그래도 한 주가 시작되는 날이니 새롭게 마음을 다잡아 본다. 잠을 자다가 일어나니, 새벽 2시다. 시간이 일러 좀 더 자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침상에 누웠다. 알람을 해놓았으니, 안심하고 자도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낭패가 있나.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월요일 첫 정진부터 20분이나 늦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누가 야단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스스로의 다짐이 시작부터 어그러졌으니 마음은 개운치가 않다.
정진할 시간이 30여 분밖에 남지 않았으니 더 집중을 해야 한다. 다행히 어제처럼 가슴에 심한 통증은 없다. 온전히 ‘일어남 사라짐’의 호흡관찰을 놓치지 않고 할 수 있었다. 잡생각이 두어 차례 떠올랐으나 이내 알아차리고 다시 호흡관찰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약간의 진전으로 볼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새벽 5시부터는 아침 예불시간이다. 예불은 띨라신(여성출가수행자) 한 분이 선창을 하고 대중이 게송을 합송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거기에 비구 한 분이 앞자리에 마련된 의자에 마주 앉아 예불의식을 주관한다. 비구와 대중이 번갈아가며 의식문을 낭송하거나 합송을 하는데, 그 광경이 대단히 장엄하다. 한국불교의 칠정례도 장엄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이곳의 예불의식은 더 장엄하고 웅장하게 다가온다.
오늘의 예불의식을 주관할 비구가 걸어들어 오는데, 세상에나! 에인다까 사야도가 특유의 정돈된 걸음걸이로 들어오시는 게 아닌가. 예불 시간에 사야도께서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무슨 일일까? 예불의식을 마치면 바로 아침 죽 공양 시간으로 이어지는 것이 순서인데, 어째 분위기가 조금은 싸하다. 아니나 다를까. 에인다까 사야도는 예불의식이 끝났는데도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으시고 예정에 없던 법문을 시작한다.

 

 

에인다까 사야도의 새벽법문에는 경책의 의미가 담겨있었다. 수행센터 안의 산책로를 거닐 때 잡담을 하며 다니는 것은 사띠를 깨뜨리는 것이며, 혼자 다녀야 하고, 대화를 나눠서는 절대 안 된다고 야단을 치신다. 걸어 다닐 때도 가능한 사띠를 유지하고, 먼 산을 보지 말고 바로 앞을 바라보고 다녀야 사띠를 유지할 수 있다고 간곡하게 강조하셨다.
말씀은 부드러우나 그 내용은 서슬 퍼런 칼날처럼 날카롭게 다가온다. 특히 이날의 경책은 공양을 마친 후 자유롭게 산책을 하며 잡담을 나누곤 하던 한국인 수행자들을 향한 것이 틀림없기에 오금이 저려오기 시작한다. 사야도의 경책에 한국인 수행자들의 표정은 겸연쩍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기왕에 이역만리 수행을 하러 왔으니, 사야도의 경책이 아니더라도 좀 더 진지하고 철저했어야 옳았다.
그 순간, 담마마마까에서 수행자의 생활 규칙으로 제시하고 있는 ‘마하가전연(까짜야나) 존자의 게송’이 떠올라, 한동안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에인다까 사야도의 법문은 즉각 효력을 나타냈다. 나를 포함해서 한국인 수행자들의 행동이 눈에 띠게 달라진 것이다. 산책을 아예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혼자서 다니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역시 가끔씩은 군기를 잡는 것도 필요하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되는 앉음수행을 위해 법당으로 향했다. 평소와는 달리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모으고, 발의 느낌에 집중하면서 걸었다. 꾸띠에서 법당까지 거리가 이전보다 시간이 두 배는 더 길어진 듯하다.
호흡은 여전히 자연스럽지 못하다. 가슴이 답답해 이따금씩 크게 심호흡을 해야 했다. 답답함 가운데 통증도 조금씩 찾아왔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이라고, 통증이 생긴 원인을 살펴보니 일전에 먹은 볶음서리태 때문이었다. 오후에는 출출하더라도 낱알을 먹어서는 안 되는데 그만 모르고 서리태를 먹은 것이 화근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미숫가루처럼 가루를 낸 것은 허용이 되지만 낱알을 씹는 것은 허용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통증은 계를 어긴 대가였던 셈이다. 아무려나, 오전에는 자연스럽고 부드러웠던 호흡이 왜 오후에 들어서는 이렇게 거칠어졌을까? 고민 끝에 오후 3시부터 시작되는 사야도와의 인터뷰에 참석해 의문을 풀어보기로 했다.

 

 

 

오후 3시부터 인터뷰가 시작된다. 미얀마의 여성출가수행자인 띨라신들이 벌써 줄지어 서 있다. 수행을 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나 변화를 사야도에게 솔직하게 보고하고, 수행의 방향이 옳은지 그른지를 점검받은 후 바른 수행법을 배우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자들 사이에서는 책을 보는 것은 100원 짜리 공부, 앉음수행을 하는 것은 1,000원 짜리 공부, 스승과 인터뷰를 하는 것은 10,000원짜리 공부라는 이야기가 있다.
띨라신들의 인터뷰가 1시간 동안 이어지고, 한국인 수행자들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드디어 생애 첫 인터뷰 시간이 다가왔다. 사야도 앞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삼배를 올리고 마주 앉았다.
사야도께서는 먼저 이름과 사는 곳, 종교를 물어보신다. 이어 위빠사나 수행 경험이 있느냐를 묻는다. 나는 ‘왕초보’라고 답했다. 그러자 사야도께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미소를 지으신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목표가 무엇입니까?”
“네, 이번 생에 수다원 도과를 이루는 것입니다.”
“좋아요. 목표는 원대해야 합니다. 열심히 수행하면 반드시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다원에 이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5력(五力), 즉 땃따(신심), 위리야(정진력), 따띠(사띠, 성성한 알아차림), 사마디(신수심법의 대상에 몰입하는 집중력), 지혜(생멸변화를 아는 것)을 갖추는 것입니다.”

 

이윽고 사야도께서 오늘 보고할 내용을 보고하라고 말씀하신다. 통역은 이 수행센터의 창건주 혜송스님이 맡아주셨다.

 

“일주일 전, 처음 이곳 담마마마까에 와서 좌선을 시작했을 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첫 경험이어서 경황없이 지나갔습니다. 나흘째 되던 날, 마지막 앉음수행 시간인 오후 8시부터 9시까지 수행을 하다가 낯선 체험을 했습니다. 호흡이 부드러워지면서 배꼽까지 공기가 들어가지 않고 명치부분까지만 공기가 닿는 느낌이 들면서 머리 뒤편으로 파동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파르르 떠는 진동이 몇 초 동안 이어지다가 끊어지고, 다시 이어졌다가 끊어지는 현상이 5~6차례 이어졌습니다. 이게 뭐지? 하면서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위빠사나 수행을 오래 동안 해온 분들에게 에 이 현상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사야도께 물었어야 했습니다.” 혜송스님이 지적을 해주셨다.
“아, 그런가요? 잘 몰랐습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혜송스님의 통역을 들은 사야도께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변했다.

 

“잘 하고 있습니다. 보고도 아주 솔직합니다. 우선 솔직한 보고, 그것이 마음에 듭니다.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또 끊어졌다 다시 이어지는 현상도 알아차렸으니, 아주 잘 한 것입니다. 좋습니다.”

 

사야도의 칭찬은 수행초보자를 격려하는 연민과 배려가 담겨 있을 것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수행 체험을 보고했다.

 

“그런데, 그 다음 날부터 호흡이 경직되고 불편해졌습니다. 아마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욕심을 부린 것이 화근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오늘 오전 4시부터 5시까지의 새벽 앉음수행 시간에는 답답함을 넘어 가슴부위에 약간의 통증까지 느껴졌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몰라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좋습니다. 답답함을 알아차렸고, 통증을 알아차렸으니 그 또한 잘 한 것입니다. 그런데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해야 합니다. 더 날카롭게 정확하게 관찰했다면 답답함과 통증의 문제가 해결되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 날카롭게, 더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노력을 기울이세요. 집중력을 키우도록 노력하세요. 그렇게 노력을 해보고 다시 어떤 변화가 나타나면 즉시 인터뷰를 하기 바랍니다.”    

 

내 생에 사야도와의 첫 인터뷰는 이렇게 끝났다. 인터뷰를 잘 한 것인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함께 인터뷰를 한 다른 경험 있는 수행자들과 사야도 사이의 문답을 들으며, 중요한 부분을 메모했다. 특히 걸음수행이 왜 중요한지를 강조하는 사야도의 세밀한 지도가 뇌리 속에 깊이 박혔다. ‘걸음수행의 비중을 앉음수행의 비중과 같게 하라’는 말씀을 듣고, 앉음수행을 하고 난 후 다리를 푸는 정도로만 생각했던 걸음수행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할 수 있었다. 인터뷰는 자신의 궁금증을 푸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의 문답을 들으면서 중요한 것을 공부할 수 있는 정말로 중요한 자리였다.
‘아, 이래서 인터뷰를 10000원 짜리 공부라고 하는구나!’

 

오후 법문 시간을 마친 후 혜송스님께서 한국인 수행자들은 한국관으로 모이라는 전갈이 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한국관에 갔더니, 1층 법당에는 벌써 많은 한국인 수행자들이 모여 무엇인가를 맛나게 들고 계신다. 미얀마에서 생산되는 이름 모를 과일이다. 채소와 과일의 중간쯤 되는 맛인데 밍밍한 듯하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아마도 오전에 사야도로부터 혼쭐이 났으니, 혹시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까, 달래주려는 어머니의 마음 같은 혜송스님의 배려일 것이다.   
사야도와 수행인터뷰를 한 첫날이어서 그런지, 행복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