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에 눈을 떴다. 잠을 떨치기 위해 찬물로 세수를 하고 법당으로 향했다. 4시부터 앉음수행이 시작되지만 오늘은 30분 일찍 도착했다. 그런데 벌써 정진에 들어있는 요기(재가수행자)들이 네댓 명이나 눈에 띤다. 면면을 살펴보니 정진 이력이 긴 분들이다. 아무래도 정진이 잘 되는 새벽에 집중적으로 수행하겠다는 경력자들의 노하우인 듯싶다.
뒤질세라 좌정을 하고 앉아 배의 일어남 사라짐을 관찰했다. 배의 일어남 사라짐을 관찰하는 것은 마하시 계열의 공통된 수행전통이다. 마하시 계통에서는 사마타에는 그리 비중을 두지 않는다. 반야의 지혜를 발현시키는 위빠사나 수행으로 곧바로 들어갈 것을 강하게 권하는 것이 마하시 센터에서 권장하는 수행의 특징이다.
집중이 모처럼 잘 된다. 아직 수행자들이 모여들기 전이라 법당 전체가 고요한 덕도 있을 것이다. 배운 대로 배의 일어남 사라짐을 집중적으로 관찰하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마음속으로 일어남 사라짐을 부르며 관찰했지만, 호흡이 미세해지면서부터는 뱃속에서 공기의 흐름, 그 흐름이 주는 느낌에 초점을 맞추려 애를 썼다. 그러자 이틀 전 새벽정진에서 나타났던 미세한 파동이 다시 찾아왔다. 기뻤다. 아, 이렇게 놓치지 않고 새벽정진을 마감하리라, 굳게 마음을 먹고 더 또렷한 관찰을 시도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땡~ 하며 정진을 마치라는 종이 울린다. 모처럼 온전하게 찾아온 사띠의 여운을 접어버리기가 아쉬워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 10분은 더 앉아있으리라는 마음과 함께. 바로 그때 카랑카랑한 혜송스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 새벽정진은 이것으로 마칩니다. 지금 모든 분들은 세계평화진신사리탑으로 가세요. 1층 부처님 점안식 불사에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담마마마까에서 혜송스님의 말씀은 곧 법이다. 스님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둘러 자리를 정돈하고 사리탑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벌써 에인다까 사야도를 비롯해 많은 스님과 틸라신들, 미얀마 불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미얀마 불교에서의 점안식은 어떨까? 호기심도 일었다. 불상을 가린 흰 한지를 오색실로 잡아당겨 벗기고, 증명하는 큰스님이 불상의 눈을 향해 겨누듯 붓을 드는 등의 한국불교에서의 점안법회 의식은 여러 차례 지켜본 바가 있기에, 남방과 북방의 의식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미얀마에서의 불상점안 의식은 모든 대중이 꽃을 들고 부처님 전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부처님의 오도송 등 부처님께서 깨닫는 순간을 담은 게송을 합송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붓다의 오도송을 합송한 사부대중은 이어 붓다가 깨달음을 얻을 당시 행했던 12연기를 순과 역으로 숙고하는 게송을 읊었다.

 

 

 

이어 점안의식은 붓다가 오도송을 읊은 후 부른 세 편의 깨달음의 노래를 합송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장엄하고 성스러운 점안 의식은 삼보예찬과 육법공양의 의식으로 이어져 1시간 만에 마무리됐다. 에인다까 사야도의 안내에 따라 사부대중은 준공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 중인 한국관 1층에 모셔진 불상의 점안을 위해 다시 발길을 옮겼다. 비슷한 의식으로 오늘 오전 불상 2구의 점안식을 마쳤다. 에인다까 사야도는 점안식에 함께한 불자들에게 이 공덕으로 도와 과, 그리고 열반을 성취해 윤회로부터 벗어나기를 축원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세계평화진신사리탑의 기단부인 1층 공간에 모셔진 불상은 한국의 대표적인 불상인 석굴암 부처님을 본떠 조성했다. 그러니까 이 부처님은 한국 불자들이 테라와다 불교 수행을 마음 놓고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최적화된 시설과 프로그램을 갖춰놓은 담마마마까에서 한국인 불자들이 가장 신성하고 귀중하게 여기는 석굴암 부처님에게 언제든 참배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혜송스님 원력의 결실이다.
또한 3층 규모의 한국관 역시 건물 이름에서 보듯 한국인 불자들이 마음 편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지은 건물이다. 건물 옥상에는 얼핏 보면 한국의 3층 석탑을 닮은 옥탑도 세워 친근감을 더한다. 이곳에서는 매일 오후 2시 한국인 수행자들을 위한 법문이 진행된다.

 

 

 

연이은 점안식 불사로 아침 죽 공양 시간이 늦어졌다. 오늘 공양은 혜송스님과 이번에 담마마마까를 찾은 한국인 불자들이 마련한 것이다. 공양을 마치니, 미얀마 스님들의 수계의식이 준비되어 있다. 계를 반납하고 새로 계를 받는 것이 아니라, 1년에 한 차례씩 출가비구가 반드시 지켜야할 계율을 다시 한 번 환기하고 더 계행을 청정하게 하겠다는 다짐의 의미가 있는 행사이다. 이 의식은 스님들이 출가를 하거나 수계를 받을 때나 이용하는 성스러운 공간 ‘시마홀(Sima Hall)’에서 열리는데,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된다.
어렵게 사진촬영을 허락받아 수계의식 뒷부분을 잠시 촬영할 수 있었다. 이 수계의식에 동참하기 위해 많은 스님들이 담마마마까를 찾아왔다. 지계의 의지를 새롭게 하고, 또 새로운 각오로 계를 받아 지닌 비구들에게 보시를 하기 위해 미얀마 불자들이 모여들었다. 비구와 여성수행자인 띨라신을 포함 약 120여 분이 보시를 받을 대상이다. 미얀마 화폐 500짯 권 지폐 120장을 바꿔서 비구들과 띨라신들에게 보시했다. 보시를 마치고 나서 다시 정진법당에서 비구스님들과 재가자들이 모여 공양물을 전달하는 의식을 마친 후 에인다까 사야도로부터 보시공덕에 관한 법문을 들었다.

 

 

오늘만큼은 담마마마까는 조용한 수행처가 아니다. 새벽부터 다양한 행사가 잇따라 열렸기 때문이다. 선원은 사람들로 오전 내내 북적였고, 마침 일요일이라 어린아이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하루쯤은 이렇게 시끌벅적한 날이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새벽부터 연이은 불사를 주도적으로 진행했기 때문인지, 철의 여인처럼 보였던 혜송스님도 2시 법문을 결강하고 말았다. 피로가 겹쳐 휴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덕분에 함께 이곳에 함께 온 한 도반과 경내를 한 시간 가량 산책할 수 있었다. 수행센터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수행센터 바깥 마을까지 나가 미얀마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고속도로의 모습도 구경했다. 우리나라의 60~70년대 생활수준이라고 할까. 사람들은 많이 가난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맑고 행복해 보였다. 부처님의 나라, 수행이 살아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란했던 오전이 지나가고, 담마마마까의 저녁은 다시 고요를 되찾았다. 오후불식을 철저히 지키는 지라, 나처럼 당뇨를 지병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은 특히 저혈당이 찾아오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아내가 정성껏 볶아 넣어준 서리태를 간식 삼아 먹었다. 직접 농사 지어 수확한 서리태인지라 더 맛있는 것 같다. 한 움큼을 집어 먹으니 어느 새 목이 멘다. 목이 메어 음료를 마셨지만, 더부룩해진 속이 불편을 느끼게 할 정도다. 혹시 체한 건 아닐까?
오후 6시 좌선 정진을 하기 위해 꾸띠에서 법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앉음수행을 하는 내내 속이 더부룩한 것이 몹시 불편하다. 불편함을 느끼니 불편이 강도를 더한다. 불편함을 집중적으로 관찰해보지만 불편함은 사라질 줄 모른다. 온 몸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정신까지 몽롱해진다. 가까스로 한 시간 정진을 마쳤지만, 고통 속을 헤매다가 시간만 보낸 꼴이 되고 말았다.
서둘러 꾸띠로 돌아와 물을 마시고, 산책길에서 걸음수행을 했다. 그래도 불편함이 아주 가시지는 않는다. 더부룩한 기운이 줄어든 대신 왼쪽 가슴 아래 부분에 통증이 느껴진다. 통증을 알아차리라는 것이 사야도와 혜송스님의 가르침이지만, 또 알아차리면 사라지는 것이 통증이라지만 통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도 사띠의 힘이 아직 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7시 걸음수행 시간은 이렇게 수행센터 산책로를 거니는 것으로 대신하고 8시부터 취침전인 9시까지의 마지막 앉음수행을 하기 위해 법당 문을 열었다.
많은 수행자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정진 중이다. 몇 년째 이곳을 찾아온다는 경력이 있는 수행자들은 벌써 자세가 다르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사띠에 들어 있는 것이리라.
그분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가만가만 자리를 펴고, 1인용 모기 망을 펼쳐 그 안으로 들어가 평좌 자세를 하고 앉았다. 호흡을 주시하며 일어남, 사라짐을 관찰했다. 그러나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 왼쪽 가슴 부위에 통증이 시작된다. ‘내 기필코 이 통증을 사띠의 힘으로 극복해보리라.’ 오기가 생겨 이를 악물고 통증을 관찰했다. 통증이 약해지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 강하게 밀려온다. 통증과한 한 바탕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식은땀이 흐르고 호흡도 거칠어진다. 가슴이 갑갑해 어깨를 펴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그러나 소용이 없다. 허리를 펴고 목을 들면 통증이 조금은 줄어드는 듯해 그 자세를 취하면 금세 다른 부위에서 통증이 고개를 든다. 마음의 밭을 가는 일이 이렇듯 힘겹다니. 그러나 마음농사라는 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에 출국 때부터 고생을 했던 목감기의 기운이 남아 목이 간지러워지고 있다. 기침이 곧 터질 위기다. 기침을 하면 다른 수행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니, 이를 악물고 참는다. 그러나 한번 시작된 간지러움은 도무지 사라질 줄을 모른다. 할 수 없이 손가방을 열어 용각산을 한 스푼 목에 털어 넣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잠시 뿐. 결국 나는 기침을 하고야 말았다. 기침을 하면 가려움증이 일단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웬일인지 가려움이 그대로 남아 있다. 어쩌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법당 밖으로 나아가 걸음수행을 하는 편이 낫겠다 싶어 40분 만에 자리에서 일어서고 말았다.
담마마마까에서 머문 시간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 수행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절감한다.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심정이라고나 할까. 내가 과연 이 벽을 통과할 수 있을지…. 갑갑함에 시나브로 어깨가 쳐지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