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성님을 모시는 한 칸짜리 전각이지만 ‘인도 천태산에 있는 집’이라는 「천태각」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를 고른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다홍치마는 다홍색의 치마가 아니라 “뛰어난 사람”으로, 좀 더 훌륭한 사람을 고른다는 뜻이 됩니다. ‘독성님이 모신 집’보다는 ‘천태산에서 깨달은 분을 모신 집’이라 함이 격을 더 높여드리는 것 같음은 제가 속물적인 근성 때문일까요?

 

 

 

“독성”은 예불 때마다 염송하는 “지심귀명례 영산당시 수불부촉 십대제자 십육성 . . .”의 십육성 중 첫 번째 분으로 나반존자- 빈두루파라타(賓頭盧頗羅墮, Pindolabharadyaja)-입니다.
많은 사찰에서 독성도를 걸어 모시지만 약사사는 존자님을 하얀 석고상으로 조성하였고, 불단에 불상의 크기에 맞는 불감(佛龕)에 봉안한 것이 특이합니다. 존자님의 우측에는 “부처님 없는 세상에 태어나서 고요한 숲에서 선정을 닦으면서 비화낙엽(飛花落葉)하는 천지자연의 변화를 보고 스승 없이 스스로 갖가지 인연의 도리를 깨친 성스러운 수행자”라 안내되었습니다.

 

 

 

우리들이 매번 무심코 보아 넘기는 예쁜 꽃도 때가되면 떨어지고, 울창하던 푸른 잎도 낙엽 되어 떨어지는 것을 보시고 홀로 인연법을 깨우치셨다니 참으로 대단한 분입니다. 그렇게 깨우치셨다는 것이 대단한 일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존경받아 마땅한 것은 인연법을 깨우친 엄청난 능력과 신통력을 중생들을 위하여 베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독성님 여럿을 모시고 싶었지만 한 칸 집으로 지을 수밖에 없어서, 도리 아래 좁게 생겨난 포벽 안쪽에 독성 몇 분을 그렸습니다. 청색 가사와 녹색가사를 입고 마주앉은 두 분의 독성은 휘휘 구부러진 지팡이와 큰 염주를 들었는데, 자세히 보니 흰 눈썹 아래 눈빛이 형형합니다. 어쩌면 진정한 깨달음이 무엇인지를, 중생들을 이롭게 할 방편은 무엇인지를 이야기 나누시는 하는 듯합니다. 

 

 

 

약사사는 여러 전각의 지방문화재 등록절차를 진행하는데, 천태각도 그 중 하나로 안내되고 있었습니다. 천태각은 낙성된 이후 신도들이 올린 많은 향초 공양으로 내부 단청이 심하게 그을었고, 벽체도 이리저리 갈라졌습니다. 그렇게 갈라지는 벽체를 감당할 수 없어 속수무책으로 훼손된 독성님을 보며 안타까움이 일었습니다.  
 
천태각이 한 칸짜리의 작은 전각이기에 나반존자의 자비하심을 두 줄의 주련으로 걸었습니다.

 

나반존자의 신통력을 보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지만
필요한 이에게는 꼭 나타나시어 마음대로 베푸신다네.

 

 

약사사 전각에 걸린 탱화의 화기를 읽으니 봉안시기가 대부분 불기 2986년과 2987년으로 쓰여 있습니다. 이를 서기로 환산하면 1989년과 1990년이 되는데, 이때는 한능해 스님께서 한창 증창불사를 일으키실 때입니다. 패쇄된 절을 일으켜 사찰의 이름이 「약사암」이었으니, 작은 암자(?)는 서기 1989년에 약사전으로 승격(?)되었고, 약사전은 그때 대웅전이었을 것이라 짐작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전각 내부의 화려함과 장엄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보월스님께서 ‘중생들의 괴로움의 근본인 무명업식을 깨우쳐 주어야겠다’는 큰 서원으로 동방만월세계 약사유리광여래 부처님(東方滿月世界藥師琉璃光佛)을 모시고 약사암이라 명칭하셨기에, 약사전에는 약사유리광여래 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질병이 가져오는 고통을 모르거나 겪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하루가 다르게 의학이 발전하고 있는 현재도 그러한데, 예전 사람들의 질병에 대한 두려움은 상당히 컸을 것입니다. 중생들 몸에서 생겨난 생리적인 욕망이 뿌리가 되어, 그 위에서 자라난 여러 욕망은 커질 줄만 알았지 채워지지 않으면서 마음도 병들게 됩니다.
이런 중생들이 몸과 마음의 질병을 고쳐 건강하게 하시고, 고통을 벗어나는 지혜를 주시는 부처님이 동방 유리세계에 계신 약사여래입니다. 중생의 고통과 괴로움을 소멸시키려는 큰 원을 세워 오래 동안 보살수행을 닦아 약사부처님으로 성불하신 뒤, 불쌍한 중생들에게 무한히도 큰 자비심을 펼치고 계시니 모시는 전각을 화려하게 장엄함이 마땅한 것이지요.

 

불단 중앙 연화대좌에 반가부좌하신 약사부처님은 가슴까지 올린 오른손의 엄지와 중지를 가볍게 맞댄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취하셨는데, 이는 질병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왼손에는 중생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단지를 올려놓고 계십니다.

 

 

 

약사부처님을 보며 ‘중생의 고통과 두려움을 소멸시켜 주겠노라’는 약사부처님의 마음을 넘치지도 또 한 치의 부족함도 없이 빚어낸 불모(佛母)의 솜씨가 놀라웠습니다. 
현대인들이 ‘나도 저랬으면 . . ’하고 원하는 살지지도 여위지도 않은 몸매는 물론, 긴 눈썹 아래 반만 뜬 눈에 담긴 깊은 사념, 중생의 고통을 소멸시키려는 염려로 양 볼에 나타난 약간의 긴장과 함께 중생들을 보살펴주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작은 입술은 불모가 약사부처님을 뵙고 빚어냈는가하는 의심까지 들었습니다.

 

 

 

약사부처님의 좌우측에는 석가모니부처님 금생에서 일어난 굵직한 사건을 표현한 팔상도가 시간 순서대로 각각 네 폭씩 펼쳐져 있습니다.
약사부처님의 왼쪽에는 “도솔내의상 ․ 비람강생상 ․ 사문유관상 ․ 유성출가상”이, 오른쪽에는 “설산수도상 ․ 수하항마상 ․ 녹야전법상 ․ 쌍림열반상”이 자리하였습니다.
각각에는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나 결과를 보여주는 몇가지의 장면을 묘사하였고, 그 장면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짧은 설명을 기록하였습니다.

 

북문에서도승을맛나무르셧다불멸법은인간의무상살귀는빈부귀천을가리지안는다질니를깨다른사람의게는침해하지못한다말을맟이고사라젓다감탄하시고결심하시다.(왼쪽사진. 사문유관상의 일부) 북문에서 도승을 만나 물으셨다. 도승은 불멸법은 인간의 나고 죽는 덧없음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는다. 진리를 깨들은 사람에게는 침해하지 못한다는 말을 마치고 사라졌다. 감탄하시고 출가를 결심하셨다.
(현재 쓰이는 문장으로 바꿨습니다.)

 

따라서 “도솔내의상”부터 “쌍림열반상”까지의 여덟 장에 묘사된 여러 장면을 보면서 설명을 읽으면 팔상록의 요약본을 읽은 것과 같습니다. 소리 나는 대로 쓰였지만 지금과 문법이 다르고, 띄어쓰기도 없어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차분히 읽으면서 부처님께서 겪고 성취하신 것에 대한 존경심이 더 늘어났습니다. 

 

 

 

약사전도 그간의 많은 향초 공양으로 닫집을 비롯한 내부 단청이 그을어 아름다운 색상을 잃었지만, 장엄한 모습은 그대로 남아있어 예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맞배지붕 집임에도 지붕이 무거웠던지, 활주를 받친 약사전에는 부처님의 자비심과 중생들이 이루어야 할 내용의 주련이 걸려있습니다.

 

불신충만어법계 보현일체중생전    (佛身充滿於法界 普現一切衆生前)
수연부감미부동 이항처차보리좌    (隨緣赴感靡不同 而恒處此菩提座)
 
부처님은 이 세상 어디에나 계시고, 어디에서나 나타나신다네. 
그렇지만 인연 따라 보여주심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네.   (계속)